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타는 데 2분, 사방에선 경적이

이정규 기자 2022. 4. 12.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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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이틀간 휠체어 장애인 김민정씨와 동행한 장애인 콜택시·버스·지하철·보행로
2022년 4월5일 오후 뇌병변장애 2급인 김민정(36)씨가 서울 지하철 1호선 시청역 역사 안을 전동휠체어를 타고 지나가고 있다.

지하철 문이 열렸다. “발 조심하세요~!” 크고 밝은 목소리로 민정씨가 외쳤다. 기자와 직원이 양쪽에서 발판이 튀어오르지 않게 발로 꾹 눌렀다. ‘덜커덩’ 시동 걸린 전동휠체어가 열차 안으로 들어갔다.

시청역에서는 100% 빠져요

‘승차시 발 빠짐에 주의하세요.’ 안내 방송이 알려주는 승강장과 열차 사이의 새카만 틈새. 뇌병변장애 2급인 김민정(36)씨는 한때 그 틈이 무서웠다. 전동휠체어 앞바퀴가 틈에 빠진 경험 때문이다. 장애인 일자리사업의 지원을 받는 권익옹호 활동가로 일하기 시작한 뒤에는 용기를 냈다. 조금이라도 걱정되면 이동식 안전발판 서비스를 역 직원에게 요구하게 됐다. 2022년 4월5일 저녁 7시14분, 서울 지하철 1호선 시청역에서 집회를 마치고 서울 종로구 숭인동 집 근처 신설동역으로 돌아가는 길. 민정씨가 안전발판을 요구하는 전화를 걸었다. 직원이 오기까지 열차 두 대가 지나갔다. 7시20분께 세 번째 열차가 도착하니 발판이 깔렸다.

열차 도착 뒤 10초가 지나자 문이 닫히기 시작했다. 열차에서 승객이 다 내리길 기다렸고, 발판 위로 전동휠체어가 지나갔고, 이제 막 발판을 접으려던 때였다. 반으로 접힌 발판이 문 사이에 끼어버렸다. 뒤늦게 경고음이 울렸다. 민정씨는 빙긋 웃으며 차분히 설명했다. “시청역은 단차(열차와 승강장의 높이 차이)가 크고 틈이 넓기도 하잖아요. 그땐 앞바퀴가 100% 빠져요. 빠지면 (휠체어를) 잘 못 빼요.”

민정씨가 탄 전동휠체어 무게는 150㎏ 안팎이다. 몸무게를 포함하면 200㎏을 훌쩍 넘어간다. 열차와 승강장 문틈에 전동휠체어 앞바퀴가 끼면 빼내기 어려운 이유다. “바퀴가 틈새에 빠지면 승객들이 도와주곤 했어요.” 가끔씩 용기를 더 내서 이동식 안전발판 없이 열차에 오르곤 했다. 가속도를 붙여 전동휠체어를 몰아봤지만 앞바퀴가 틈새에 걸렸다. 문은 닫혔고 몸이 몇 번 끼였다. 문틈에 고무패킹이 있어 아프진 않았다. 그보다 열차가 출발하지 못해 받는 비난이 더 난감했다. “겁나죠. 열차가 출발을 못하니까요. 발판을 붙이는 데 시간이 걸릴 때도 있어요. 왜 빨리 안 타냐는 말을 들어요.”

운송수단 숫자만 보면 언뜻 서울의 장애인 이동권은 잘 보장된 듯 보인다. 장애인 콜택시는 서울시에서 740대 운행 중이다. 지하철역 엘리베이터 설치율은 92.3%다(2021년 기준). 서울시 저상버스 보급률은 57.8%다(2020년 기준). 숫자를 세어도 장애인과 함께 걸어야 보이는 숫자가 있다. 이 숫자를 확인하기 위해 4월5일과 6일, 이틀 동안 민정씨를 따라 장애인 콜택시, 지하철, 저상버스를 함께 타고 서울시 곳곳을 이동해봤다. 민정씨는 4월5일 장애인콜택시를 타고 시청역으로 향했다가 지하철로 귀가했으며, 4월6일에는 저상버스를 타고 여의도 국회의사당을 향했다가 여의도공원 인근 버스정류장에서 저상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장애인과 걸어야 보이는 숫자들

4월5일 오후 1시, 활동지원사 이아무개씨가 민정씨 집에서 휠체어 옆에 서서 기자를 기다렸다. 이씨는 민정씨가 샤워하고 옷을 입고 외출 준비물을 챙기는 일을 돕는다. 외출 준비시간은 1시간30분 남짓 걸린다. “저는 손발이 된다고 보면 돼요. 모든 걸 다 함께 해요.” 활동지원사 이씨가 말했다. 이동도 항상 함께 한다. 전동휠체어라도 혼자 힘으로 이동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4평 남짓한 민정씨 오피스텔 현관에는 문턱이 없다. 전동휠체어를 타고 이불이 깔린 방 앞까지 이동한다.

여러 교통수단 가운데 중증장애인은 ‘장애인 콜택시’(장콜)를 가장 선호한다. 장콜은 장애 정도가 심한 장애인이 쓰는 특별교통수단이다. 전동휠체어 한 대가 뒷좌석과 트렁크 공간에 넉넉하게 들어가도록 대형 스포츠실용차(SUV)를 개조해 장애인 콜택시로 만들었다. 서울시 기준으로 기본요금은 5㎞까지 1500원, 10㎞까지 2900원이다. 장점이 많지만 단점은 명확하다. 예측 불가능한 긴 대기시간이다. ‘장애인 콜택시 전국 통합체계 마련을 위한 연구’(2020년)를 보면, 콜택시를 부르고 나서 1회 평균 대기하는 시간이 약 48분으로 조사됐다.

민정씨도 이날 약속시간이 오후 3시인데 서둘러 1시10분에 장콜을 신청했다. 숭인동에서 시청역까지 차를 타면 대략 20∼30분이 걸린다. 이날은 운좋게 신청 10분 뒤 장애인 콜택시가 도착했다. 콜택시 트렁크 문이 열리자 경사로가 내려왔다. “손님들이 너무 기다리긴 하죠. 3시간까지 기다린 분이 콜에 걸릴 때도 있어요. 만나서 ‘죄송합니다. 오래 기다리셨죠. 벨트 매드릴까요’라고 말해드려요.” 콜택시 운전기사가 전한 말이다.

장콜은 지방정부별로 각각 운영된다. 이 때문에 서울에서 출발한 장콜은 경기도 고양시까지는 가지만 파주시까지는 운행하지 않는다. 경기도에 도착해서 다시 집으로 오려면 서울시의 장콜을 경기도까지 부를 수 없다. 장콜을 더 넓은 광역단위로 통합 운영해달라는 요구가 잇따르는 이유다.

콜택시를 타고 이날의 목적지인 시청역 9번 출구에 오후 1시53분 도착했다. 운전기사는 턱이 없는 인도까지 최대한 가까이 차를 댔다. 문제는 도착한 뒤였다. 약속시간보다 1시간이나 일찍 온 탓이다. 만나기로 한 동료들이 보이지 않았다. “우리가 너무 빨리 왔어요. 사실 이게 일상이에요. 택시가 늦게 잡힐 수도 있어 서둘렀거든요.” 시청역 1호선과 2호선 환승구간에서 민정씨는 사람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오후 2시20분에 1명, 약속시간인 오후 3시께 7명, 오후 3시40분이 넘어가자 20명 가까운 장애인 활동가가 모였다. “민정 쌤, 왜 이렇게 빨리 왔어요?” 동료들이 물었다. 장콜이 빨리 잡힌 일이 이야깃거리가 됐다. 오후 4시가 되자 ‘서울시 휠체어리프트 추락 사망사고 책임 공식사과’ 회견이 열렸다.

지하철역 리프트 이용 실태를 살펴보기 위해 4월6일 오후에는 지체장애인 최동훈씨와 이동했다. 신당역 6호선에서 2호선으로 환승하는 구간을 따라 걸었다. 계단을 오르내리며 리프트를 모두 3번 이용했다. 비장애인이 에스컬레이터를 타면 3분이면 될 거리인데, 리프트를 타고는 20분 넘게 걸렸다. 리프트 조작기에는 ‘직원 출동 시간이 약 7분 정도 걸린다’고 적혀 있었다. “최…악…이…야.” 한 음절 한 음절 입을 떼며 동훈씨가 말했다. 이정규 기자

손수 안전벨트를 매준 운전기사

민정씨는 시청역 안에 설치된 노란 텐트 옆에서 마이크를 쥐고 예정에 없던 발언을 했다. 그는 무서워서 지하철 리프트를 이용하지 못한다. “리프트가 멈추면 눈물 고여요. (한 번이라도) 멈추면 (그 뒤엔) 겁나서라도 못 탑니다. (틈새가) 넓을 때는 이동식 발판 없이는 (열차에서) 못 내립니다. 빨리빨리 내리라고 화내시는 분이 많은데 그럴 때마다 속이 타들어갑니다.” 그는 숨을 참고 말을 이어갔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직접 경험해보시든가요. 저희도 한 나라의 시민이고 국민입니다. 무시하지 마시고 한 사람으로 받아주길 바라요.”

4월6일 민정씨는 집에서 국회의사당까지 저상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국회 앞에서 열리는 평등법 제정 집회에 참석하는 일정이었다. 약속시간인 오전 11시보다 6분 늦었다. 오전 9시40분에 집을 나섰지만 첫 저상버스가 지나가버려서다. 휠체어에 앉은 민정씨를 본 운전기사는 다음 버스를 타라고 말했다. “거부만 안 했어도 정각에 도착했을 텐데 거부당하니 기분이 안 좋죠.” 다음 저상버스 기사는 친절했다. 버스에 내려서 인사했다. 민정씨에게 다가가 손수 안전벨트도 매줬다. 활동지원사 이씨는 “드문 일”이라며 손바닥에 인적사항을 적었다. “불친절한 기사님 만나면 민원은 안 넣지만 친절한 기사님 칭찬은 해드려야죠. 그래야 친절한 분이 많아질 테니.” 이씨는 이날 버스 회사에 고맙다는 전화를 걸었다.

집회 뒤 민정씨와 여의도공원을 산책했다. 인근 정류장에서 오후 2시께 저상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가는 민정씨와 동행했다. 저상버스가 오자 활동지원사 이씨가 미리 나가 대기했다. “휠체어 타요.” 버스 뒷문이 열리며 경사로가 내려왔다. 이씨가 먼저 버스에 올라타 의자를 접어 공간을 확보했다. 민정씨 탑승이 끝날 때까지 2분 남짓 걸렸다. 뒤에서 기다리던 버스들이 경적 소리를 냈다. 50분가량 버스를 타고 가서 하차할 때에도 1분가량 걸렸다. 또 경적 소리가 울렸다. 뒤 버스기사에게 다가가 이유를 물었다. “안 가고 있으니까요!” 휠체어 장애인이 내리는 모습을 봤냐며 다시 물었다. 그는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아저씨가 뭔데 시비예요!”

지하철에서 내린 뒤에 집까지 가는 길도 쉽지 않았다. 전날인 4월5일 저녁 7시30분, 6호선 동묘앞역사를 빠져나와 집까지 가고자 20분을 걸었다. 한 정거장 지나 신설동역에서 내리면 집까지 비장애인은 3분 정도 걸리지만, 횡단보도를 여러 차례 건너야 하다보니 미리 동묘앞역에서 내리곤 한다. 동묘앞역에 이동식 안전발판 서비스를 신청했을 때 발판을 설치하러 나온 직원은 발로 발판을 눌러주지 않았다. 휠체어가 지나가자 발판이 빙그르르 돌아갔다.

“괜찮아요” “고맙습니다” 그리고 “…”

민정씨가 자주 쓰는 말이 있다. 일상을 함께하는 활동지원사에게는 “괜찮아요”, 자신을 도와주는 낯선 시민에게는 “고맙습니다”. 화나는 일이 있을 땐 입을 잘 열지 않는다. 4월6일 오후 2시, 저상버스에서 내린 민정씨 집 앞까지 따라갔다. 오피스텔 1층에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민정씨가 먼저 탔다. 함께 기다리던 남성이 “아이 씨” 소리를 내며 커다란 배낭을 메고 밀치듯 들어왔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정적이 흘렀다. 집 앞에 도착해서 괜찮냐고 물었다. “제가 아무 말 하지 않으면… 알잖아요.”

글 이정규 기자 jk@hani.co.kr

사진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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