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컨테이너와 깡통

반명숙 ㈜자연지애 대표이사 2022. 5. 11.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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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여파 세계 해운대란..고운임·컨테이너 부족 직면
수출업자 피해 갈수록 심화..물류안정 위해 머리 맞대야

언젠가부터 ‘국제무역’이란 말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모습은 컨테이너를 선박에서 하역하는 것이 될 정도로 무역과 컨테이너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부산항 주변에 컨테이너 박스를 실은 화물차가 분주히 움직이고, 국제운송용으로 사용되다 은퇴(?)한 뒤 농가주택이나 공사현장 사무소로 개조돼 여생(?)을 이어가는 컨테이너도 많이 볼 수 있다. 우리 주변에서 이렇게 흔히 보이는 컨테이너는 사실상 만들어진 지가 70년이 되지 않은 국제물류의 신상품이라고 할 수 있다.

컨테이너를 처음 창안한 사람은 말콤 맥린(Malcom McLean·1913~2001)이란 미국의 사업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35년 중고 트럭을 사서 트럭회사를 차리고 화물운송사업을 했다. 그는 ‘트럭에 실은 화물을 선박에 그대로 옮겨 싣는 방법이 없을까’ 궁리했다. 앞서 1926년 영국 런던에서 프랑스 파리로 운송할 때 물건을 상자에 넣어 육상과 해상을 이어 나가는 방법이 개발됐다. 맥린은 이 방법을 진화시켜 체계화하고 규격화하는 방법을 연구했다.

1952년 그는 자신의 트럭회사에 규격화한 화물 용기를 만들어 노스캐롤라이나에서 뉴욕으로 운송하는 화물선에 실었다. 처음엔 효율성이 낮았다. 트럭에 맞춘 컨테이너가 화물선에 맞지 않았기 때문에 선박에 빈 공간이 많이 생겼다. 게다가 처음 만든 컨테이너는 차대에 올려놓지 않았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는 트럭을 개조했지만, 문제는 선박이었다. 그는 은행에서 2200만 달러를 융자해 선박회사를 차리고 유조선을 개조해 컨테이너를 적재하기 좋은 선박을 만들었다. 이 선박은 1956년 4월 26일 35피트 길이의 컨테이너 58대를 싣고 뉴저지에서 휴스턴까지 첫 운항에 성공한다.

컨테이너는 ‘화물을 담은 용기’에 불과하지만 이 강철 박스는 세계 화물 운송량을 5배나 증가시켰으며, 해상운송비를 60%나 감소시켰다. 또 화물이 항구에 체류하는 시간을 4분의 1로 줄였다. 저렴한 운송요금을 앞세운 선박이 세계 물류를 지배하게 된 것은 컨테이너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미래학자인 피터 드러커는 ‘컨테이너는 세계 경제사를 바꾼 대혁신적인 발명품’으로 극찬했다. 2007년 ‘포브스’지는 맥린을 세계 경제사를 움직인 인물로 평가했다.

그런데 1960년대 중반까지 전 세계 운송량의 10%를 넘지 않았던 컨테이너는 1967년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 정부가 막대한 전쟁물자를 컨테이너로 운송하면서 보편화되기 시작했다. 1970년대부터 대부분의 화물이 컨테이너 운송시스템으로 바뀌었고, 지금은 석유류 곡물 석탄 등의 자원을 제외하고 대부분 물동량이 컨테이너로 운송된다.

우리나라는 한때 컨테이너 강국이었다. 1990년대 이전만 하더라도 현대정공 진도 흥명공업 광명공업 대성산업 동국중기 효성금속 신우산업기기 등 여러 컨테이너 제작업체가 있었다.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명예회장의 독자적인 첫 사업도 컨테이너였다. 현재도 마찬가지이지만 컨테이너 제작은 기계화하기 힘들고 용접작업 등 상당히 많은 인력이 요구돼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높아진 우리나라의 인건비로 인해 흥명공업 대성산업 등이 폐업했고 2000년도에 현대정공 울산공장에서 마지막 컨테이너를 생산한 뒤 국내생산은 막을 내렸다. 이후 현대정공은 현대모비스로 상호를 변경해 자동차부품업체로 주력 생산 품목을 바꾸었다. 한국에선 더 이상 수출용 컨테이너를 생산하지 않는다. 군소 제작업체들이 생산하는 컨테이너는 99% 이상 하우스용이다. 이제 거의 모든 국제무역용 컨테이너는 중국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코로나19 여파와 북미항로를 중심으로 한 해운대란으로 인해 미국행 선복부족이 극심해져 해상운임이 5배 이상 올랐다. 설상가상으로 미국 LA항의 심각한 체선·체화로 인해 컨테이너 부족현상도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아 우리 수출업자들은 선복부족·고운임·컨테이너 부족이란 3중고를 겪고 있다. 보통 새로 만들어진 20피트 컨테이너의 가격이 2500달러 내외였는데, 요즘 중고 컨테이너 가격이 6000달러를 넘나드는 상황이다. 무역 물류업계에서 그동안 컨테이너를 ‘깡통’이라 부르며 푸대접했지만 ‘깡통’이 ‘금통’ 대접을 받는 게 현재의 상황이다. 정부는 물류바우처 사업과 HMM, SM상선 등과의 협업을 통해 중소 수출업체에 미국행 선복 일부를 제공하고 있지만 컨테이너 부족현상에 대해선 뾰족한 대책이 없는 상황이다. 수출 오더를 받아 놓고도 물류비 때문에 보내지 못하는 마음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또 하나의 아픔이다. 부디 정부와 지자체 및 무역 유관기관이 머리를 맞대어 ‘금통’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 이런 상황이 재발되지 않도록 중장기적인 정책대안을 마련해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나라의 안정된 물류 기반이 마련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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