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 대사님] "레드불, 스와로브스키도 '과학기술 강국' 오스트리아 기업입니다"

이용성 국제부장 2022. 6. 7.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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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챔피언' 기업 수 獨·美·日 이어 세계 4위
인구 대비로는 1위 독일과 대등
직업교육과 고용 안정이 성장엔진
墺 젊은이들 한국에 관심..한국어 능력자 많이 필요

오스트리아에 대해 이야기하면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배경이 된 아름다운 알프스와 푸른 초원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모차르트와 클림트 등 수도 빈을 무대로 활동한 천재 예술가들도 오스트리아 관련 대화의 단골 소재다.

그래서일까. 오스트리아가 기초 과학기술 분야에서만 노벨상 수상자를 17명 배출했고, 자동차 부품과 첨단소재 등 분야를 중심으로 170개가 넘는 ‘히든 챔피언’ 기업들을 거느린 제조업 강국이라는 사실은 아직 모르는 이들이 많다.

볼프강 앙거홀처 주한 오스트리아 대사. /남강호 기자

오스트리아는 한국과 인연도 깊다.우리나라 초대 영부인인 프란체스카 여사의 모국이며, 소록도에서 한센병 치료에 평생을 바친 수녀 출신 간호사 마리안느와 마가렛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얼마전 서울 종로구 세종로에 있는 대사관에서 만난 볼프강 앙거홀처 주한 오스트리아 대사는 “지난해 한국과 오스트리아 양국 간 교역이 코로나19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인 대유행) 이전 수준을 넘어섰고, 팬데믹 관련 규제도 풀리면서 여행 수요도 꾸준히 늘고 있다”며 오스트리아 히든챔피언 기업들과 한국 기업 간 협력 강화에 대한 기대를 내비쳤다.

‘히든 챔피언’은 독일의 세계적인 경영학자이자 컨설턴트인 헤르만 지몬 지몬-쿠허앤드파트너스 명예회장이 1996년 펴낸 동명의 저서에서 비롯된 개념이다. 지몬은 세계시장 점유율 1~3위, 매출 규모 50억 유로(약 6조7000억원) 이하로,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강소기업을 히든챔피언으로 규정한다.

지난해 5월 지몬-쿠허앤드파트너스 발표에 따르면 오스트리아의 히든챔피언 수는 171개로 독일(1573개)과 미국(350개), 일본(283개)에 이어 세계에서 네번째로 많았다. 오스트리아의 인구가 약 900만명으로 독일(약 8400만명)의 9분의 1에도 못 미치는 걸 생각하면 인구 대비로는 독일과 대등한 수준에 위치한 셈이다.

오스트리아 빈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앙거홀처 대사는 1985년부터 이라크와 일본, 스페인, 이란, 칠레, 모로코 등에서 외교관으로 활동했고, 2020년 7월 주한 오스트리아 대사로 부임했다.

-오스트리아에 히든챔피언 기업들이 많은 이유는 뭘까.

“독특한 직업교육 시스템과 높은 고용 안정성이 히든챔피언 기업들의 성장엔진 역할을 한다. 오스트리아에서는 법정 의무교육이 끝나는 9학년(한국의 중학교 3학년) 과정을 마치고 본인 희망에 따라 직업학교에 진학하면 이론과 현장실습을 동시에 제공하는 이중교육 과정을 통해 특정 분야의 전문지식 습득이 가능하도록 돕는다. 히든챔피언 중에는 가족이 소유해 운영하는 기업들이 많은데, 장기 고용으로 노사 간 신뢰도가 높은 것이 특징이다. 기업들의 해외시장 개척을 효율적으로 지원하는 오스트리아 상공회의소와 정부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오스트리아 정부는 중소기업의 창업과 연구개발(R&D), 그리고 경영 노하우까지 지원하는 기업지원서비스(AWS)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AWS는 좋은 아이디어만 있으면 자본이 없어도 누구든 회사를 차리고 물건을 팔 수 있게 돕는다. 물론 아이디어에 경제성이 있는지는 냉정하게 따진다. 신생 기업들의 경영 능력을 보완하기 위해 적당한 전문가를 물색해 주고, 일정 기간 동안 회사 경영을 위탁해 주는 것도 AWS의 역할이다.

오스트리아에서는 2015년 기준 상위 중등교육(한국의 고등학교) 과정 내 직업과 연관된 실습 위주의 교육 비중이 OECD 평균인 46%를 훨씬 웃도는 70% 이상으로 조사됐다. 관련 교육 과정이 산업 현장의 수요를 반영할 수 있도록 기업과 유기적으로 연결해 운영하는 것도 특징이다.

-오스트리아 히든챔피언 기업들의 특징은?

“대다수가 산업용 제품들을 생산하는 B2B(기업간 거래) 기업들이다. 전체의 3분의 2는 첨단기술 기업이며, 그중에서도 특히 정밀기계와 금속가공, 전자장치 분야의 비중이 크다. 세계 최대 수력발전설비제조업체 중 하나인 안드리츠, 세계 최대 로프웨이(케이블카) 업체인 도펠마이어 처럼 과거의 히든챔피언이 글로벌 선도기업으로 성장한 경우도 있다.”

-주목할만한 히든챔피언 기업들 소개 부탁한다.

“한국에도 진출한 선박부품 제조기업 ‘가이스링어’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히든챔피언이다. 오스트리아는 바다가 없는 내륙국이다. 그런데 이 회사는 최첨단 대형 선박용 축진동 댐퍼(선박 프로펠러가 안정적으로 움직이는 걸 돕는 장치) 제조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다. 유압사출기 전문 업체 엔겔은 경기도 평택에 지사(한국엔겔기계)와 공장을 두고 아시아 시장을 겨냥한 중소형기기를 국내에서 제작, 판매하고 있다. 풍력발전소 자동화 기업 바흐만일렉트로닉과 혁신적인 LED 조명 솔루션을 제공하는 루미텍 등 일일이 열거하기 벅찰 만큼 많다.”

오스트리아의 스카이다이버 펠릭스 바움가르트너가 2012년 10월 4일 레드불이 준비한 '우주 낙하' 이벤트를 위해 지상 3만9000m 상공에서 지구를 향해 뛰어 내릴 준비를 하고 있다. /레드불

-오스트리아 기업을 이야기 할 때 크리스털 주얼리 브랜드 스와로브스키와 에너지 음료 기업 레드불을 빼놓을 수 없다.

“두 기업은 오스트리아 창업자 정신의 정수를 보여주는 좋은 예다. 그런데 워낙 유명한 글로벌 기업이라 오스트리아 기업이란 걸 모르는 경우가 많다(웃음).”

스와로브스키는 보헤미아 출신의 다니엘 스와로브스키가 1895년 오스트리아 티롤주 와튼즈에 설립했다. 스와로브스키의 크리스털은 천연 크리스털이 아닌 가공된 크리스털이다. 엄밀히 말하면 보석이 아니지만, 정교한 커팅 기술로 크리스털의 투명도를 유지하면서도 각도에 따라 눈부시게 빛나는 크리스털 제품을 만들어 고급스런 쥬얼리로 재탄생시켰다. 다른 크리스털 제조업체들이 평균 12면 커팅기술을 보유한 반면 스와로브스키는 유일하게 28면 커팅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스와로브스키의 세계 크리스털 제품 시장 점유율은 80%에 이른다.

레드불의 시초는 1970년대 태국에서 만들어진 ‘크라팅 다엥(태국어로 ‘붉은 물소’라는 뜻)’이라는 에너지 드링크다. 하지만 이를 토대로 세계 1위 에너지음료 기업을 일군건 오스트리아 출신의 ‘마케팅 천재’ 디트리히 마테시츠였다. 마테시츠는 마케팅 비용의 3분의 2 이상을 콘텐츠 제작과 관리에 투자하고, 초유의 우주낙하 이벤트를 마련해 유튜브로 전 세계에 생중계하는 등 감각적인 수완을 발휘, 1987년 우리돈으로 10억원대에 불과했던 레드불의 매출을 약 8조원(2020년 기준)으로 30여년 사이 8000배 가까이 키웠다.

-한국과 오스트리아 간 교역과 비즈니스 협력관계는 어떻게 보나.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어려움 속에서도 지난해 한국과 오스트리아 양국 간 교역은 1년 전보다 13% 증가하면서 팬데믹 이전 수준을 넘어섰다. 양국 간 여행 규제가 풀리면서 대한항공은 7월에 빈 직항 항공편을 다시 취항할 예정이라 앞으로가 더 기대된다.”

-한국은 오스트리아와 협력을 통해 뭘 얻을 수 있을까.

“화석연료 가격이 치솟는 시기에 양국 모두 기후변화 대응과 관심이 크다는 걸 생각하면 오스트리아가 높은 수준의 기술 경쟁력을 보유한 친환경 녹색기술 분야의 협력이 유망해 보인다. 재생에너지와 순환경제, 재활용과 오폐수 처리 기술 등이 여기 포함된다. 바이오매스(생물연료)를 이용해 전력을 생산하는 오스트리아의 기술은 이미 한국에 도입됐다. 임업과 목재를 이용한 건축 등의 분야도 오스트리아가 한국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분야다. 오스트리아는 전통적으로 자동차 부품 분야의 강자이기도 하다. 자동차 관련 분야는 오스트리아의 대(대) 한국 수출에서 3분의 1을 차지한다. 한국이 앞서가는 전자(가운데 점)자동차 분야 협력의 잠재력이 크다고 보는 이유다.”

-양국 간 교역과 협력의 시너지를 키우기 위해 극복해야 할 과제는 없나.

“코로나 팬데믹 규제도 대부분 풀렸으니 이제 인적 교류를 다시 늘릴 필요가 있다. 오스트리아 젊은이들 사이에서 K팝과 K드라마, 한식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한국어에 능통한 인재들이 많이 필요한 상황이다.”

-오스트리아는 남북한 동시 수교국이다. 남북관계 개선에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오스트리아는 국제 분쟁을 대화와 협상을 통해 해결하는 것을 지지해 왔다. 포괄적이고 입증 가능하며, 뒤집을 수 없는 한반도의 비핵화를 요구한다는 점에서 유럽연합(EU)이나 대한민국 정부와 뜻을 같이한다. 지난 가을부터 시작된 북한의 미사일 도발은 유엔 안보리 결의에 대한 심각한 위반이다. EU의 일원으로서 우리는 북한에 대한 비판적 관여 정책을 견지하고 있다. 미사일 도발을 규탄하며 북한에 대한 제재 이행을 촉구하는 입장이다. 물론 대화의 여지는 열어 둘 것이다.”

-한국에서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오스트리아 관광의 숨은 보석같은 곳 추천 부탁한다.

“빈에서 남쪽으로 20km 정도 떨어진 바덴에 가볼 것을 권한다. 유서깊은 온천도시이기도 하고, 지난해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됐다. 멋진 건축물과 수준 높은 음악회에 다양한 종류의 오스트리아 와인도 즐길 수 있다. 바덴은 도시 전체가 포도밭으로 둘러싸여있다.”

오스트리아 바덴의 거리 풍경. /트위터 캡처

-빈이 전 세계 클래식 애호가들이 동경하는 도시로 자리매김 하게 된 원동력은 뭘까. 베토벤과 모차르트가 활동하던 도시라서?

-세계적인 음악가들이 빈을 사랑하는 건 수준 높은 청중들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수준 높은 청중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는 건 아니다. 공연장 하나를 만들어도 장기적인 안목에서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일례로 빈 국립오페라극장에는 서서 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입석’ 관람대가 있다. 티켓 가격은 저렴하지만 음향은 오히려 더 좋다. 음악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수준 높은 공연을 저렴하게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배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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