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사네: 빼앗는 얼굴[시네프리뷰]

2022. 4. 27.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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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하면 얼굴이 바뀌는 립스틱이 있다면
[주간경향]

얼굴을 빼앗는 도구는 마법의 립스틱이다. 〈데스노트〉처럼 립스틱 사용에는 법칙성이 있다. 유효시간은 12시간. 원작 만화에서는 여러 가능성과 관련한 사고실험을 통해 이야기가 구축되는데 아무래도 장편영화이다 보니 이야기는 축약돼 있다.


제목 카사네: 빼앗는 얼굴(累 かさね)
제작연도 2018
제작국 일본
상영시간 111분
장르 스릴러
감독 사토 유이치
출연 츠치야 타오, 아사노 타다노부, 요시네 쿄코
개봉 2022년 5월 5일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시네마블랙


후지 카사네는 유명 여배우의 딸이다. 그런데 못생겼다. 평생 못생긴 외모로 주눅 들어 사는 인생이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유산도 그를 돌봐주는 것으로 돼 있는 이모가 가로챘다. 돌아가시기 전, “정말 힘들어지면 이걸 써라” 하며 그에게 뭔가를 건네줬다. 립스틱이다.

어머니의 13기 추도식이 열리던 날. 한 남자가 찾아온다. 남자는 그를 연극공연장으로 데려간다. 거기엔 ‘얼굴은 예쁘지만 연기력은 그럭저럭’인 한 배우가 주연한 연극이 상연 중이다. ‘탄자와 니나’다. 남자는 그에게 탄자와 니나가 돼서 무대에 서면 어떻겠냐고 제안한다. 어떻게?

인생역전 도구는 립스틱

비밀은 엄마가 물려준 립스틱이다. 립스틱을 바르고 키스를 하면 얼굴이 바뀐다. 의문의 남자는 그 립스틱의 비밀을 알고 있다. 카사네도 왕따를 당하던 어린 시절 우연히 그 비밀을 알았다. 립스틱 덕분에 왕따를 주도하던 아이의 얼굴과 바뀌어 연극 〈신데렐라〉의 주인공이 된다. 카사네는 못생긴 외모 때문에 어둠에 머물렀던 자신이 잠시나마 경험했던 ‘빛의 세계’를 잊지 못한다. 카사네에게 얼굴을 빼앗긴 아이는 학교 옥상에서 커터칼을 꺼내들고 자신의 얼굴을 돌려달라고 위협하다가 카사네의 입을 찢어버리고 추락사한다. 원래의 얼굴로 돌아온 카사네의 얼굴엔 커다란 흉터까지 남았다. 그 뒤 어른이 될 때까지 카사네는 마스크를 쓰고 다닌다. 영락없는 괴담 ‘입 찢어진 여자(口裂け女·쿠치사케 온나의 한국판 괴담이 빨간 마스크다)’의 주인공이다.

외모에 대한 뿌리 깊은 열등감은 그의 원동력이다. 연출가 우고 레이타는 탄자와 니나 얼굴을 한 카사네의 알 수 없는 매력에 빠져든다. 사실 원래의 탄자와 니나가 연극배우를 하게 된 동기도 어린 시절 연극캠프에서 만난 우고 레이타의 격려 덕분이다. 결국 탄자와 니나가 그가 연출하는 연극 〈갈매기〉의 여주인공으로 발탁되지만, 실제 실력이 있던 건 탄자와 니나의 얼굴을 한 카사네다. 탄자와 니나는 떠오르는 신예 스타가 된다. 그럴수록 진짜 탄자와 니나는 초조해진다. 그는 카사네에게서 자기 얼굴을 찾은 뒤 공연연습장을 찾아가 대본연습을 한다. 그러나 진짜 자신과 카사네의 실력 차가 뚜렷하다. 우고 레이타조차 탄자와 니나의 신비감이 사라졌다고 차갑게 외면한다. 앞서 립스틱의 비밀을 알고 있는 남자는 탄자와 니나의 매니저다. 그가 탄자와 니나의 얼굴을 대신할 사람을 찾는 진짜 이유는 그의 연기력만이 아니었다. 진짜 탄자와 니나는 클라인 레빈 증후군이라는 희귀병을 앓고 있는데 이 병은 어느 날 잠들면 수개월 동안 깨어나지 못한다. 자기의 얼굴로 점점 유명세를 얻는 카사네와 탄자와 니나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하던 시점에 그가 쓰러진다. 깨어나 보니 5개월 후. 운명은 어떻게 됐을까.

얼굴을 공유하게 된 두 여인의 갈등

원작은 만화다. 영화 제목은 만화와 같이 〈카사네〉인데 국내 개봉 제목은 〈카사네: 빼앗는 얼굴〉로 약간의 부연설명이 달려 있다. 얼굴을 빼앗는 도구는 마법의 립스틱이다. 역시 영화화된 만화 〈데스노트〉처럼 립스틱 사용에는 법칙성이 있다. 카사네와 탄자와 니나가 실험해보니 유효시간은 12시간이다. 만약 오전 9시에 키스를 하고 얼굴을 바꿨다면 밤 9시에는 두 사람 모두 원래의 얼굴로 돌아오니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 있다면 반드시 그 전에 귀가해야 한다. 만약 밤에 특별한 일정이 있다면 중간에 다시 두 번의 키스를 통해 시효를 연장해야 한다. 그런데 저 립스틱을 바르고 남자와 키스를 한다면? 한명과 키스하는 게 아니라 여러명과 키스한다면? 얼굴이 바뀐 상태에서 상처를 입거나 아니면 둘 중 한사람이 죽으면 얼굴은 어떻게 될까. 원작 만화에서는 이 여러 가능성과 관련한 사고실험을 통해 이야기가 구축되는데 아무래도 장편영화이다 보니 이야기는 축약돼 있다. 카사네의 어머니 후지 스케요가 얼굴을 빼앗은 이자나와 그의 딸, 그러니까 카사네 대신 후지 스케요를 쏙 빼닮은 딸 노기쿠처럼 원작에서 중요한 배역이 이 작품에선 생략된 건 아쉽다. 아마 이런 이야기까지 2시간가량의 장편영화 분량에 쑤셔 담기엔 무리였던 듯싶다. 아마도 TV드라마 같은 시리즈물로 재탄생하지 않을까.

카사네의 인생과 얽힌 연극 〈살로메〉

경향자료


카사네가 처음 립스틱의 비밀을 알게 된 게 초등학교 시절 연극 〈신데렐라〉인 것처럼 영화의 이야기 전개에서 배경이 되는 연극들과 카사네의 실제 생애와의 연관성을 찾는 재미도 쏠쏠한 영화다. 얼굴을 공유하게 된 두 사람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하는 건 카사네가 국립예술극장에서 연극 〈살로메〉의 주연을 맡으면서다. 수많은 작가에게 영감을 줬던 것처럼 헤로디아의 딸 살로메는 자신을 경멸하는 세례 요한을 짝사랑한다. 짝사랑은 광기로 변해 헤롯왕 앞에서 춤을 춘 대가로 세례 요한의 목을 요구한다. 결국 살로메는 그토록 갈구하던 요한과의 입맞춤은 언제든지 가능하게 됐지만, 그가 얻은 건 요한의 사랑이 아니라 머리였다. 탄자와 니나가 된 카사네는 결국 무엇을 얻었을까.

여러 유명 화가의 성서화에 살로메와 세례 요한의 목 장면이 등장하지만(예컨대 안드레아 솔라리오의 작품. 사진) 정작 성경에 살로메라는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 세례 요한 사건이 언급된 마태복음이나 마가복음에는 살로메 대신 헤롯왕의 딸이라고만 나온다(신약성서에 등장하는 마리아 살로메는 동명이인이다). 살로메라는 이름이 유명해진 건 오스카 와일드가 성경에는 이름이 안 나오는 이 헤로디아의 딸에 대해 헤롯왕과 결혼한 헤로디아에게는 살로메라는 딸이 있었다는 요세푸스의 <유대전쟁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름을 붙였기 때문이다. 실제 요세푸스의 기록엔 세례 요한의 목 이야기는 없다고 한다. 영화나 만화 속 연극 살로메도 이 오스카 와일드의 희곡을 바탕으로 한 연출로 보인다.

사실 살로메는 서양문명권에서는 치명적인 성적 매력으로 남자를 파멸의 길로 인도하는 요부의 원형적 상징과 같은 인물이다. 영화에서 요한의 목을 취하는 결정적인 장면의 막간, 옥상에서 두 여자(탄자와 니나와 카사네)가 혈투를 벌이는 장면은 여러 측면에서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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