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찬의 디자IN텔러]나이키 광고 '모두의 운동장'

김영찬 기자 2022. 5. 12. 08:0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철창을 배경으로 체육복을 입은 아이들이 서 있다. 어두운 표정의 아이들을 카메라가 훑고 지나가자 '민경장군'으로 불리는 개그맨 김민경이 아이들에게 질문한다.
"가운데서 뛰거나 구석에서 지켜보거나. 네 자리는 어디야? 정해진 게 있다고 생각해?"
김민경이 호루라기를 불자 아이들은 화려하게 꾸며진 '모두의 운동장'으로 달려 나와 신나게 농구를 하고 축구를 한다. 계주를 하고 야구를 한다. 아이들이 뛰어노는 장면 사이사이에 김민경이 다시 질문한다.
"아직 모르잖아. 네가 얼마나 과감한지. 얼마나 섬세한지. 얼마나 끈질긴지. 가능성은 이미 네 안에 있어. 서로의 눈을 통해서 발견해 주는 거야. 완벽할 필요 없어. 과정일 뿐이니까. 준비됐지?"
질문이 끝나면 '끊임없이 서로의 가능성을 믿다' 'Nike.com에서 너의 운동장을 바꿔봐'란 카피와 함께 광고가 마무리된다.
광고가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운동장 구석으로 밀려난 아이들에게 중앙으로 나와 네가 하고 싶은 운동을 스스로 선택하고 마음껏 뛰어놀라는 것. 나이키가 너를 도와주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이키가 보여준 '모두의 운동장'은 실현 불가능한 이상이다. 아이들이 구석으로 밀려나는 이유는 따로 있기 때문이다.

나이키 광고 '모두의 운동장' /사진=유튜브 '모두의 운동장' 캡처



모두를 위한 운동장은 어디에 있나


하루종일 교실에 앉아 공부만 하는 학생들에게 탁 트인 운동장은 좁은 실내를 벗어나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공간이자 자유롭게 뛰어놀며 창의력과 자신감을 키울 수 있는 공간이다. 하지만 그 넓은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학생은 몇 명 안된다. 몇몇 학생이 축구공을 차며 운동장으로 나오는 순간 축구를 하지 않는 학생은 자연스럽게 운동장 밖으로 밀려난다. 저 넓은 공간이 한 팀당 11명, 양 팀 총 22명밖에 안 되는 학생의 축구장으로 변하면 축구를 하고 싶은 다른 학생마저 22명에 포함되지 않는 이상 운동장 밖으로 나가야 한다. 모두를 위한 열린 공간이 어느새 한 집단만의 패쇄된 공간으로 전락해 버리는 것이다.
운동장 양 끝에 축구 골대가 박혀 있는 한 그 누구도 축구를 막을 수 없다. 축구를 하지 않는 학생들은 운동장 가장자리에서 책을 읽고 수다를 떨고 어슬렁거릴 수 있지만 운동장 한가운데로 나갈 수는 없다. 사정이 좋은 학교는 축구장을 빙 둘러 육상트랙을 깔고 농구대를 설치하거나 따로 야구장 혹은 양궁장을 만들기도 하지만 오십보백보다. 달리기를 하는 몇 명과 농구를 하는 몇 명을 추가한들 전교생 중 운동장을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는 학생 수는 몇 안된다.
운동장은 우리 모두를 위해 만들어지지만 막상 모두를 위한 운동장은 그 어디에도 없다. 문제는 이러한 구조가 운동장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소수를 위해 다수가 희생하는 구조, 특수한 몇몇을 선발해 이들에게 모든 것을 몰아주는 구조,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만드는 구조는 운동장을 넘어 학교와 사회로까지 넓게 퍼져있다.
물론 학교 운동장의 기능적 구성을 마냥 탓할 수만은 없다. 대부분 50~60년대 개발도상국 시절 지어진 학교 운동장은 국민건강 증진과 체육진흥을 위해 기획됐고 그 설계 사상 또한 저비용 고효율에 맞춰졌다. 모래 먼지 날리는 운동장에 세워진 축구 골대는 아무것도 없는 우리에게 서양식 체육을 전파하는 계몽의 상징이자 국민건강 증진과 체육진흥이란 위대한 목표를 값싸게 성취할 수 있는 가성비 최고의 시설이었다.
문제는 선진국에 들어선 지금도 당시의 사고방식과 시설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 이를 대체할 방안을 고민해 본 적 없다는 점에 있다. 저 넓은 공간에 축구장 대신 농구장이나 야구장을 만들자, 아니면 모든 운동기구를 다 집어넣자는 식의 사고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지금 현재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운동장이란 공간이 아니라 운동장에서 뛰어놀 시간이다. 운동장에서 뛰어놀며 각자 자신만의 스타일, 자신만의 고유함과 특별함을 찾을 수 있는 시간, 서로의 상대성과 다양성을 이해할 수 있는 여유가 주어져야 한다. 누군가 답을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각자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고 부딪치며 서로 함께 모두를 위한 답을 만들어가야 한다. 모두 함께 각자 자신의 답을 찾아야 하기에 그만큼 생각할 날들을 주어야 한다.
모두의 운동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시간부터 만들어줘야 한다. 쉬는 시간 10분으로는 운동장이나 매점은 고사하고 화장실 갔다 오기도 버겁다. 점심시간 1시간도 도시락 먹는 시간을 빼면 운동장에 나가 뜀박질 한 번 하기도 부족하다.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화려한 운동장이 아니라 운동장에 나가 뛰어놀 수 있는 시간이다. 방과 후 운동장을 어슬렁거렸던, 어릴적 우리가 누렸던 여유를 안겨줘야 한다.
나이키 광고 '모두의 운동장' /사진=유튜브 '모두의 운동장' 캡처


우리는 어떤 운동장을 만들고 있나


나이키가 보여주는 '모두의 운동장'은 화려하다. 다양한 경기장이 다채롭게 결합돼 있다. 그 안에서 활기차게 뛰어노는 학생들의 모습은 발랄하고 희망차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 좁은 공간을 뛰어다니면 어떻게 될까. 서로 부딪치고 넘어지며 시비가 붙을 뿐이다. 운동장 언저리로 밀려난 아이들에게 좁아터진 운동장을 선사하고 그곳에서 네 꿈을 펼치라는 말은 언어도단이다.
나이키의 메시지를 폄하하는 게 아니다. 자신만의 고유함과 특별함을 찾자는 주장, 상대성과 다양성을 인정하자는 주장은 우리 모두가 추구하는 이상이다. 또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과 개인의 이익추구는 당연하다. 이익추구와 함께 이 사회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공동선을 고민하는 것은 오히려 칭찬받을 일이다. 하지만 비현실적 환상으로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앞에선 이룰 수 없는 '모두의 운동장'을 보여주며 뒤로는 운동에 필요한 운동화·운동복·안전장구 등을 파는 데만 열중한다면 몇 년 전 유행했던 100만원짜리 노스페이스 파카와 다를 것이 무엇인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유롭게 소비하라는 말은 너의 모든 것을 다 바쳐 니가 살 수 있는 가장 비싼 상품을 소비하라는 말과 같다. 물론 나이키만 비판할 수는 없다. 나이키의 주장에 반박조차 못할 현실을 만들어낸 것은 우리다. 나이키의 지적에 동의하면서도 나이키의 셈법에 입맛이 쓴 이유다.
[머니S 주요뉴스]
이다혜 치어리더 차량에 떼로 '우르르'… "팬 아닌 스토커"
'3시간 골든타임' 놓친 강수연…뇌출혈 의심 증상은?
"말라도 너무 말랐어"… GD 팬들 걱정 '한가득'
'강타♥' 정유미, 레깅스 입고 한라산 등반 인증
기안84 "팬티만 입고 수영이 목표" 발언에… 전현무 "난 끈팬티"
"더러운 게이XX"… 홀랜드, 이태원서 폭행당해
[★화보] 효민, 에너지 넘치는 싱그러운 여름 필드룩
"이미 결혼 했는데"… 배슬기, 전남친에게 꽃 선물을?
22세 조나단, 43세 연상 노사연에… "누나 같은 분이 이상형"
'샤넬 앰버서더' 지드래곤, 진주 목걸이 하고 카리스마 발산

김영찬 기자 chani201711@mt.co.kr
<저작권자 ⓒ '성공을 꿈꾸는 사람들의 경제 뉴스' 머니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머니S & moneys.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