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 가수들의 큰 나무..가수로도 맹활약한 국민MC 송해

2022. 6. 8.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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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귓전에 울리는 우렁찬 구호는 '일요일의 상징'이었다.

지금은 '전국노래자랑'을 30년 넘게 이끈 국민MC로 더 알려졌지만, 송해(본명 송복희·95)는 한국 대중가요사에도 굵직한 획을 그었다.

황해도 재령 출신으로 1955년 창공악극단에 가수로 입단, 연예 활동을 시작한 송해는 생전 10장이 넘는 가요 모음집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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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MC 송해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전국 노래자랑~!”

지금도 귓전에 울리는 우렁찬 구호는 ‘일요일의 상징’이었다. 지금은 ‘전국노래자랑’을 30년 넘게 이끈 국민MC로 더 알려졌지만, 송해(본명 송복희·95)는 한국 대중가요사에도 굵직한 획을 그었다.

황해도 재령 출신으로 1955년 창공악극단에 가수로 입단, 연예 활동을 시작한 송해는 생전 10장이 넘는 가요 모음집을 냈다. 1967년 가수 김상희, 배호와 함께 첫 가요 음반을 선보였다. 이 음반에서 그는 ‘노총각 맘보’, ‘피양체네’(‘평양처녀’의 평안도 사투리)를 불렀다. 1980년엔 그가 평소 즐겨부르던 ‘짝사랑’, ‘울고 넘는 박달재’ 등의 노래를 모아 ‘송해의 가요 산책’을 냈다. ‘애창가요 모음집 송해쏭’, ‘송해 아흔즈음에’와 같은 자신의 이름을 내건 음반도 꾸준히 낼 만큼 음악에 대한 사랑이 깊었다. 2018년 91세의 나이에 ‘딴따라’ 음반을 발매했고, 2019년엔 ‘내 고향 갈 때까지’ 싱글 음반을 냈다. 이는 우리나라 ‘최고령’ 음반 취입 기록이다.

또 ‘최고령 단독 콘서트’도 열며 종횡무진 활약했다. 송해는 80대 중반이던 2011년 첫 단독 공연인 ‘나팔꽃 인생 60년 송해 빅쇼’를 열어 10여 곡의 노래를 불렀다.

전국 팔도강산을 돌아다니며 수많은 재능을 발굴하고, 송가인 임영웅 이찬원 정동원 등 지금의 트로트 스타를 알아본 그는 자신의 이름을 딴 가요제도 열었다. 2017년 가수의 꿈을 갖고 있지만 어려운 환경과 부족한 기회로 설 무대를 갖지 못했던 가수 지망생들을 위한 ‘송해 가요제’를 열었다. “가요 백년사의 기쁨과 슬픔을 전하고, 여러 가수가 더 알려지고 새롭게 조화를 이루기를 바라는 마음”이 가요제를 시작한 계기였다. 2019년엔 ‘송해 전국 주부 대박 가요제’도 열었다.

후배들의 든든한 나무이자, 대중문화계의 큰 어른인 송해가 떠나자 추모의 마음도 이어지고 있다. 가수 송가인은 이날 자신의 SNS 계정에 “제일 먼저 재능을 알아봐 주시고 이끌어주신 선생님, 잘되고 나서도 진심으로 축하해주시던 감사한 마음 잊지 않겠습니다”라며 “좋은 곳에 가셔서 편히 쉬세요”라는 글을 올렸다. 송가인은 2010년 방송된 KBS1 ‘전국노래자랑’ 전라남도 진도군 편에 출연해 최우수상을 받았다. 김수찬은 자신의 SNS에 “항상 잊지 않고 제 이름 불러주시던 송해 선생님,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사랑합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가수 이현우는 이날 오전 방송된 KBS 쿨FM ‘이현우의 음악앨범’을 통해 “조금 전 송해 선생님의 별세 소식이 전해졌다. 전국민 곁에서 68년을 함께 해 줬다. 이제 좋은 곳에서 편히 쉬시길 기원하겠다”라며 “진정한 큰 별이었고 스승이었던 송해 선생님을 많이 그리워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 김수찬은 자신의 SNS에 “항상 잊지 않고 제 이름 불러주시던 송해 선생님,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사랑합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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