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실패]⑤ "세무사도 양도세는 포기"..땜질 반복에 누더기된 부동산 세제
다주택자 주택 처분하라더니 양도세 올려 퇴로 차단
임기 5년간 부동산 정책만 30여번 "땜질에 또 땜질"
세무사도 "상담 안 해요" 절레절레..국민은 우왕좌왕
"종부세는 2%에만 해당"..정부 앞장서 갈라치기까지
경기도에 사는 2주택자 A씨는 지난 2020년 부동산 보유세가 강화될 거란 이야기를 듣고 정부 의도대로 한 채를 팔기로 했다. 그런데 처분하려면 양도세를 2억원 넘게 내야 했다. A씨 사는 곳이 조정대상지역이자 투기과열지구에 속해서였다. 자녀에게 증여하는 게 낫겠다 싶어 세무사에게 의뢰했더니 “당분간 상담이 어렵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너무 자주 바뀌는 제도 탓에 실제 과세 금액이 상담 내용과 달라지는 일이 잦고, 그에 따른 고객 항의가 많다는 게 상담 거부의 이유였다. 결국 A씨는 2채를 계속 보유하는 길을 택했다. 그랬더니 2020년 69만원이던 종합부동산세가 2021년 406만원으로 6배가량 급등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달 13일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부동산시장 점검 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면서 “그간 정부는 ‘공급 확대, 실수요 보호, 투기 억제’라는 3대 원칙하에 부동산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해왔다”고 자화자찬했다. 홍 부총리는 “주택 거래 전(全) 단계에 걸쳐 시장 안정을 위한 세제를 구축했다”며 민심 악화와 정권 교체의 빌미를 제공한 부동산 세제를 ‘잘한 일’로 감쌌다. A씨처럼 정부 말을 따르려 했음에도 퇴로를 찾지 못한 국민이 수두룩한데 말이다.
문재인 정부는 2017년 출범할 때부터 다주택자 전체를 적폐 투기 세력으로 단정했다. 우리나라 집값 상승의 원인을 공급 부족이 아닌 부동산 투기로 확신하고 세금 폭탄을 마구 날렸다. 다주택·법인에 대한 취득세율 인상과 종합부동산세 중과 강화, 단기·다주택에 대한 양도소득세 중과 등이 잇따랐다. 그러나 지난 5년간 집값은 잡히지 않고 되레 수직 상승했다.
다급해진 정부는 땜질식 대응책을 30여 차례 쏟아냈다. 매년 바뀌는 세제에 ‘양포세(양도세를 포기한 세무사)’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임기응변식 손질에 누더기가 된 부동산 세제는 시장 안정은커녕 혼란과 불만만 초래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책 약발이 전혀 먹히지 않는 상황에서도 문 정부는 징벌적 부동산세를 고집하고 공시가 현실화를 무리하게 추진해 국민 고통을 키웠다.
◇ “집 파시라”면서 퇴로는 차단
내년 4월까지 시간을 드렸다. 사는 집이 아닌 집은 좀 파시라.
2017년 8월 4일, 김현미 당시 국토교통부 장관
2017년 8월 정권 출범 3개월 만에 8·2 부동산 대책을 발표하고, 김현미 당시 국토교통부 장관이 이 말을 할 때만 해도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 시장 안정화를 자신했다. 문 정부는 2014년 폐지됐던 양도세 중과를 8·2 대책에서 부활시켰다. 조정대상지역 2주택자는 기본 세율(6~45%)에 10%포인트(p), 3주택 이상 보유자는 20%p를 더 내는 게 골자였다. 적용 시기는 2018년 4월 1일부터였다. 김현미 전 장관이 “시간을 줄 때 파시라”며 국민을 압박한 이유다.
정부는 2020년 발표한 7·10 대책에서 다주택자 세 부담을 늘렸다. 4주택 이상 보유자에게만 적용해오던 취득세 중과세율 4%를 2주택 8%, 3주택 이상 12%로 세분화한 게 대표적이다. 또 다주택자 종부세 중과세율은 최고 6.0%까지 높였다. 이는 2019년 12·16 대책 당시 제시한 4.0%보다 높고, 당시 종부세 최고 세율인 3.2%와 비교해도 2배가량 높은 수치였다.
정부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양도세까지 강화하며 다주택자의 퇴로를 차단하는 정책 엇박자를 냈다. 양도세 중과세율을 2주택은 20%p, 3주택자 이상은 30%p로 각각 끌어올린 것이다. 그 결과 3주택 이상의 양도세율은 지방세를 합칠 경우 최고 82.5%까지 치솟는 일이 발생했다. A씨처럼 이도 저도 못할 상황이 된 다주택자들은 매물을 거두고 버티기에 돌입했다. 매물 감소에 집값은 더 가파르게 치솟았다. 세 부담이 세입자에게 전가되면서 매매 시장뿐 아니라 전·월세 시장까지 혼란에 빠졌다.
문 정부는 다주택자가 1주택자가 된 경우 1가구 1주택의 양도세 감면 혜택 기준도 종전 ‘취득 시점’에서 ‘1주택자가 된 시점’으로부터 2년으로 강화해 퇴로를 계속 좁혔다. 정부는 주택 보유자의 불만이 쌓이고 그 분노가 정권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지자 그제야 1주택자 부담 완화 위주의 땜질식 처방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1주택자인 직장인 김세환(47) 씨는 “이미 집값도 세금도 다 올라간 상태인데, 뒤늦게 세금 조금 깎아주면 효과를 보겠는가”라고 했다.
◇ 당·정·청 엇박자에 종부세로 국민 갈라치기까지
문 정부는 부동산 정책을 누더기로 만든 것도 모자라 의기투합해야 할 당·정·청이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면서 국민 혼란을 배로 만들었다. 문 정권의 부동산 정책 설계자인 김수현 전 청와대 사회수석은 2017년 8·2 대책을 비롯한 주요 부동산 관련 정책을 내놓으면서 “이 정부는 부동산 가격 문제에 대해서는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다주택자의 임대주택 사업자 등록을 유도하는 정책도 김 전 수석이 주도했다.
그런데 이후 서울 집값이 폭등하고 민심이 흔들리자 김현미 전 국토부 장관은 임대 사업자 신규 등록을 막으면서 사실상 이 제도를 폐지해 버렸다. 앞서 김 전 장관은 2017년 청와대 유튜브에 출연해서는 “다주택자는 임대 사업자로 등록하면 좋겠다”라며 김 전 수석과 같은 목소리를 낸 바 있다.
홍남기 부총리의 전임자인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는 2017년 “부동산 투기 억제를 위해 보유세를 인상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그러나 이후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압박하자 부랴부랴 종부세 인상안을 마련해 또 한 번 시장에 혼란을 줬다. 심지어 문 정부는 종부세를 국민 갈라치기에 활용하기도 했다. 작년 11월 국민 95만명에게 발송된 종부세 폭탄 고지서가 부정 여론을 키우자 청와대와 민주당, 정부는 입을 모아 “국민 2%만 내는 세금”이라고 해명했다.
문 정부가 부동산 투기 세력을 잡겠다며 강화한 세금은 지난해 60조원에 육박한 초과세수의 주요 원인이 되기도 했다. 기재부에 따르면 2021년 초과세수는 58조5000억원이다. 부동산 등 자산 가격 상승으로 양도세는 전년 대비 13조1000억원, 증여세는 1조6000억원 증가했다. 종부세는 2조5000억원 늘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정부의 잦은 부동산 과세 체계 변경이 세수 추계에 불확실성으로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시행하지도 않은 종부세와 양도세 부과 기준을 너무 빈번하게 바꾸는 바람에 세제당국이 세금이 얼마나 걷힐지 가늠하지 못하는 웃지 못할 일이 발생했다는 게 국회 예산정책처의 진단이다.
◇ “文정부 성급해서 실패…尹정부는 시장 신뢰 회복부터”
숱한 정책 땜질과 엇박자에도 문 정부가 자신한 대로 부동산 시장이 안정화했다면 다행일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국토부에 따르면 ‘국민 평형’으로 불리는 아파트 전용면적 84㎡의 가격이 10억원을 돌파한 시·군·구는 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13곳에서 지난해 68곳으로 5년 만에 5배 이상 늘었다. 같은 기간 10억원 넘는 가격으로 거래된 건수도 2711건에서 8789건으로 3.24배 증가했다.
매매 가격만 오른 게 아니다. 부동산정보업체 부동산R114에 따르면 2017년 5월부터 올해 3월까지 전국 아파트 전셋값은 평균 40.6% 상승했다. 특히 임대차법 시행 전 3년 2개월 동안 10.5% 상승했던 전셋값은 법 시행 후 1년 7개월 동안 27.3% 올랐다. 우병탁 신한은행 WM컨설팅센터 부동산팀장(세무사)은 “수요 억제로 가격을 잡을 수 있다고 오판한 게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실패한 원인”이라며 “좋은 의도로 시도한 제도라도 급하게 처리해선 안 되는데, 너무 급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점진적으로 보유세는 높게, 거래세는 낮게 가더라도 이것이 가격 안정을 전제로 진행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이를 위해서는 주택 공급에 대한 지속적인 신호와 신뢰가 전제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우병탁 팀장은 “윤석열 당선인의 공약인 재산세·종부세 통합이나 공시가 현실화 등도 여러 의견을 충분히 들은 다음 적정 수준을 잡아가야 한다”며 “양도세 역시 규제 과정에서 나타난 복잡한 체계를 단순화하는 방향으로 가되 장기적 관점에서 차분히 접근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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