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출장 필수품 '돼지코'→ 220볼트 'C형 플러그' 32년만에 통일

기자 2022. 5. 30.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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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별로 상이한 전기 콘센트 표준은 여행자들에게 불편을 초래한다. 우리나라의 전기 콘센트 표준도 승압 사업을 실시하기 전에는 100볼트(V) A형 플러그였다. 100V와 220V 겸용 시기를 거쳐 지금의 220V C형 플러그로 통일됐다.
미국과 캐나다, 일본 등에서 사용하는 100V A형 플러그의 모습.
송전 과정에서 낭비되는 전력량을 줄이기 위해 실시된 승압 사업이 지지부진하자 한국전력공사는 무료로 양전압 공사를 실시했다. 당시 한전의 광고 문구.

■ 기술이 지나간 자리 - (14) 전기 콘센트

표준화는 효율성 높이고 낭비 줄여… 한전, 1960년대말부터 준비기간 거쳐 1973년 ‘승압 15개년 플랜’ 본격 시행

100볼트·220볼트 겸용 전기 콘센트도 등장… 2005년 승압사업 성공해 ‘후발주자의 이점’ 누려

해외 출장을 나갈 일이 생길 때마다 잊지 않고 챙기는 물건이 있다. ‘여행용 만능 멀티 콘센트’로 알려진 것인데, 직육면체 모양 플라스틱 상자의 각 면에서 여러 나라의 콘센트가 나와 전자제품에 전기를 공급받을 수 있게 해 준다. 특정한 나라의 콘센트 표준을 알고 있다면 이른바 ‘돼지코’라고 부르는 비교적 단순한 장치로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겠지만, ‘만능 멀티 콘센트’ 하나만 가지고 있으면 어떤 표준을 채택한 나라에 가더라도 안심할 수 있어서 편리하다.

예를 들어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대륙 몇몇 나라에서는 한국의 전원 케이블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지만 일본이나 미국 또는 싱가포르, 영국 등에 가게 되면 한국에서 가져간 케이블을 꽂을 수 없게 돼 난감한 일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럴 때면 전 세계 단일 표준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하게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세상에는 도대체 왜 이토록 다양한 사양의 사물이 혼재돼 낭비를 초래하는가. 이 문제에 정면으로 도전한 인물이 1920년대 미국 상업부 장관이자 이후 제31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허버트 후버(Herbert Hoover)였다. 스탠퍼드대 출신의 엔지니어였던 후버 장관은 정부 주도하에 표준화를 장려함으로써 낭비를 상당히 줄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침대 사이즈 규격을 필요에 따라 서너 가지로 표준화할 수 있다면, 침대를 만드는 사람뿐 아니라 침대 시트와 이불을 만드는 사람들까지 사전에 정해진 규격에 따라 제품을 만들 수 있게 된다. 1920년대에 노력을 기울인 결과 우리는 지금까지도 싱글, 더블, 퀸, 킹사이즈로 이어지는 표준 침대 규격을 갖게 됐다. 이렇게 표준화는 주문제작 방식에서 대량생산 방식으로 산업을 전환하기 위한 필수적인 전제 조건이 된다.

표준화가 효율성을 높이고 낭비를 줄인다는 것은 이제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이를 실제로 구현하는 일은 또 다른 문제다. 한 나라 안에서 정부나 산업계가 지난한 노력을 기울여도 간신히 될까 말까 할 정도지만, 여러 나라를 아우르는 국제표준을 제정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각국이 특정 표준을 채택하게 되는 고유한 사정이 있을 텐데, 그것을 무시하고 하향식으로 새로운 표준으로 전환하는 결정에 누구도 동의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전기 콘센트의 경우, 1951년 ‘국제전기기기인증제도(IECEE)’에서 표준 사양을 제정하기는 했지만 수많은 표준을 분류하고 서로 다른 표준 사이의 호환성이 유지되도록 하는 데 그칠 수밖에 없었다. IECEE 표준에 따른 한국 전기 콘센트 표준은 CEE 7/17 비접지식 전원인데, 국제전기기술위원회(IEC) 분류에 따르면 이 콘센트에 맞는 플러그는 ‘C형 플러그’ 또는 ‘유로 플러그’다. 이 장치는 2개의 원통형 핀을 통해 전원을 공급받게 돼 있고 각 핀의 지름은 4.8㎜, 길이는 19㎜로 정해져 있다. 현재 한국에서 통용되는 전기기기는 모두 이 표준을 따르게 돼 있다.

하지만 한국 안에서 2개의 전기 콘센트 표준이 공존한 시기가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독자가 있을지도 모른다. C형 플러그가 한국 가정용 전기의 표준으로 등극하기 이전에 ‘A형 플러그’라는 또 다른 표준이 사용되고 있었다. 미국과 일본에서 사용하기 시작한 A형 플러그는 (C형 플러그처럼) 원통형이 아니라 1자형(칼날형) 핀 2개를 통해 전원을 공급받게 돼 있었다. 두 플러그는 겉모양만 다른 것이 아니라 공급받는 전원의 전압도 달랐다. A형 플러그는 100볼트(V)급 전압에 적합하게, C형 플러그는 250V급 전압에 적합하게 설계됐다. 이렇게 서로 다른 두 전기 콘센트는 20세기 후반의 상당 기간 동안 한국에서 공존했다. 특히 1980년대를 전후로 완공된 주택에서 실내 인테리어를 바꾸면서 전기공사까지 하지 않았다면 두 종류의 콘센트 표준이 나란히 설치돼 있는 모습이 아직까지도 남아있을 것이다.

한국에서 두 표준이 동시에 존재했던 이유는 한국이 100V에서 220V로 배전전압을 높이는 승압(昇壓) 사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꽤 드문 사례에 속하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가설된 한반도의 전력망은 일본의 표준을 따르게 됐고, 20세기 초에 전기화를 시작하던 많은 나라와 같이 가정용 배전전압 교류 100V를 표준으로 채택했다. 전압을 220∼250V로 높여야 한다는 주장은 1960년대 들어 저개발국 발전을 추진하던 국제기구에서 제기했다. 유엔 산하 ‘아시아 및 극동경제위원회(ECAFE)’는 각 회원국에 국제표준으로 자리 잡고 있는 가정용 교류 240V 표준을 도입할 것을 권고했다. 각 가정에 공급하는 전기의 전압을 높이게 되면 송전 과정에서 낭비되는 전력량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1960년대에 이미 전기 보급이 상당히 진전돼 있는 경우가 아닌 개발도상국에서는 240V 표준으로 전환하는 것이 중장기적으로 훨씬 경제적일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아시아 지역에서는 필리핀과 함께 일본의 식민지였던 대만과 한국이 그 대상이었다.

승압 사업은 이 무렵 농어촌 전기 보급률이 10%를 밑돌고 있었던 한국의 입장에서 대단히 매력적인 아이디어였다. 1968년 한국전력에서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1966년 일본 가구의 93.8%가 텔레비전 수상기를 보유하고 있는 데 반해 한국에서 그 수치는 8.85%에 불과했을 정도로 전기 보급 초창기에 해당했다. 일본은 승압 사업을 추진하기에 이미 늦었다고 판단했지만, 한국에는 여전히 기회의 창이 열려 있었다. 한국전력은 1960년대 말부터 몇 년 동안의 준비 기간을 거쳐 1973년 ‘배전전압 승압 15개년 계획’을 세우며 본격적으로 승압 사업을 개시했다. 경제학자 알렉산더 거센크론(Alexander Gerschenkron)의 말을 빌리면, 한국은 ‘후발주자의 이점’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이다.

야심 차게 시작한 승압 사업이었지만 그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정부가 주도하는 하향식 정책만으로는 사업의 성공을 장담할 수 없었다. 아무리 한국전력이 빠른 속도로 전력망 설비를 교체해 동네 어귀의 변전소까지 220V의 전기를 공급하더라도 개별 가구의 가내 콘센트와 전기기기를 교체하는 등의 적극적인 협조가 없이는 사업이 진전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전환의 가장 큰 병목은 100V/220V 겸용 전기기기를 의무화하는 과정에서 나타났다. 정부에서는 제조업체에 보조금을 지급해 늘어난 생산원가를 일부 보전하는 정책을 폈지만 업계의 불만은 하늘을 찔렀다. 심지어 전기제품의 형식승인 업무를 담당하는 공업진흥청마저 상공부와 한국전력이 지나치게 강압적인 방식으로 승압 사업을 추진한다며 불만을 나타내기까지 했다. 이렇게 우왕좌왕하는 와중에도 소비자들은 100V 규격의 전기제품을 빠른 속도로 구매했다. 아무리 서슬 퍼런 유신시대라도 기업과 소비자를 정부의 의도대로 통제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1980년 무렵 한국 승압 사업은 진척이 지지부진해져 언제 끝날지 모르는 지경에 이르렀다. 한국전력 입장에서는 그렇다고 사업을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해결책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한국전력은 기술적인 해결책을 모색했다. ‘단상 3선식’ 방식을 통해 전기 소비자들에게 100V와 220V 전압을 동시에 공급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전기 인입선 1개 선을 추가해 바깥선끼리 연결하면 220V, 중간선과 바깥선을 연결하면 100V의 전기를 사용할 수 있게 되는데, 이런 방식으로 희망하는 가구에 대해 한국전력이 비용을 부담해 공사해준다는 계획이었다. 기존 가구는 물론이고 1980년대 초에 새로 짓는 주택에도 같은 방식으로 두 종류의 전기 콘센트를 설치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런 결정은 승압 사업의 진행 속도를 늦추기는 하겠지만, 기업과 소비자의 불만을 잠재우고 기존 전기제품을 계속 사용할 수 있게 해 줌으로써 낭비를 줄이는 데 효과적이었다. 전력망의 배전전압 표준이 전환을 이루는 과정에서 과도기적으로 두 표준의 공존을 인정한 셈이었다.

결국 한국전력은 2005년이 돼서야 승압 사업의 공식적인 종료를 선언했다. 1973년 개시를 선언한 지 32년이 지난 후였다. 이렇게 해서 한국의 표준 전기 플러그는 220V ‘C형 플러그’로 통일됐다. 구축 아파트나 주택에 아직 남아있는 100V ‘A형 플러그’용 콘센트는 한 세대가 지나도록 오랫동안 추진한 승압 사업이 남긴 흔적이다.

최형섭 서울과학기술대 교수·과학잡지 ‘에피’ 편집위원

■ 용어설명

후발주자의 이점 (latecomer advantage)

러시아계 미국인 경제학자 알렉산더 거센크론(Alexander Gerschenkron·1904∼1978)이 ‘역사적 관점에서 본 경제적 후진성’(1951)이라는 저서를 통해 주장했다. 한 나라가 경제적으로 뒤처져 있을수록 도약(跳躍)과 같은 급속한 성장이 일어나기 쉽다는 것이다. 그 이유 중 하나는 후발주자가 생산재 투자를 보다 대규모로, 보다 최신 기술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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