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미래에 '이 시대 흔적 보여주는 기록' 남기고 싶어요"

강성만 2022. 5. 23.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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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짬] 역사 저술가 황윤 작가
박물관 마니아에서 인기 역사 저술가가 된 황윤 작가는 인터뷰 뒤에도 볼 작품이 있다며 국립중앙박물관 전시관을 향했다. 강성만 선임기자

역사 저술가 황윤(43)씨는 군을 제대한 20대 초반부터 ‘박물관 마니아’로 살고 있다. 경기 안양에 살면서 국립경주박물관을 찾은 횟수만 40여차례이고 일본의 국립도쿄박물관도 30여차례나 찾았단다.

이렇게 박물관에 들인 공은 저술로 이어졌다. 2010년 첫 책 <중국청화자기> 이후 모두 10권의 책을 냈고 이 가운데 <박물관 보는 법>(2015)과 <일상이 고고학-나 혼자 경주 여행>(2020)은 4쇄까지 찍었다. 올해도 최근 나온 <일상이 고고학-나 혼자 전주 여행> 등 모두 5권을 낼 계획이다. <박물관 보는 법>이 나오고는 강연 요청도 많아 요즘은 한 달에 4번 정도 박물관 주제로 대중 강연을 한다.

대학은 법학을 전공했고 역사 전공 대학원 학위가 있지도 않은 그이지만 역사책을 써달라는 출판사 쪽 러브콜도 끊이지 않는단다. 삼국 시대 인물 김유신과 장보고 평전이 출판사 제안으로 곧 출간할 예정이고 코로나 팬데믹 이후 쓰기 시작한 ‘일상이 고고학’ 역사기행 시리즈도 출판사의 적극적인 격려로 2년 새 5권이나 냈다.

지난 18일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정원에서 황 작가를 만나 법학도가 군 제대 뒤 소장 역사학자이자 인기 저술가로 거듭난 이야기를 들었다.

황윤 작가의 ‘일상이 고고학’ 시리즈.

“애초 사학과를 가려다 취업 등 미래 전망 때문에 법대에 들어가 방황을 많이 했어요. 그러다 군 제대 뒤 어느 날 서울 인사동 고미술 가게를 찾았는데 물건 하나하나가 저한테 에너지를 주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게 참 좋았죠.” 갑자기 고미술품에 관심이 생긴 그는 얼마 안 가 인사동의 한 고미술점에 취직까지 했다. “처음에는 가게 사장님을 돕다 시간이 지나면서 일본 고미술점에서 고미술품을 가져오는 일을 했고 나중에는 도자기 감정도 했죠. 코로나 팬데믹으로 일본행이 어려워지면서 고미술 일을 접었으니 15년 가까이 했네요.”

고미술에 대한 흥미는 자연스레 그를 박물관으로 끌어들였다. “현 국립고궁박물관 자리에 임시로 있던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두 개의 반가사유상 전시를 본 게 박물관에 빠진 결정적인 계기였죠. 교과서로 봤을 때와 차이가 너무 크더군요. 텅 빈 곳에 불상 두 점만 딱 있는데 느낌이 달랐어요.”

그가 고미술 일로 100차례 이상 찾았다는 일본의 고미술 문화에서도 영향을 많이 받았단다. “일본 고미술 가게는 주인이 따로 있고 운영은 보통 고용된 점장이 합니다. 그런데 이 점장들이 반은 학자입니다. 물건이 만들어진 이후 역사와 그 가치를 매우 전문적으로 설명해 구매자들이 자부심을 갖게 합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고미술 일을 제대로 하려면 박물관을 더 자주 찾아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죠.”

박물관을 찾으면서 한국사 공부에도 열을 쏟았단다. “일본 박물관에서 중국 고대 국가인 하·은·주 청동기 전시를 본 적이 있어요. 그때 한 일본인 관람객이 전시 그릇에 적힌 상형문자를 수첩에 그대로 베끼고 있더군요. 학자는 아니지만 박물관을 찾아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를 연구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최소한 한국사는 제대로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죠. 박물관에서 하는 학자들 강연을 듣고 거기 나오는 인용문을 인터넷에서 찾아보며 공부했어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도 셀 수 없이 읽었죠.”

그가 “중국 도자기에 대한 첫 대중서”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낸 첫 책 <중국청화자기>는 일본 책을 참고해 썼다. “제가 일본어 원서로 공부하고 중국 자기에 대해 재밌게 떠드는 것을 보고 고미술 가게 분들이 ‘책 한 권 내라’고 권유하셨죠.” 그는 이 책을 내고 한 재벌가 기업인의 저택에도 초대받았단다. “자신의 도자기 수집품 분류를 맡길 생각으로 저를 불렀는데 생각보다 제 나이가 많지 않다는 것을 알고는 의뢰를 포기하시더군요.”

법학과 진학했으나 맞지 않아 방황
인사동 고미술점 즐겨다니다 ‘취직’
일본 출장 다니다 박물관 마니아로
2010년 첫 책 ‘중국청화자기’ 펴내
‘일상이 고고학’ 시리즈 등 호평

“국내 박물관 ‘한국 짱’만 모아 빈약”

그가 백제를 시작으로 경주, 가야, 제주, 전주 편을 낸 ‘일상이 고고학’ 시리즈는 지역과 그 지역 박물관 유물을 매개로 한국사를 이야기로 푸는 책이다. 전주 편은 이 지역을 후백제 수도로 삼은 견훤과, 전주와 가까운 남원에서 왜구를 크게 무찔러 이름을 날린 이성계라는 두 ‘영웅’이 중심이고 제주 편은 고려 공민왕 때 제주에서 말을 키우던 몽골인 목자의 반란을 토벌한 최영 장군의 제주 출정을 뼈대로 삼았다. 박물관이나 유적지 주변 식당이나 숙소, 교통편 등 발로 수집한 여행 정보가 풍부한 점도 이 시리즈의 특징이다.

딱 50살까지만 책을 쓰고 그 뒤로는 자유롭게 세계여행을 하며 살겠다는 그는 자신의 책이 조선 후기 실학자 이긍익(1736~1806)이 편찬한 야사 총서 <연려실기술>과 같이 “3백년 뒤에도 우리 시대의 흔적을 보여주는 기록”으로 남기를 바랐다. “먼 미래 사람들이 제 책을 보고 ‘21세기에는 이런 교통 편을 타고 이런 음식을 먹고 여행했구나’라고 언급해줬으면 하는 바람이죠.” 그가 코로나 팬데믹 뒤 아예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선 것도 이런 욕망이 컸단다.

스무살 이후 경주를 100번도 더 다녔다는 그는 ‘현장에서 하는 역사 공부’의 장점을 이렇게 말했다. “신라 무덤 중 태종 무열왕릉 주변이 정말 멋있어요. 선도산 동쪽 언덕 위로 고분 네개가 이어지고 마지막에 김유신과 처남매부 사이인 무열왕릉이 있어요. 이곳을 보면 <삼국유사>에 나오는 김유신 여동생 보희의 꿈 이야기가 실감이 납니다. 선도산에서 오줌을 싸서 서라벌이 넘쳐 흘렀다는 보희의 꿈을, 무열왕 김춘추와 결혼해 문무왕을 낳은 동생 문희가 사잖아요. 오줌은 피를 상징해 그 꿈은 ‘내 대에서 신라왕이 나온다’는 메시지인데 현장을 보면 이해가 잘 됩니다. 책만 볼 때와는 완전히 달라요. 현장을 보면 책 읽는 재미가 더 있죠.”

황윤 작가. 강성만 선임기자

한국사 중 삼국시대가 가장 흥미롭다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한국사 인물도 문무왕이다. “문무왕은 삼한을 통일해 한국인의 정체성을 만든 분이죠. 누구보다 큰 업적이지만 자신의 무덤을 크게 만들지 않고 화장해서 뿌리라고 했어요. ‘시간이 오래 지나면, 주인 없는 무덤이 돼 토끼굴이나 여우굴이 될 수도 있다’는 유언도 남겼죠. 문무왕은 또 나당 전쟁에서 이긴 뒤 영리한 외교로 대당 관계를 정상화해 국가를 안정시켰어요. 당나라를 위한 사찰까지 세웠죠. 큰 나라와 전쟁을 해 이긴 뒤 200년 이상 평화가 유지된 것은 엄청난 공이죠.”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한국 박물관에 조언할 말이 있는지 묻자 그는 “우리 박물관은 작품을 살 줄 모른다”고 했다. “프랑스 루브르나 영국 대영박물관을 봐도 자기 나라 미술을 설명하기 위해, 영향을 주고받은 주변 국가 유물을 함께 전시하잖아요. 하지만 우리 박물관은 ‘한국 짱’만 있어요. 고려청자 박물관이라고 하면 고려청자에 영향을 준 중국 도자기도 함께 전시해 거대한 고려청자 족보를 보여줘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보여요.” 이런 말도 했다. “요즈음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수준은 도쿄 기준으로 85%는 된다고 생각해요. 예전보다 많이 좋아졌죠. 국립중앙박물관 전시만 봐도 세계적 유행에서 뒤처지지 않은 문화인으로 살 수 있어요.”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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