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만에 찾은 한국..기분좋은 낯섦을 만나는 즐거움[다른 삶]

성우제 2022. 6. 17.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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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3년 만에 한국에 왔다. 캐나다살이가 조금 안정된 이후,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1년에 한 번은 한국에 나오려고 했었다. 멀리 떨어져 사는 자식, 손주 걱정에 여념이 없는 노모를 뵈어야 했기 때문이다. 한국행 날짜가 정해지면 소풍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늘 마음이 설렜다. 이민자인 나에게 ‘모국’이라는 말은 ‘달콤’과 동의어이다. 한국에 와서 접하는 모든 것이 달콤하다. 음식이 달콤하고 사람을 만나는 시간은 더 달콤하다. 모국여행에는 일반 해외여행과 비교조차 할 수 없는 특별한 것이 있다. 외국살이하는 사람들만이 누리는 일종의 특권이다.

한국이 잘사는 선진국이 되었다는 사실을 말로만 듣다가 이번에 제대로 확인했다. 거리 풍경뿐만 아니라 사람과 문화도 많이 바뀌어 있었다. 사진은 횡단보도에 설치된 폭염 대비 대형 그늘막.

지난봄 코로나19로 막혀 있던 해외여행길이 열리자마자 캐나다 한인들의 한국행은 마치 봇물이 터지듯했다. 올해 초만 해도 토론토발 인천행 비행기는 텅텅 비운 채 운항되었으나 지금은 만석을 넘어 특별기를 띄운다는 소식이 들린다. 모국 방문이 2년 넘게 거의 막혀 있다시피 했으니 캐나다 한인 동포사회에 ‘한국 러시’가 생겨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3년 만에 본 한국은 많이 낯설었다. ‘1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한국 풍경이 많이 바뀌었다. 한국이 경제 선진국이 되었다는 것은 캐나다에 살면서도 익히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막상 와서 보니, 거리 풍경뿐만 아니라 사람과 문화도 많이 바뀌어 있었다.

이방인에게 더 잘 보이는 변화
경제 수준·생활 문화의 발전은
사소한 것들에서 더 잘 드러나
접근성 좋고 깨끗한 화장실들
혼잡한 곳서 서로 배려하는 시민
명물로 재탄생한 서울역 고가
방문할 때마다 달라지는 한국
서울 거리를 걷다 떠오른 생각
‘한국말이 잘 통하는 외국 같다!’

서울에서 지내는 며칠 동안 주로 강북에서 사람들을 만나며 걸어다녔다. 하루에 서너 시간씩은 걸었다. 예전과 달리 걷는 게 편하고 재미있었다. 볼거리가 많았고 신기한 것들이 눈에 많이 들어왔다.

한국 사는 친구들에게 “한국이 최근 몇년 만에 정말 많이 변하고 발전했다”고 말하면 모두들 “그래?”하며 심드렁해했다. 자기들이 얼마나 잘사는지 모르거나 그런 데 별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과 달리 오랜만에 한국을 찾은 이방인의 눈에는 이전과 달라진 모습들이 눈에 쏙쏙 들어오게 마련이다. 게다가 선진국 소리를 듣는 캐나다와 직접 비교할 수 있으니 변화와 발전의 정도는 쉽게 가늠할 수 있다.

내 눈에 들어오는 내용은 주로 사소한 것들이다. 내가 보기에, 그런 사소한 것들이 특정 사회의 변화와 발전을 그 무엇보다 잘 드러낸다. 그런 것들은 경제 수준과 시민 의식, 습관 등이 집약되고 녹아 있는 생활문화이기 때문이다.

·최고의 화장실 : 1990년대부터 외국을 드나들면서 내 나름 선진국 여부를 판별하는 기준이 하나 있다. 바로 화장실 문화이다. 남들에게는 시답잖은 기준으로 보일 수도 있겠으나, 나에게는 대도시 화장실의 청결도가 그 나라의 수준을 가늠하는 바로미터나 다름없었다. 수십년 전에는 융성했으나 지금은 쇠락한 어느 나라 최고 유적 도시 고급 호텔에서는 화장실에 물이 나오지 않았다. 캐나다를 처음 방문했을 때도 다름 아닌 화장실이 퍽 인상적이었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2월, 토론토의 오래된 작은 건물 화장실은 깨끗하고 건조하고 따뜻했다. 캐나다가 이렇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이번에 서울에서 하루 서너 시간씩 걸어다니면서도 나는 화장실 걱정을 하지 않았다. 내가 경험한 세계 어느 도시에서도 이런 일은 없었다. 뉴욕은 화장실 인심이 박하기 짝이 없고 유럽 도시들은 화장실 입장료를 받는다. 비교적 인심 좋은 토론토도 서울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화장실이 도처에 있었고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지하철역이나 공원에 있는 공공 화장실도 깨끗했다는 사실이다. 식당에서고, 길거리에서고 내가 경험한 화장실은 모두 청결했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습하고 냄새나는 곳이 많았으나 지금은 그런 곳을 만나기가 오히려 어려웠다. 코로나19 시대여서 그런지, 물비누와 종이 수건 등도 비교적 잘 갖춰져 있었다.

한국은 깨끗하고 예쁜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도시, 시골 할 것 없이 어디를 가도 예전과 많이 달랐다.

서울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고속도로 휴게소도 그랬고, 이번에 들렀던 목포와 강진, 공주, 대전, 군산, 창원, 대구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에 사는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이곳에 가끔씩 오는 사람에게는 이런 변화가 눈에 확 띄는 법이다.

·달라진 매너 : 캐나다에 살러 가서 빨리 익혀야 했던 매너 가운데 하나는 다른 사람들과의 물리적 접촉에 관한 것이었다. 혼잡한 버스나 지하철 같은 곳에서는 몸이 부딪히지 않도록 서로 조심해야 한다. 어쩌다 살짝 스치기만 해도 “미안하다”는 말이 입에서 저절로 나온다.

토론토에서 그렇게 살다보니, 서울에 와도 그게 늘 신경쓰였다. 3년 전만 해도 서울의 지하철이나 길거리에서 어깨를 심심찮게 부딪혔다. “미안하다”는 말도 거의 들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코로나19로 인한 물리적 거리 두기에 익숙해져서 그런지는 몰라도 서울 도심을 걸어다니고 출퇴근 시간 지하철도 탔으나 어깨를 부딪힐 일은 거의 없었다. 모두가 조심하는 것 같았다. 남대문시장에서는 낯선 경험을 했다. 붐비는 ‘먹자골목’이나 ‘도깨비시장’의 좁은 통로에서도 다른 사람과 부딪히는 일은 없었다. 자동차는 경적을 울리지 않고 사람 뒤를 그냥 천천히 따라갔다. 처음에는 ‘매너 좋은 운전자가 있구나’ 싶었으나 그런 모습을 남대문시장에서 두 번 더 보았다.

매너가 좋다는 것은 지하철을 타고 내리면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지하철이 도착하고 출입문이 열리자 바깥 승객들은 줄을 사다리 모양으로 만들며 하차 승객이 나오는 길을 넓게 터주었다. 사람들이 다 나오기도 전에 타려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성질 급한 사람도 더러 보았고, 큰 소리로 대화하는 사람들도 보았으나 젊은층은 아니었다.

·달라진 몸 : 길거리나 버스·지하철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사람들은 20~40대인 듯했다. 활발하게 활동하는 세대이니 그럴 것이다. 그들을 보면서 불현듯 드는 생각이 있었다. ‘한국인의 체구가 달라졌구나.’ 몸집이 크고 ‘핏’이 좋아졌다는 의미이다. 내 선배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선배는 “당당해졌다”고 표현했다. 물론 작은 체구의 사람도 눈에 띄었다. 선배는 “그 친구들은 단단하다”고 말했다. 듣고 보니 정말 그런 것 같았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한국인의 체구는 당당하고 단단해진 것이 맞다. 내 눈에는 정말 그렇게 보인다.

·맛 좋은 커피 : 캐나다에 살러가기 전 몇년 동안 나는 이른바 커피 마니아였다. 당시만 해도 좋은 커피를 마시려면 일부러 찾아다녀야 했다. 한국에 오면 커피 마시는 것이 가장 불편한 일 가운데 하나였다. 십수년 전부터 한국에 커피붐이 일어났다 해도 신선하고 맛있는 커피를 마시기가 쉽지 않았다. 어디를 가든 커피의 질을 보장하는 토론토와 많이 달랐다. 맛없는 커피를 비싸게 사마시느니 인스턴트 봉지커피를 마시는 게 나았다. 인스턴트 봉지커피는 한국이 세계 최고이다. 이번에는 달랐다. 대부분의 커피점들이 커피를 제대로 다룰 줄 아는 것 같았다. 맛도 가격도 좋았다. 가격이 비싼 곳은 공간이 좋았다. 옛 직장 후배들을 만나려고 서울 중림동에 갔다가 그 동네에 있는 손기정체육공원에 들렀다. 운동장 한쪽에 커피점이 있었다. 별 기대 없이 들어가 에스프레소를 주문했다. 3000원이었다. 작은 잔에 담긴 에스프레소 커피의 모양만 봐도 범상치 않았다. 맛이 훌륭했다. 그런 커피를 마시면 기분이 좋아진다. 손기정체육공원을 나오면서 기분이 참 좋았다.

·도시 재생 : 손기정체육공원은 내 모교인 양정고등학교가 있던 자리이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딸 당시 마라토너 손기정은 양정고등보통학교 재학생이었다. 양정고는 서울 목동으로 이사를 갔으나 손기정 선수가 올림픽 시상대에서 들고 있던 월계수는 만리동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고교시절 늘 보던 월계수를 다시 보니 반가웠다. 고2 때 우리가 공부했던 건물이 옛 모습을 유지하며 손기정기념관으로 사용되는 것도 반가웠다. 그중에서도 가장 반가운 것은 운동장에 남아 있는 시멘트 스탠드였다. 고 1~2학년 때 그곳에서 한 달 이상 양배전 응원연습을 했었다. 양배전은 양정고와 배재고가 1년에 한 번씩 맞붙는 럭비 정기전이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스포츠 정기전답게 응원전도 치열했다. 단축수업까지 해가며 지겹게 응원 연습하던 그 스탠드가 운동장 한쪽을 차지하며 여전히 기능하고 있었다.

만리동 고개의 끝자락은 서부역으로 이어진다. 바로 그 지점에서 ‘서울로7017’이 시작된다. 그 길을 만든다는 소식을 들을 당시만 해도, 길지 않은 고가도로가 뉴욕 하이라인처럼 도심 트레일로 제대로 기능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기대가 별로 없었으니, 서울에 와서도 찾아갈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손기정체육공원에서 나왔더니 비가 오는데도 사람들이 자꾸 그 길로 올라갔다. 무심코 따라올라갔다가 많이 놀랐다. 외국 것을 모방해 만들고 자꾸 다듬고 하다보면 한국만의 개성이 살아난다. 나는 그 길을 걸으며 서울역 전경을 보았고, 길에서 이어지는 건물에 들어가 화장실을 사용하고 커피점에 앉아 비오는 거리 풍경을 감상했다. 이쯤 되면 도심 경관을 헤치던 시멘트 고가도로가 서울이 자랑할 만한 명물로 재생됐다고 평가할 만하다. ‘늦게 출발해서 남들을 추월하는 것이 취미인 나라’라는 한국에 대한 평가가 비단 우스갯소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전국 곳곳에 생겨난 걷는 길(트레일) 하나만 봐도 한국처럼 좋은 길을 빨리, 많이 만들고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대전 보훈둘레길을 걸으며 감동했다.

지난 20년 동안 거의 변하지 않은 토론토에 살면서 한국에 들어올 적마다 나는 놀랐다. 3년 만에 들어오니 한국은 놀라움을 넘어 낯선 곳으로 변해 있었다. 정작 한국에 사는 사람들은 한국의 생활과 문화 수준이 얼마나 높아졌는지 잘 모를 것이다. 옷차림새만 봐도 이제는 특정 유행이 획일적으로 휩쓰는 모양은 아니었다. 검은색이 유행한다고 하지만 경향이 조금 강할 뿐 예전처럼 젊은층 대다수가 그것을 따라가는 것도 아니었다. 유행을 추종하기보다 자기 개성을 더 중시하는 모습이 보인다.

모국은 여전히 달콤하지만 그 느낌은 예전과 사뭇 달랐다. 서울 거리를 걸으면서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이곳은 한국말이 잘 통하는 외국이로구나.’

▶성우제

캐나다사회문화연구소 소장. ‘원(原)시사저널’ 문화부 기자로 일하다 2002년 캐나다 토론토로 이주했다. 16년째 자영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한국의 여러 매체에 기고해왔다. 재외동포문학상을 두 차례(소설 및 산문 부문) 수상했고 <느리게 가는 버스> <딸깍 열어주다> 등 단행본 5권을 냈다.

성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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