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강원도 의사입니다] 시골 주민의 '건강지킴이' 26년, 푸른 바다처럼 보람 넘실

최훈 2022. 4. 21.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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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에서 가장 빨리 만날 수 있는 동해바다.

오랜 세월, 백두대간의 준령에 가로막힌 영동지역, 특히 철광석 등 자연자원이 풍부한 양양은 일제시대에는 각종 자원을 수탈당한 쓰디 쓴 역사를 안고 있다.

양양연세의원 이기영(62) 원장이 불혹의 나이를 바라보며 뒤늦게 정착한 양양은 1996년 개원 당시만 해도 동해안에서도 그리 주목받지 못했던 작은 도시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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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양양연세의원 이기영 원장
1996년 개원 초부터 북새통
26년간 하루 평균 100명 진료
양양주민 모두가 10번 찾은 셈
이상 징후 발견 환자 전원 후
완치하고 "고맙다" 한마디 감사
최근 진료시간 줄어들었지만
환자 한명 한명 집중할 수 있어
▲ 26년간 양양주민들의 건강지킴이가 되어 온 양양연세의원 이기영 원장.

수도권에서 가장 빨리 만날 수 있는 동해바다. 푸른 바다 위에 그림같이 정박해 있는 멋진 요트. 젊은이들이라면 누구라도 열광하는 서핑. 모두 ‘강원도 양양’을 대표하는 말들이다. 하지만 ‘동해안의 하와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한껏 주가를 올리고 있는 양양이 이렇게 유명세를 타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오랜 세월, 백두대간의 준령에 가로막힌 영동지역, 특히 철광석 등 자연자원이 풍부한 양양은 일제시대에는 각종 자원을 수탈당한 쓰디 쓴 역사를 안고 있다. 여기에 38선이라는 분단의 상흔으로, ‘양양’이라는 도시의 모습은 좀처럼 변하지 않은채 오랜 시간을 지나왔다. 양양연세의원 이기영(62) 원장이 불혹의 나이를 바라보며 뒤늦게 정착한 양양은 1996년 개원 당시만 해도 동해안에서도 그리 주목받지 못했던 작은 도시에 불과했다.

#초교 시절부터 강원도와 인연

충북 충주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다닐 무렵부터 부모님을 따라 강원도와 인연을 맺으며, 인제 신남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이 원장은 어려운 집안형편과 대학진로에 대한 고민으로 남들보다 2년이나 늦게 춘천서 고등학교를 마쳤다. “고등학교 2학년때 어머니가 암으로 고통받다가 별세하시는 모습을 지켜보며 의대 진학을 결심했습니다.” 이 원장은 대학에 진학한 후에도 학비 마련이 여의치 않아 공중보건장학의사제도를 통해 학업을 이어갔다. 몇해 전 다시 부활한 공중보건장학의는 졸업후 자신이 지원받은 햇수 만큼 공공보건의료업무에 종사하는 것을 조건으로 의대생과 간호학과 학생에게 일정금액의 등록금과 생활비를 지원하는 제도이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1977년부터 1996년까지 20년간 유지됐던 공중보건장학제도를 통해 의사 768명, 치과의사 50명, 간호사 643명 등 모두 1461명을 배출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이 원장이 바로 그 768명의 의사 가운데 한명이다.

▲ 이기영 원장이 환자 진료를 하며 증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빛바랜 도시 이미지 양양 정착

공중보건장학제도를 통해 8년만에 대학을 마친 이 원장은 졸업 후 강릉에서 5년 동안 공공보건의료업무기간을 마쳤으며 이후 군복무를 대체하기 위해 또다시 3년간 양구에서 공중보건의로 근무했다. 공중보건의로 근무하면서도 지병을 앓고 있는 막냇동생의 병원비까지 감당해야 했기에 주말이나 시간이 날 때마다 춘천에 있는 대형병원에서 당직을 서는 등 이 원장의 젊은시절은 학업과 일로 점철됐다. 공공보건의와 공중보건의 등 의무복무기간을 마친 이 원장이 개업을 바라볼 수 있을 때는 이미 그의 나이가 30대 중반을 훌쩍 넘어서였다. 개원을 위해 어린시절을 보냈던 인제, 고등학교를 다닌 춘천을 비롯, 고성부터 동해, 삼척까지 동해안 일대를 두루 누빈 이 원장은 비록 교통이 좋지 않고 다소 낙후한 느낌까지 들었지만 양양이 눈에 들어왔다고 한다. 아마도 빛바랜 듯한 도시 이미지가 뒤늦게 정착해 새로운 삶을 개척해야 하는 이 원장에게는 의사로서 희망과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곳으로 비쳤으리라.

# 26년간 한결같이 환자 진료

당초 우려와 달리 개원하자마자 병원은 진료받기 위한 환자들로 넘쳤다고 한다. 수백년간 명맥을 이어오며 영북지역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양양전통시장 안에 위치했던 2층 병원에는 평일에도 진료시간 전부터 아래층까지 환자들이 줄서서 기다리기 일쑤였고, 장날이면 말 그대로 장터 분위기와 어우러져 그야말로 ‘북새통’을 이뤘다. 여기에 인근 도시 강릉, 속초를 연결하는 국도 7호선도 교통시설물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2차선이어서 교통사고 환자까지 밀려들며 앰뷸런스는 쉴 틈이 없었고, 입원실도 순번을 기다려야 할 정도로 환자들이 줄을 이었다. 대부분의 군단위 농촌지역 도시가 그렇듯 입원실 하나 없는 현재와 비교할 때 상상이 가지 않는 풍경이다. 옛 양양문화원으로 사용되던 건물을 인수해 병원을 옮기며 현재에 이르기까지 26년간 하루평균 100명 가량의 환자를 진료했다고 하니 이를 줄잡아 계산하면 양양주민 모두가 10번 정도는 이 원장에게 진료를 받은 셈이다.

# 오늘도 찾아오는 주민에 미소

시골 의사로서 보람을 묻는 질문에 이 원장은 “그리 특별할 건 없습니다. 다만 아주 작고, 쉽게 놓칠 수 있었지만 이상징후를 발견해 큰 병원으로 보내 완치된 환자가 찾아와 ‘고맙다’는 인사를 전할 때 소소하지만 가장 큰 보람을 느낍니다”라고 답한다. 반면 고통을 참고 지내다 치료시기를 놓친 환자가 찾아오거나 시내로 나오는 길에 늘 처방전을 받아 약을 타가던 노령의 환자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뒤늦게 접할 때가 가장 안타깝고 마음이 무겁다고 털어놓는다.

이제 환갑의 나이를 지난 이 원장은 최근들어 진료시간을 조금씩 줄여가고 있다. 매일 장시간 진료가 체력에 무리도 되지만 무엇보다 환자 한명 한명에게 집중하기 위해서다. “병원을 찾는 사람들은 누구나 의사의 손길이 필요합니다. 환자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정성으로 돌볼 때 비로소 환자의 ‘마음의 병’까지 치료할 수 있지 않을까요?” 주민들의 ‘건강지킴이’이자 시골의사로서의 삶에 자부심과 보람을 느끼고 있는 양양연세의원 이기영 원장과 간호사들은 오늘도 병원을 찾는 주민들을 따뜻한 미소로 맞는다.

최훈 choihoon@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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