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니다, 1개 3800만원"..새벽배송 전쟁에 노란색 번호판 '불티'

배동주 기자 2022. 5. 30. 07: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신규 등록 제한 속 배송 수요 증가 영향
2년 전 2600만원에서 1000만원 넘게 올라
자가용 차량, 새벽배송 활용..불법 배송도 등장
"전기화물차 신규 등록 허용해야" 지적

“늘어난 온라인 배송 수요에 대응하고 싶지만, 쉽지가 않다. 번호판 하나가 자동차값보다 훨씬 비싸졌는데도 구할 수가 없다.” (A 배송대행업체 대표)

국내 온라인 배송 시장에 ‘번호판’ 확보 비상이 걸렸다. 온라인 주문 상품 배송을 위해선 ‘노란색’ 영업용 화물차 번호판이 필수지만, 신규 등록이 차단돼 번호판 개당 가격이 4000만원 수준으로까지 치솟으면서다. 전기차에 한해 허용됐던 신규 등록도 지난 4월 중단됐다.

30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이마트(139480) 등 대형마트나 마켓컬리 등 전자상거래 업체가 새벽배송 등에 활용하는 1톤(t) 트럭 영업용 번호판 가격은 지난해 3800만원 수준으로 뛰었다.

2019년 말까지도 2600만원 수준이었던 1t 트럭 영업용 번호판 가격이 2년 새 1000만원 넘게 비싸졌다.

그래픽=손민균

1t 트럭 번호판 가격이 이렇게 치솟은 이유는 신규 등록이 제한된 속에서 배송 수요는 늘었기 때문이다.

운수사업법 등 현행법에 따르면 등록되지 않은 화물차는 배송 등 유상운송을 못하도록 하고 있다. 허가 받지 않은 차량 운행 시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벌금에 처한다.

여기에 정부는 화물차 공급량 조절을 위해 2004년 영업용 화물차를 허가제로 전환하고 택배 전용 차량을 제외한 신규 허가를 사실상 중단했다. 국토교통부 통계 기준 1t 이하 화물차는 15만대(일반형)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다. 번호판을 사거나 빌려 영업하는 ‘지입’만 가능하다.

이런 가운데 영업용 화물차 수요는 빠르게 늘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며 소비의 중심이 온라인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교보증권은 새벽배송 시장 규모만 지난해 9조원대로 2020년 2조5000억원 대비 4배 가까이 늘었다고 추산했다.

대형마트 한 관계자는 “매장을 방문하는 대신 온라인으로 장을 보는 고객의 수는 물론 물량까지 코로나19 이전과 비교해 4배 가까이 늘었다”면서 “주문을 처리하기 위해선 화물차 번호판을 갖춰야 하는 데 그 수가 제한돼 있으니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올랐다”고 말했다.

업계에선 이대로는 늘어나는 배송 수요에 대응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온라인 장보기 침투율은 2020년 21.3%에서 2023년 30%, 2025년 40%까지 확대될 것으로 추정되지만, 정작 상품을 운송할 화물차를 운용할 수 없는 상황이 된 탓이다.

노란색 번호판을 빌려 쓰는 이른바 지입 가격도 오르고 있다. 번호판을 사서 직접 운용할 수 없게 되자, 번호판이라도 빌리는 수요가 늘었기 때문이다. 일명 프리미엄 비용이라 불리는 1000만원 가량의 임대료 외에도 매달 20만~30만 원의 지입료를 내야 한다.

배송대행업체 한 관계자는 “과거 정부가 화물차 신규 등록을 중단한 이유는 화물운송시장 내부 경쟁이 치열해지고 운임 하락 등 부작용이 나왔던 탓인데 지금은 그 반대”라면서 “이대로라면 번호판 임대 등 비용을 고스란히 소비자들에게 전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새벽배송 업체인 컬리

현장에선 운수업체들이 불법 차량을 동원하는 사례까지 등장하고 있다. 자가용 차량에 물건을 싣고 배송에 나서는 식이다. 현재 흰색 번호판을 단 일반 차량의 유상운송은 쿠팡과 같이 물류센터를 구축, 직접 구매한 직매입 상품을 배송하는 경우에만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서울시 한 대형마트에서 배송 기사로 일하는 이모씨는 “차량을 직접 구비해 번호판을 다는 게 사실상 불가능해지다 보니 마트들은 번호판을 가진 운수업체에 배송 업무를 맡기는 경우가 많은데 물량이 늘다 보니 승용차에 물건을 싣고 배송하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1t 트럭 영업용 번호판 가격은 재차 반등하는 조짐이다. 친환경차 보급 확대를 목표로 전기 트럭에 일부 허용했던 친환경 화물차 신규 등록마저 지난 4월 14일 중단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4월 해당 운수사업법 개정안이 통과됐고, 1년이 지난 이달 시행됐다.

배송대행업체 한 대표는 “지난해까지 4000만원 수준이었던 번호판 가격은 올해 전기차 허용 중단으로 아예 부르는 게 값이 돼 버렸다”면서 “일부 개인들은 노란색 번호판 거래 가격으로 6000만원도 제시하고 있다. 보조금 없이 전기 트럭을 구매하는 가격”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미세먼지 저감 등을 위해서라도 전기 트럭 등 친환경 차량에 대한 영업용 화물차 신규 등록은 재허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작년말 기준 전체 영업용 화물차 등록 대수는 363만대로 이중 전기화물차는 4만3000대(1%) 수준에 그치는 것으로 집계됐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냉장·냉동 설비를 갖춘 1t 트럭 가격이 2400만~2500만원 수준인데 이 차량 운용을 위한 번호판 가격이 4000만원에 달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면서 “전기 트럭 신규 허가 중단을 이끈 영세 운송인 생계 위협도 현재 시장과 맞지 않다”고 했다.

정부는 번호판 가격 폭등에 따른 불법 영업 문제를 인지하면서도 미온적인 대응에 나서고 있다. 국토교통부 측은 “온라인 쇼핑 시장이 커지면서 영업용 화물차 수요가 늘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도 “전기차 신규 등록 허용에 대해서는 아직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