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세렌디피티'인 사진작가 마일즈 알드리지 전시회..가장 NFT적인 작품세계에서 발견하는 현대인의 자화상

이창훈 2022. 6. 14.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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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28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서 개최
한 눈에 빠져드는 작품 몰입감과 스토리텔링의 재미
"아날로그․디지털 공존하는 전환의 시대상 볼 수있어"

브레송, 카파, 아베돈, 요한슨을 합쳐 놓으면?

세계적인 사진작가라고 할 때 누구나 떠올릴 법한 이름은 그동안 국내 사진전이 수없이 개최됐고 지금도 개최중인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Henri Cartier-Bresson)’이나 ‘로버트 카파(Robert Capa)’ 정도 일 것이다.

전쟁이나 혁명 등의 역사적 장면과 시대상을 섬광같은 영감으로 포착해 추앙받는 사실주의 사진작가들은 그들 말고도 여럿 있다.

사진의 역사를 어느 정도 아는 사람만 알 수 있는 리처드 아베돈(Richard Avedon.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오드리 헵번 사진이 대표작이다)은 그들과 다른 장르인 모델 및 패션사진의 신화적 거장이다.

현실에서 불가능한 이미지들로 환상적 세계를 창출하는 초현실주의 사진작가 에릭 요한슨(Erik Johansson)은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2021년 첫 전시회를 통해 이름을 알렸다.

아베돈을 이을 패션 사진작가로 각광받은 뒤 자신만의 초현실적 시점을 통해 패션사진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 작가가 마일즈 알드리지(Miles Aldrige)다.

브레송과 카파, 아베돈과 요한슨이 추구하는 작품 경향이 농축된 작가라 할까?

하지만 그의 사진들은 구구절절 설명 필요없이 첫 눈에 시선을 강탈한다.

직관적이면서 유머러스하기까지 하다. 요한슨처럼 공상과 환상이 아니라 낯익은 사실적 일상을 포착했으면서도 초현실적이다.

알드리지 작품의 독창성과 독특함은 ‘이거 요즘 뜬다는 NFT로 발행하면 잭팟 터지겠는 걸?’하는 생각을 품게 한다.

아닌게 아니라 그는 여전히 아날로그 코닥 필름으로 사진을 찍는 몇 안되는 작가다. NFT의 공식을 ‘아날로그적 희소성의 디지털화’라고 한다면 그는 거기에 딱 들어맞는 작가다.

현재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지난 5월4일 개막해 8월28일까지 개최. 오후6시 입장 마감, 매주 월요일 휴관) ‘마일즈알드리지컬러픽쳐스’ 전에서는 그의 친필사인과 함께 작품넘버가 찍힌 사진작품을 구매할 수 있으니 NFT 투자에 관심 있는 사진애호가라면 놓치지 말고 찾아가 볼 일이다.

그런데 정작 그의 작품보다도 더 흥미로운 건 그의 라이프스토리다.

‘숨은 보석’ 마일즈 알드리지를 발굴해 국내 첫 전시회를 개최한 전시기획사 CCOC의 강욱 대표를 만나봤다.

강 대표는 에릭 요한슨 사진전을 통해 역량을 주목받은 바 있다.


스톡홀름 포토그라피스카에서 조우한 ‘네버엔딩 스토리’

강 대표에게 알드리지의 라이프스토리를 듣기 전에 그를 어떻게 알게 됐는지 물었다.

“해외에서의 명성과 달리 국내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마일즈 알드리지의 작품을 직접 감상하게 된 것은 스웨덴 스톡홀름의 사진박물관 포토그라피스카에서 였습니다.
그의 독특한 라이프스토리와 ‘제2의 리처드 아베돈’이라는 명성 때문에 여전히 패션사진작가로 알고 있었거든요. 직접 작품을 보면서 단번에 시선을 사로잡는 특유의 강렬하고 압도적인 색감에 매료됐습니다. 학창시절 영화감독을 꿈꾸어서인지 마치 1960~1970년대 흑백영화를 가장 인상적인 컬러색감으로 재탄생시킨 것 같더군요. 무엇보다 그의 작품이 가진 문화적 복합성과 다면성에 주목했습니다. 파블로 피카소와 빈센트 반 고흐, 장 미셸 바스키아가 그렇듯이 작품과 작가를 위대하게 만드는 것은 탁월한 예술성과 결합된 스토리텔링입니다. 아무리 위대한 작품이라도 대중이 빈번하게 화제에 올려 입소문을 내주어야 주목받게 되잖아요? 그의 작품에는 1980~1990년대 레트로 팝 문화, 현대적인 펑크와 사이키델릭 트렌드 뿐 아니라 클래식한 미술 사조까지 녹아 있었습니다. 작품을 놓고 무한대의 해석과 음미가 가능한 ‘네버엔딩 스토리’의 원천이 될 것 같았습니다. 게다가 작가의 라이프스토리 자체도 흥미로웠구요.”
강 대표와의 인터뷰를 통해 알게 된 마일즈 알드리지의 삶은 ‘세렌디피티(serendipity)’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했다. ‘커다란 행운을 가져다 주는 우연한 만남’을 의미하는 세렌디피티. 취미삼아 미생물과 놀다가 발견한 페니실린, 종이접착제 개발 실수로 만들게 된 포스트잇 같은 경우다. 하지만 세렌디피티는 로또같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행운이 아니라 그 이면에 수많은 시도와 열정, 재능이 뒷받침됐다는 점에서 단순한 행운에는 없는 찬란한 광휘를 가진 것이다. 마일즈 알드리지의 삶이 바로 그랬다.

존 레논, 에릭 클랩튼, 엘튼 존과 함께 보낸 어린 시절

“알드리지는 예술가로서 축복받은 환경에서 태어났습니다. 1964년생으로 영국 런던에서 출생했는데 그의 아버지 알란 알드리지가 미술에 탁월한 재능을 가진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무대 예술감독이었다고 해요. 여성편력도 화려한 명사였던 덕분에 그의 집을 수시로 찾아 온 존 레논(John Lennon), 에릭 클랩튼(Eric Clapton), 엘튼 존(Elton John)을 알드리지는 아저씨라고 부르며 스스럼없이 지낼 수 있었지요. 유명한 사진작가로서 엘리자베스2세 여왕의 동생 마가렛공주와 결혼한 스노든 백작(Earl of Snowdon)이 그들 부자의 사진 모델이 되어주기도 했구요. 그게 알드리지가 5살 때 일인데 10살 때 아버지가 그룹 비틀즈의 사진을 찍으려고 구입했던 니콘F 카메라를 선물 받으면서 일찌감치 사진촬영 재능을 키워갔다고 합니다. 전설적 뮤지션과 셀럽들의 아우라 속에서 보낸 유년기가 그의 예술적 감수성이나 성취동기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을 것 같습니다.” 알드리지의 아버지는 셀럽들과의 인연으로 아들에게 특별한 감수성과 자부심을 심어준 것만큼이나 문제의 여성편력으로 정서적 상처와 작품의 모티브도 함께 남겨주었다고 한다.
“환경의 축복을 누리던 알드리지는 12살 때 인생의 시련기를 맞게 됩니다. 아버지가 또 다른 가정을 꾸리고 있었던 것이 드러나면서 가족이 흩어지게 되죠. 아버지는 동거녀의 배다른 형제들과 미국으로 이주했고 그는 영국에 어머니와 남아 일러스트와 팝비디오 연출을 공부하면서 영화감독을 꿈꾸었다고 합니다. 그의 어머니는 그때의 충격으로 우울증을 앓으며 큰 고통을 겪다가 알드리지가 29세 때 세상을 떠납니다. 어머니에 대해 그는 일생동안 깊은 연민과 그리움을 갖게 되고 그 영향으로 작품 속 여성들에 대부분 어머니의 이미지가 투영돼 있다고 하죠. 여하튼 어머니를 여의고 나서부터 전공인 일러스트 작업이 너무 외로운 일을 이라는 것을 깨닫고 어린 시절 관심을 가졌던 카메라에 눈을 돌리기 시작합니다. 그를 ‘본의 아니게’ 본격 패션사진작가의 길로 이끌어 준 사람은 패션모델을 꿈꾸던 그의 여자친구였습니다. 어느 날 여자친구가 세계적으로 막강한 파워를 가진 패션매거진 보그지(보그 브리티시)에 보낼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한 겁니다. 그런데 보그에서는 정작 사진모델보다 사진작가의 재능에 더 주목했고 여자친구를 통해 만나자고 제안해 왔죠. 그 사건이야 말로 그의 인생행로를 바꿔놓은 세렌디피티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게 32세 때 일이었고 그 여자친구는 2년 뒤 아내가 됐습니다. (그리고 50세 때 이혼했다고 한다.)
그는 보그 전속 패션 사진작가로서 일약 스타덤에 올랐고 화려한 각광을 받으면서 칼 라거펠트(Karl Lagerfeld), 조르지오 아르마니(Giorgio Armani), 이브 생 로랑(Yves Saint Laurent), 폴 스미스(Paul Smith)와 같은 세계 패션계의 기라성과 함께 일했습니다.” 그가 패션사진작가로서 화려한 삶에 안주하지 않고 사진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리는 작업에 몰입하게 만든 것은 시대의 유물로 취급받던 아날로그 필름의 재발견이었다. “아마도 어린 시절 친하게 지내던 동네 아저씨들, 그러니까 존 레논 같은 사람들이 승천해서 신화로 떠오르는 과정을 지켜본 것이 예술가로서의 성취에 대한 기대치를 높여주지 않았을까요? 그는 어느덧 40대를 바라보는 나이가 되자 “세상에 대한 내 감정을 좀더 진실되게 표현해보자”라는 각오를 새겼다고 합니다. 그로부터 패션사진에서 예술사진으로 방향을 전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디지털카메라보다는 아날로그 필름이 자신의 예술적 의도를 더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필름사진만을 고수하게 됐다고 합니다. 이로써 알드리지 작품세계의 정체성이 확립된 것이죠.

가장 아날로그적인, 가장 디지털적인 ‘시대의 자화상’

40대 중반이던 2007년 런던에서 첫 개인전을 열게 됩니다. 당시 전시회에 내건 연작시리즈 주제가 ‘프로젝트 이매큘리(The project Immaculée)’였는데 종교적 황홀경을 체험하는 카톨릭 수녀의 이미지를 담은 것이었습니다. 패션계의 총아로서 화려한 상업적 영상을 앵글에 담아온 그의 첫 개인전이 종교적 영감을 표현하는 이미지였다니 아이러니 합니다. 그의 작품 속에는 어머니에 대한 애정과 존경에서 우러나오는 성스러움과 여성스러움이라는 두 가지 요소가 자리잡게 됩니다. 이후 매년 런던과 뉴욕, 베를린, 파리, 밀라노, 암스테르담 등 전 세계 주요도시에서 개인전을 개최하며 예술사진작가로서 명성을 다져나갔습니다.”
우리 시대를 관통하는 메가트렌드는 아날로그 세계가 디지털 플랫폼으로 전환되는 ‘디지털 트윈’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예술창작도 메타버스와 NFT 플랫폼으로 빠르게 이동하면서 재구성되는 가운데 마일즈 알드리지의 작품세계가 갖는 의미는 어떤 것일까. “알드리지가 지난해 뉴욕에서 개최한 전시회 타이틀이 ‘성모마리아, 슈퍼마켓, 팝콘(Saint Mary, Supermarket, Popcorn)이었습니다. 성모로 상징되는 종교적 심미주의, 슈퍼마켓이 표상하는 자본주의의 세속성, 팝콘으로 아이콘화한 대중문화의 친근함이 모두 녹아있는 그의 예술세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제목인 것 같습니다. 알드리지의 작품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키워드는 우리가 겪고 있는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의 ‘융합과 전환’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가장 아날로그적이면서도, 가장 디지털 친화적인 작가라고 할까요? 추억 속 레트로 감성을 동경하면서도 전위적 사이키델릭에 열광하고, 성스러운 아름다움과 세속적 욕망이 공존하는 것이 현대인의 자화상이겠죠. 그걸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작가가 마일즈 알드리지이고 이번 전시회를 통해 시대의 자화상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찾으시면 좋겠습니다.” 마일즈 알드리지 공식 홈페이지에는 현재 서울에서 개최중인 ‘마일즈알드리지컬러픽쳐스’의 전시공간 사진이 올라와 있다.
전시공간은 드라마, 히로인, 스릴러, 전체관람가, 판타지, 하이틴, 다큐멘터리, 청소년관람불가의 8개 섹션으로 구성돼 있다. 전시공간 역시 알드리지 작품의 몽환적 분위기와 강렬한 색감을 구현하고 있어서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 SNS용 사진을 찍으면 ‘기대이상의 작품’이 나온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글=이창훈기자 / 사진과 동영상=손성봉연구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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