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동물원] 식인상어 시대 저물고 식인악어 세상 오나

정지섭 기자 2022. 5. 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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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대학교 "바다악어, 지난 60년간 돼지 등 짐승고기에 맛들여"
현존 최대 파충류, 2차 대전때 일본군 살육 악명
지금도 인명희생 소식 잇따라

‘코로나와 더불어 살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한동안 보지 못했던 풍경이 하나둘 우리 일상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사람들로 가득찬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것도 그 중 하나죠. 올 여름 극장가를 달굴 블록버스터 대작들이 벌써부터 치열한 홍보전을 펼치고 있는데요. 제가 손꼽아 기다리는 영화는 다음달 개봉 예정인 ‘쥬라기 월드-도미니언’입니다. 1993년 전세계에 공룡 열풍을 몰고 왔던 쥬라기공원 시리즈의 6번째 작품입니다. 예고편을 보니 1편에 나왔던 등장인물들이 대거 컴백한 것으로 보여 특히 반갑습니다.

지난 2014년 호주 카카두 국립공원에서 몸길이 5.5m의 바다악어가 입에 상어를 물고 뭍으로 올라가는 모습이 포착됐다. 거대한 악어의 덩치와 왜소한 상어의 몸집이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PatrynWorldLatestNew Youtube

30년 세월동안 쭉 이어진 이 시리즈를 관통하는 거대한 서사가 있습니다. 바로 육식공룡의 제왕 티라노사우루스와 인간들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죠. 이 시리즈가 언제 막을 내릴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때까지 한입거리 인간들을 먹어치우려는 폭군 공룡의 광기어린 추적은 지속될 것입니다. 문득 지구상에 티라노사우루스가 다시 나타날 가능성이 ‘제로’라면, 그 악명을 고스란히 물려받을 실존 동물은 무엇이 있을까 질문을 던져봅니다. 몸길이는 최장 7m에 달하고 몸무게는 1t에 이르는 지상 최대의 파충류 ‘바다악어’만한게 또 있을까요? 때마침 바다악어와 관련해서 섬뜩한 외신이 들려왔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악어이자 파충류인 바다악어. 다자란 수컷은 몸길이가 무려 7m에 이른다. 악어 중 가장 성질이 포악한 크로커다일 무리다. /호주 퍼스동물원(Perth Zoo) 홈페이지

호주 찰스다윈대에서 지난 60년동안 노던테리토리주에 서식하는 바다악어의 식습관을 연구했더니, 눈에 띌만한 변화를 보였다는 것입니다. 박물관 전시표본 등을 토대로 1960년대 잡혔던 바다악어들의 주식을 분석해보니 물고기와 조개, 갑각류 등 수산물 위주였던데 비해 최근 이들의 식단을 보면 산돼지, 왈라비(캥거루의 일종) 등 젖먹이짐승이 주류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죠. 물속을 휘휘 저으며 수중 사냥에 집중하던 놈이 이제는 뭍으로 나와 직접 젖먹이짐승들을 사냥하는 쪽으로 식습관 패턴이 바뀌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필리핀에서 생포된 바다악어. 옆의 사람과 몸집차이가 확연하다. 몸길이는 5.18미터에 달했다. /필리핀 해양연구 정보센터(Marine Research Information Center) 홈페이지

그 사이 가죽과 고기 등을 노리며 인간에게 남획돼 채 3000마리 밖에 남지 않았던 이 지역의 바다악어는 50년간 지속된 강력한 포획억제정책에 힘입어 반세기만에 10만마리 선으로 숫자를 확 불렸습니다. 숫자가 늘어나고 먹이경쟁이 치열해지다보니 특이한 식습관도 눈에 띄게 두드러졌다고 연구진은 전합니다. 바로 동족포식이죠. 인간의 윤리와 도덕을 기대할 수 없는 곳이 짐승 세상입니다. 가장 냉정하고 엽기적 방식의 ‘인수 합병’이라고 할 수 있는 동족 포식은 개체 수를 조절해주고 더욱 강한 유전자가 살아남아 종 자체의 생존력을 높여주는 역할도 해줍니다.

바닷물과 민물을 오가며 살 수 있는 바다악어. 입을 다물었을 때 이빨이 삐져나오는 것은 크로커다일 무리 특유의 외모다. /호주 노던 테리토리주 정부(Northern Territory Government) 홈페이지

연구진은 특히 바다악어가 생태계 파괴 주범으로 골치거리가 된 떠돌이 돼지의 숫자를 적정선 아래로 통제해주는 ‘조정자’역할도 할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입니다. 악어가 과연 사람에 좋은 일을 순순히 하는데만 만족할까요? 이 시점에서 바다악어라는 짐승이 대체 어떤 족속인지 알 필요가 있습니다. 세계 최대의 악어입니다. 세계 최대의 악어라는 것은 곧 지상 최대의 파충류임을 뜻합니다. 야생에 적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죠. 바다악어가 무서운 까닭은 집채만한 몸집 때문만은 아닙니다. 우선 이 악어에게 왜 ‘바다’라는 타이틀이 붙었는지부터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영어이름은 ‘Saltwater Crocodile’, 즉 짠물악어라는 뜻이지요. 바다거북이나 바다뱀처럼 바다를 온전한 터전으로 삼으며 살아가는게 아니라, 강과 늪, 강어귀 뿐 아니라, 소금기 가득한 바다에서도 거뜬하게 살아남는 족속이라는데서 붙은 이름입니다. 악어 중 가장 사납고 거친 크로커다일족(族) 특유의 무적함대 같은 신체에 물 흐르는 곳이면 어디에서든 적응하고 살아가는 경이로운 생존력까지 갖췄습니다. 그래서 바다속의 무법자 상어까지 거뜬히 한입 끼니거리로 해치우기도 합니다. 보통 악어는 자신보다 덩치가 큰 먹잇감을 취할 때 강력한 턱힘으로 문 뒤 몸을 뱅그르르 돌려 찢어발기는 일명 죽음의 회전(death roll)을 즐겨 구사합니다. 하지만, 이미 집채만한 몸뚱아리를 가진 이 놈은 자기보다 덩치가 큰 먹잇감이 있을 리가 없으니 굳이 죽음의 회전을 쓰지 않고도 보이는대로 입속으로 밀어넣고 부숴버린 뒤 조각내 삼키는 식사법으로 생태계 최강자임을 과시해왔습니다.

이런 바다악어가 슬슬 육지에 사는 돼지 등에 맛을 들이기 시작했다는 것은 뭍에 사는 포유동물에게는 우울하고 소름끼치는 적신호입니다. 약자들의 명줄을 쥔 새로운 괴물의 등장이거든요. 그 약자에는 당연히, 너무나 뚜렷하고 재론의 여지 없이 인간도 포함됩니다. 이미 바다악어는 이와 관련해 제2차 세계대전사에 등장한 바 있어요.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5년 2월 주요 전선 중 한 곳인 미얀마에서 영국군과 일본군이 요충지인 람리섬에서 맞붙습니다. 일본군은 정예군 특수부대 1200여명이 투입됩니다. 그렇지만, 이곳이 한번 발이 빠지면 빠져나가는게 사실상 불가능한 맹그로브 늪지대라는 걸 일본군은 모르고 있었습니다.

2차 대전을 전후한 시점에 촬영된 것으로 보이는 바다악어 포획 흑백사진. 바다악어의 흉포한 포식습성은 2차 대전 격전지 전투의 결과까지 좌우했다. /relicsww2 홈페이지

진흙뻘 속에 빠져서 허우적대는 병사들을 항해 괴물 악어들이 돌진했습니다. 이날 많게는 1000여명, 적게는 400여명의 일본군 병사가 자신들이 애당초 생각하지 못한 끔찍한 방법으로 목숨을 잃습니다. 요충지 격전이 ‘짐승’이라는 외부 변수에 의해 승패가 좌우되는 현대 전쟁사에서 매우 드문 상황이 됐습니다. 바다악어의 식인습성은 불행히도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바다악어의 서식지는 호주부터 인도네시아를 거쳐 동남아까지 걸쳐 있습니다. 같은 크로커다일족으로 바다악어 다음으로 덩치가 크며 포악한 사냥꾼인 나일악어가 주로 사바나를 흐르는 강을 따라 서식하면서 야생동물을 사냥하죠. 이와 다르게 바다악어의 경우 사람들의 서식지와 겹치는 곳이 적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바다악어가 연루된, 상황과 장면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몸서리쳐지는 끔찍한 인명 희생 사고가 잊을만하면 들려옵니다.

입을 꽉 다문 바다악어. 몸길이가 최장 7m에 달하는 현존 최대 파충류로 야생에서는 사람까지도 서슴치 않고 공격하는 식인동물로도 악명을 떨치고 있다. /호주 퍼스동물원(Perth Zoo) 홈페이지

쥬라기 공원 시리즈의 원전인 마이클 크라이튼의 소설에서 주인공인 공룡학자 앨런 그랜트는 자신들의 일행을 먹어치우기 위해 끊임없이 뒤쫓고 있는 티라노사우루스가 코와 입을 물에 내놓고 유유히 헤엄치는 장면을 보고, 저건 거대한 한 마리의 악어라고 되뇌는 장면이 나옵니다. 늪과 강, 바다를 오가며 숫자를 불리고 뭍의 짐승에 맛을 들이기 시작한 바다악어, 이 괴물 파충류는 과연 티라노사우루스의 후예로 본격적인 악명을 떨칠까요? 답은 시간이 줄 것 같습니다. 분명한 것은 인간도 진화하고 짐승도 진화한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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