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측 불가능한 결과'는 푸틴의 전술핵 사용?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2022. 5. 7.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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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볼 때 전쟁 장기화의 가장 주요한 원인은 미국 등 서방국가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속적 무기 공급이다. 그가 모종의 중대한 결심을 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무성하다.
4월 중순 들어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공격용으로 볼 수 있는 무기를 제공했다. ⓒAP Photo

두 달째 접어든 우크라이나 전쟁이 갈수록 확전 양상을 보이는 가운데 미국 국방부와 국무부의 정보 분석가들이 최근 러시아 측으로부터 전달받은 항의 문건의 행간을 분석하느라 신경이 바짝 곤두서 있다. 해당 문건에서 러시아는,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계속 제공한다면, ‘예측 불가능한 결과(unpredictable conse- quences)’에 직면할 것이라고 공식 경고했다.

이 ‘예측 불가능한 결과’란 도대체 어떤 상황을 지칭하는가. 때마침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 총공세를 시작했다. 윌리엄 번스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절망적 상황에 몰리면 전술핵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을 “무척 우려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미국 백악관은 뒤숭숭한 분위기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2월24일 우크라이나에 대한 침공 명령을 내린 직후 “어느 나라든 이 분쟁에 개입한다면 일찍이 역사에서 보지 못했던 엄청난 결과에 직면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사실상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다만 미국을 특정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미국 주재 러시아 대사관 측이 ‘예측 불가능한 결과’라는 경고를 담은 항의 문서를 국무부에 공식 전달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전달한 시점이 4월12일이다. 다음 날(4월13일), 바이든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155㎜ 곡사포, 무장 드론, 장갑차, 탄환 등 8억 달러 규모의 무기를 추가 공급하겠다고 발표한다.

‘우크라이나 정권에 대량의 무기 및 군사 장비를 공급하는 데 대한 러시아의 우려’라는 제목의 항의 문서는 구체적으로 미국이 제공한 ‘고성능 무기’ 가운데 다연장 로켓 발사 시스템을 문제 삼았다. 이 문건은 미국에 “지역 및 국제안보에 예측 불가능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책임한 군사 지원을 즉각 중단하라”라고 촉구했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최근 제공한 무기가 러시아의 동부 총공세에 대비한 방어용 무기라는 점을 강조하며 러시아 측 주장을 반박했다. 미국이 4월 중순까지 우크라이나에 제공한 무기 총액은 32억 달러에 이르며, 향후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그런데도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미군을 파병하지 않는 까닭은 러시아와 직접 충돌할 경우 예상되는 확전 가능성 때문이다. 바이든 대통령도 미국과 러시아 간 무력 충돌이 제3차 세계대전이자 핵전쟁으로 비화할 수 있다며 미군 파병을 반대해왔다.

러시아가 보낸 항의 문서는 ‘예측 불가능한 결과’가 구체적으로 뭘 의미하는지 밝히지 않았다. 주미 러시아 대사관도 기자들의 질문에 논평을 거부했다. 하지만 당초 ‘러시아의 속전속결로 끝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우크라이나 전쟁은 장기화되고 말았다. 푸틴이 볼 때, 전쟁 장기화의 가장 주요한 원인은 미국 등 서방국가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속적 무기 공급이다. 이에 따라 푸틴이 모종의 중대 결심을 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무성하다. 최근 흑해함대 기함인 모스크바호가 우크라이나 군이 발사한 미사일 공격을 받고 침몰한 광경을 똑똑히 목격한 푸틴이 전쟁을 하루빨리 종식하기 위해서도 전술핵을 사용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과거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러시아 담당국장 출신인 앤드루 와이스 카네기국제평화재단 부회장은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푸틴이 서방에 핵무기 사용을 암시한 경고를 상기시키면서 “문제의 문건은 분쟁지역에 더 이상 무기를 보내지 말라는 매우 명백한 경고다”라고 〈워싱턴포스트〉에 말했다. 특히 그는 “만일 러시아가 나토 회원국에서 우크라이나로 무기를 공급하는 수송차량을 공격할 경우 나토 회원국 국경 지역으로 분쟁이 번질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나토 대 러시아’ 확전에 대한 우려

2월11일 우크라이나 군인이 키이우에 도착한 미국산 재블린 대전차 미사일의 포장을 풀고 있다. ⓒAP Photo

미국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최근까지 공격용 무기를 일절 제공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에 제공한 공격용 무기가 자칫 이 전쟁을 ‘나토 대 러시아’로 확대할 수 있다고 우려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4월 중순 들어 바이든 대통령이 공격용 무기로 볼 수 있는 155㎜ 곡사포, 스위치블레이드 드론, Mi-17 헬기까지 우크라이나에 제공하자 러시아는 더 이상 좌시하지 않기로 작정한 듯하다.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 측이 미국 국무부에 항의 문건을 전달한 직후 국방부와 정보기관들은 ‘예측 불가능한 결과’라는 문구를 놓고 내부 토론을 진행했다. 이런 가운데 윌리엄 번스 CIA 국장은 4월15일 조지아 공대에서 연설하면서 “푸틴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승리 비슷한 것을 얻으려는 절박한 마음에 전술핵이나 저강도 핵무기를 사용하려는 유혹을 느낄 수 있다”라고 경고해 주목을 끌었다. 그는 최근까지 러시아 군이 입은 심대한 타격을 감안할 때 푸틴이 궁지에 몰리면 핵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을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가 언급한 전술핵이란, 핵탄두가 장착된 대륙간탄도미사일 등 전략무기와 달리 전쟁터에서 박격포를 통해 발사되거나 지뢰 형태로 폭발시킬 수 있는 무기다. 러시아는 전술핵 2000여 기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B61로 명명된 전술핵을 100기 정도 유럽에 배치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4월13일 우크라이나에 지원하겠다고 발표한 무기들은 미군 수송기로 우크라이나 국경지대에 이송 중이다. 이 무기들은 철로와 육로를 통해 우크라이나 내부의 병사들에게 전달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나토 회원국과 우크라이나 접경지대에 배치된 미군들은 우크라이나 영토 밖에서 우크라이나 병사들에게 155㎜ 곡사포 등 무기 사용법을 훈련시키고 있다. 무기 지원은 물론 사용법 훈련까지 도맡고 나선 것이다.

한편 러시아는 4월 중순 현재 친러시아 분리주의자들의 거점지역인 동부 돈바스 지역을 완전히 점령하기 위해 총공세에 들어갔다. 당초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속전속결로 점령하려다 막대한 피해를 보고 철수한 푸틴이 동부 돈바스에서 또다시 패배가 예상될 경우 미국과 나토의 무기 수송차량이나 보급기지를 공격하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그 경우 러시아가 최근 항의 문서에서 언급한 ‘예측 불가능한 결과’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관측도 나온다.

CIA에서 러시아 분석 책임자를 지낸 조지 비비는 〈워싱턴포스트〉에 “향후 사태의 핵심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영토 내의 무기 수송차량뿐 아니라 우크라이나 이웃 나토 회원국 내의 무기 보급로까지 공격할 것이냐 여부”라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러시아가 총공세에 들어간 동부 지역에서 미국산 무기로 무장한 우크라이나 군에 막혀 전세가 불리해지면 나토 회원국 내의 무기 수송차량과 보급기지에 대한 공격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이 경우 미국이 주도하는 나토가 반격에 나서면 러시아와의 군사 충돌이 불가피하고, 최악의 경우 핵전쟁으로 비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미국의 우려도 만만치 않다. 실제 아나톨리 안타노프 주미 러시아 대사가 최근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와 한 인터뷰에서 “미국을 포함한 서방국들이 우크라이나에 무기와 탄약을 쏟아붓고 있다. 그런 행동은 미국과 러시아 간의 직접적 군사충돌로 이어질 수 있다”라고 경고한 것도 예사롭지 않다.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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