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경험은 자동차 디자인을 어떻게 바꿨나

조광현 2022. 6. 8.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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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적인 디자이너가 일필휘지로 디자인해 만들어낸 최고의 디자인 같은 것이 있을 리 없다. 좋은 디자인은 그저 여러 번 반복해서 개선한 결과물일 뿐이다." - <자동차 인터페이스 디자인>(박수레, 책만) 34쪽 중에서

자동차 디자인이라고 하면, 다들 외관 디자인만 상상한다. 나부터 그랬다. 그런데, 알고 보면 모든 게 디자인이다. 그중에서도 요즘 주목받고 있는 게 UX(User Experience) 디자인이다. 즉, 사용자 경험 디자인. 개인적으로 UX 디자인은 아이폰이 처음 한국에 들어오던 때에 제대로 경험했다. 정전식(electrostatic) 터치 스크린도 이전의 감압식(Resistive) 터치 스크린에 비하면, 말도 안되게 감각적이었다.

사실 처음에는 살짝 스치기만 해도 작동하는 민감함때문에 오히려 작동 오류가 나기도 했다. 그런데, 일주일 정도 사용하자 너무 편해졌다. 이전의 감압식을 다시 써보니, 구닥다리도 이런 구닥다리가 없었다. 힘주어 누르는 게 심하게 말해서 원시인으로 되돌아가는 기분이다. 더구나 감압식은 오래 사용하면 잘 반응하지 않아 점점 더 힘을 가해야 하는 애물단지가 되기도 했다.

감각과 세련은 차원이 다르다. 개선으로는 한계가 있고, 완전히 다른 혁명이 필요하다. 그런데, 거기다 한 발 더 나갔다. 이전의 휴대폰은 지금 생각하면 많지도 않은 기능을 익히느라 새로운 제품이 나오면 사용설명서를 붙들고 앉아서 한참을 공부해야 했다. 그런데, 아이폰이라고 나온 이 물건은 어떤 사용설명서도 없었다. 너무 많은 기능들이 있는데도. 그런데, 그런 번거롭기만 한 사용설명서가 없어도 잘만 사용했다.

심지어 나의 감각에 따라, 내가 생각한 바대로 찾아졌다. 그게 알고 보니 사용자 편의를 고려한 UX 디자인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디자인을 보기에 이쁜 것 정도로 생각한다. 즉, 어떤 물건의 형상이나 모양, 색채 또는 시각을 통해 미감을 일으키게 하는 작업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디자인에는 설계나 도안이라는 뜻도 담고 있다. 즉, 의상이나 공업 제품, 건축 따위에서 실용적인 목적을 가진 조형 작품의 설계나 도안을 일컫기도 한다.

​디자인이라고 하면, 주로 의상 디자인이나 편집 디자인 정도로 가늠한다. 좀더 확장해보면, 건축 설계 디자인, 제품 디자인 정도다. 그런데, 요즘 각광받는 전자기기는 어떤 게 있을까? 스마트폰이다. 사실 아이폰3GS부터 시작된 아이폰 사랑은 현재 아이폰12까지 2~4년 주기로 계속 이어졌다. 출판 편집 디자이너들이 쓰는 맥킨토시 컴퓨터로만 알고 있던 애플의 제품은 이후 아이패드, 맥북에어 노트북, 아이맥 데스크탑, 아이와치까지 그야말로 애플의 생태계에 상주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터치 스크린 입력 방식이 아닌 맥북에어나 아이맥은 적응하는데 시간이 조금 걸렸는데, 윈도와는 다른 단축키나 전용 소프트웨어 때문이었다. 그간 범용 프로그램으로 사용해왔던 마이크로소프트의 엑셀이나 파워포인트 프로그램 작업을 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편함을 무릅쓰고 계속 사용하게 된 건 바로 디자인때문이었다.

써보지 않은 사람은 알지 못하는 사용자 환경, 즉 UX 디자인이다. 그리고, 너무도 세련되고 미려하다. <CEO 스티브 잡스가 인문학자 스티브 잡스를 말하다>(팬덤북스)에는 심지어 이런 내용까지 나온다.

“스크린 위의 단추들이 너무 예쁘게 만들어져서 여러분은 그것을 핥고 싶어질 것이다.” (Fortune, 2000)

스티브 잡스는 '제품들이 썩었다'며, 빌 게이츠를 혹평하기도 했다. '제품은 섹스'라는 말은 그간 기업들의 과도한 디자인 경쟁과 광고 경쟁을 연상한다. 하지만, 다른 점은 단순히 디자인이나 광고 이미지로 성적인 표현을 노골적으로 담는다는 게 아니다. '스크린 위의 단추들을 핥고 싶어지도록'이란 과한 표현을 썼지만, 인간의 감각적인 감성에 기반한 제품이다.

그런데, 최근에 이런 UX 디자인을 감각할 수 있는 책을 만났다. <자동차 인터페이스 디자인>(책만)이라는 책이다. 남자들의 로망은 사실 자동차다. 수입차를 타는 많은 사람들이 고려하는 건 성능도 있지만, 디자인 때문이다. 국산 자동차의 품질과 디자인이 이전에 비해 훨씬 좋아졌지만, 국내에서 잘나가는 고급차의 실내 디자인을 보고 깜짝 놀랐다.

G 브랜드 정도는 외관 디자인이 이제 좀 볼만해졌는데, 그보다 바로 낮은 급의 차는 너무 실망스러웠다. 과유불급, 모든 기능을 다 때려넣는다고 될 일이 아니다. 디자인은 더하기가 아니라 빼기다. 유일하게 애플의 제품 중에 소유해보지 못한 제품이 아이팟인데, 한두 개의 버튼으로 모든 걸 작동한다.

이 책에서는 주로 다루고 있는 차종이 무려 포르쉐다. 저자는 독일 포르쉐에서 UX 디자이너로 일했던 경험으로 자동차의 내외부 디자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는 카이스트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하고, 가전과 모바일 관련 UX 디자인을 하다 디자인 에이전시와 포르쉐를 거쳐 지금은 네이버랩스에서 바퀴 달린 로봇의 UX를 연구하고 있다. 그렇다면, UX 디자이너는 무슨 일을 할까? 자동차 회사라면, 이런 고민을 한다.

"비상스위치는 어느 정도 높이에 달리는 게 맞을까? 지금 주행보조 기능이 켜져 있다는 걸 화면에 어떻게 표시해야 가장 효과적일까? 센터 스크린에서 바로 접근 가능한 메뉴는 몇 가지로 만드는 것이 좋을까? 목적지 설정은 어떤 단계를 거치게 하는 것이 좋을까? 화면 아이콘은 어느 정도 크기가 적당할까?"

저자는 디자인이 소비자에게 줄 수 있는 가치를 3가지 정도로 든다. 심미적(외관, 인테리어 조형 등), 기능적(자동차 본연의 기능인 이동부터 온열 시트까지), 상징적(내 차는 스포츠카이므로 나는 스포츠 정신을 높이 사는 사람) 가치를 디자인하는 것이 모두 자동차 회사 디자이너들의 몫이라고 한다. 이 중에서도 자동차 UX 디자인은 사용자가 보고 만지고 조작하는 거의 모든 영역에서 이 세 가지 관점의 가치를 높이는 사람들이다.

흔히, 대부분의 사람들이 디자인의 가치를 소홀히 한다. 디자인은 그저 외관뿐이거나, 보기에만 멋진 것으로 제품이나 서비스의 본질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떤 측면에서는 디자인이 본질이라 생각한다. 디자인이야말로 보이지 않는 운영체제(OS), 제품의 근간을 설계하는 일이다. 인체공학적 디자인이 인문적 디자인이다. 사람의 편의성은 물론이고 감성까지 자극해야 한다.

이 책에는 단순히 자동차 디자인에 대한 소개만 그치지 않는다. 자동차의 역사에서 비롯된 기능 변천의 과정까지 꼼꼼히, 그것도 흥미롭게 보여주고 있다. 자동차의 역사는 100년이 지났는데, 초기 자동차는 마차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니 자동차의 디자인에서도 그런 역사적 유래로부터 이어진 것들이 있다. 이를 테면, 대쉬보드는 말들이 질주하면서(dash) 튀는 흙을 막기 위한 마차의 판자(board)에서 기원한다.

조수석 앞에 달린 수납 공간을 무엇이라 부르는 지 아는가? '글러브 박스(glove box)'라고 한다. 그런데, 장갑을 넣어둘 박스가 필요한가. 이것도 마차에서 유래됐다. 초기의 자동차는 오픈카였다. 그러다 보니, 빨리 달리다 보면 손이 시렵다. 더구나 겨울이면 어땠을까? 그래서, 방한 장갑을 넣어두던 곳이 바로 글러브 박스다. 현재는 자동차등록증이나 보험 가입증 등을 보관한다.

그밖에도 사이드 미러는 원래 좌측 하나뿐이었다. 그때만 해도 편도 1차선이었으니 운전석 오른쪽으로 추월할 차가 존재하지 않았다. 시가잭도 이제 없어지고 있다. 흡연이 일상이던 시절에서 금연의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담배가 떠나고, 그 자리에는 스마트폰이 등장했다. 이제 자동차산업도 기계산업에서 전자산업으로 바뀌고 있다. 자동차의 핵심이던 엔진이 자리를 비키고, 그 자리를 전기 배터리가 차지하고 있다.

이 책은 자동차 마니아라면 한번 읽어볼 만한 책이다. 한 사람을 사랑하게 되면, 그(녀)의 현재는 물론이고 과거의 역사까지 알고 싶은 게 당연하다. 어떤 가족사에서 어떤 환경과 성향으로 성장했는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그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기본이다. 자동차 역시 단순히 탈 것(vehicle)이나 운송(conveyance)에서 벗어난 지 오래다.

자동차는 집보다 먼저 사야 하는 나만의 공간이자 우주가 되었다. 카오디오와 비디오는 카페나 영화관 역할을 하고, 전동 시트는 잠깐 잠을 청하는 휴식처이자 선루프를 통해 하늘과 별을 바라보는 데이트 공간이 되기도 했다. 그러니, 아무리 해도 집을 장만하지 못하는 젊은이들이 잠깐의 일탈을 꿈꾸거나 나만의 세계를 상상하고 구축하는 장소가 되었다.

굳이 오픈카나 스포츠카가 아니더라도 창문을 열고, 귀가 아니라 몸으로 느끼는 음악을 들으면서 질주하는 드라이브 모습이 휴가철의 클리셰처럼 사용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당신에게 자동차는 어떤 의미인가? 미래를 상상하고 꿈꾸는 장소인가, 아니면 사람이나 물건을 수송하는 운송수단인가.

신기수 우버객원칼럼니스트(숭례문학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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