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도 불타 소지품 신원 확인, 대구 지하철 참사에 강승윤 오열 (꼬꼬무)[어제TV]

유경상 2022. 5. 6. 0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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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소지품에 얽힌 기막힌 이야기가 강승윤, 정인선을 울렸다.

5월 5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는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를 돌아봤다.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로 아내와 딸을 잃은 유가족은 "딸이 기차 타는 걸 좋아했다. 평상시 안 해보던 거니까"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대구 지하철 참사 경위 은폐 의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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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소지품에 얽힌 기막힌 이야기가 강승윤, 정인선을 울렸다.

5월 5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는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를 돌아봤다.

이날 방송은 “소지품에 대한 기막힌 이야기”로 시작됐다. 2003년 2월 18일 대구 지하철에서 약수통과 라이터를 든 남자가 목격됐다. 운동복을 입고 약수통을 들고 있던 남자가 호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불을 켰다. 그가 바로 방화범. 남자의 바지에 불이 붙자 몇 사람들이 옷을 벗어 불을 껐다. 하지만 지하철에 옮겨 붙은 불은 끄지 못했다.

화재는 1079호에서 시작됐고 맞은편에서 1080호 차가 들어오며 대형 참사가 벌어졌다. 1079호 승객들은 불이 나자 바로 전동차에서 내렸지만 1080호 승객들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전동차가 빨리 출발하면 되리라 여겨 내리지 않았다. 곧 열차가 출발한다는 안내 방송도 나왔다. 하지만 5분 만에 전기가 끊기며 전동차 문이 닫혔고 안에 남아있던 142명 승객들이 그대로 사망했다.

총 사망자 192명 중 74%. 총 사상자는 350명이었다. 기관사는 1호 칸 문만 수동으로 열어주고 탈출했다. 5호 칸 승객들은 유리창을 깨고 탈출했고, 4호 칸에는 마침 승객으로 타고 있던 역무원이 문을 열었다. 전동차 안에 생존자는 없었다. 불길이 치솟아 사람의 시신이 아닌 뼈만 남았다. 그마저 불에 타서 누구의 뼈인지 알 수 없었다. 강승윤은 “저렇게까지 유골밖에 안 남을 정도로”라며 경악했다.

지하철에 누가, 몇 명이나 탔는지 알 수 없었고 혹시 내 가족이 지하철을 탔을까 사람들이 핸드폰을 들고 중앙로역으로 찾아왔다.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로 아내와 딸을 잃은 유가족은 “딸이 기차 타는 걸 좋아했다. 평상시 안 해보던 거니까”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아내와 딸을 찾기 위해 실종자 인적사항 조사표에 아내가 지니고 있던 결혼시계와 딸의 미아방지용 목걸이를 적어냈다.

딸을 잃은 어머니는 “딸에게 반지를 해준 게 있었다. 너도 엄마 환갑 때 반지 해줘야 한다고 했다”며 “내 아이가 여기서 죽었다고 안 하고 싶다. 현실은 엄마가 내 아이가 죽었다고 자료를 만들어야 했다. 반지 만들었던 곳에 가서, 안경집에 가서 자료를 만들고 찾아봐 주십시오 하는데 너무 미안했다. 엄마가 어떻게 자식이 여기서 죽었다고 밝히려고 이렇게까지 애를 쓰고 있나”라고 탄식했다. 어머니의 말에 강승윤과 정인선이 오열했다.

그렇게 유가족이 소지품으로 가족을 찾으려 애쓰는 사이 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대구 지하철 참사 경위 은폐 의혹. 1080호 기관사는 탈출 후 11시간 잠적 간부들과 대책회의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화재 다음 날 중앙로역에는 군인 200명이 깔려 지하철역을 정상화한다며 하루 만에 잔해를 쓸어 담고 물청소까지 했다. 쓰레기 더미에서 사망자들의 신체 일부분, 소지품 150여점이 발견됐다.

방화범이 지니고 있던 약수통에 들어있던 휘발유는 2리터. 종합사령실의 미흡한 대처와 불에 잘 타는 소재로 만들어진 당시 지하철 안전기준이 사고를 키웠다. 사법처리 받은 사람은 10명. 방화범은 무기징역을 받았고 1080호 기관사는 5년 형을 받았다. 외국보다 저가의 불쏘시개 전동차를 만든 책임은 누구도 지지 않았다. (사진=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캡처)

[뉴스엔 유경상 기자]뉴스엔 유경상 y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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