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차 - 오케스트라를 마시다[남곡 김중경의 '보이차 한잔']

성차사진품보이차 대표 2022. 6. 12.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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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곡(南谷) 김중경


■연재를 시작하면서

“물 흐르고 꽃 피니 차나 한잔 하시게.”

차[茶]는 커피와 같은 단순한 기호식품의 차원을 떠나 다선일미(茶禪一味)나 끽다거(喫茶去) 화두처럼 고요하고 신묘한 정신적 경지에 이르는 수단으로 인식돼 왔습니다. 필자는 이번 연재를 통해 우리나라 차 문화 현장의 맨얼굴을 들여다보고 크게 두 가지의 담론에 접근해 보고자 합니다.

靜坐處茶半香初(정좌처다반향초/고요히 앉아서 차를 반쯤 마셨지만 향은 처음과 같은데) 妙用時水流花開(묘용시수류화개 / 그 오묘한 시간 속에 물은 흐르고 꽃이 피네) - 추사 김정희의 다반향초(茶半香初)


첫째 담론은 보이차 시장의 정화(淨化)입니다. 필자는 그동안 무수한 종류의 보이차를 의뢰받아 품명(品茗)하는 과정에서 우리나라의 보이차 시장 곳곳에 널리 퍼져 있는 다양한 유형의 깨끗하지 못한 차들을 무수히 경험해 왔습니다. 따라서 그동안의 실전 경험을 통해 축적해 온 정보들을 바탕으로 누구나 편안하게 깨끗한 차를 즐길 수 있는 건전한 음다문화(飮茶文化)의 확산에 도움을 주고자 좁고 굽은 길을 바루어 넓고 큰 길을 내는 우공이산(愚公移山) 길에 나서고자 합니다.

둘째 담론은 누구나 차를 쉽게 접하고 즐길 수 있는 여건의 조성입니다. 차는 특정 계층이나 부류에서만 즐기거나 특정한 신분과 능력을 과시하기 위한 도구가 아닙니다. 따라서 누구나 편하게 즐기면서 결과적으로 국민 건강에 기여할 수 있는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즐기는 차 문화’를 정착·확산시키고자 합니다.

열매와 꽃을 함께 볼 수 있어 실화상봉수(實花相逢樹)라 불리는 차나무처럼 진정으로 차를 즐기는 정신문화와 더불어 거기에 수반되는 국민 건강이라는 효과가 함께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벚나무 가지를 부러뜨려 봐도 그 속에는 벚꽃이 없다. 그러나 보라, 봄이 오면 얼마나 많은 벚꽃이 피어나는가.”(일본 잇큐 선사의 선시 중에서)

여기서 나누는 이야기들이 보이차 속에 감춰진 무궁무진한 세계를 누구나 쉽게 접하고 즐길 수 있는 계기가 될 뿐 아니라 나아가 대한민국의 차 문화 발전을 위한 새로운 논의의 출발점이 될 수 있길 희망합니다.

■보이차-오케스트라를 마시다

우리 녹차에 사용되는 세작·중작·대작 등 찻잎의 크기를 나타내는 명칭은 찻잎의 품질과 직접 관련이 있습니다. 또한 우전(雨前)과 같은 명칭에서 보듯이 채엽 시기도 찻잎의 크기 및 품질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반면에 보이차에서 채엽 시기를 나타내는 명전(明前)은 청명 이전에 딴 찻잎으로 가공한 ‘첫물차’ 정도의 의미만 가질 뿐 찻잎의 등급(크기)과는 전혀 무관합니다. 아열대 기후인 운남의 차산 지역에서는 청명이면 이미 일아이엽(一芽二葉) 또는 일아삼엽의 찻잎 수확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녹차만을 마시다 보이차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로서는 보이차에 채용된 찻잎의 크기는 가히 충격적이지요.

“헉! 이 긴 줄기는 뭐지? 이 잔가지는 또 뭐야?”

이러한 차이를 느끼게 하는 핵심은 바로 보이차의 ‘병배’라는 것입니다. 보이차의 맛을 창조해 내는 일종의 레시피라고 할 수 있지요.

녹차는 단일한 등급의 차청을 이용해 만들기 때문에 단일한 맛을 즐길 수 있는 데 비해 보이차는 여러 등급의 찻잎을 병배해 다양한 맛의 스펙트럼을 즐길 수 있게 제작됩니다. 참고로 보이차에 채용되는 찻잎의 등급은 크기에 따라 특급과 1~10급 등 모두 11개의 등급으로 구분되는데, 이 각기 다른 맛과 향을 가진 다양한 등급의 찻잎을 병배해 승화된 맛을 창조하는 겁니다. 예컨대 맹해차창의 생차를 대표하는 숫자 보이차인 ‘7542’의 경우 전체 등급을 고루 병배하되, 특별히 4등급의 병배 비율을 높여 제작함으로써 개성 있는 맛의 세계를 창조한 것이지요.

정리해 보면 보이차는 다양한 등급을 가진 찻잎들의 조화와 융합을 통해 승화된 맛의 세계를 창조해 내는 어울림의 차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어울림은 단순한 물리적 어울림을 넘어 화학적 어울림까지 포함하는 것입니다.

2005년에 창태집단에서 생산한 ‘차중왕차군림천하어품(茶中王茶君臨天下御品)’이라는 차를 직접 보면서 병배의 특징을 이해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보이차를 차를 만들 때는 찻잎만 채용하는 것이 아니라 줄기째 함께 사용해 긴압을 합니다. 병면을 보면 다양한 등급의 모차를 채용해서 만든 병배의 특징이 고스란히 나타납니다.


보이차를 우리고 난 엽저(찻잎 찌꺼기)를 자세히 보시면 좌측의 아(芽)에서부터 우측의 큰 잎들까지 다양한 등급의 병배가 한눈에 잘 드러납니다. 이 다양성의 조화가 보이차를 우뚝 서게 하는 특징인 것입니다.

‘2005창태집단茶中王茶君臨天下御品’을 마시면서 새삼 다양성의 힘을 절감합니다. ‘조화와 융합의 차’ 보이차 한 잔의 행간에서 ‘역사 발전의 변증법’을 읽습니다. 지나친 순혈주의와 쇼비니즘은 문화의 다양성과 역사 발전을 위해 자제하고 지양해야 할 태도입니다. 여린 싹에서부터 큰 잎뿐 아니라 줄기에서 잔가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등급의 찻잎들이 이루어 내는 하모니가 보이차를 웰빙 시대의 화두 왕(王)으로 자리매김하게 하는 가장 큰 힘입니다. 보이차 속엔 ‘획일화’와 ‘통일’을 뛰어넘어 ‘조화와 융합을 통한 창조’라는 보석처럼 빛나는 원리가 숨 쉬고 있습니다. 서로 다른 재질과 색깔, 크기 등을 가진 자투리 천들이 모여 이루어 내는 조각보의 예술처럼 말입니다.

“오케스트라를 마시다.”

보이차의 특성을 함축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제가 오랫동안의 경험을 통해서 일구어 낸 문장입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시각 제 차실 한쪽에 자리한 진공관 앰프를 통해 재생되는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5번이 AR7 스피커를 통해 웅장하게 울려 퍼집니다. 물론 불가능한 전제이지만 이 음악을 하나의 악기만으로 연주한다고 가정하면, 앞서 받은 그 웅장함과 감동이 똑같이 느껴질 수 있을까요?

비교하건대 작설이나 세작 등의 용어에선 어린 싹을 선호하는 녹차의 특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보이차는 어린 싹부터 큰 잎, 심지어 줄기에서 잔가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요소를 지닌 여러 등급을 가진 찻잎들의 병배를 특징으로 합니다. 보이차를 처음 대하는 분들은 보이차 속에 병배돼 있는 줄기나 나뭇가지 등을 보고 때로 충격을 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들 줄기나 나뭇가지 속에 풍부하게 함유돼 있는 아미노산은 시간이 지나면서 당질로 분해돼 시원한 맛과 감칠맛을 더해 차를 마시는 즐거움을 배가시켜 줍니다. 보이차는 이처럼 각각의 다른 찻잎들이 가지고 있는 특성들의 조화와 융합을 통해 좀 더 승화된 차품을 창조해 내는 오케스트라와 같은 차입니다.

주전자의 전원을 올리고 보이차 한 잔 우려 보시지요. 여러분의 입안에서 웅장한 오케스트라의 감동이 잔잔하게 울려 퍼질 것입니다.

“오케스트라 한잔 하시지요.”

오늘도 오케스트라를 마시며 몸과 마음의 정화를 이루시길 기원합니다.

성차사진품보이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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