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제재 '무시'하는 병원 홍보 프로그램, 심의를 물로 보나

윤유경 기자 2022. 5. 8.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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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2022년 3월까지 의결 내역 전부 홍보성 의료 프로그램 관련 사안
"과징금, 관계자 징계와 같은 직접적 제재 필요해"

[미디어오늘 윤유경 기자]

출연 의사가 속한 병원으로 간접 연결되는 전화번호를 자막으로 고지하는 홍보성 의료정보 프로그램이 횡행하며 소비자들의 피해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흔히 케이블 채널이라 불리는 전문편성채널은 방심위의 '주의' '경고' 등 법정제재의 실질적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에 수위 높은 실효적 제재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최근 10년 제42조(의료행위) 위반 안건 총 193건

정필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제출받은 제42조(의료행위) 관련 방송심의 의결 내역을 분석한 결과, 최근 10년(2013년부터 2022년 3월까지) 제42조(의료행위)를 위반한 안건은 총 193건이다. 2017년 6개, 2018년 12개, 2019년 16개, 2020년 17개로 위반 안건 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다.

의결 안건으로 올라온 총 75개 방송사를 분석해본 결과, MBN(14건), TV조선(12건), 채널A(8건), ETN, 리빙TV, Billiards TV, GTV, 가요티비(각각 5건) 순으로 많았다. 이외에도 MBC-TV, KBS-2TV, SBS CNBC, 토마토티브이, 채널J, 이데일리TV, 한국경제TV, 메디컬TV, 동아TV, 스마일TV 플러스 등 홍보성 방송 송출을 일삼는 채널은 지상파, 종편, 전문편성채널 등을 아우르며 다양했다.

가장 많은 위반 조항은 제42조(의료행위 등)제1항제2호로 총 78건이었다. 해당 조항은 “의료행위·약품, 식품·건강기능식품과 관련한 사항을 다룰 때에 효과를 과장하거나 보증하는 내용을 방송해서는 안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약품에 함유된 일부 성분이 특정 질병에 대한 억제 효과가 있다는 등 효능을 과신하게 하는 단정적인 표현을 사용하는 경우다.

다음으로는 “방송 중 실시간 의학상담의 경우를 제외하고 시청자를 출연 의료인과 직·간접적으로 연결시켜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는 제42조(의료행위 등)제3항제3호(53건), “사업자가 방송에 출연하는 의료인을 선정할 때는 자격과 전문성 등에 대한 객관적 검증을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는 제42조(의료행위 등)제4항(46건) 순이었다.

심의 결과로는 법정제재에 해당하는 '주의'가 60건으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는 '경고'(56건), '권고'(44건), '해당 방송프로그램의 관계자에 대한 징계'(24건), '의견제시'(8건), '과징금'(1건) 순이었다.

특정 병원 연결되는 전화번호 고지…홍보 프로 지속

특히 2021년부터 2022년 3월까지 의결된 13건은 전부 제42조(의료행위 등)제3항제3호 위반 사안이었다. 의료정보 프로그램 화면에 출연 의사가 속한 병원으로 간접 연결되는 전화번호를 자막으로 고지하는 식이다.

지난달 25일 열린 방심위 전체회의에서도 화면 좌측 상단에 '프로그램 문의'라며 출연의 소속 병원으로 간접 연결되는 전화번호를 수시로 고지한 전문편성채널 AXN에 경고가 의결됐다.

▲ AXN 투데이건강리포트 방송 화면 갈무리.

AXN '투데이 건강 리포트' 해당 방송분(2021.12.19)은 화면 하단에 '본 프로그램은 의료에 대한 기본정보를 제공하고 있는 녹화방송으로 실시간 상담이 어렵습니다'라는 문구를 자막으로 2회 고지했다. 방송 중 고지된 전화번호는 본방송 시간 이외에도 연결이 가능했으며, 연결시 응대자가 병원명을 알려주며 시청자의 전화번호를 접수받고, 해당 병원에서 시청자에게 연락이 가도록 안내했다.

심의가 반복되지만 방심위의 실효적 제재가 없어 홍보성 의료프로그램을 방송하는 방송사들, 특히 전문편성채널이 영향을 받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2013년~2022년 제42조 제3항제3호를 위반한 방송사는 토마토티브이, 채널J, SBS CNBC, GTV, 메디컬 TV 등 전문편성채널이 대부분이었다.

문제는 '경고' 수준의 법정제재로는 이들 채널은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흔히 케이블 채널이라 불리는 일반PP는 방송통신위원회의 '허가·승인'을 받는 지상파·종합편성·보도채널 등과 달리 '등록' 사업자다. 방송평가 감점요인인 '주의' '경고' 등의 법정제재 효력이 없다. '과징금'이나 '관계자 징계' 등 직접 제재 정도만 영향을 받는다.

이로 인해 제재를 받고도 같은 전문편성채널에서 다수의 홍보성 의료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내보내는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가요TV' 채널의 경우 2017년 '해피라이프'(2017.2.18.)와 '행복 만들기'(2017.2.24)에서 특정 병원으로 연결되는 전화번호를 자막으로 고지해 경고 조치가 내려졌지만, 2019년에도 '행복한 TV'(2019.4.15)에서 같은 사유로 '주의' 조치를 받았다. 2021년에도 '충전 활력소'(2021.1.28)에서 수시로 화면 하단에 출연의가 소속된 병원으로 연결되는 전화번호를 자막고지해 주의 조치가 내려졌다.

'텔레노벨라' 채널의 경우에도, 2016년 '웃으면서 살아요'(2016.7.24)에서 진행자가 ”아래쪽에 나가는 전화번호로 전화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언급하면서, 자막으로 화면 하단에 특정 병원으로 연결되는 전화번호를 고지해 '경고' 의결이 내려졌다. 해당 프로그램은 2019년(2019.4.15)에도 같은 사유로 '주의' 의결이, 2021년 '알면 좋은 치료 백과'(2021.2.23)에서도 '주의' 의결이 결정됐다.

“과징금, 관계자 징계와 같은 직접적 제재가 필요”

5기 방송통신심의위원들은 반복되는 문제에 고충을 토로하고 있다. 김우석 위원은 “사실상 (홍보성 의료프로램 문제는) 지난 기수 때부터 계속적으로 누적되어왔다”며 “더이상 방심위의 실효적 제재없는 주의 정도의 의결로는 개선이 되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당장 방심위의 제재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정민영 위원은 “법에서 의료광고를 엄격히 제한하고 있어 여러 가지 우회로를 찾아서 병원을 광고하는 일들이 생기고 있는데, 가장 전형적인 사례가 건강정보 프로그램”이라며 “직접 확인한 내용을 보면, 방송사는 출연하는 의사에게 돈을 받고 그 시간대를 파는거나 다름없고, 연락 오는 사람들을 병원으로 인결시켜주는 게 공공연한 관행으로 자리잡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일정 기간 정도는 조금씩 법정 제재 수위를 높이다가, 계속 문제가 반복되면 과징금, 관계자 징계와 같은 직접적 제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연우 세명대학교 광고홍보학과 교수는 “시청자들은 의사들이 방송 프로그램에 나오면 의료적 지식을 바탕으로 말하는 거라고 생각해 훨씬 더 신뢰를 하게 된다”며 “홍보성 의료 프로그램은 말그대로 소비자 기만에 해당하며 소비자들을 잘못된 판단으로 이끌 수 있다”고 지적했다. “프로그램에서 일반 식품도 아니고 건강 관련 제품을 협찬하는 등 광고를 지속하면, 잘못하면 큰 건강 후유증이 남는 등 위험한 소비자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도 우려했다.

정 교수는 “위반이 상습적으로 이뤄지면 당연히 가중처벌을 해야 한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도 제재 수위를 높이고 그걸 반영해서 방송통신위원회에서도 이에 따른 행정 조치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필모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42조 위반 사례가 근절되지 않고 있는 이유는 효과 있는 제재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라며 “특히 케이블 채널의 일반 PP(방송채널사용사업자)는 과기정통부 장관에게 '등록'만 하면 되는 사업자이기 때문에 '주의', '경고' 등의 법정제재는 효력이 없다. '과징금 부과'나 '관계자 징계' 등 실효성 있는 직접 제재가 이루어지도록 관련 규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대한의사협회 박수현 대변인은 “의사들이 개인의 이득을 위해 마케팅 목적으로 방송에 출연해 바르지 않은 건강정보를 제공하는건 윤리적으로 맞지 않으며, 직업 윤리상으로도 철저하게 지켜져야 하는 부분”이라며 “너무 과도할 경우 가이드라인에 따라 윤리 위원회 징계를 하게 되는데, 결국 의사 스스로 자정하는 노력과 이에 대한 교육도 꾸준히 지속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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