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까지 푸르게 물든다! 짙푸른 제주 오름 숲길  

2022. 5. 3.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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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6월 오름학교는 <숫모르편백숲길(샛개오리·절물·거친오름), 민오름, 왕이메오름, 가메오름, 누운오름, 고내봉, 물메오름(수산봉)> ]

[프레시안 알림]
이승태 교장선생님은 얘기합니다.

그토록 우리를 괴롭히던 코로나19의 장막이 이제 조금씩 걷히고 있군요. 만물이 생명의 등불을 밝혀 드는 이때에 코로나19의 족쇄가 풀리니 더없이 반가운 일입니다.

6월의 제주는 여름에 방불한 날씨여서 이번엔 짙은 숲으로 들어가려 합니다. 개인적으로 사려니숲길 못지않은 신록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위로 그 자체인 숫모르편백숲길을 걷고, 그 앞 민오름에 올라 제주 중간산의 거친 풍광을 날것 그대로 만납니다.

다음날은 서쪽의 숨은 오름을 찾아갑니다. 활엽수로 빼곡한 왕이메는 놀라움으로 가득한 둥근 굼부리를 가졌습니다. 바닷가에 솟은 고내봉과 수산봉은 중산간 오름들과는 색다른 조망을 선사하죠. 그 사이에 낀 가메오름과 누운오름도 잠깐 들르는 동선입니다.

▲짙푸른 숫모르편백숲길을 걷고 있는 노부부. 마음까지 푸르게 물든다.Ⓒ이승태

오름학교(교장 이승태. 여행작가·제주오름 전문가)의 2022년 6월 17(금)-18(토)일, 제19강은 <6월의 제주, 짙고 울창한 숲속으로-숫모르편백숲길(샛개오리·절물·거친오름), 민오름, 왕이메오름, 가메오름, 누운오름, 고내봉, 물메오름(수산봉)>을 찾아갑니다.
▲거친오름과 절물오름, 개오리오름이 한눈에 보이는, 저 너른 숲의 바다 속을 헤집으며 숫모르편백숲길이 지난다.Ⓒ이승태

제주 출신 화가 강요배 선생은 “오름에 올라가본 일이 없는 사람은 제주 풍광의 아름다움을 말할 수 없고, 오름을 모르는 사람은 제주인의 삶을 알지 못한다”면서 제주 오름의 소중함을 얘기했습니다. 이는 제주도가 오름과 오름이 세포처럼 유기적으로 이어진 곳이어서 제주를 알려면 반드시 오름을 알고 올라보아야 한다는 말일 겁니다. 들판 한가운데, 바닷가에, 작은 마을 뒤편에 순하디 순한 모양으로 솟아 제주의 자연풍광을 이룬 오름. 사람들이 뻔질나게 드나드는 유명 관광지에서는 만날 수 없는, 날것 그대로의 제주의 모습이 그곳에 있습니다.

아름다운 제주도 오름을 순례하는 <오름학교>는 격월로, 제주 자연풍광의 결정체이며 마을 형성의 모태인 오름들을 하나하나 찾아가면서 그 아름다움과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짚고 감상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름’은 ‘산’의 제주도 방언으로, 한라산 산록으로부터 해안에 이르기까지 널리 퍼져있는 작은 화산체들을 이릅니다.

2022년 6월 강의를 준비하는 교장선생님의 얘기를 들어봅니다.

제19강 1일차 / 6월 17일(금요일) / 샛개오리오름, 절물오름, 거친오름, 민오름

신록의 바다에 풍덩!
-숫모르편백숲길(샛개오리오름, 절물오름, 거친오름)
한층 뜨거워진 햇살을 피해 숲속만 걷고 싶을 때, 최고의 선택 중 하나는 숫모르편백숲길일 겁니다. 용강동의 한라생태숲을 출발해 개오리오름과 절물자연휴양림을 지나 노루생태관찰원까지 이어지는 이 길은 걷는 내내 편백나무와 삼나무, 소나무는 물론, 제주의 온갖 활엽수와 늘푸른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뤄 신록의 바다를 방불케 하고 있습니다. 안내도상의 총 길이는 8km지만 절물오름과 거친오름까지 다녀올 경우 13km가 훌쩍 넘습니다.

▲거친오름의 천연 야자매트가 깔린 구간. 길이 쾌적하다.Ⓒ이승태

대부분은 평지거나 완만하고 길도 널찍합니다. 그러나 코스상의 세 오름은 살짝 고도를 높여야 하죠. 그래도 워낙 울창한 숲에 뒤덮인 곳이라서 모든 걸음이 즐겁습니다. 곳곳에 쉬기 좋은 벤치가 놓였고, 정자도 여러 개 있습니다. 제 개인적인 평가로는 제주를 대표하는 숲길로 통하는 ‘사려니숲길’보다 이 길이 더 매력적입니다. 그런데 아직 덜 알려졌고, 몇 곳의 오르막이 있어서 관광객은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제주사람들에게는 인기 만점이죠.

숫모르편백숲길의 백미는 절물오름입니다. 햇살이 한 줌도 파고들지 못할 것 같은 짙은 숲 사이로 오름길이 이어집니다. 오르는 동안 마음까지 푸르게 물드는 느낌입니다. 정상부는 둥글고 깊게 패인 굼부리가 한라산을 향해 비스듬히 입을 벌리고 있습니다. 굼부리 화구벽을 따라 둘레길이 조성되었는데, 두 전망대 사이 능선을 제외하곤 온통 나무가 뒤덮었습니다. 절물오름 굼부리 안에도 일제 진지동굴이 있다는데, 지금은 수풀이 무성해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절물오름의 두 곳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제주 풍광이 압권입니다. 한라산부터 제주 동북부의 오름이 펼쳐내는 제주의 하늘금이 보고 또 봐도 즐겁습니다. 전망대에 올라 맞는 제주의 맑고 시원한 바람은 또 어떻고요.

절물자연휴양림에서 노루생태관찰원으로 이어지는 숲도 짙고 울창한 터널입니다. 길은 녹음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제주의 곶자왈을 파고듭니다. 이런 신록이라면 길을 잃어도 좋겠다는 생각도 드는 제주의 속살입니다.

노루생태관찰원이 들어선 거친오름
오름 자체의 높이가 154m로 꽤 당찬 산세를 가진 거친오름은 몸집이 크고 산세가 험한 데다 숲이 어수선히 우거져 거칠게 보인다고 해서 붙은 이름입니다. 한자로는 ‘거친’을 소리 나는 대로 음을 짜깁기 해 거체악(巨體岳), 거친악(巨親岳) 또는 황악(荒岳)이라고 적습니다.

이름처럼 길이 험하고, 오르기가 여간 고약한 게 아니던 오름이었습니다. 그러나 거칠게 보였다는 외모는 옛날이야기일 뿐, 지금은 주변의 여느 오름과 별반 차이가 없이 숲이 울창하게 뒤덮은 모양으로, 둘레를 따라 걷기 좋은 탐방로가 조성되었습니다.

찾던 이가 드물던 거친오름이 관심을 끌게 된 것은 2007년 8월 3일에 오름을 끼고 들어선 노루생태관찰원 때문입니다. 거친오름을 중심에 두고 주변 2헥타르의 너른 숲과 뱅디에 들어선 노루생태관찰원은 제주의 명물인 노루가 오름에서 자유롭게 뛰어노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있게 환경을 조성한 곳입니다. 또 노루먹이주기와 나무노루 만들기 등 노루와 관련된 여러 체험 프로그램도 마련되어 있어서 많은 이들이 찾는 곳입니다.

제주 오름에서 흔한 삼나무나 편백나무가 거의 없이 대부분 활엽수로 뒤덮인 거친오름은 한라산과 명도암마을 쪽으로 하나씩의 굼부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라산으로 향한 굼부리가 작고 완만하며 얕고, 4·3평화공원으로 열린 굼부리는 상대적으로 크고 깊으며 가파릅니다.

노루생태관찰원은 들개로부터 노루를 보호하기 위해 전체가 철책으로 둘러싸였습니다. 정문이나 절물자연휴양림 쪽에서 들어서는 출입문도 철제여서 군부대로 들어서는 느낌이죠. 거친오름 탐방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오름의 허리께를 따라 크게 한 바퀴 돌며 원형으로 이어지는 2.3km 길이의 ‘숲 관찰로’와 정상부를 둘러볼 수 있는 1km짜리 ‘정상 순환로’가 있습니다. 숲 관찰로는 빼곡한 활엽수가 하늘을 뒤덮어서 몇 군데를 빼면 다 녹색의 터널을 걷다시피 하며 이어집니다. 그러나 능선과 골짝을 만나며 오르내리는 곳이 많아 지루하지 않습니다.

▲노루생태관찰원의 노루 무리. 더위를 피해 풀숲에서 쉬는 중이다.Ⓒ이승태

거친오름 정상부를 둥글게 한 바퀴 도는 정상 순환로는 관목과 억새가 뒤섞이며 곳곳에서 조망이 트입니다. 남서쪽으로 한라산이 바투 다가서고, 숫모르편백숲길을 품은 거대한 원시림이 숲의 바다를 이루며 가슴 먹먹한 풍광을 펼쳐놓습니다.

사방이 트이는 정상에서는 코로나19로 답답했던 지난 시간의 가슴 속 체증이 한 방에 다 뚫리는 느낌입니다. 동쪽으로 절물오름과 민오름이 가깝고 그 뒤로 붉은오름과 돔배오름, 큰지그리와 족은지그리오름이 바농오름과 나란합니다. 멀리 높은오름과 세미오름, 다랑쉬와 체오름 등 송당리의 오름 군락이 파도치듯 넘실대는 풍광이라니, 가히 아름다운 제주가 눈을 가득 채워 한없이 머물고픈 정상입니다.

민오름 중 내가 최고봉(最高峰)!
-민오름(봉개동)
제주에서 ‘민오름’은 송당리와 수망리, 오라동, 선흘리와 이곳 봉개동까지 각각 하나씩 모두 다섯 개나 있습니다. 산 위에 나무가 없이 초지를 이뤄 이리 불렸을 텐데, 지금은 이 다섯 모두 울창한 숲에 뒤덮여 이름을 무색케 하죠. 절물자연휴양림 맞은편의 봉개동 민오름은 한라산에 가장 근접한 터여서 고도가 651m로, 이 중 가장 높습니다.

굼부리는 동북쪽의 큰지그리오름을 향해 열린 말굽형이며, 오름 자체의 높이가 136m로 깔대기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절물오름을 마주보는 남서록이 가파르고, 화구벽이 터져나간 큰지그리오름 쪽이 길에 늘어서며 완만한 지형입니다.

탐방은 절물오름과의 사이를 지나는 명림로에서 시작합니다. 들어서자마자 탐방로는 온통 밀림을 방불케 하는 곶자왈입니다. 하늘을 가리며 아무렇게나 자유롭게 자란 수목들 사이로 울퉁불퉁한 화산석 위에 천연야자매트가 깔렸는데, 그 바닥도 울퉁불퉁, 구불구불거립니다.

▲절물오름과 민오름 사이의 명림로Ⓒ이승태

조금 진행하면 길이 갈립니다. 왼쪽은 절물자연휴양림 정문방향으로 가는 숲길로, 데크가 깔려 걷기 좋습니다. 500m 남짓인 이 길도 걸어보겠습니다. 정말 기가 막힌 숲길입니다. 민오름은 여기서 오른쪽으로 향합니다. 안내판에는 645m 가면 정상이라고 적혔습니다. 곧 오르막이 시작되며 온갖 활엽수와 조릿대가 뒤섞인 울창한 숲 사이로 계단이 이어집니다.

정상부 능선에 이르면 초지대가 나타나며 조망이 트이기 시작합니다. 삼거리에서 좌우 어디로 가도 되지만 정상은 오른쪽에 있습니다. 통나무 벤치와 조망해설판이 설치된 정상에 서면 짙은 숲이 뒤덮은 절물오름과 한라산이 훤하고, 큰지그리오름도 잘 보입니다. 그 동쪽의 교래곶자왈도 장관이죠.

정상 안쪽의 사면에는 깊이 70m쯤의 깔때기 모양 굼부리가 있지만 울창한 숲으로 인해 양쪽 능선에서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정상에서 능선을 따라 북쪽으로 내려서면 큰지그리오름과의 사이를 돌아 오름 서쪽의 한화리조트로 길이 이어집니다.

아까의 능선 삼거리에서 서쪽 능선도 빠뜨릴 수 없습니다. 역시 초지대인 서쪽 능선의 정상부에도 조망 안내판과 벤치가 설치되었고, 민오름 굼부리와 큰지그리오름 일대의 풍광이 멋지게 펼쳐집니다. 원래 여기서 절물오름자연휴양림 입구쪽으로 탐방로가 나 있는데, 내려선 곳이 사유지여서 길이 폐쇄되었습니다.

제19강 2일차 / 6월 18일(토요일) / 왕이메오름, 가메오름, 누운오름, 고내봉, 물메오름(수산봉)

굼부리 안 별천지
-왕이메오름
평화로의 봉성교차로에서 한라산 쪽으로 들어서는 길이 ‘화전로’입니다. 옛날, 제주를 대표하는 오지였던 이곳에 화전민이 모여 살던 솔도마을이 있었기에 이런 이름이 붙었죠. 지도를 펴보면 화전로를 중심으로 북돌아진오름, 동물오름, 폭낭오름, 도래오름, 빈네오름, 이돋이오름, 서영아리오름, 돔박이오름, 괴수치오름, 왕이메오름이 포도송이처럼 뭉쳐 있습니다. 지금은 팻말만 남은 솔도마을 일대에 대형 골프장 세 곳이 성업 중입니다. 왕이메는 화전로에서 처음 만나는 오름이죠.

▲왕이메오름과 한라산. 오른쪽 바로 위는 영아리오름이다.Ⓒ이승태

왕이 기도하던 오름
까마득한 옛날에 탐라국의 삼신왕이 이곳에 들어와서 사흘 동안 기도를 했다고 해서 ‘왕이메’라고 부릅니다. 달리 ‘왕림악(王臨岳)’, ‘왕이악(王伊岳)’, ‘왕악(王岳)’이라고도 하며, 누운 소처럼 생겨 ‘와우악(臥牛岳)’이라는 별명도 가졌고요.

왕이메는 종종 동쪽의 산굼부리에 비교됩니다. 그만큼 굼부리가 깊고 넓기 때문인데, 하늘을 향해 뻥 뚫린 채 넓은 화구벽이 둘러싼 풍광이 압도적입니다. 왕이메는 북쪽과 동쪽에 굼부리를 하나씩 더 가진 복합화산체입니다. 동쪽의 작고 야트막한 굼부리는 울창한 삼나무 숲에 둘러싸여 길이 막혔으나 북쪽 굼부리는 탐방로가 지납니다.

화전로에서 바로 시작되는 탐방로는 몇 걸음 들어서자마자 양쪽으로 갈라집니다. 직진하는 길은 초지를 이룬 북쪽 굼부리를 가로질러 능선에 바로 붙고, 오른쪽은 삼나무 숲길을 지나 굼부리 안으로 이어집니다. 어느 길을 택해도 서로 만나고요. 탐방로는 데크나 계단, 매트 같은 게 깔리지 않은 오솔길 그대로입니다. 불편할 수도 있지만 날것 그대로의 산길을 걷는 즐거움이 더 크죠.

인상적인 수직동굴
굼부리로 가는 삼나무 숲길은 평탄하고 푹신푹신해 걷는 기분이 좋습니다. 얼마 후 이정표가 나타나며 가장 낮은 북서쪽 능선을 넘어 굼부리로 들어섭니다. 사방으로 높은 능선이 두른 터라 굼부리 안은 적막하기까지 합니다. 봄날이면 이곳은 들꽃세상이 됩니다. 굼부리 바닥 이곳저곳에서 세복수초와 꿩의바람꽃, 변산바람꽃, 노루귀에 개구리발톱, 현호색, 구슬붕이, 족도리풀 등이 피어나 발길을 붙잡죠.

활엽수림 사이를 지나는 능선 둘레길은 단장되지 않은 날것 그대로입니다. 그야말로 들새가 가는 길, 노루가 가는 길이예요. 중간에 시커먼 아가리를 벌린 수직동굴 두 개도 만납니다. 이후 길은 잠시 내려섰다가 만나는 정상에 닿는데, 조망이 그리 시원치 못해 아쉽기도 합니다.

정상에서 북쪽으로 조금만 가면 오른쪽으로 길이 갈라집니다. 북쪽 굼부리를 거쳐 출발지점으로 이어지죠. 여기서 계속 능선을 이어 굼부리 들어서는 길을 만난 후 출발지로 돌아갈 수도 있습니다.

▲활엽수로 덮인 능선길. 휘적휘적 걷기 좋은 곳이다.Ⓒ이승태

초록바다를 헤엄치는 한 마리의 물고기
-가메오름
‘가메’는 가마솥을 말하는 제주어로, 작고 아담한 굼부리를 가진 오름 모양이 가마솥을 닮아서 붙은 이름입니다. 해발고도가 372.2m로 중산간에 위치한 이 오름은 오름 자체의 높이가 17m에 불과합니다. 제주의 수많은 오름 중에서 낮기로는 손에 꼽힙니다. 차에서 내려 굼부리 능선까지 오르는데 단 1분이면 족하죠. 이쯤 되면 오름이 아니라 언덕이라고 불러야 할 판이네요. 그러나 요렇게 작아도 가운데 움푹 파인 굼부리가 또렷하고, 오름 능선에서의 조망 또한 빼어납니다.

낮은 오름, 신비로운 굼부리
초지대를 이룬 오름 능선엔 봄날이면 산자고와 할미꽃, 봄구슬붕이, 자주괴불주머니, 개불알풀, 개별꽃 같은 우리 풀꽃이 빈틈없이 피어납니다. 꽃이 만발한 능선에 서면 이웃한 이달봉과 새별오름이 손에 잡힐 듯하고, 그 너머로 바리매와 족은바리메, 큰노꼬메, 족은노꼬메가 겹쳐진 가운데 한라산이 우뚝한 멋진 풍광을 조망할 수 있습니다.

오름 능선을 한 바퀴 도는데 채 10분이 걸리지 않는 가메오름은 온통 억새로 가득 덮였습니다. 그래서 10월쯤의 아침이나 저녁 무렵에 찾으면 멋진 풍광이 기다리죠.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초록바다를 헤엄치는 한 마리의 물고기를 떠올리게 합니다.

북쪽 능선에 서면 바로 아래로 널따란 밭이 보입니다. 가운데에 동그랗고 얕은 습지가 있는데, 습지 가장자리를 따라 습지식물이 자라서 밭과 습지를 구분시켜 놓았습니다. 그 모양이 오름 굼부리처럼 신비롭고 예쁩니다. 이 습지를 ‘맹꽁이왓’이라고도 부릅니다.

▲하늘에서 본 가메오름과 습지인 맹꽁이왓. 한 마리 물고기처럼 보인다.Ⓒ이승태

세상 편한 자세로! 펑퍼짐하게!
-누운오름
누운오름은 애월과 한림을 가르며 지나는 월각로를 사이에 두고 가메오름과 마주보고 있습니다. 부드럽고 야트막한 능선이 커다란 네모 모양으로 이어지는 이 오름은 소가 한가로이 누운 모습을 닮아서 붙은 이름으로, 제주 오름 중에서는 가장 편한 모양새입니다. 하늘에서 보면 꼬리까지 갖췄죠. 높이에 비해 펼쳐진 굼부리가 꽤 넓습니다. 굼부리 안은 무나 메밀, 감자 농사를 짓는 경작지나 목초지로 이용됩니다. 굼부리를 반으로 가르며 차가 다니는 널찍한 농로도 지납니다.

해발고도가 407m지만 오름 자체의 높이는 50m를 살짝 넘고, 실제 오르는 높이는 30m가 안 되니 들머리에서 금세 능선에 닿습니다. 그러나 누운오름이 보여주는 감동은 아주 높고 크죠. 공식적인 탐방로가 조성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보통 태영농장 건너편의 도로가에서 탐방을 시작합니다. 가메오름을 마주한 북쪽 봉우리로 올랐다가 능선을 따라 남쪽의 정상까지 간 후 굼부리 가운데를 지나는 농로를 이용해 돌아오는 코스가 애용됩니다.

▲누운오름의 동쪽 능선과 금오름Ⓒ이승태

늦가을부터 초봄까지가 탐방 적기
초지대를 이루는 북쪽 봉우리에서 널따란 밭뙈기를 품은 오름 전체가 가늠됩니다. 솔숲에 덮인 남쪽의 정상 봉우리와 굼부리 중앙의 농로, 그 건너편의 너른 밭뙈기와 서쪽 화구벽능선까지 어느 것 하나 풍광이 거칠지 않고 편안합니다. 서남쪽 능선 너머론 금오름과 비양도가 눈길을 끌죠.

여기서 내려다보는 가메오름의 작고 앙증맞은 굼부리는 더 신비롭고 예쁩니다. 누가 부러 흙을 퍼 날라 만든 듯 아기자기한 느낌이죠. 가메오름 건너론 이달봉과 새별오름, 바리메, 노꼬메오름의 하늘금이 얽히고설킨 가운데 한라산이 배경을 이뤘고, 북돌아진오름과 당오름, 정물오름 등 제주 서부 중산간의 오름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굼부리 안에는 작은 알오름이 솟았는데, 땅속 동굴이 함몰된 듯 한쪽이 푹 꺼져 있습니다.

누운오름 능선은 낮고 완만하며 사방으로 확 트였습니다. 평지를 걷듯 쉬엄쉬엄, 주변 풍광을 감상하며 룰루랄라 걷기에 그만이죠. 천천히 가도 20분이면 남쪽의 정상에 닿고, 여기서 잠시 내려서면 굼부리 안의 농로를 만납니다. 보통은 여기서 농로를 따라 출발지로 돌아 나오는 코스로 탐방이 이뤄집니다. 서쪽 능선을 이어서 가려면 다시 밭을 가로질러 들어서야 하는데, 딱히 탐방로가 조성되지 않았기에 눈대중으로 찾아가야 합니다.

능선은 억새와 찔레, 복분자, 장딸기 등이 뒤섞여서 봄부터 가을까지는 보기와 달리 길이 사납습니다. 반드시 긴 소매와 긴 바지 차림에 등산화와 스틱도 갖추는 게 좋습니다. 소나무가 많은 정상에서 내려서는 길이 희미합니다. 길을 잃더라도 농로로 방향을 잡고 내려서면 됩니다.

또 찾고 싶은 솔숲
-고내봉
제주올레 15코스가 도착하는 고내포구의 남쪽에 우뚝 솟은 고내봉은 최고봉인 망오름을 중심으로 너븐오름, 상뒷오름, 방애오름, 진오름까지 다섯 봉우리로 이뤄진 복합화산체입니다. 북쪽이 가파르고 남쪽 사면은 완만하게 흘러내리는 지형이며, 삼나무처럼 쭉쭉 뻗은 굵은 해송이 숲을 이뤄 탐방하는 내내 눈이 호강입니다. 서쪽 너븐오름의 말물동산엔 4‧3피해 사찰인 보광사가 자리하고, 남쪽엔 오름의 3분의 1쯤이나 됨직한 터에 공동묘지가 들어섰습니다.

높은 철제 전망대가 선 정상에는 고려시대의 봉수대 터가 있고, 오름 동남쪽 하가리의 연화지는 연자와 연근을 진상하던 유서 깊은 연못입니다. 또 하가리와 상가리를 아우른 더럭마을은 승천하는 흑룡의 기개를 보는 듯하다는 제주의 돌담인 ‘흑룡만리 돌담’으로 유명합니다.

보광사 쪽 들머리가 인기
일주서로에서 가까운 북서쪽 들머리와 남서쪽의 보광사 입구, 하르방당을 거치는 남쪽 들머리까지 세 들머리를 이용해 오를 수 있습니다. 북서쪽 탐방로는 계단과 야자매트가 깔리고 줄까지 매져 있을 만큼 탐방로가 잘 만들어져 있지만 이용하는 이가 적어 여름이면 수풀에 덮일 때가 많죠. 가파르고 들머리에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은 보광사 위쪽의 들머리를 이용합니다. 차량으로 중턱쯤에 위치한 들머리까지 오를 수 있고, 거기에 널찍한 주차공간도 있습니다. 또 울창한 해송 숲 사이로 난 길이 자체로 아름다우면서도 완만해서 걷기 좋죠.

▲수산저수지와 물메오름. 며칠 전 내린 폭우로 저수지가 온통 황톳빛이다.Ⓒ이승태

제주목사가 기우제 지내던 물의 성소
-물메오름
애조로와 일주서로가 만나는 구엄교차로 남쪽에 우두커니 서 있는 물메오름은 옛날에 봉우리 위에 자연연못인 ‘물메’가 있어서 이런 이름이 붙었습니다. 이곳은 가뭄이 심할 때 제주목사가 와서 기우제를 지내던 곳이라고 하죠. 물메는 세월이 지나면서 메워지고 지금은 돌로 둘레를 쌓은 작은 물웅덩이가 옛 연못의 흔적을 보여줄 뿐입니다. 오름은 전체에 걸쳐 해송이 우거진 가운데 멀구슬나무, 참식나무, 생달나무, 꽃댕강나무 등 다양한 나무가 섞여 건강한 숲을 이뤘습니다.

저수지를 낀 희귀한 풍광
옛날, 오름 정상에 봉수대가 설치되어 ‘수산봉’ 또는 ‘수산망’이라고 불렀기 때문인지 지금 오름 들머리의 안내도나, 제주도 관광지도에는 이 오름을 본디 이름인 ‘물메’가 아닌 ‘수산봉’이라고 적고 있습니다. ‘물메’라는 멋진 이름이 언제부터 ‘수산’이라는 한자로 바뀌었는지 모르지만 근처 초등학교 이름이 ‘물메’인 것은 참 다행스럽습니다.

오름 동남쪽의 수산저수지가 눈길을 끕니다. 저수지 자체가 드문 제주기도 하지만 저수지를 자락에 낀 오름은 더더욱 없는 곳이어서 낯설고도 신비로운 풍광이죠. 성이시돌목장 안의 세미소오름과 표선의 영주산 정도를 꼽을 수 있지만 수산저수지야말로 제대로 저수지답습니다. 1960년 12월, 답단이내를 막아 조성한 이 저수지는 하귀리와 구엄리의 개간한 논에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기능을 했습니다. 물메오름과 어우러진 풍광도 멋져서 예전엔 제주 사람들이 즐겨 찾던 유원지였다고 합니다.

들머리가 네 곳
오름 남록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곰솔 한 그루가 긴 가지를 저수지 위에 드리운 채 날 좀 봐달라며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그 뒤로는 맞배지붕을 올린 단정한 외관의 수산리 포제당이 보이고, 포제당을 지나 저수지 둑 쪽으로 들어선 곳에 법화종 사찰인 대원정사가, 오름의 남서쪽 사면엔 충혼묘지가 자리 잡고 있어 오름의 표정이 다양합니다.

일찍이 유원지가 조성되었기 때문인지 오름엔 들머리가 네 곳이나 됩니다. 동쪽 들머리엔 표석이 서 있고, 제주올레 16코스가 남쪽과 서쪽을 들‧날머리로 삼고 정상을 거칩니다. 대원정사에서는 국가시설물이 있는 정상까지 포장도가 이어지죠. 표석이 있는 동쪽 들머리를 통해 정상에 올랐다가 남쪽 저수지 쪽으로 내려서는 코스가 애용됩니다. 높이 자란 굵은 둥치의 해송이 오름을 뒤덮고 있어서 삼나무 숲 오름과 달리 탐방로가 칙칙하지 않고, 밝고 환합니다.

물메가 있던 정상의 굼부리는 경작지로 이용되다가 지금은 베드민턴 코트와 운동시설이 들어섰습니다. 그 옆에 멋진 팔각정자도 보이고요. 정자의 남동쪽이 정상입니다. 소나무 그늘이 좋아 벤치도 놓였고요. 올레가 지나는 서쪽 길은 조금 가파른 편입니다.

▲오름학교 제19강 탐방 개념도Ⓒ오름학교

자세한 내용은 네이버 카페에서 ‘인문학습원’을 검색하여 오름학교 기사(6월)를 확인 바랍니다.

코로나19 방역조치에 따라 안전하고 명랑한 답사가 되도록 출발 준비 중입니다. 참가자는 자신과 동행자의 건강을 위해 최종 백신접종을 완료하시고, 항상 마스크를 착용하시기 바랍니다. 발열·근육통·호흡기 증상이 있는 경우 참가를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름학교는 생활 속의 인문학을 즐기려는 동호회원들의 체험공동체인 인문학습원(대표 이근성)이 지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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