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르포] 변덕스런 스위스 아가씨는 우리를 허락하지 않았다

글 손수원 기자 사진 손수원, 융프라우 철도 취재협조 동신항운 2022. 5. 16. 09:5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스위스 알프스 융프라우 上]
유럽에서 가장 높은 기차역 융프라우요흐..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알레치빙하
해발 3,454m 융프라우요흐의 ‘톱 오브 유럽’은 유럽에서 가장 높은 기차역이자 전망대와 천문대, 쇼핑·식당시설 등이 들어선 놀이시설이다. 융프라우요흐 아래로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인 알레치빙하가 경이롭다.
코로나 시국, 3년 만의 해외취재이다. 지난해 12월, 출발 하루 전 오미크론 확진자 발생에 의한 해외 입국자 자가격리 시행으로 어이없이 취소했던 그 스위스 융프라우Jungfrau이다. 백신 접종자에 대한 해외 입국 시 자가격리 의무가 해제되면서 다시 기회가 왔다.
이번엔 준비할 것이 거의 없었다. 지난 12월에는 백신접종증명서와 PCR 음성증명서, 백신패스, 사전입국등록 등 서류 준비에만 2주일 정도가 걸려 출반 전 이미 진을 다 빼기도 했었다. 하지만 지금 필요한 것은 달랑 비행기 표와 여권뿐이다.
취리히에서 인터라켄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현지 사람들은 이미 마스크를 다 벗었다.
인천공항에서 출발, 16시간의 비행 끝에 오전 11시 45분 스위스 취리히 공항에 도착했다. 그런데 뭔가 어색하다.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지 않고 있다. 오로지 우리 일행만이 마스크로 얼굴을 꽁꽁 감추었을 뿐이다. 스위스는 이미 코로나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 있었다.
공항에서 빠져나와 인터라켄으로 가는 기차를 탔다. 창밖으로 보는 풍경은 강원도 산간 지역을 지나는 듯 익숙하다. 다만 우리 누렁이 소 대신 이국적으로 생긴 얼룩무늬 소가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고, 주변 산들이 죄다 설악산만큼 높은 것이 조금 다를 뿐.
2년 전 개통해 그린델발트와 아이거글레처를 잇는 ‘아이거 익스프레스’. 왼쪽으로 아이거 북벽이 우뚝 서 있다.
기차를 탄 지 약 2시간 만에 인터라켄 서역Interlaken west에 도착했다. 인터라켄은 서쪽에 튠호수Lake Thun, 동쪽에 브리엔츠호수Lake Brienz를 두고 그 사이에 위치해 있다. 지도로 보면 꼭 사람의 두 눈 사이 미간에 위치한 형국이다.
흔히 ‘융프라우 트리오’, 즉 아이거Eiger(3,970m)-묀히Mönch (4,110m)-융프라우(4,158m) 여행의 베이스캠프 역할을 하는 인터라켄에는 시내를 중심으로 동쪽과 서쪽에 각각 기차역이 있다. 인터라켄 서역이 도시로 들어서는 관문이라면, 인터라켄 동역Interlaken Ost은 융프라우로 향하는 관문이다.
‘유럽풍’이 아닌 진짜 유럽의 숙소에 짐을 풀었다. 테라스에서 2,000m급 설산을 바라보며 한국의 커피믹스로 위장을 뜨끈하게 데우니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 마스크를 벗고 그저 알프스의 공기를 한껏 들이마시는 것만으로도 호강이다.
그린델발트 터미널에서 곤돌라를 기다리는 가족.
변덕 심한 날씨마저 유네스코 자연유산
이튿날 아침, 그린델발트Grindelwald로 향했다. 오늘은 ‘아이거 익스프레스Eiger Express’를 타고 ‘유럽의 지붕Top of Europe’인 융프라우요흐Junfraujoch(3,454m)로 간다. 그린델발트 터미널 내부에는 노약자와 휠체어도 편안하게 통행할 수 있도록 에스컬레이터와 엘리베이터가 적시적소에 잘 설치되어 있다. 이것은 스키나 스노보드 장비를 들고 이동하는 이들을 위한 배려이기도 하다.
터미널 내는 막판 스키 시즌을 즐기려는 스키어들로 제법 붐볐다. 마스크를 벗고 자유롭게 대화하는 모습에서 코로나 이전의 활기참이 느껴졌다. 속으로 ‘이것이 서양인의 여유!’라고 감탄하며 아이거 익스프레스를 탔다.
스키어들은 스키를 타다가 곤돌라 대신 가까운 역에서 기차를 타고 다음 슬로프로 이동하기도 한다.
2020년 12월 5일 개통해 융프라우의 새로운 명물이 된 아이거 익스프레스는 해발 943m의 그린델발트 터미널과 아이거글레처Eigergletscher역(2,320m) 사이 6.5km 거리를 단 15분 만에 잇는 고속곤돌라다. 덕분에 그린델발트역에서 융프라우요흐까지 기차를 타고 1시간 27분 걸리던 것이 이제는 40분 만에 도착할 수 있게 되었다.

26명이 탈 수 있는 곤돌라를 8명의 취재진이 전세 냈다. ‘직업병’을 가진 취재진이 곤돌라에 가만히 타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 사방의 창문을 이리저리 오가며 사진을 찍느라 분주하다. 그럼에도 곤돌라는 한 치의 요동 없이 안정적이다.
클라이네샤이데크~아이거글레처~융프라우요흐를 오가는 융프라우반 열차.
초봄의 알프스는 아직 눈이 가득하다. 고도를 높일수록 눈은 많아지고 다시 겨울로 되돌아가는 시간여행이 시작된다. 해발 2,000m가 넘어가고 눈보라가 몰아쳤다. 고산의 기상상황이 만만치 않다.
“융프라우는 2001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융프라우~알레치~비츠호른 지역이에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가장 큰 이유는 유럽에서 크고 긴 ‘알레치빙하Aletschgletscher’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가 있어요. 바로 변화무쌍한 기후입니다. 이곳에 머물러 보면 알겠지만 햇볕이 내리쬐다가도 금방 눈과 비가 내리고, 또 그치는 걸 볼 수 있을 거예요.”
융프라우 철도의 한국총판인 동신항운 송진 대표이사가 이 난감한 상황을 침착하게 설명해 준다. 융프라우 날씨의 변덕은 유네스코에서도 인정한 것이라니 이마저도 여행의 일부다.
아이거 익스프레스의 종착지인 아이거글레처역.
아이거와 묀히, 9.3km 지하를 달리는 기차
아이거글레처역에 내려 철도로 갈아탄다. 융프라우요흐역까지는 9.3km의 긴긴 터널을 지난다. 그런데 이 터널이 보통 터널이 아니다. 사람의 힘으로 아이거와 묀히의 몸통을 관통해 터널을 내고 기어코 융프라우와 아이거 사이의 안부까지 철도를 깔았다.
이 역사적인 공사는 ‘아돌프 구에르 첼러Adolf Guyer-Zeller (1839~1899)’의 상상에서 시작되었다. 취리히의 섬유사업가였던 그는 1893년 아이거와 묀히의 암벽에 터널을 내어 철도를 깔고 융프라우까지 기차를 운행하는 것을 구상했다. 그리고 1896년부터 공사가 시작되었다. 가파른 암벽 터널을 올라야 했기에 평행한 철로 가운데 톱니 모양 레일을 하나 더 깔아 기차를 끌어 올리는 ‘토블러(톱니형 궤도레일)’를 고안했다.
7년을 계획한 공사였으나 혹한과 폭설 등 혹독한 자연조건과 붕괴사고, 공사비 조달의 지연 등으로 공사는 더디어졌다. 결국 구간별로 나누어 개통해 수익을 낸 뒤 그 수익으로 다시 철도를 한 정거장씩 늘렸다.
막판 스키 시즌을 즐기기 위해 그린델발트 터미널에서 곤돌라를 타려는 스키어들.
그렇게 1912년 8월 1일, 융프라우요흐까지 철도가 완공되었을 때는 16년이란 시간이 지난 후였다. 이 대공사를 기획한 아돌프 본인은 철도가 완공되기 3년 전인 1899년 심장마비로 사망했지만 이 업적 덕분에 그는 ‘철도왕’이란 별명을 얻게 되었다.
철도의 경사가 어찌나 급한지 절로 몸이 기울어진다. 창밖에는 오로지 암벽만이 보일 뿐이다. 중간에 5분 정차하는 아이스메어Eismeer(3,160m)역에서 창밖으로 아이거 북벽 풍경을 볼 수 있다.
드디어 ‘톱 오브 유럽’이라 불리는 융프라우요흐역(3,454m)에 기차가 멈췄다. ‘환영합니다’란 뜻의 ‘Willkommen(독일어)’ ‘Welcome(영어)’ ‘Bienvenue(프랑스어) ’Bienvenido(스페인어)’ 등의 인사말이 적힌 입간판에 ‘환영합니다’란 한글이 당당히 적혀 있어 잠시 ‘국뽕’에 취해 본다.
융프라우 지역의 멋진 경관이 360도 파노라마 영상으로 펼쳐지는 상영관.
융프라우 철도의 아버지’ 아돌프의 흉상을 지나 역 내부로 들어간다.

가장 먼저 만난 매점엔 스위스 초콜릿과 기념품들 사이에서 우리나라의 빨간 ‘신라면’이 당당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동신항운의 VIP 패스를 구입하면 무료로 먹을 수 있는 이 ‘신라면’은 SNS 입소문을 타고 어느 순간부터 융프라우의 명물로 자리 잡았다. 해발 3,400여 m에서 융프라우와 아이거, 묀히를 바라보며 먹는 라면의 맛을 어찌 글로 표현할 수 있으리.

‘톱 오브 유럽’의 내부는 ‘Tour’라고 적인 글씨와 화살표만 따라가면 된다. 융프라우 지역의 멋진 경관이 360도 파노라마 영상으로 상영되는 공간을 지나 엘리베이터를 타면 ‘스핑크스 전망대Sphinx observation terrace’로 올라선다. 융프라우요흐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설 수 있는 곳이다. 해발 3,500m에 가깝게 올라왔지만 고소증세는 없다. 혹시라도 고소증세가 느껴진다면 전망대 1층의 의무실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융프라우요흐 스핑크스 전망대. 뒤쪽으로 융프라우봉이 보인다.
알레치빙하 속 얼음궁전
날씨가 문제다. 사방이 온통 ‘곰탕’이다. 바로 눈앞에 융프라우 트리오가 있는데, 여기까지 와서 보지 못하다니…. 사진으로 봤던 그 웅장한 풍광을 머릿속에 그리며 시선의 방향을 옮겨보지만 속상한 마음은 어쩔 수 없다.
“사진 찍어서 한국에 있는 친구에게 보냈더니 ‘무주리조트’ 간 거 아니냐고 하네요.”
일행 중 한 명이 슬픈 사연을 전한다. 지리산이나 설악산 일출처럼 융프라우의 풍경도 최소 3대 정도는 덕을 쌓아야 제대로 볼 수 있나보다. 융프라우요흐의 까마귀들이 슬픈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이 멀리까지 날아와서 무슨 고생이냐’는 뜻인 것 같은데, 속내를 들키고 싶지 않아 “아닌데, 나 지금 정말 행복한데?”라고 중얼거리고 말았다.
원래 일정상 융프라우요흐역에서 묀히요흐산장까지 왕복하는 트레킹이 예정되어 있었다. 알레치빙하를 가로지르는 완만한 눈길을 따라 걷는 왕복 3.4km 거리의 설원 트레킹이다. 하지만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눈보라 속에서 빙하 위를 걸을 수는 없었다.
융프라우 지역의 역사와 스토리를 담은 대형 스노볼.
마침 산장을 다녀온 두 명의 외국인 트레커가 눈이 가득 쌓인 고어텍스 재킷을 벗으며 “What a lovely weather!(날씨 참 좋다!)”라고 외쳤다. “Are you ok?”라고 물어봤을 때 그들은 엄지를 치켜세우며 “No problem!”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순간 흔들리는 그들의 눈동자를 보았다. 덕분에 우리는 미련 없이 트레킹 일정을 취소했다.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융프라우 지역의 역사와 스토리를 담은 대형 스노볼과 아돌프의 개척 정신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동상이 있는 ‘알파인 센세이션’을 지나 ‘얼음궁전’으로 들어섰다.
“물을 인공적으로 얼려서 만든 터널이 아니에요. 이 터널 자체가 알레치빙하랍니다. 빙하 30m 아래를 조각해 만들었어요. 우리는 지금 수천 년 동안 형성된 빙하 안을 걷고 있는 거랍니다.”
빙하를 뚫어 터널을 만든 ‘얼음궁전’.
융프라우 철도 가이드의 말을 듣고 나니 ‘시간의 방’에 들어와 있는 듯한 기분이다. 우리는 지금 타임머신을 타고 지구의 과거 속으로 들어와 있는 것이다. 그 와중에서도 시선은 자꾸만 얼음 벽 사이에 전시해 둔 오크통으로 향한다. ‘Swiss highland single malt whisky-ICE LABEL’이라는 글씨가 눈길을 끈다.
이 위스키는 베른 지역의 ‘루겐 브루어Rugenbräu AG’에서 생산하는 위스키인데, 알레치빙하 내부인 이 얼음궁전에 두고 숙성시키는 것이 자랑이다. 항상 -4℃를 유지하는 기온과 낮은 기압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면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서 스위스 위스키가 숙성되고 있다.
알레치빙하 아래 ‘얼음궁전’에선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서 숙성되는 위스키가 있다.
착한 사람에겐 다 보여요
얼음궁전을 빠져나와 그 유명한 고원지대 스위스 국기 앞에 섰다. 여전히 시야는 ‘곰탕’이지만 알프스의 만년설 위에서 알레치빙하와 융프라우 트리오를 곁에 두고 서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벅차다.
“이 멋진 풍경이 안 보이세요? 마음이 착한 사람한텐 다 보이는데.”
일행 중 한 명이 농담을 던졌다. 그러자 모두들 “저기 융프라우 정상 보이는데요?” “어, 저거 아이거 노스페이스!”라고 앞다퉈 외쳤다.
아쉬운 건 아쉬운 대로 또 의미가 있을 것이다. 지금 중요한 건 우리가 ‘유럽의 지붕’에서 즐겁게 ‘점프 인증샷’을 찍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계속>-
‘고원지대’ 위로 솟은 산이 묀히봉이다.

스위스 여행 정보

2022년 4월 17일 현재 스위스는 외국인 입국 시 PCR 음성확인서나 백신접종증명서 등의 서류를 제출할 필요가 없다. 기존에 작성해야 했던 ‘스위스 COVID 인증서’나 사전 전자입국 등록도 없어졌다. 따라서 스위스는 코로나 발생 이전처럼 여권만 있으면 들어갈 수 있다. 다만 일부 항공사에서 탑승 시 PCR 음성증명서를 요구할 수 있으니 출발 전 확인해야 한다.

스위스 현지에서는 4월 1일부터 대중교통 이용 시 마스크 의무 착용 사항도 해제되어 실내외 모두 마스크를 쓰지 않고 자유롭게 다닐 수 있다.

스위스에서 한국으로 되돌아올 때는 48시간 이내 테스트한 PCR 음성결과지가 필요하다. 만약 이 검사에서 양성이 나오면 현지에 머물며 음성이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귀국해야 한다. 스위스 현지에서는 자가 격리를 하지 않아도 된다.

취리히 공항에는 PCR 검사를 받을 수 있는 곳이 6곳 있으며 검사비는 검사하는 회사와 검사결과가 나오는 시간(30분~24시간)에 따라 CHF 380(약 49만5,000원)~CHF 115(약 15만 원)까지 다양하다. 그린델발트 터미널 내에도 PCR 검사소가 있다. 검사비는 CHF 160. 융프라우요흐역 구간권 구입 승객과 VIP패스 구입 승객에겐 CHF 10(약 1만3,000원)을 할인해 준다.

이렇게 음성결과지를 들고 한국에 들어왔다면 자가 격리할 필요 없이 입국 당일이나 다음날 PCR 검사를 받고 입국일 6~7일차에 신속항원검사만 받으면 된다(오는 6월부터는 입국 1일차 PCR 검사 1회만 시행).

본 기사는 월간산 2022년 5월호에 수록된 기사입니다.

- Copyright ⓒ 조선일보 & Chosun.com -

Copyright © 월간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