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물서 면발 건져내길 수백 번… 둥글게 말려다 ‘쑥대머리’ 됐네

김성윤 음식전문기자 2022. 6. 4.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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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벌써 여름, 손님 몰리는
평양냉면 직접 뽑아보니
직접 냉면을 만들어 보니, 가장 까다롭고 힘든 건 면이었다. 예민한 메밀이 향을 잃지 않도록 국수를 뽑고 삶아서 얼음물에 담가 열기를 빼낸 뒤 동그랗게 말아 그릇에 담는 전 과정을 1분여 짧은 시간에 마쳐야 했다./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이걸 손님께 낼 수 있겠어요? 다시 마세요!”

참담했다. 송원영 셰프가 만 냉면 면발이 갓 시집온 새색시 쪽 찐 머리처럼 얌전하고 단아하다면, 기자가 겨우겨우 말아놓은 면발은 처형장의 망나니 쑥대머리처럼 흐트러지고 어지러웠다. 다시 말 면을 집으려고 얼음물에 손을 담갔다. 면발이 쉬 잡히지 않았다. 손끝은 찌릿하고 손가락은 뻣뻣했다. 여름에도 이런데 겨울에는 어떨까,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처음엔 손이 떨어져 나갈 것 같더라고요. 이제는 익숙해져서 아무렇지도 않지만요(웃음).”

성급하게 찾아온 여름과 함께 평양냉면의 시즌이 왔다. 마니아들은 “평냉은 겨울에 먹어야 제 맛”이라며 혀를 차지만, 냉면은 오래전 여름의 맛으로 자리 잡았다. 음식 평론가 박정배씨는 “근대 냉장·냉동 기술이 소개된 일제강점기 냉면은 이미 여름 음식이었다”면서 “냉면은 겨울 음식이란 말은 철이 지나도 한참 지났다”고 했다.

오래도록 억센 서도(평안·황해도) 사투리 쓰는 실향민들이 먹는 밍밍하고 무미한 음식으로 평가절하됐지만, ‘잘나가는 힙스터 음식’으로 환골탈태한 평양냉면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지난달 31일 서울 서초동 ‘한우다이닝 울릉’ 주방에 들어가봤다. 지난 2018년 개점하자마자 평냉 강자로 자리매김한 서초동 ‘서관면옥’ 김인복 셰프가 2020년 문 열었다. 울릉 칡소 등을 내는 최고급 한우 전문점이지만, 냉면도 “웬만한 노포보다 낫다”고 평가받는다.

◇까탈스럽고 예민한 메밀

냉면집의 하루는 아침 일찍 시작했다. 한우다이닝 울릉에서는 매일 아침 9시 메밀을 매장에서 직접 맷돌 제분기로 빻는다. 이날 하루 사용할 분량인 15㎏을 제분했다. 고용재 점장은 “맷돌을 사용하는 건 열이 덜 발생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일반적인 금속 재질 제분기가 더 편리하고 빠르지만, 뜨거워진다는 단점이 있어요. 메밀이 예민해서 열을 받으면 향이 확 떨어지거든요. 하루 쓸 만큼만 반죽하는 것도 메밀은 오래 두면 맛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송 셰프가 반죽기에 메밀가루와 물을 부었다. “냉면이 가장 많이 나가는 한여름에는 하루에 반죽을 3번까지도 합니다. 단메밀과 쓴메밀 두 종류를 섞어요. 식감 좋은 단메밀에 쓴메밀을 소량 섞어 메밀 특유의 색과 향을 강화하지요. 물의 양은 메밀의 제분 상태를 고려해 조금씩 가감합니다. 날씨도 상관 있어요. 장마철 등 습도가 높을 때는 양을 줄이죠. 반드시 찬물이라야 하고요.”

송 셰프는 면 반죽에 전분은 더하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냉면 반죽은 메밀가루와 전분을 8대2로 섞는다. 메밀은 글루텐이 거의 없어서 반죽하기가 쉽지 않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감자나 고구마 전분을 섞는다. 하지만 한우다이닝 울릉에서는 100% 메밀가루로만 면을 만든다. 냉면이 메밀 특유의 구수한 향을 즐기기 위해 먹는 음식이기 때문. 송 셰프는 “제분 기술이 발달하면서 예전보다 순(純)메밀면 뽑기가 수월해졌다”고 했다. 순메밀면은 최근 평양냉면은 물론 막국수에서도 유행하고 있다.

◇지키고 서서 끓이는 육수

송 셰프는 반죽을 장정 팔뚝만 한 크기의 덩어리로 나눠 비닐봉지에 빈틈없이 포장했다. 나무 몽둥이처럼 묵직하고 단단했다. 덩어리 하나 무게가 1.1㎏. 냉면 6~7인분이 나온다고 했다. 잠시 쉴 수 있을까 싶었지만 송 셰프가 “육수 끓이러 가자”고 했다. 주방 뒤쪽 가스불 위에 커다란 스테인리스 들통을 놓더니 큼직한 고깃덩어리와 물로 가득 채웠다. “한우 사태와 양지 25㎏입니다. 이걸 3시간 끓이면 육수 80L가 나오죠.”

그냥 끓이기만 하면 육수가 되는 게 아니었다. 끓임없이 올라오는 불순물을 커다란 뜰채로 건져야 했다. 잠시 지나서부터 올라오기 시작하는 기름도 한 방울 남김 없이 국자로 걷어내야 했다. 뜨거운 불 앞에 계속 서서 지켜보며 걷어내자니 비지땀이 흘렀다. 물이 끓고 1시간 30분 지났을 때 송 셰프가 돌아왔다. “양지는 1시간 30분, 사태는 3시간 지나 건집니다. 보시면 알겠지만 양지는 납작해서 빨리 익고, 사태는 두툼해서 오래 걸리거든요. 양지를 사태 건질 때 함께 건지면 너무 익어서 수육이나 고명으로 냈을 때 맛이 떨어져요.”

양지에 이어 사태까지 모두 건져낸 육수에서 다시 뜰채와 국자로 불순물과 기름을 걷어냈다. 마지막으로 고운 면보에 거르니 맑은 육수만 남았다. 송 셰프가 소금으로 간했다. 한 술 떠서 맛보니 짜지는 않았지만 평소 마시던 냉면 육수보다 간간했다. “메밀은 물을 많이 머금기 때문에 육수가 싱거워져요. 그래서 짠맛을 다소 강하게 해야 면을 말았을 때 간이 맞지요.”

한우다이닝 울릉에서는 냉면 국물로 소고기 육수만 쓴다. 소고기 육수에 동치미 국물을 섞거나, 닭·꿩·돼지 육수를 더하는 등 집집이 추구하는 맛이나 전통에 따라 육수 맛 내는 노하우와 레시피가 다르다.

◇갓난아기 엉덩이 씻기듯 살살

“냉면 4인분!” 쉴 틈도 없이 주방이 바빠졌다. 오전 11시 문 열자마자 손님들이 입장하더니 11시 30분 만석이 됐다. 냉면 주문이 밀려들었다. 냉면 제조에서 가장 까다로운 부분인 면 뽑기가 시작됐다. 송 셰프가 반죽 한 덩이를 냉면기 윗부분 원통 모양 틀에 넣었다. 버튼을 누르자 끝이 납작한 금속 막대가 내려가며 반죽을 눌렀다. 틀 아래 구멍으로 가느다란 면발이 쏟아져 나오더니 바로 아래 펄펄 끓는 물로 떨어졌다.

“뜰채로 면발을 흐트러트리세요. 안 그러면 뭉쳐서 가닥가닥 떨어지질 않아요. 너무 세게 해서도 안 돼요. 면발이 끊어집니다. 면발이 짧으면 말기 힘들어요. 이제 건지세요. 너무 오래 두면 면에 탄력이 없어져요.” 뜰채로 면을 건져 옆에 있는 찬물에 담가 1차 씻기를 해야 했다. “살살 하세요. 너무 세게 헹구면 면이 끊어져요. 뜨거운 기운이 사라졌다 싶으면 건져서 얼음물로 옮깁니다.”

갓난아기 엉덩이 씻기듯 아래에서 위로 살살 어루만지며 면을 씻었다. 뜨거웠던 면발이 차가워졌다. 다시 뜰채로 건져 얼음물에 담갔다. 1차 세척 때와 마찬가지로 살살 달래가며 여열(餘熱)을 뺐다. 얼음물에 놀라 오그라든 면에서 탱탱한 탄력이 확연히 느껴졌다.

최고난도의 면발 말기 차례가 됐다. “엄지와 검지 사이에 면발을 집으세요. 이 정도면 딱 한 그릇 분량이에요. 다른 손으로 면발의 양 갈래를 잡아서 여자아이 머리 꼬듯이 비틀어주세요. 그런 다음 엄지를 중심으로 돌돌 말아요.” 그의 말처럼 면발이 집히지 않았다. 보기 좋게 동그랗게 말기란 더더욱 힘들었다. 매끄러운 면발이 손가락에서 자꾸 빠져나갔다. 기껏 만 면발은 헝클어지고 어수선했다. 이 모든 과정을 1분여 안에 끝내야 했다.

두세 번 얼음물에서 면을 건져 말기를 반복하니 손끝이 저리고 손가락이 무감각했다. 겨우 한 덩어리 말아서 그릇에 담았다. 삶은 소고기, 무채, 배, 달걀지단, 절인 오이, 송송 썬 파, 실고추 등 고명을 얹었다. 육수를 면과 고명이 흐트러지지 않게 주변에 흘려 부으니 냉면 한 그릇이 완성됐다.

서울 서초동 '한우다이닝 울릉'의 평양냉면./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식초는 면에다 뿌리세요

오후 1시 30분, 손님이 거의 빠지고 한숨 돌릴 여유가 생겼다. 고 점장이 “고생했는데 냉면 드시라”며 한 그릇 내왔다.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고 먹는 냉면 맛이 각별했다.

고 점장에게 “요즘 냉면 값이 너무 올랐다며 불만들이 많더라”고 했다. 요즘 한 그릇 1만원 이하인 평양냉면집을 찾기 힘들다. 한우다이닝 울릉에서는 1만5000원 받는다. “메밀이 너무 올랐어요. 우리는 국산 메밀만 쓰는데, 15㎏ 1포대가 30만원이나 해요. 대부분 냉면집에서 사용하는 외국산 메밀도 중국산 기준 1포대에 8만~9만원쯤 할 겁니다. 육수에 쓰는 한우는 지난 4~5년간 꾸준히 올랐고요.” 인터넷 포털 검색 기준 밀가루는 20㎏ 1포대 2만~3만원대다.

냉면이 ‘인싸(인사이더)’의 ‘힙’한 음식이 되면서 소위 ‘면스플레인’도 논란이다. ‘면(麵)’과 ‘Explain(설명하다)’의 합성어로, ‘냉면은 이렇게 먹어야 한다’고 가르치려 드는 행태를 말한다. 고 점장과 송 셰프는 “입맛과 취향대로 식초를 두르건 겨자를 치건 고춧가루를 뿌리건 맛있으면 그만”이라면서도 “냉면은 그 맛을 음미하면서 먹을 가치가 있는 섬세한 음식인 건 맞는다”고 했다.

“냉면이 나오면 일단 육수부터 맛보세요. 면을 풀어서 냉면을 먹다가 다시 육수를 드셔 보세요. 육수가 한결 심심해졌음을 느끼실 거예요. 식초는 면에 뿌리는 게 낫습니다. 육수 맛에 영향을 덜 주면서 냉면을 더 맛있게 먹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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