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실컷 받았는데 카드 돌려막기했다 [사장의 맛]

윤수정 기자 2022. 6. 8.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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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히 해외 진출 안 한다고 한 이유
창업 1년만에 외부 투자
와이즐리 김동욱 대표

김동욱(34) 대표가 이끄는 와이즐리는 질레트, 도루코 등이 98%를 점유하고 있던 면도기 시장에 4년 전 뛰어들었습니다. 모두가 무모하다고 했지만, 와이즐리는 지난해 면도기 시장에서 9.3%의 점유율을 기록했습니다. 와이즐리 서비스 구독자만 100만명에 달합니다. 와이즐리는 면도기 이외에도 면도날, 탈모샴푸, 멀티비타민 등 판매 제품을 늘렸습니다. 스타트업은 사세 확장을 위해 투자가 불가피하다고 합니다. 조선일보 ‘사장의 맛’이 김 대표에게 투자받는 노하우를 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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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즐리를 이끄는 김동욱 대표의 모습. 김 대표는 "사업 초기 주7일 일을 했다"며 "투자자들이 우리 모습에 경악했다"고 말했다. /이태경 기자

◇투자받으려면 거짓말은 하지 말자

와이즐리는 창업 1년 만에 대형 투자사들의 투자 제안을 받았습니다. 창업을 꿈꾸거나 이미 창업한 초기 스타트업 대표들에게는 꿈같은 얘기입니다.

-투자받은 비결이 뭔가요?

“일단은 ‘거짓말은 하지 말자’입니다. 공식 서비스 진행 후 1년 만인 2018년에 알토스 벤처스에서 제안이 왔어요. PT를 하기로 했는데 미팅 때 ‘와이즐리는 온라인에서만 판매하는데 오프라인 판매 없이 성장에 한계가 있지 않겠냐’는 지적이 들어왔죠. 보통은 ‘아니다’라고 하겠지만 저는 ‘생각해보겠다’고 한 다음에 ‘맞다. 한계가 있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부분이 장점이고, 오프라인은 차후 해결법을 찾겠다’고 했어요.”

-또 지적받은 게 있나요?

“해외 진출이요. 보통은 무조건 해외 진출하겠다고 말하는데 저희는 해외 진출도 안 한다고 했어요. 우리는 소비자를 이해해서 파는 게 큰 장점인데 태국 등 해외 소비자 생각은 솔직히 모른다. 최소 3년 간은 해외 진출 안 한다고 했어요. 고객 경험 조사 없이 무작정 가는 건 사기라고 했죠. 그런게 긍정적으로 평가 받았다고 들었어요.”

-투자자들이 와이즐리에 관심을 보인 부분은 뭐였나요?

“투자회사 심사역 한 분이 ‘세 명이서 1년 만에 수십 억 매출을 만든 데 경악했다’고 하더라고요. ‘이게 인간이 할 수 있는 양이냐. 미쳤다’고도 했죠. 고객센터 담당은 동생, 웹사이트 디자인 담당은 알고 지내던 지인이, 마케팅 전반은 제가 맡았어요. 그리고 제품이나 물류 관련은 부대표인 친구가 했죠. 사람이 없어서 주 7일 일을 했죠.”

와이즐리는 면도기뿐 아니라 화장품, 샴푸 등을 팔고 있다. /와이즐리

◇투자금 펑펑 쓰다간 쪽박찬다

와이즐리는 일찌감치 투자를 받았습니다. 각종 공단과 기금에서도 대출을 받아 공격적으로 투자했습니다. 하지만 김 대표는 자기처럼 하면 안 된다고 합니다.

-초기부터 투자를 받아 운영 자금은 여유가 있었겠네요?

“전혀 아닙니다. 초기에 알토스 벤처스에서 투자를 유치하고, 2020년 새 프로젝트에 들어가면서 추가 투자 유치에도 성공했어요. 그런데 보통 3~4개월 걸리는 투자유치의 마무리 과정이 코로나 때문에 길어지면서 돈이 예상 시점보다 6개월 가량 늦게 들어왔죠. 사업을 계속 키워가면서 이미 초기에 마이너스 통장을 1억 풀로 땡겨 쓴 데다,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기관 대출, 신용보증기금 대출 등도 다 땡겨서 쓴 상황이었어요. 돈은 떨어져가고, 자잘하게 계속 지출이 발생했어요. 결국 개인 카드 7장을 3000만원 한도로 뚫어서 계속 돌려 쓰며 버텼죠.”

-어떤 걸 배웠나요?

“아찔한 경험을 하고 내부 자금 관리 방식을 아예 바꿨어요. 사업 성장기에도 항상 현금보유금을 넉넉하게 마련해야 한다는 걸 배웠어요. 자금도 아주 보수적으로 관리하기로 결정했죠.”

-또 시행착오를 겪은 게 있나요?

“남들이 하는 게 좋아보인다고 다 따라갔다가는 큰코 다칩니다. 저희는 2019년 말, 2020년 하반기 두 차례 무료 샘플 이벤트를 대대적으로 벌였어요. 무조건 잘 될 줄 알았어요. 그런데 결과는 처참한 실패였죠. 특정 커뮤니티 중심으로 바이럴 마케팅이 됐는데 소위 ‘체리 피킹(이득만 취하고 실질 구매는 안 하는)’ 소비가 반복됐어요. 손해가 컸어요.”

◇인재영입 위해 복도 너비까지 고민했다

-스타트업은 인재 영입이 어렵다고들 얘기합니다. 와이즐리는 어땠나요?

“사람이 부족해 많이 힘들었어요. 하지만 저희는 절대 전통적인 ‘공채’를 진행하지 않아요. 기한없이 채용을 오픈해놓지만, 인재추천식으로 뽑고 있습니다. 2018년 12월에 ‘피플팀’이라 부르는 인사팀을 처음 만들었어요. 직원은 딱 한 명이었는데 인사 경험이 전무한 친구였죠. 보스턴 컨설팅 그룹 다니다 퇴사한 대학 동기를 알음알음 소개 받은 거 였어요. 만나보니 자기 이전 회사 인사 시스템에 대한 구체적인 불만을 말하는거에요. 아, 분석을 잘해놨구나. 그래서 채용했죠. 이 친구를 통해 여러 인재를 수소문해왔어요.”

-공채가 아닌 방식에서 어려운 점은 뭔가요?

“추천 방식으로 뽑다보니 채용 때마다 구직자에게 ‘우리 회사 좋다’며 설득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요. 면접관은 저인데, 면접자가 오히려 저희 회사 백그라운드를 쫙 체크해서 가져와요. 제가 오히려 우리 회사에 대해 질문 받고 답변하며 장점을 어필하는 식이 될 때가 많아요.”

-지금은 직원이 몇 명인가요?

“50여명이예요. 대부분 30~40대로 젊은 편이에요.”

-요새는 물리적인 업무 환경도 중요하다고 하던데요.

“공유오피스를 탈출해 사옥을 임대해 리모델링했어요. 이 또한 인재영입을 위해서에요. 소위 창의적인 스타트업에 맞는 인테리어를 하기 위해 해외 사례를 많이 참조했죠. 미팅룸은 모두 창문이 있는 곳으로 배치했어요. 사람이 쾌적하게 지나다니려면 복도의 너비가 몇 cm가 되어야 하는지까지 고민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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