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회로' 통해 이주비 100% 제공하는 건설사들.. 합법과 편법 사이 '논란'
재건축과 재개발 등 정비사업의 이주비 대출 한도가 담보인정비율(LTV) 40% 이하로 묶인 가운데, 건설회사들이 우회로를 찾아 100%까지 대출해주는 경우가 늘고 있다. 공사를 수주하는데 유리한데다, 공사 일정을 당기는 데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편법’ 논란이 제기되는 한편, 현실과 맞지 않는 규제를 없애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주비 대출은 정비사업구역의 철거가 시작될 때 소유자들이 대체 거주지를 찾을 수 있도록 감정평가액의 일정비율만큼 지원하는 집단대출이다. 조합원은 세입자에게 전세금을 주거나 대체주택을 마련하는 데 이 돈을 쓴다.
7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지난 2일 노량진3구역에서 진행된 시공자선정총회에서 시공자로 최종 선정된 포스코건설은 조합원들에게 LTV의 100%만큼 대출을 지원하겠다고 했다. 금융권에서 대출가능한 이주비 40%에 시공사가 추가로 60%를 알선하겠다는 것이다.
포스코건설 관계자는 “회사의 신용공여를 통해 조합 측에 자금을 대여해주기로 했다”면서 “포스코건설이 신용보증을 서고 은행·보험사 등 금융권 중에서 가장 낮은 금리를 제시하는 곳을 경쟁입찰을 통해 선정해 자금을 조달할 예정”이라고 했다.
◇ 이주비 대출한도 줄면서 사업지연 우려… 자구책 마련한 건설사
정부는 2017년 8·2 대책에서 이주비 대출 규제를 강화했다. 대출한도를 LTV 60%에서 40%로 축소했고, 다주택자는 이주비 대출을 아예 받지 못하게 했다. 이듬해 2월에는 ‘정비사업 계약업무 처리기준’에 따라 시공사(건설사)가 자사 신용대출로 무이자로 이주비를 빌려주는 것도 못하게 막았다.
이주비 대출 규제가 강화되면서 정비사업 현장에서는 자금을 마련하지 못해 이사를 가지 못하거나 집을 비워주지 못하는 조합원들이 늘었다. 김현태 한화 포레나노원(상계주공 8단지 재건축) 조합장은 “대출한도가 줄어들면서 이사비를 마련하지 못한 조합원들이 있었는데, 우리는 신용대출이 나와서 자금을 마련할 수 있었다”면서 “지금처럼 신용대출 한도도 줄어든 상황에서는 이사가 어려운 조합원들이 있을 수 있다. 자금이 더 마련되지 않으면 이주 속도가 지연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건설사들은 이런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대출규제를 우회해 추가로 대출을 해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포스코건설의 사례처럼 신용보증을 통해 조합에 사업비 명목으로 대여해주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도정법 제70조에 따르면 전세 세입자는 전세금에 대한 반환 청구권을 조합(사업자)에 청구할 수 있다는 점을 활용한 것이다. 조합이 전세금을 대신 돌려주면 집주인 입장에서는 추가로 대출을 받은 효과가 있다.
제3의 금융기관으로 구성된 특수목적법인(SPC)을 세워 자금을 마련하는 경우도 있다. SPC는 사업비 명목으로 조합에 자금을 대여하고, 조합은 이를 전세금 반환 등에 사용한다. 건설업계에서는 SPC를 통한 대출은 건설사가 직접 지원하는 것이 아니고, 조합에 사업비로 대출하는 것이므로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지난 2월 관양현대아파트 재건축을 수주한 HDC현대산업개발과, 작년 11월 과천주공5단지 재건축을 수주한 대우건설 또한 이주비 100%를 내걸었다. 두 회사 모두 SPC를 통해 이주비 대출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지난 2020년 가장 큰 수주격전지였던 한남3구역 재개발사업도 시공자로 선정된 현대건설이 이주비 대여 조건으로 LTV 100%를 조달하겠다고 한 바 있다.
◇ 업계선 위법논란… 건설사·정부·법조계 해석 엇갈려
그러나 이같은 제안을 둘러싸고 위법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서울시와 국토부, 법조계의 해석이 엇갈리고 있기 때문이다. 도정법 132조에 따르면 이같은 사업비의 우회 대출은 ‘재산상 이익 제공 의사 또는 제공을 약속하는 행위’로 볼 여지가 있다.
실제 국토부와 서울시는 지난 2019년 현대건설, 대림산업(현 DL이앤씨), GS건설이 도전장을 내민 서울 한남3구역 재개발 사업 현장에서 이사비 관련 법규위반 정황 등을 포착했다며 검찰에 수사를 의뢰한 바 있다. 당시 정부는 이주비 무이자 대출을 약속한 점이 도정법 132조를 위반한 것이라고 봤다. 이후 검찰에서 처벌규정 미비 등으로 불기소 처분을 하면서 일단락됐지만, 이주비 대출의 논란을 엿볼 수 있는 사건이었다.
법조계에서도 이주비 대출이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예림 덕수 변호사는 “현재 건설사가 제공하는 이주비 대출은 사업추진비나 촉진비 개념으로 대여해주는 방식으로 지원된다”면서 “이를 도정법상 금지하는 뇌물로 보기는 어렵지만, 정비사업 계약업무 처리기준 등 지침에서는 이주비 지원을 못하도록 하고 있어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고 했다.
김소정 법률사무소 대표 김소정 변호사도 “사업비 명목으로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을 받아 조합에 대여하더라도, 빌려준 자금을 이주비 등 대출목적에 맞지 않게 사용한 경우에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금 회수를 당할 위험이 있다”고 했다.
SPC를 통한 대출도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있다. 연제헌 부동산전문 변호사는 “SPC를 통해 자금을 빌려주는 것은 기본적으로 대부행위로 봐야해서 대부업 등록이 필요하다”면서 “대부업으로 등록하게 되면 금융당국으로부터 여러 규제와 관리감독을 받기 때문에 LTV 규제를 넘어선 규모로 돈을 빌려주기 어려울 수 있어 유의해야 한다”고 했다.
업계에서는 이주비 대출을 둘러싼 논란을 끝내려면 정부가 대출규제를 완화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정부가 현실에 맞지 않는 대출규제를 도입하면서 각종 우회로가 생겨났기 때문에 대출규제를 현실에 맞게 바꿔야한다는 지적이다.
김경남 노원바른재건축재개발연합회 사무총장은 “현재 지원한도인 LTV 40%로는 실제 이주에 필요한 금액의 절반밖에 충당하지 못해 건설사도 억지로 방법을 찾아낸 것”이라면서 “조합원들은 입주시점에 분담금까지 내야하는데 이주비부터 막히면 부담이 커진다. 정부가 규제를 완화하는 것이 현실적인 해답”이라고 했다.
이태희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도 “정부가 인위적으로 집값을 잡기 위해 대출 규제를 도입하면서 조합원들을 괴롭히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면서 “현실적으로 맞지 않는 규제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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