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유리창에 시트지 붙여도 청소년 담배 구매 막는 효과 없어.. 자영업자들 "탁상행정 결과" 비판

송복규 기자 2022. 6. 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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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담배 구매 용이성 67%→74.8% 증가
편의점주 "야간 범죄 노출 가능성 높아져"
전문가 "청소년 흡연율 조준한 실효성 있는 정책 필요"

서울 마포구 공덕동의 한 편의점 유리창 겉면에는 내부를 볼 수 없도록 불투명한 시트지가 붙여져 있다. 가장 윗부분을 제외한 정문과 옆문 유리창들은 시트지로 가려져 있어 편의점 내부는 형체만 간신히 보였다. 지난해 편의점 외부에서 담배 광고가 보이지 못하도록 한 보건복지부의 규제에 따른 것이다.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이 편의점을 운영하는 김모(54)씨는 전혀 효과가 없다는 반응이었다. 김씨는 “지금의 담배 광고 규제는 전혀 의미 없는 정책”이라며 “상식적으로 시트지로 담배 광고를 가린다고 담배를 구매하려는 청소년들을 막을 수 있겠냐”고 말했다. 이어 “청소년 흡연율을 낮추기 위해서는 강력한 처벌이 필요한 것이지, 지금과 같은 정책은 ‘보여주기식’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편의점 유리창에 반투명시트지가 부착돼 있다./김수정 기자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청소년 흡연율을 낮추기 위해 편의점 유리창에 시트지를 부착하도록 하는 담배 광고 규제가 시행한 지 1년이 되어가지만, ‘탁상행정’이라는 비판이 계속되고 있다. 청소년 담배 구매를 막는 효과도 없고, 오히려 편의점 점주들만 불편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국민건강증진법 제9조 4항에 따라 지난해 7월부터 편의점 외부에서 계산대 위의 담배 광고를 볼 수 없도록 규제를 강화했다. 무분별한 담배 광고 노출이 청소년의 흡연 욕구를 자극할 수 있다는 게 이유였다. 이에 따라 담배 광고물이 담배 판매소에서 1~2m 떨어진 바깥에서 육안으로 확인될 경우 법을 위반하는 것이 된다. 이를 위반할 시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

하지만 복지부의 담배 광고 규제에도 실제 청소년 흡연율에는 큰 변화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질병관리청이 지난달 공개한 ‘제17차 청소년건강행태조사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최근 한 달에 1일 이상 일반 담배를 흡연했다’고 응답한 청소년은 4.5%로, 전년(4.4%)과 비교하면 차이가 없었다.

청소년이 담배를 얼마나 쉽게 접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지표인 ‘구매 용이성’ 비율은 오히려 대폭 상승했다. 구매 용이성 비율은 담배 광고 규제가 시작된 지난해 74.8%를 기록했는데, 규제 이전인 2020년(67%)보다 오히려 7.8%P가 상승했다.

편의점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은 담배 광고 규제가 ‘탁상행정’에 불과하다는 반응이다. 심지어 편의점 내부가 잘 보이지 않아 범죄에 보다 취약해졌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서울 마포구에서 편의점을 운영하고 있는 김모(43)씨는 “시트지가 편의점 내·외부를 가려 편의점 점주만 피해를 보고 있다”며 “야간 근무가 많은 편의점 특성상 투명한 유리를 통해 범죄를 예방할 수 있는 부분이 있었는데, 유리창에 시트지가 붙여져 있어서 범죄나 돌발 상황에 노출될 가능성이 커졌다”고 하소연했다.

실제 국토교통부가 제정한 ‘건축물 범죄 예방설계 가이드라인’을 살펴보면, 편의점은 정면이 벽으로 막혀있지 않아야 하고 외부에서 잘 보일 수 있도록 시야가 확보돼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창문이나 출입구는 내·외부로의 시선을 감소시키는 필름, 광고물 등을 부착하지 않도록 한다고 명시돼 있다.

편의점 유리창에 반투명시트지가 부착돼 있다. /전국편의점가맹점협회 제공

전국편의점가맹점협회는 지난달 19일 편의점 내부의 담배 광고가 외부에서 보이지 않도록 붙이는 반투명 시트지가 편의점 근무자와 고객의 안전을 위협한다며 법 개정을 촉구했다. 협회는 성명서를 통해 “내부 광고물인 담배 광고가 투명한 유리창 때문에 외부에서 보인다는 이유로 규제한다는 것은 전형적인 탁상행정의 결과”라고 강조했다.

복지부는 실태 조사를 충분히 진행한 뒤 시행된 정책인 만큼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해당 정책의 경우 실태 조사를 한 후 충분한 유예 기간을 두고 시행한 정책”이라며 “편의점 점주들의 경우 장사에 지장이 초래되니 담배 광고 규제에 불만을 가지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는 현행 담배 광고 규제와 같이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한 제도가 아닌 실효성 있는 청소년 흡연율 감소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현재 시행 중인 담배 광고 규제는 청소년에게 실효성이 없으며 편의점 점주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며 “복지부는 현실성 없는 규제가 아니라, 청소년 흡연율을 낮추기 위한 실효성 있는 정책을 펼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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