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의 맛과 섬] [98] 우이도 돈목마을 섬밥상

김준 전남대 학술연구교수 2022. 5. 25.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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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이도 돈목마을 섬밥상/김준 광주전남연구원 책임연구위원

“저 박사님 밥 주지 말쇼.” 생선 구이를 밥상 가운데 놓고 돌아서던 한씨가 한마디 툭 던지고 안으로 들어갔다. 반가워하는 말이다. 경상도 사내 뺨칠 정도로 무뚝뚝한 그녀의 환영 인사다. 몇 해 동안 찾지 못하고 오랜만에 왔기 때문이다. 우이도 돈목에서 태어나 외지에서 같은 마을 사내와 눈이 맞아 고향에 돌아와 섬살이를 다시 시작했다.

갯바위에서 미역과 톳 등을 채취하는 박화진, 한영단 부부. /김준 광주전남연구원 책임연구위원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섬 밖으로 내보내려 했던 부모의 반대는 오죽했을까. 한씨는 민박집(‘다모아 민박’)으로 찾아오는 손님들 밥을 챙기느라 앉아 있을 시간이 없다. 평소에도 일식집 사장, 백반집 아낙, 펜션 사장, 건어물 상인, 조개를 캐고 미역을 따는 어부로 섬살이를 하고 있다. 남편 박씨도 국립공원구역에 있는 모래산 지킴이, 여객선 표판매원, 물고기를 잡는 어부, 그리고 주말이면 주방보조로 살고 있다. 절해고도(絕海孤島)에서 사람 노릇 하려면 일인 다역은 기본이다.

돈목마을에서 본 우이도 모래언덕과 해수욕장./김준 광주전남연구원 책임연구위원

이들 부부와 인연을 맺은 지도 스무 해가 되어간다. 작고하신 아버지도 그녀가 손수 마련한 밥상을 받았고, 어머니는 두 차례나 밥상머리에 마주했다. 우이도가 우리 가족여행의 성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8할이 그녀의 손맛 때문이다. 이번에도 기대 이상이었다. 밥상 가운데 농어구이 옆에는 맑은 조개탕이 자리를 잡았다. 그 옆으로 바위에서 뜯은 돌김 구이, 미나리 갑오징어 무침, 머위 나물, 황석어 조림, 고사리 나물, 조개젓, 고추 장아찌, 김자반이 놓였다. 몇 년 전에도 어머니와 아내는 밥을 두 그릇이나 비웠고, 아이들도 탄복했던 밥상이다.

손질한 생선을 말리고 있다./김준 광주전남연구원 책임연구위원

이 모든 재료는 마을 텃밭과 바다와 갯밭에서 얻은 것들이다. 농어, 우럭, 민어, 양태(장대) 등 생선은 자리그물로 잡아 말린 것이다. 조개탕과 조개젓갈은 모래밭에 서식하는 비단조개를 이용했다. 동해에 흔한 조개지만 우이도처럼 서해 먼바다 모래해변에서도 볼 수 있다. 바지락 대신 칼국수, 조개탕, 조개젓 등에 이용한다. 빨랫줄에 걸린 생선도 여유롭다. 돈목마을에서 고개를 넘으면 손암 정약전이 유배 생활을 하다 눈을 감은 진리마을이 있다. 배를 타다 풍랑을 만나 조선시대 최장 거리를 표류한 홍어장수 문순득이 태어난 마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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