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 보캉송 '오리 인형'서 'AI 포비아' 한국적 해법 찾다

성도현 2022. 6. 14.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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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설' 이야기 통해 생명 의식 강조..이세돌-알파고 대국도 거론
유작 '한국인 이야기' 시리즈 세 번째 책 '너 어떻게 살래' 출간
보캉송의 오토마타들(왼쪽)과 '오리 인형' 내부 [파람북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성도현 기자 = "인공지능(AI)의 후발국으로서 혼신을 다해 개발해도 시원찮을 판에 '알파고 포비아(공포)'에 빠져 있다니 답답한 일이다. 알파고 포비아를 '알파고 이펙트(효과)'로 만들어서 AI 시대 선도를 위해 대비에 나서야 한다."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은 최근 출간된 '한국인 이야기' 시리즈 세 번째 책 '너 어떻게 살래'에서 한국인에게 있는 디지로그(디지털+아날로그)를 통해 AI 시대를 헤쳐나갈 수 있다며 이렇게 강조한다. 그는 생전에 10권 분량의 '한국인 이야기'를 구상하며 전체의 70%를 AI에 중점을 두고 그 해법을 생명 의식에서 찾고자 했다.

책은 AI의 역사를 짚으며 프랑스 발명가 자크 드 보캉송(1709∼1782)이 만든 오토마타(자동장치) '오리 인형'을 언급한다. 보캉송은 이 인형이 오리처럼 물을 마시고 날갯짓하며 음식물을 소화하고 배설까지 할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오리의 배설물은 빵가루에 푸른 물감을 섞은 가짜로 드러났다.

저자는 "무기물을 갖고 유기물, 생명과 똑같은 걸 만들 수 있다고 한 건데 그게 오늘날 AI이고 로봇"이라며 "보캉송은 생명이 되기 위해 마지막 넘어야 할 고개는 '먹고 소화하고 배설하는 것'에 있다는 걸 알았지만 (오리 인형은) 생명만이 할 수 있는 배설은 하지 못했다. AI도 생명의 고개를 넘지 못하면 오리와 다를 게 없다"고 말한다.

이상의 수필 '권태' 속 시골 아이들이 길에 늘어앉아 대변을 누는 '배설 놀이' 장면을 언급하면서는 "아주 자연스러우며 살아 있는 생명의 한 의식으로 즐겁고도 유쾌한 것, 아주 시원한 것"이라고 말한다. 또 농촌의 두엄을 소개하며 "먹을 것이 똥이 되고 똥이 다시 먹을 것이 되는 것이 생명의 순환이고 생명 공감의 마음"이라고 강조한다.

저자는 "한국은 아직 로봇에서 일본에 뒤지고, 군사·산업·서비스를 봐도 IT 강국이라 자부해 온 우리에게 내일은 보이지 않는다"며 "우리에게 만약 모레가 있다면 가장 중요한 생명 자본이 남아 있다. AI는 학교에서 시장, 군사로 옮겨갔다가 다시 평화, 생명의 영역으로 들어오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세돌-알파고 대국 [파람북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책은 2016년 3월 한국에서 열린 이세돌 9단과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바둑 AI 알파고 간 '세기의 대결'도 다시 거론한다. 당시 이세돌은 인간 최고수로서 알파고의 도전을 받아들였으나 최종 전적 1승 4패를 기록했고, 이때의 충격은 은퇴를 선언했던 저자가 AI를 주제로 오랫동안 고민하고 글을 쓰게 된 계기가 됐다.

저자는 알파고가 서울에 나타나기 전까지 사람들은 AI라고 하면 당연히 조류인플루엔자를 떠올렸다고 했다. 600년 전 코끼리를 처음 본 조선인이 충격을 받은 것을 예로 들며 "AI를 인간의 직업을 빼앗거나 인간의 안전을 위협하는 괴물로만 보고 있다. 우리가 지금 알파고 앞에서 무슨 일을 시작해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책은 바둑을 두는 공간을 도교적 이상향과 연결 지으며 알파고 및 구글의 야심 역시 바둑의 가상현실을 정복하려는 거로 예측하기도 한다. 이 세기의 대결에서 중요한 건 누가 이기고 졌느냐가 아니라 알파고가 시합을 통해 강해지고 성장하는 거라며 "우리를 자만의 잠에서 깨우는 자명종 역할을 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저자는 앞으로는 인간과 기계의 상호작용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AI와 컴퓨터 연구는 결국 휴먼 인터페이스로 방향이 전환되는 것이고, AI가 관심받는 것 역시 인터페이스 혁명이라는 점에서라고 분석한다. 또 호주머니에서 AI 시대를 알리는 스마트폰의 진동이 계속 울린다며 이제 AI를 AW(인공지혜)로 변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한국인의 마음속에 자리한 동양의 '인'(仁) 사상에 주목하자고 제안한다. 인간의 뇌보다 훨씬 똑똑한 기계를 인간이 지능으로만 다스릴 수 없기에 '인'의 정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AI에 한국인의 '인'의 정신이 융합된다면 인간과 함께 어울리고 공존하는 AI가 탄생할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우리네 판이란 것은 인간과 기계의 판, 컴퓨터와 로봇, 그 판을 형성하는 거다. 바둑판의 판, 판소리의 판, 단원(김홍도)의 씨름판, 혜원(신윤복)의 '단오풍정' 목욕 판에서 '따로'와 '서로'가 합쳐진다. 서로 다른 것 같지만 죽을 판에서 살 판으로 반전의 꼬부랑 고갯길을 넘어가고, 디지로그에서 합쳐지는 거다."

파람북. 400쪽. 1만9천 원.

raphae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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