평일에도 북적이는 한탄강 주상절리길[8인8색 여행특집]

2022. 6. 20.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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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서 차로 1~2시간에 만날 수 있는 일상탈출 여행지
아뿔싸. 오산이었다. 붐볐다. 아침 일찍부터 10여대의 관광버스와 개인차량들이 기자가 도착한 순담매표소 앞에 가득했다. 애초 기획안은 ‘혼자 떠나는 한탄강 주상절리 여행’이었다. 평일이니 사람이 없을 줄 알았다. 평일임에도 이렇게 관광객이 많다니, 지자체 입장에서는 대성공이다.

한탄강 주상절리길은 지난해 11월 개통 이후 누적관객 50만명을 돌파했다. 협곡을 따라 약 2.9㎞에 이르는 잔도길이다. / 정용인 기자


기사를 찾아보니, 지난 6월 7일자로 지난해 11월 19일 개장 이래 누적 관광객 50만명을 돌파했다고 한다. 월요일에 이 정도니 주말엔 더 많은 관광객으로 붐빌 듯싶다. 화요일은 휴무다.

순담매표소에서 드르니매표소까지 ‘잔도(棧道)’길은 약 2.9㎞. 평균 예상 도보시간은 약 2시간이다. 차량을 매표소 한곳에 주차하면 다시 같은 길을 돌아와야 하므로 3~5시간은 비워놓아야 한다. 다행인지 아내가 기자의 한탄강 주상절리길 여행에 동행했다. 기자를 순담매표소에 내려준 다음 드르니매표소로 가서 기다리기로 했다. 차량으로는 약 15분 거리. 당장 편하긴 했는데, 만약 왕복으로 돌아오는 길에 경치를 완상했다면 또 다른 느낌이었겠다는 생각도 든다.

서울을 벗어나 차로 1~2시간이면 방문 가능한 한탄강 일대는 아직 그리 많이 알려지지 않은 명소가 많다. 삼부연폭포


누적 관광객 50만명 돌파한 주상절리길

관광객의 대부분은 장년·노년층이다. 의도치 않게 스쳐 지나가며 대화를 엿들었다. “자녀진학, 사는 동네, 복지관…” 등의 노하우와 정보를 교환하고 있었다. 한 장년층 남성이 맞은편 주상절리 절벽에서 떨어지는 폭포를 두고 “저거는 진짜가 아니라 가짜로 물을 끌어다 쏟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확한 정보는 아닌 듯싶다. 2.9㎞에 이르는 주상절리길에서 폭포를 여럿 목격했다. 아직 장마철이 오지 않아 폭포 줄기가 약하긴 했는데, 장마철이 지나면 더 장관일 것으로 보인다.

승일교


잔도(험한 벼랑 같은 곳에 선반처럼 매달아 낸 길)를 걸으며 드는 상념. 주상절리가 한쪽 면만 발달한 것도 아닐 테고, 잔도가 설치된 이쪽에도 있었을 텐데 맞은편에서 보면 이쪽은 관광을 위해 자연경관을 훼손한 것이 아닌가. 벌써 7~8년째 논란을 빚고 있는,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설치를 둘러싼 갈등을 떠올렸다. 케이블카 설치를 찬성하는 쪽에서는 설치 장소를 제외하면 다른 곳의 훼손을 막는다고 주장한다. 환경단체들은 경관파괴를 비판하고…. 양측 입구의 매표소를 설치한 곳은 강원도 철원이지만 잔도에서 바라보는 경관은 경기도 포천 쪽이다. 한탄강은 경기도 연천·포천·철원에 걸쳐 흐르고 있다.

고석정


잔도가 생각보다 가파르진 않았다. 각 매표소 인근에 경사가 가파른 계단이 두세 곳 있는데 체력이 약한 사람에게는 ‘고비’가 될 것이다. 군데군데 쉬어갈 전망쉼터도 많았다. 무리한 욕심만 부리지 않으면 된다. 예전에 본 한탄강 물빛은 쪽빛이었다. 초여름, 몇 번의 비 끝에 방문한 한탄강 물은 흙빛으로 변해 있었다. 매표소 입장료는 1만원. 이중 5000원은 ‘철원사랑상품권’으로 돌려받는다. 드르니매표소 바로 바깥엔 이제 막 들어선 커피숍이 있다. 2시간 걸음 끝에 목이 탄 관광객들로부터 상품권을 갈퀴로 끌어모을 것으로 짐작된다(주차장 맞은편엔 철원군 농산물과 가래떡 등을 파는 임시천막 상점도 있다).

화적연


차를 타고 가다 보니 눈에 익은 한 평범한 음식점이 나온다. 문을 닫았다. 저길 언제 갔더라. 2년 전 이 무렵, 주말에 삼부연폭포를 방문해 ‘차박’하고 돌아가던 길에 아침밥을 먹은 해장국 집이다. 어럽쇼, 하고 내비게이션을 찍어보니 삼부연폭포가 2㎞쯤 근처다. 예전에 올 때는 고속도로 통행료를 2차례 내고 포천 쪽으로 해서 왔는데? 바로 삼부연폭포로 핸들을 돌렸다. 폭포주차장의 한편에 삼부연폭포로 가는 굴이 나 있다. 새로 터널이 뚫리기 전엔 이곳이 주 통행로였다. 삼부연폭포에서 차박한 이야기를 SNS에 올렸더니 이 동네 출신인 대학 후배가 “1970~1980년대 〈전설의 고향〉 단골 촬영지였다”라고 회상하는 글로 답했다.

아우라지 배게용암


다음 일정은 승일교다. 한국전쟁 전 북한에서 짓기 시작해 완공은 이승만 정부 때 한 특이한 다리다(표식을 보니 1948년 8월 북한에서 짓기 시작해 1958년 12월 3일 남한이 완공했다. 시작과 완성의 시공법과 주체가 달라 아치의 크기 등 교각 모양이 구분된다고 한다). 지금은 인근에 승일교와 비슷한 아치공법을 사용한 현대식 다리(한탄대교)가 들어섰고, 도보여행객들만 맞이한다.

비둘기낭폭포


어느 틈에 사라진 고석정 반공박물관

한탄강 일대는 가볼 만하지만, 아직 그리 많이 알려지지 않은 명소가 많다. 그나마 많이 알려진 명소가 고석정이다. ‘고석정 국민관광지’는 위 승일교에서 약 3㎞ 떨어져 있다. 예전에 이곳에 왔을 때 입구에 전시돼 있던 비행기나 탱크 그리고 반공전시관이 기억난다. 간첩이 소지하고 있던 난수표나 깨알 같은 글씨로 적혀 있는 지령문, 통일혁명당 강령 등이 신기해 사진을 찍었다. 방문한 게 5년은 안 된 것 같은데 싹 사라졌다. 철원의 봄·여름·가을·겨울을 주제로 한 조형물과 철원 특산품 전시관으로 바뀌었다. 입구의 안내인에게 예전 전시 물품은 어디로 갔냐고 물었다. “폐기했거나 일부는 DMZ 안의 평화전망대 쪽으로 옮겼을 거예요.”

한탄강 하늘다리


고석정을 내려가는 길은 계단이 가파르다. 내려갈 때는 모르지만 다시 오를 때는 인내심을 시험케 한다. 마침 비까지 내렸다. 중간중간에 있는 나무의자들도 젖어 앉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고난 끝의 행복일까. 탁 트인 경치는 운치가 있다. 협곡 사이에 솟은 약 15m의 바위엔 노송들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영화촬영지로도 유명하다. 몇년 전에 왔을 때는 없던 나루터가 바위 앞 모래무지에 만들어져 있다. 처음 방문한 사람은 예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착각할 터. 만들어진 전통인가.

화적연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다. 수요일 DMZ 방문을 마치고 들렀다. 숲속 1차선 도로를 달려가다 보니 나왔다. 한꺼번에 차 2대가 통행하기 어려울 정도로 좁은 구간이 제법 되는데 아마 주말에 방문하려면 꽤 곤욕을 치를 듯하다. 비가 내려 그렇지, 화적연 바위 맞은편 숲속엔 편히 쉴 수 있는 나무의자와 나무 사이에 해먹 등이 마련돼 있었다. 고즈넉하게 흐르는 물결에 상념들을 떠내려 보낸다면 좋은 안식이 될 듯싶다.

매일 폭포 방문으로 일정을 마무리했다. 이번 기획 이전 주말이면 제일 많이 방문한 장소이기도 했다. 비둘기낭폭포를 방문하려면 주한미군 로드리게스 훈련장 옆길을 달려야 한다. 주말에도 심심치 않게 훈련을 하는 일단의 미군을 조우하곤 했다.

재인폭포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는 이 기사를 기획하며 낸 제목이었다. 한탄강 일대는 주말에 방문해도 사람들이 거의 없다. 과거 보통 집에서 꾸물거리다 점심을 먹고 2~3시쯤 나와 별 계획 없이 방문한 탓일 수도 있다. 서울 시내를 빠져나오면 보통 1시간에서 2시간 사이에 한탄강의 주요 명소는 거의 방문이 가능했다.

멀리서 구경만… 결국 우리가 남긴 업보

재인폭포나 비둘기낭폭포로 내려가는 계단 입구는 자물쇠로 채워져 있다. 비둘기낭폭포는 코로나 감염병 때문에 개방하지 않는다고 했고, 재인폭포는 관람 가능한 시기가 4~5월, 9~11월로 오전 10시 30분부터 오후 4시 30분까지만 개방한다. 재인폭포에 입장할 때는 혹시 있을지 모르는 낙석에 대비해 입구에 비치된 플라스틱 헬멧을 써야 한다. 2곳 다 이번에 기자가 방문했을 때 아무도 없었다. 해지기 직전 시간이라 더더욱 그랬을 텐데, 코로나19 시기를 맞이해 장애인 통행로 공사를 하는 재인폭포의 경우 공사 인부들도 모두 퇴근했는지 보이지 않았다. 살짝 오싹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정비 작업에 들어가기 전 비둘기낭폭포나 재인폭포는 폭포 바로 앞까지 방문할 수 있었다. 한 10년 전쯤이려나, 가족·친인척들과 함께 재인폭포에 발을 담그고 가지고 온 휴대용 가스레인지에 삼겹살을 구워먹던 기억이 난다. 이제는 불가능하다. 주로 먼 발치 전망대에서 구경만 할 수 있다. 그동안 자연을 너무 많이 누렸다. 우리의 업보(業報)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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