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갖고 공시가격 믿겠나" 실거래 1건, 층·동 무시하고 1490세대에 일괄적용?
실거래 47건 중에 딱 한 건 골라잡아 단지전체에 적용
저고층 층별 효용비율도 마구잡이..새 정부서 공시가격 대수술
현 정부에서 공동주택 공시가격이 충분한 실거래가 데이터 분석 없이 깜깜이로 산정돼온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연간 실거래가 47건이나 있었는데도 임의로 1건을 선택해 1000세대가 넘는 단지 전체에 일괄 적용한 극단적 사례도 발견됐다. 지난 5년간 전국 공동주택 공시가격이 70% 오르며 징벌적 과세가 이뤄졌지만 과표 기준인 공시가격이 엉터리로 산정된 것으로 드러나면서 윤석열 정부에서는 공시가격 대수술이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경제가 입수한 한국감정평가학회의 ‘부동산가격 공시제도의 문제점과 대안모델 연구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 서초구 ‘반포미도1차’ 아파트의 2020년 12월 28일 실거래(7층, 22억 원) 1건이 이 단지 1260세대 전체의 2021년도 공시가격 산정의 참고자료로 활용됐다. 이 단지는 전년도인 2020년 총 47건의 실거래가 이뤄졌지만 공시가격 산정 과정에서는 12월 말의 1건만 임의로 선택됐다. 공시가격을 산정할 때는 정확성을 위해 산정 대상과 가장 유사한 층과 동의 주택 실거래를 찾아 적용하는 것이 원칙이다.
같은 구의 반포동 AID차관주택(반포3주구·1490세대)이나 잠원한신아파트(540세대), LH서초3단지(790세대) 역시 실거래 1건이 단지 전체 세대의 공시가격 산정 참고자료로 일괄 적용됐다. 또 저층과 최고층은 상대적으로 실거래가격이 낮다는 점을 고려해 공시가격 산정 시 활용하는 층별효용비율도 기준이 제각각인 사례가 있었다. 2022년 표준주택 공시가격을 가장 최신인 2020년의 실거래가격 대신 2019년 것을 참고한 사례도 확인됐다.
이번 연구를 진행한 정수연 한국감정평가학회장(제주대 교수)은 “담당 부처인 국토교통부와 권한을 위임받은 한국부동산원(구 한국감정원)은 납세자 권익 보호를 위해 공시가격 비준표와 참고 데이터 등을 투명하게 공개할 필요가 있다”며 “새 정부는 세분화되는 부동산 시장에 맞춰 표준 부동산의 수를 늘리고 지자체에 공시가격검증센터를 설치하는 노력 등으로 신뢰를 회복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동층 무시한 마구잡이 空시가...새 정부는 산정근거 밝힌다
[징벌적 과세의 민낯]
출범직후 부동산세제 TF 가동
인수위 조세원리에 맞춰서 개편
부동산원 검증에 지자체 참여등
깜깜이 조사 시스템 대대적 손질
공시가 현실화 계획 재수립도 추진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부동산 공시가격 변동에 따라 영향을 받는 분야는 조세·부담금·복지 등 5개 분야, 총 63개 사업에 달한다. 그만큼 정확하고 투명하게 산정돼야 하지만 현 정부에서는 공시가격 산정 기준을 공개하지 않고 깜깜이로 진행해 비판을 받아왔다. 특히 서울경제가 단독 입수한 한국감정평가학회의 ‘부동산가격 공시제도의 문제점과 대안모델’ 보고서에 따르면 고가 공동주택이 몰려 있는 서울 서초구에서 1건의 실거래가를 1000세대가 넘는 전체 단지의 공시가격 참고 자료로 일괄 적용한 사례가 다수 발견됐다.
이에 따라 차기 정부는 부동산 세제 개선을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공시가격 제도를 원점에서 검토하고 개편할 예정이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7일 새 정부 출범 직후 부동산 세제 TF를 가동한다고 발표했다. 김기흥 인수위 부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부동산 세제를 시장 관리 목적이 아닌 조세 원리에 맞게 개편하겠다는 일관된 입장”이라며 “인수위가 부동산 세제 전반을 들여다보고 있다”고 말했다. 김 부대변인은 특히 공시가격 재편에 대해 “세금뿐 아니라 건강보험료, 기초생활수급자 선정 등 복지 체계 전반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다각도로 접근할 문제”라며 “입법적 방안과 함께 여러 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재산세·종합부동산세 등 보유세의 과세표준이 되는 공시가격의 대대적 수술이 예상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공시가격 현실화를 내세워 해마다 높여왔던 공정시장가액비율 조정을 비롯해 공시가격을 조사·산정하는 시스템 전반을 개선하는 개편안이 마련될 것으로 전망된다. 인수위는 우선 공시가격 산정의 근거를 투명하게 공개해 국민의 정책 신뢰를 회복하는 데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공동주택 공시가격을 산정하는 한국부동산원이 ‘셀프 검증’하는 현 체제를 바꿔 지자체에 공시가격검증센터를 둬 상호 검증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한국감정평가학회의 보고서 역시 현재의 공시가격 제도는 산정 근거를 채택·활용하고 각종 비율을 적용하는 측면에서 대대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보고서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의 의뢰로 작성된 연구용역 보고서로 정수연 제주대 교수와 노태욱 서울부동산연구원장 등이 참여했다.
보고서는 현행법상 공동주택 공시가격 산정을 위해서는 전수조사를 진행해야 하지만 현재 인력 부족 등으로 표본조사에 그치고 있다는 점을 꼬집었다. 현 정부는 시장에서 거래되는 가격과 공시가격의 괴리를 없애기 위해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도입했지만 공시가격이 부동산 시장을 외려 왜곡하는 경우도 발생했다. 전체를 보지 못하고 소수만 들여다보니 발생한 현상이다. 실제로 2019년 실거래가격지수는 6.33% 상승했지만 공시가격은 14.02% 올라 제도의 맹점이 노출됐다.
서울 서초구에서는 고가 공동주택인 반포AID차관주택(1490세대)과 반포미도1차 아파트(1260세대) 등에 1건의 실거래가가 공시가격 참고 자료로 일괄 적용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마저도 특정 기간(12월)에 집중된 실거래가라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원칙적으로 공동주택 공시가격은 개별 세대의 생활 조건이 제각기 다르기 때문에 최대한 유사한 조건의 실거래를 찾아 산정 근거로 삼아야 한다.
또 시장에서 최저층과 최고층에 대한 선호도가 낮다는 점을 고려해 공시가격을 산정할 때 산식에 적용하는 층별효용비율이 중구난방으로 적용된 사례도 확인됐다. 붙어 있는 아파트 단지 A와 B는 각각 1~4층으로 구성된 건축물로, A단지(60.32㎡) 1~3층의 공시가격은 1억 4100만 원, 최고층인 4층은 1억 3900만 원이었다. 그러나 똑같이 1~4층인 B단지(59.97㎡)의 경우 1~3층은 1억 2000만 원이지만 4층은 1억 2600만 원으로 오히려 높았다.
국토교통부 공시가격 알리미 홈페이지에는 모든 단지의 공시가격 하단에 “교통 여건과 공공시설 및 편의시설과의 접근성, 세대 수, 층별·위치별·향별효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공시가격을 산정했다”고 밝히고 있지만 구체적인 산정 근거는 알리지 않고 있다. 박합수 건국대 교수는 “고가 아파트는 조망권 확보를 결정하는 동이나 지하철역과의 거리, 층·향에 따라 가격 편차가 수억 원씩 나는 경우도 있다”며 “대단지일수록 정교한 모델링을 통해 소유자가 납득할 수 있는 공시가격을 산정·발표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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