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덕도에 공항 들어서면 ‘숭어’만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부산/신지인 기자 2022. 5. 7.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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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신공항에 밀린 대항마을
마지막 ‘숭어들이’ 어부 만나보니

“개기(고기)야 어서 온나. 다 어데 가 있노.”

숭어 잡는 미끼는 ‘시간’이었다. 부산 가덕도 대항마을 김관일(78) 어로장은 45년을 바쳤다. 그는 산 위에 지어진 망대 위에서 수면 아래 숭어 떼를 관찰한다. 좋은 시력뿐 아니라 고기 흐름을 읽을 줄 아는 것이 어로장의 조건. 숭어가 오기까지 몇 시간, 며칠이 걸릴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는 어떻게 시간을 견디냐는 질문에 “심심치. 근데 우짤끼고. 그냥 속으로만 ‘개기야 살살 온나’ 하지”라고 말했다.

부산의 가장 큰 섬 가덕도에 공항이 들어선다. 지난달 26일 국무회의에서 ‘가덕도 신공항 건설 추진계획’이 의결되고, 사흘 뒤 기획재정부에서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가 결정됐다. 공항이 들어서면 대항마을 주민들은 떠나야 한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공항 인근 산을 깎으려면 수년 동안 대규모 발파 작업을 해야 하는데, 안전이나 정주 여건 면에서 대항마을 주민 이주는 불가피하다”고 했다.

가덕도에서 190년 동안 이어진 친환경 숭어잡이 방식 ‘숭어들이’도 바다가 매립되고 공항이 들어서면 더 이상 지속할 수 없다. 사라질 위기에 처한 부산 가덕도 대항마을의 숭어 잡는 어부들을 지난 2일 <아무튼, 주말>이 만났다.

김관일 어로장이 망대 2층에서 레버를 당겨 바다 그물을 올리고 있다. /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물밑 고기 떼 포착하는 그의 ‘눈’

‘숭어들이’는 바다 위 어부와 망대 위 어로장의 협업으로 이뤄진다. 김관일 어로장은 대항항으로부터 2㎞ 떨어진 산 위의 망대에 상주하며 숭어 떼를 살핀다. 그러다 그물 가까이 검은 고기 떼가 접근하면 재빨리 망대 2층으로 올라간다. 2층에는 그물과 연결된 레버 4개가 있다. 검정 레버 3개는 그물의 각 모서리와 연결돼 있고, 빨간 레버는 그물 올리는 속도를 조절한다. 최대 속도는 280마력이다. 움직임이 빠른 숭어를 잡으려면 민첩하게 그물을 올려야 하지만, 너무 빠를 경우 파도의 저항으로 그물이 찢어질 위험이 있어 섬세한 조절이 필요하다.

그물에 잡힌 채 떠 있는 숭어들은 이제 바다 위 어부들의 몫. 어로장은 대항어촌계 간사에게 전화해 “몸 크다, 1만 마리”라는 말로 출동을 명령한다. 대항항 근처에 있던 어부 12명이 단 5분 안에 그물이 쳐진 곳으로 배를 타고 이동한다. 그리고 가로 100m, 세로 96m 그물 아래로 들어가 중간 매듭을 풀어 고리태, 일명 ‘돈주머니’로 숭어가 흘러 들어가게 한다. 이런 숭어들이 작업은 2월 말부터 5월 말까지 이어진다.

10여 년 전만 해도 레버와 기계가 아닌 사람의 힘으로 그물을 올렸다. 숭어가 소리와 냄새에 민감한 탓에 동력 어선 대신 목선 6척으로 작업했다. 6척의 배가 직접 그물을 당긴다 해서 ‘육소장망(六艘張網)’ 방식이라 불린다. 각 배는 위치와 역할에 따라 ‘밖목선·안목선·밖잔등·안잔등·밖귀잡이·안귀잡이’로 불렸다. 4년째 김 어로장과 함께한 구영명(55) 부어로장은 바다에서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는 어로장의 끼니를 챙긴다. 그는 “인건비 때문에 기계의 힘을 빌리게 됐지만, 어로장님 역할은 더 커졌다. 마을 어부들은 어로장님을 인간문화재, 신(神)으로 모신다”고 했다.

목선에 탄 어부들이 어로장 지시에 따라 그물을 당기는 모습. 과거 대항마을에서는 기계 대신 어선 6척이 직접 그물을 당기는 ‘육소장망’ 방식으로 숭어를 잡았다. /부산 강서구청

◇공항 들어선 자리, ‘개기’ 설 곳 없다

숭어들이 전통은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2029년 완공을 목표로 한 가덕도 신공항이 들어서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 발표에 따르면, 공항 배치는 대항마을을 지나는 ‘육·해상 방식’과 ‘순수 해상 방식’이 경합을 이루다 ‘해상 방식’으로 최종 결정됐다. 국토교통부 가덕도신공항건립추진단 홍철 팀장은 “공항을 해상에 짓더라도 인근 산지를 일정 높이 이하로 깎아야 한다. 그런데 이 산지가 암석으로 이뤄져 발파 작업이 수년간 매일 이뤄져야 하므로 주민들이 살 수 있는 여건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했다.

숭어도 마을을 떠난다. 가덕도 동쪽 해상에 지어지는 공항이 물길을 바꾸면, 서쪽의 대항마을까지 숭어가 올 수 없다. 김영석 대항어촌계장은 “숭어는 대한해협부터 낙동강 하구, 가덕도 새바지항, 대항마을까지 넓게 회유하는 어종인데, 공항 건설로 가덕도 인근을 매립하면 어획량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며 “숭어는 작은 소리에도 민감해 망대에서도 큰 소리를 내지 않는데, 수년간의 매립과 발파 공사를 숭어가 버틴다는 건 기적에 가까운 일”이라고 말했다.

김관일 어로장이 달력에 물때를 표시한 모습. 바닷물 수위에 따라 '다나기, 다들기, 반물나기' 등으로 불린다. /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시멘트 덮이는 70년 고향 바다

네 살 이후 평생 대항마을을 떠난 적도, 고기잡이 일을 그만둔 적도 없는 김관일 어로장. 그는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아버지를 따라 숭어잡이 배를 탔다. 그의 눈썰미를 알아챈 아버지는 7년 뒤 김관일씨에게 바다를 지켜보는 망인(望人)이 되도록 했다. 7년간 산을 타며 ‘연습생’ 기간을 거쳤고, 마흔한 살에 어로장이 됐다. “평생 어부들이랑 땀 흘리고 가음(고함) 치고 살아온 땅인데, 이 마을이 없어지면 내 집, 직장, 인생도 없어지는 거지.”

어부 김효현(43)씨는 김관일 어로장의 조카다. 그의 아버지는 어부들을 태워 숭어 그물로 이끄는 배 선장이다. 그는 “숭어는 여수, 인천 쪽에서도 잡히지만 이곳 남해에서 제일 많이 잡힌다. 어로장님은 고기가 많이 잡힐 때마다 망대 옆 수호신을 모시는 신당에 감사 인사를 드리는데, 올해만 벌써 9번 인사드렸다. 최근 5년 동안 최고로 많이 잡혔다. 그런데 이런 어장이 한순간에 없어지다니 속상하다”고 말했다.

구영명 부어로장은 바다 위에서 죽을 뻔한 고비도, 일터를 뺏기는 충격에는 못 미친다고 한다. 그는 숭어를 잡는 봄철 외 나머지 기간에는 다른 어선을 타고 노래미, 참돔, 물메기를 잡는다. 구씨는 “10년 전 아내와 함께 나선 와중에 풍랑주의보가 내려졌다. 마음이 급하다보니 닻에 줄이 감긴 것도 모른 채 시동을 걸어서 배가 뒤집힐 뻔했다. 나처럼 배만 타던 사람이 이제 육지에서 뭘 하겠나. 사나 죽으나 바다가 낫다”고 했다.

김정하 한국해양대 글로벌해양인문학부 교수는 대항마을이 사라지면 3가지 가치도 함께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숭어를 두고 주민들 간 형성됐던 ‘공동체적 가치’, 숭어가 사는 환경이 곧 인간이 사는 환경이라는 ‘생태적 가치’, 어로장 신위를 모시는 ‘지역 문화적 가치’다. 김 교수는 “어로장과 같은 마을의 어른을 신으로 모시는 경우는 흔치 않다. 마을에서 숭어잡이가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갖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공항이 생기면 이런 문화가 모두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대항마을에선 숭어가 주민들을 먹이고, 가르쳤다. 숭어를 잡는 석달간 어부 수입으로 1년을 나는 집도 있었다. 주민들은 생산·자원 공동체로 단합했고, 공동수익금으로 학교를 짓고 육성회비를 지원했다. 김관일 어로장은 말했다. “70년 고향이 없어질 판인데 당연히 반대지. 근데 200명밖에 안 되는 주민들, 그것도 다 노인들인데. 누가 말을 듣겠노. 평생 기다리고 참고 사는 데 숙달이 된 사람이라, 또 참아야지 생각은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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