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킹 천국 해남] 달마야 걷자, 땅끝까지!

글 손수원 기자 2022. 4. 22. 10:14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남파랑길 90코스
미황사~도솔암~땅끝전망대 잇는 15km 중거리 트레킹
달마산 기암괴석 사이, 새의 둥지처럼 내려앉은 도솔암. 속세에서 벗어난 듯 한적한 분위기다. 뒤쪽의 육지는 완도군.
한반도의 끝, 해남. 숨도 쉬지 못할 만큼 바쁜 일상과 코로나로 만신창이가 된 몸과 마음에 휴식이 절실한 순간, 땅끝 고장이 숨겨놓은 비밀스러운 길이 드러나면 나만의 한가로운 산책이 시작된다. 몸과 마음에 작은 쉼표 하나를 만들기 위해 새벽부터 해남 달마산으로 내달렸다.
달마산達摩山(489m) 서쪽 바로 아래 천년고찰 미황사가 있다. 과거에는 미황사가 대흥사에 버금가는 큰 절이었다. 그러나 정유재란 때 명량대첩에서 패한 왜군들이 달마산으로 숨어들면서 사찰의 기세가 기울어 1970년대까지는 대웅전과 명부전 등 4~5개 건물만 남아 있을 정도였다.
현재 미황사는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템플스테이로 이름을 날릴 만큼 큰 절로 바뀌었다. 그 변화의 중심에는 금강스님이 있다. 스님은 2001년 미황사 주지로 부임해 2021년 2월 절을 떠나기 전까지 산사음악회를 열어서 여행객과 지역주민이 절에 모이는 계기를 만들었고, 템플스테이와 한문서당을 열어 전국에서 사람을 모이게 했다. 가을이면 고려 탱화를 대중에게 선보이는 괘불재掛佛齋를 열기도 했다. 그리고 2017년, 오로지 사람의 힘으로 달마산 아래 오솔길을 닦고 연결해 ‘달마고도達摩古道’라는 명품 길을 만들었다.
달마산 바위능선을 병품 삼은 미황사 부도암.
달마산 둘레를 걷는 ‘달마고도’
“오늘 걸을 길은 달마고도 4코스와 천년숲 옛길을 이은 코스예요. 이 길은 국토순례길이기도 하고, 산자락길이자 남파랑길 90코스이기도 하지요. 그만큼 해남은 물론, 전라도, 대한민국에서 손꼽는 트레킹 코스란 말이겠지요.”
해남군 김옥희 트레킹 가이드는 “코로나가 한창일 때도 이 길을 걷기 위해 꽤 많은 여행객이 방문했다”고 말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언택트 여행’이 부각되면서 오히려 한적한 해남의 걷기길이 더 인기를 끌었다는 것이다.
미황사 대웅전은 한창 해체공사 중이다. 올해 1월부터 공사가 시작되었는데, 말 그대로 대웅전을 일일이 해체한 뒤 원래 모습 그대로 복원하는 대공사다. 완전 복원까지 최소 3년이 걸릴 예정이라니 지난해 미리 봐둔 것이 다행스럽다.
사천왕문에서 곧장 달마고도 4코스로 향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오늘 코스는 4코스를 역행해 3코스 종점이자 4코스 시작점으로 가는 셈이다. 잠시 숲길을 걸으니 왼쪽에 부도암과 부도전이 있다. 이 부도浮圖들은 조선 후기에 조성한 것으로, 소요대사의 제자들인 설봉당, 벽하당, 정암당 등의 부도들이다. 부도암 뒤편으로 우뚝 선 달마산 바위능선은 ‘병풍을 두른 듯’이란 표현이 그 어느 곳보다 잘 어울리는 그림 같은 풍광이다.
3월 중순, 해남 달마고도에 봄이 깃들고 있었다.
다시 달마고도에 발을 들인다. 달마고도 4개 코스에는 각각 별칭이 있다. 1코스는 ‘출가의 길’, 2코스는 ‘수행의 길’, 3코스는 ‘고행의 길’, 4코스는 ‘해탈의 길’이다. 지난해 ‘출가의 길’을 걷고 난 후 수행과 고행을 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해탈의 길에 들어서도 되나 싶다. 하긴 해탈의 길을 거꾸로 거슬러 걷는 셈이니, 하루 반나절 고행의 걷기를 마치고 나면 저녁 즈음엔 미천한 체력 상태를 깨달아 다시 수행의 마음이 생길지도 모를 일이다.
푹신한 숲길을 조금 걸으니 너덜겅지대가 나타난다. 오랜 세월 달마산 바위가 깨지고 떨어져 산허리에 그대로 자리를 잡았다. 사람이 쉽게 지나지 못할 곳이었으나 사람의 힘만으로 돌을 덜어내고 끼워 맞춰 기어코 길을 내었다.
“달마고도 너덜겅 중에서는 여기가 제일 멋있는 곳이 아닌가 싶어요. 뒤에는 돌산, 앞으로는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니까요.”
제주 사려니숲을 연상케 하는 달마고도의 삼나무숲.
해남산악연맹 김윤종 산행대장은 “해남의 산들은 멋진 바위 능선에 올라 바다를 바라보는 재미가 있다”고 말했다.
너덜겅을 이루는 돌은 규암硅岩이다. 규암엔 철분 성분이 많아 돌에도 녹이 슨다. 돌 곳곳에 주황색으로 녹슨 모습이 모진 세월 이겨낸 우리네 할아버지·할머니 얼굴에 핀 검버섯 같다.
불교에서 길을 걸으며 수행하는 것을 ‘포행布行’이라 한다. 일개 범인凡人에 불과한 나 같은 사람이 아무리 길을 걷는다고 진리를 깨달을 수 있을까 싶지만, 적어도 이런 모습을 보며 나 자신이 미천한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은 알게 한다.
다시 숲길에 들어서니 곳곳에서 빨간 동백꽃이 자그마하게 봉오리를 틔워 내고 있다. 아직은 너무 어려 사진에 담기에도 민망한 크기지만 봄소식을 가지고 왔다는 것만으로도 ‘세젤귀(세상 제일 귀엽다)’다.
도솔암에서 내려와 몰고리재로 향하는 길. 달마산의 1만 불상이 일행을 지켜주는 듯하다.
절벽 위의 아늑한 새집 같은 도솔암
길 왼쪽으로 도솔암 오르는 길이 나오는데, 첫 번째 나오는 이정표는 능선으로 치고 올라가는 길이다. 우리는 다음 삼나무 숲을 지나 나오는 삼거리에서 도솔암으로 오르기로 한다. 도솔암 가는 최단코스이기도 하고 오랜만에 이국적인 삼나무 숲을 구경하고 싶었다.
“달마고도 길은 이렇게 다양한 모습을 보여 주어서 더 매력적인 것 같아요. 방금까지만 해도 너덜겅 길이었다가 동백 숲이었다가 또 삼나무숲길로 변신하고…. 보는 재미가 있으니 길게 걸어도 지루하지 않아요.”
전국의 산을 즐겨 다니는 김옥희 트레킹 가이드에게도 달마고도는 ‘최애(최고 사랑하는)’ 트레킹 코스란다.
1 이정표 구실을 하는 달마고도 이정표. 2 몰고리재 지나 땅끝기맥을 걷는다. 왼쪽으로 백일도와 동화도가 내려앉았다.
햇빛이 쨍쨍한 날이었으나 키 큰 삼나무 아래는 어두컴컴한 저녁 분위기다. 새소리 하나 없는 이 길에 들리는 것은 흙을 밟아 사부작거리는 우리의 발걸음 소리뿐이다. 삼나무 아래에서 삼다수로 목을 축이니 제주 사려니 숲길에 와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제 도솔암까지 치고 오를 차례, 등산화 끈을 조여 맨다. 거리는 250여 m밖에 되지 않지만 눈앞에 정면으로 길이 마주보일 만큼 경사가 급하다. 이제까지 호사를 누렸으니 땀 좀 빼라는 달마대사의 뜻인가보다.
20여 분을 헉헉대며 오르자 왼쪽 벼랑 위에 작은 암자의 지붕이 보인다. 삼성각을 지나 왼쪽으로 조금 더 올라 도솔암에 도착한다. 이렇게 바람이 세찬 곳에서도 도솔암만은 절벽 위에 만든 새집에 든 것처럼 아늑하고 고요하다. 그러나 돌로 쌓은 담 너머로는 광활한 바다가 펼쳐진다. 알을 깨고 나와 앞으로 날개를 펼치고 나아갈 세상과 처음 마주하는 새끼 새의 기분이 이럴까 싶다.
지난해에 이어 오늘도 도솔암 내 세 분의 부처께 삼배를 드린다. ‘삼재三災에 든 해니 부디 무탈하게 지나가게 해달라’고 빌었다. 달마산 바위가 1만 불상이니 절 세 번만 해도 삼만 배를 한 셈이다.
다시 급경사길을 내려와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길을 잇는다. 편백나무 숲을 지나 도솔암주차장으로 오르는 콘크리트 임도를 건너면 이내 몰고리재다. 여기에서 달마고도는 끝이 난다. 이제 천년숲옛길을 따른다.
“산꾼들은 땅끝기맥 종주를 하지요. 호남정맥 바람재에서 갈라져 나와 땅끝마을까지 이어져요. 지금부터 우리가 걸을 곳이 이 기맥의 마지막 구간입니다.”
달마고도의 볼거리인 너덜겅지대. 사람의 힘만으로 길을 닦았다.
세상 멋진 땅끝의 일몰
기맥 능선답게 달마고도의 평온함보다는 다소 거칠다. 작은 봉우리를 올랐다 내렸다를 반복한다. 채찍을 주면 당근도 줘야 하는 법, 길 양쪽으로 바다가 펼쳐지고 오른쪽으로는 진도 땅이, 왼쪽으로는 완도 땅이 한눈에 들어온다.
길지만 지루하지만은 않은 기맥 능선을 따르다 보니 드디어 사자봉 땅끝전망대다. 다행히 해질 시간에 맞춰 도착해 멋진 일몰을 기다린다. 바로 앞 양도와 어룡도, 그리고 저 멀리 진도와 하조도 위로 오늘 하루를 빛나게 해준 태양이 서서히 저문다. 바다에 물든 붉은 노을이 장관이다.
사자봉 땅끝전망대의 일몰.

해가 바다 밑으로 가라앉고, 주위가 어두컴컴해졌다. 이제부터는 달과 풀벌레들이 길의 주인공이다. 사자봉에서 내려오는 동안 길 옆에 있는 작은 숲에서 온갖 작은 생물들이 대화를 나눈다. 봄을 준비하는, 그 알아들을 수 없는 분주한 대화를 마음으로 들으며 그들에게 일상을 넘긴다.

산행길잡이
미황사에서 출발해 몰고리재까지는 달마고도 4코스(약 5km)를 걷는다. 거의 평평한 숲길이며 중간에 달마산 바위가 깨져 내려온 너덜겅지대도 한 번 지난다. 능선을 경유해 도솔암으로 가는 이정표를 지나고 삼나무숲을 지나면 왼쪽으로 도솔암 오르는 길이 있다. 거리는 250m 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경사가 매우 가팔라 만만치 않다.
도솔암에서 다시 왔던 길을 내려와 달마고도를 이어도 되지만, 가파른 내리막길이 부담스럽다면 도솔암 주차장으로 가서 시멘트 임도를 따라 내려와도 된다. 어차피 몰고리재로 가는 길과 만난다.
시멘트 임도를 건너 조금만 가면 몰고리재다. 스탬프 찍는 함과 이정표들이 있다. 땅끝마을 방향으로 계속 길을 이으면 바다의 풍광이 눈에 들어온다.
곳곳에 남파랑길. 천년숲옛길 이정표와 표지기가 설치되어 있고 길이 잘 나 있어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큰 묘가 있는 곳을 지나 작은 임도를 건너 두세 개 정도의 산을 넘으면 멀리 땅끝전망대가 보인다.
도로를 가로지르는 구름다리를 건너 땅끝호텔 옆으로 길을 이으면 나무데크계단이 나오고 이어 땅끝전망대에 닿는다. 땅끝탑까지는 약 800m. 현재 탑 주변 공사로 어수선하다. 모노레일도 정비 중이므로 운행하지 않고 있으니 방문 전에 확인할 것.
문의 061-530-5544.
교통
해남종합버스터미널에서 미황사까지 하루 2회(11:15, 14:05) 버스가 다닌다. 문의 해남교통 061-533-8826.
택시를 타면 5만 원 이상 나온다. 땅끝마을에서 되돌아오는 교통편도 불편하므로 자차를 이용하는 것이 편하다. 수도권이라면 KTX나 SRT 등 기차를 타고 광주나 목포 등 대도시에 내려 렌터카를 이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숙식
해남읍과 두륜산 근처, 땅끝마을에 묵을 만한 숙소와 식당이 많다. 두륜산 쪽에는 산채요리와 닭백숙, 땅끝마을에선 해물요리를 맛볼 수 있다. 해남읍내에선 국향정(532-8922)의 백반, 용궁해물탕(535-5161)의 해물탕 등이 유명하다.

본 기사는 월간산 2022년 4월호에 수록된 기사입니다.

- Copyright ⓒ 조선일보 & Chosun.com -

Copyright © 월간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