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동 걸린 '공시가격 현실화'..목표 90%→80%로 낮추나
'공시가격 되돌리기' 공약 파장
로드맵 시행 2년 만에 흔들
공정성 위해 현실화 추진했지만
'2030년 공동주택 90% 목표'에서
80%선 낮추고 시점도 연기 유력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여야 후보들이 쏟아낸 부동산 관련 공약 가운데 주택 소유자들의 관심을 끈 것은 단연 감세 관련 내용이었다. 양도소득세 중과세 완화,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의 통폐합 등이 그런 것들이다. 윤석열 당선자는 보유세의 기준이 되는 공시가격에 손을 대, 2022년도 부동산 공시가격을 2020년 수준으로 환원하겠다는 파격적인 공약도 내놨다. 문재인 정부에서 진행된 급격한 공시가격 상승에 제동을 걸어 국민의 부담을 낮추겠다는 뜻인데, 시장에선 취지는 이해되지만 현실적으로 공시가격을 2년 전 수준으로 되돌리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윤석열 후보가 당선되면서 상황은 확 바뀌었다. 대선 직후인 지난 3월23일 현 정부는 올해 공동주택 공시가격안을 공개하면서 올해 1가구 1주택자의 보유세에 대해서는 지난해 공시가격을 과표로 적용하기로 하는 파격적인 세부담 완화방안을 내놓았다. 정부 방안은 공시가격을 2년 전 수준으로 돌린 것이 아니라 1년 전 수준으로, 그것도 1가구 1주택자의 보유세에 대해서만 1년 전 공시가격을 제한적으로 적용하기로 한 것이기는 하다. 하지만 내용적으로는 윤 당선자의 ‘공시가격 되돌리기’ 공약과 유사한 것으로, 결과적으로 2020년 11월 발표돼 시행 2년째를 맞고 있는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의 차질이 불가피해진 상황이다.
공시가격 현실화율 목표, 90%에서 80%로?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은 현행 부동산 공시법이 규정한 ‘적정가격’보다 낮게 공시하는 관행에서 벗어나고, 공시제도 공정성의 핵심으로 꼽혀왔던 부동산 유형간 가격 균형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이었다. 이 계획은 당시 부동산 유형별로 차이가 컸던 현실화율 수준과 시장 여건 등을 고려해 토지는 2028년, 공동주택은 2030년, 단독주택은 2035년까지 8~15년에 걸쳐 공시가격 현실화율(시세 대비 공시가격 비율)을 90%로 끌어올리는 목표를 제시했다. 당시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율은 50~70% 수준이었는데, 특히 단독주택의 현실화율이 아파트보다 지나치게 낮아 형평성 문제가 꾸준히 지적돼 왔다.
이후 현실화 로드맵이 처음으로 적용된 2021년 공시가격은 단독주택(표준)이 6.68%, 공동주택이 19.05%의 상승률을 보였다. 당시 코로나19 대유행 사태와 경기침체 우려 속에 한국은행이 단행한 잇단 기준금리 인하 및 그로 인한 시중 유동성 확대로 2020년 하반기 전국적으로 집값이 급등한데다 현실화율 제고까지 더해졌기 때문이다. 이후 부동산시장 과열 현상은 지난해까지 이어졌고, 올해 단독주택 및 공동주택 공시가격은 또다시 각각 7.34%, 17.20% 상승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국민들의 체감이 높은 공동주택은 2년 연속 20% 가까운 상승률을 기록했는데, 이는 2005년 주택공시제도가 도입된 이래 가장 가파른 상승률이다.
이처럼 공시가격 현실화 추진 초기에 공교롭게 집값도 크게 오르면서 주택 소유자들의 세부담이 커졌고, 지난해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선 악화된 부동산 민심이 폭발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정부는 부랴부랴 지난해 공시가격 9억원 이하 재산세 경감방안을 시행하고 건강보험료 부담 완화에도 나서는 등 대응책을 내놨지만 역부족이었다. 이후 대선에서 공시가격 조정이 공약으로 나오는 등 논란이 이어졌고, 급기야 대선 직후 공시가격을 발표하게 된 정부가 전년도 공시가격을 보유세 과표로 적용하기로 하는 파격적인 조처를 내놓게 됐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달 29일자로 아파트와 연립주택 등 전국 공동주택 1454만호의 2022년 공시가격을 결정·공시하는 것으로 올해 부동산 공시 일정을 마무리했다. 올해 공시가격 현실화율은 토지(표준지)가 71.6%(지난해 68.6%), 단독주택(표준)이 57.9%(지난해 55.9%), 공동주택은 71.5%(지난해 70.2%) 수준이다.
국토부는 새 정부 출범과 함께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을 수정한다는 방침이다. 국토부 안팎의 말을 종합하면, 현재 90%인 현실화율 목표 제고율을 80% 선으로 낮추고, 2028~2035년인 현실화율 도달 목표 시점도 늦추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국토부 부동산평가과 관계자는 “아직 구체적인 수치 등을 이야기할 단계는 아니다”며 “연구용역과 공청회 등 법적 절차를 밟아 여러 가지 안이 검토될 것”이라고 말했다.
공시가격 투명성 개선 방안도 관심 현실화율
수정·보완와 함께 공시가격과 관련해 그동안 꾸준히 제기됐던 투명성 개선 요구가 거세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매년 공시가격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지방자치단체의 민원이 쏟아지고 있고, 조사인력 부족과 조사자 전문성 등의 문제로 가격 산정 오류가 잇따르고 있다는 지적도 끊이질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해의 경우, 집값이 급등한 서울의 고가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공시가격이 지나치게 높다며 낮춰달라는 지자체와 주택 소유자들의 요구가 특히 많았다. 확정 공시 전 열람에 들어가는 공동주택 공시가격 안에 대해, 지난해에만 4만9601건의 의견제출이 이뤄졌고, 이 가운데 5%에 해당하는 2485건은 재조사와 심의를 거쳐 공시가격 조정이 이뤄졌다. 올해는 공동주택에 대한 의견제출 건수가 지난해의 5분의 1 수준인 9337건으로 줄었고, 의견이 반영돼 처리된 건수도 1248건에 그쳤다. 정부가 올해 1주택자 보유세에 대해서는 지난해 공시가격을 적용하겠다고 발표한 게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2019년 서울 성수동 ‘갤러리아포레’ 공시가격 정정은 공시가격의 객관성과 신뢰성을 떨어뜨린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당시 갤러리아포레의 층과 방향에 따른 공시가격이 전년도와 달리 들쭉날쭉하게 나온 뒤 주민들의 항의로 재조사가 이뤄졌는데, 아파트 2개 동 230가구 전체의 공시가격이 정정되는 일이 벌어졌다. 이후 주택 공시가격 조사·산정을 맡고 있는 한국부동산원은 감정평가사 등 조사 인력 확충, 과학적 조사기법 도입, 내외부 심사단의 검증 강화 등을 통해 공시가격의 신뢰성을 높이는데 주력해 왔다. 지난해부터는 공시가격 열람 때 산정 기초자료인 교육·편의시설 등 입지, 향·건물구조 등 특성, 거래사례 등 가격 참고자료 등이 공개되고 있는 중이다.
일각에서는 제주지사 시절 공시가격을 놓고 국토부에 날선 비판을 해온 원희룡 국토부 장관 후보자가 장관직에 오르게 되면 공시가격 개편 수위가 높아지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온다. 원 후보자는 대선 후보 경쟁을 벌이던 지난해 5월 “보유세의 기준이 되는 공시가격 산정 내용과 방식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며 “공시가격 오류로 인한 국민의 재산권 피해를 막기 위해 정부의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을 당장 중지해야 한다”고 촉구한 바 있다.
그러나 원 후보자의 이런 태도는 국토부 장관 후보 지명 후 신중모드로 변했다. 그는 장관 청문회 준비사무실 첫 출근길에서 공시가격 산정 방식 개편 여부에 대한 취재진의 질문에 “많은 문제점을 느꼈던 것은 사실이나 정책은 한 쪽의 요구와 입장을 가지고만 정할 수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다만, 최근 인수위 부동산 테스크포스(TF)에 참여한 서울시가 공시가격 산정 오류를 줄이기 위해서는 지자체에 공시가격 검증센터를 설치해 중앙정부와 공시가격을 상호검증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이에 대한 국토부의 대응이 주목된다.
최종훈 기자 cjh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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