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창에 날아와 죽지마"..800만 마리 새들을 살리는 이들[인류애 충전소]
[편집자주] 세상과 사람이 싫어지는 날이 있습니다. 어떤 날은 반대로 위로를 받기도 하고요. 숨어 있던 온기를 길어내려 합니다. 좋은 일도, 선한 이들도 많다고 말이지요. '인류애 충전소'에 잘 오셨습니다.
지난해 6월 12일 오후 4시쯤이었다. 한 초등학교 인근에 있는 '투명 방음벽'을 향해 날아오는 참새가 보였다. 스티커를 다 붙이고 정리하던 배선영 녹색연합 활동가가 그걸 봤다. 그는 순간 긴장했다. 참새의 평균 비행 속도는 시속 45km. 유리가 있는 걸 모르고 그대로 통과하려 하다간 부딪혀 죽을터였다. 전국의 유리창에 충돌해 죽는 새가 하루에 무려 2만 마리나 되었다(환경부 통계).
그대로 날아와 충돌할 것 같았던 참새는, '투명 방음벽' 앞에서 순간 멈칫했다. 배 활동가의 눈엔 그리 보였다. 그러더니 돌연 방향을 위로 틀어 유리창을 피해서 날아갔다. 죽을뻔한 참새가 살았다. 배 활동가는 홀로 엄청 감동 받고 뿌듯해했다. 생명을 구한 그 짧은 순간이 '슬로우(slow) 비디오'처럼, 몇 번씩이나 느리게 반복 재생됐다.
날아오던 참새는 어떻게 유리창이 있단 걸 알고, 피해서 살 수 있었을까. 그건 그날 녹색연합 활동가와 시민들이 하루종일 투명 방음벽에 아주 특별한 '스티커'를 붙인 덕분이었다.
새미 : 유리창을 잘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인간은 눈이 얼굴 전면에 있는데, 새들은 천적을 경계하기 위해 눈이 머리 측면에 있잖아요. 시야가 좁아지니 바로 앞의 유리 구조물을 잘 인식하지 못하는 거고요.
형도: 게다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날아오고요.
승남 : 인간의 보행 속도가 시속 5km쯤 되나, 그정도여도 걷다가 부딪히면 엄청 충격 받잖아요. 새들은 시속 30~70km로 비행하기 때문에, 유리창에 부딪히면 달걀 정도 강도인 두 개골이 터져요. 거의 죽는다고 보면 되지요.
형도 : 우리에겐 보기 좋은 유리창이, 새들에겐 '무덤'인 셈이네요.
승남 : 너무 많은 게 인간 중심으로 설계돼 있죠. 도시에 유리 건물이 진짜 많은데 다 부딪힐 수 있어요. 여기에 버스정류장, 학교 방음벽, 도로 방음벽, 유리로 된 지하철 입구도요.
새미: 주변에 나무가 있거나, 새가 가고픈 식생이 있는 곳이 유리에 반사되면 숲으로 인식하거든요. 그럼 충돌할 확률이 더 높아지지요. 그런데도 도시에선 잘 안 보이는 이유가, 청소를 너무 잘하기 때문이에요. 환경 미화원이 바로바로 치우니까요.
자유로운줄 알았던 하늘길이 자유롭지 못했다. 환경부 통계를 보면 연간 800만 마리가 유리창에 부딪혀 죽는단다. 박새, 참새, 물까치, 심지어 천연기념물인 참매와 새매까지. 하루로 따지면 2만여 마리다. 사람이 하루에 눈을 깜빡이는 횟수가 2만 번이란다. 우리가 눈을 깜빡일 때마다, 새 한 마리가 유리벽에 부딪혀 죽는 셈이다.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새들을 위해 행동키로 했다. 강 팀장과 유 활동가 등 녹색연합 활동가들과 시민 40~50여명, 이른바 '새 친구'라 불리는 이들이 모였다. 이들은 2019년 봄부터 현재까지 서산 649번 지방도 방음벽과 용인 함박초등학교 인근 방음벽, 제주 예래 초등학교 방음벽 등에 나가 새 충돌을 막기 위한 스티커를 붙였다. 지난달 28일엔 충남 태안 77번 국도에서 현장 활동을 했다. 그게 벌써 10차례나 됐다.
형도 : '새 친구'는 처음에 어떻게 기획하게 된 건가요?
새미 : 2018년에 국립생태원의 김영준 수의사 연구 덕분에 새 충돌 문제를 처음 인지하게 됐어요. 그리고 2019년부터 이 문제에 관심이 있고, 대안을 찾고 싶은 시민들을 모았지요.
형도: 그래서 어떤 일들을 하는 거예요?
승남 : '새 친구' 활동은 크게 세 가지예요. 첫째는 새충돌 현황을 파악하고 사례를 모으는 방법 교육, 둘째는 각자 생활 공간 주변에서 새충돌 사례를 모니터링하는 것, 셋째는 충돌이 많은 유리창에 '저감 스티커'를 붙이는 현장 활동이지요.
형도: 스티커를 붙이는 유리벽은, 새충돌이 얼마나 많은 곳인가요?
승남 : 서산 649번 지방도는 1년에 새가 100마리 넘게 죽던 곳이에요. 아주 보수적으로 수치를 잡아도요. 거기에 저감 스티커를 붙이니, 새가 부딪히는 사례가 93%씩 줄어드는 거고요. 새들에게는 '기적'이지요. 스티커는 (화이트 보드를 가리키며) 저 정도 붙이는 데에 2만 5000원이에요. 한 번에 유리창 173개(지난달에 붙인 개수)씩, 200~300만원어치를 붙이는 거죠.
형도 : 도로 방음벽은 높은 곳도 많은데, 스티커 붙이는 게 힘들 것 같은데요.
새미 : 활동하는 날은 아침 8시 반에 만나서 출발해요. 점심 먹고 오후 1시부터 붙여서, 오후 4시 반 정도까지 하지요. 일단 유리창을 잘 닦아야 해요. 도로다 보니 먼지가 많잖아요. 물 쫙 뿌리고 쭉 긁고 마른 걸레로 물기 없애면, 간격에 맞춰 스티커를 붙이지요. 오래 붙어 있도록 문지르고요. 스티커를 떼면, 유리창에 부딪히지 않도록 막아주는 '생명의 점'이 콕콕 완성되지요.
승남 : 너무 힘든데 붙이는 성과가 보이니까, 사람들이 미친듯이 힘을 내서 막 붙여요. 다 붙여야 한다고 하고요. 돌아오는 버스에선 완전히 다 자지요(웃음).
형도 : 뿌듯한 성과네요. 얼마 전엔 또 좋은 소식이 있었지요?
새미 : 28일에 스티커를 붙이는 현장 활동을 하고 왔는데요. 하루 뒤인 29일에 '야생생물법 개정안'이 통과됐어요. 새 충돌 사례가 많은 건물이 있으면 계속 조사하고, 저감 조치를 할 수 있도록 압박할 수 있는 법이 생긴 거지요.
형도 : 이 법만 있으면 새충돌을 막을 수 있는 걸까요?
승남 : 한계는 있어요. 공공기관이나 공공 방음벽 등은 (충돌 저감 조치를) 강제할 수 있지만, 전체 70%인 민간 건축물엔 그렇게 하기 어렵지요.
형도 : 좀 더 근본적인 해결 방법이 있다면요. 뭐가 필요할까요.
승남 :건축법을 바꿔야 해요. 어느 정도 규모 이상의 집을 지을 땐 반드시 '저감 조치가 적용된 유리'를 써야한다고 하는 등인 거지요.
새미 : 유리창에 안 지워지는 아크릴 물감으로 5x10cm 간격으로 점을 찍으면 돼요. 주변 지역에서 새 충돌 사례를 모니터링하는 것도(네이처링앱에 기록) 법 개정의 근거 자료를 만드는데 중요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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