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영국길① 헤라클레스의 여인 코루냐 [함영훈의 멋·맛·쉼]

2022. 4. 5.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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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루냐 헤라클레스 타워가 있는 해변 언덕
헤라클레스가 말년에 사랑한 여인 코르니아의 청동조각품이 코루냐 헤라클레스 타워에 새겨져 있다.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천하장사 헤라클레스(Heracles)가 사랑했던 여인 코르니아. 스페인 건국 신화를 품은 북서쪽 거점 도시 코루냐(A Coruna)는 헤라클레스가 말년에 죽자살자 사랑했다던, 푸른 바다 전설의 여인 이름이다. ▶기사 하단, 헤럴드경제 리오프닝 특별기획 ‘산티아고 순례길’ 전체기사 목록

한적했던 산티아고 순례길 영국 루트에 몇 해 전 다채로운 매력의 갈리시아주 제2의 도시 코루냐가 포함되면서, 이 코스를 찾는 순례객들이 늘고 있다.

‘파친코’의 이민호와 ‘별그대’의 전지현 등이 열연했던 ‘푸른바다의 전설’ 코루냐 현지 촬영 당시(2016.9) 스페인언론 보도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넷플릭스 한국드라마 ‘파친코(Pachinko)’의 이민호와 ‘별에서 온 그대(My love from the star)’의 전지현 등이 열연했던 인어이야기 ‘푸른바다의 전설(Legend of the Blue Sea)’을 헤라클레스 타워 등 코루냐 일대에서 촬영해 현지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일 할땐 열심히 일하고, 놀땐 잘 놀고 잘 먹는 도시 답게, 시민들의 표정은 활기차고, 아일랜드 미혼부 제이슨(36) 등 순례자들 뿐 만 아니라, 마드리드에서 디자인을 하고 있는 필리핀여성 조안(23)이 코루냐 보름 살기 휴가를 즐기는 것 처럼, 일반 여행객도 많다.

도시가 낭만적이면서도 명랑하고, 미식도 많은, 한국 여수 같은 분위기가 나는 가운데, 민중을 이끌고 외적을 물리친 여장부 마리아피타의 광장에선 지난 3월12일 한 여성이 메가폰을 잡고 시민들과 함께 제도 개선을 위한 집단 청원을 하고 있었다. 살아있는 도시 코루냐이다.

코루냐는 해산물요리로 유명한데, 동양의 영향을 받은 육회 오이쌈(엘베알베르토 식당)도 있다.
해안산책길의 대형 문어 타일작품과 즐겁게 걷기여행하는 스페인 아줌마.

▶묵언수행길에서 명랑한 길로 변화= 산티아고 순례길 영국 코스란, 예로부터 영국과 북유럽에서 떠나, 배로 스페인 북서부 페롤(Ferrol) 등지로 입항한 순례자들이 도보를 시작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가던 순례길이다. 첫 기록은 1154년 아이슬란드 순례자였다. 영국-프랑스 백년 전쟁(1337-1453) 동안, 전쟁터 통과를 회피한 ‘선박+도보, 하이브리드’ 순례자들이 제대로 길을 내 확립한 루트이다.

당초 페롤~산티아고 구간만 있던 영국길은 1/3 해변, 2/3 내륙을 걷는데, 전체 순례자의 4%가량 만 이용하던 곳이라, 혼자 만의 사색과 성찰, 묵언수행을 하려는 순례자에게 적합하다는 평을 받았다.

인증된 코스이긴 하지만, 100㎞가 채 안된다는 얘기도 있었고, 어촌길과 농촌길, 소도시로만 이어져 순례자들끼리의 우정을 쌓기가 어려우며, 선박 순례자들의 페롤 이외 입항 도시가 빠졌다는 지적이 일면서, 2016년부터 ‘코루냐 코스’도 공식 루트로 인정을 받았다. 코루냐의 다채로운 매력으로, 영국루트도 한층 명랑해졌다.

산티아고 까지 72㎞가 남았다는 코루냐 순례길 출발점. 여전히 옛 유적 보수공사가 이어지고 있다.

페롤 출발 순례자가 반드시 거치는 경유지 베탄소스(Betanzos)도 하나의 출발지 기능을 했기 때문에 영국루트는 ▷페롤 ▷코루냐 ▷베탄소스 3개의 출발점을 갖는다.

다만 코루냐 또는 베탄소스 부터 산티아고 까지 100㎞에 못미쳐, 다른 길 순례를 통해 부족한 거리를 채워야 ‘완주’ 인증을 해준다. 페롤 출발 순례자들이 코루냐를 들렀다 산티아고로 향하는 경우는 예전에도 많았다.

▶시티 오브 글래스, 피카소의 추억= 코루냐는 타원형 섬이 육지와 연결된 듯한 모습, 혹은 천하장사가 망치를 들고 있는 듯한 모습의 지형이다. 광명시 만한 면적에, 여수시(27만)와 비슷한 25만명이 산다. 면적에 비해 해안선이 매우 길다. 지도를 놓고 보니 지형 자체도 여수를 닮았다.

갈리시아주에서 비고에 이어 두 번째로 인구가 많고 비고-코루냐 간 철도가 나있다. 해변에는 잔잔한 파도가 치고 반려견과 함께 나온 산책객들이 많이 보인다. 시내 중심도로엔 주황색 아르누보 풍 디자인의 가로등이 도열해 도시를 화사하게 한다.

코루냐의 별명은 창문도시 ‘시티 오브 글래스’이다. 해안가 건물들은 발코니 끝선까지 튀어나온 창문을 두고 창틀을 일제히 흰색으로 칠해 대서양 바람 막이를 하는데, 이런 모양의 집들이 길게 도열해 예술 작품처럼 느껴진다.

코루냐 밤바다

포르투갈 말라가에서 태어난 피카소가 11~14세때 시내 ‘프라자 갈리시아’ 근처에서 성장해 화가로서의 기본적인 영감을 채웠던 곳이다. 청동기 켈트 유적이 있고, 기원전 62년 로마와 철 교역을 하면서 무역항으로서 기틀을 마련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풍부한 수산자원 외에 육류, 과일, 담배, 포도주, 피혁, 선박장비, 관광 등 산업도 성하고 금융의 중심지이며, 16~19세기 갈리시아 왕국의 수도였다. 17세기 오스만 투르크 침공을 방어하고 19세기초 유럽 왕위계승전쟁때 프랑스군을 격퇴한 호국의 도시이기도 하다.

경제,통상,군사,문화,종교 교류가 활성화됐던 허브항만이라 문화가 다채로워, 특유의 창의성을 발휘한다. 패션 ‘자라’ 브랜드의 탄생시키는 쇼핑의 중심지이고, 코루냐의 영향권인 인근 아르테이소엔 글로벌 섬유기업인 인디텍스 본사가 있다. 아카데미 4관왕 한국 영화 ‘기생충’에 등장했던 감자칩 ‘보닐라(Bonilla)’도 코루냐에서 나왔다.

헤라클레스 타워 언덕길을 오르는 자전거 여행자

▶헤라클레스의 뼈, 마리아피타의 남편들= 랜드마크는 천하장사 헤라클레스의 탑(등대)과 여장부 마리아피타 광장이다.

세계유산 헤라클레스 타워 등대(Torre de Hércules)는 로마시대인 2세기 부터 지금까지 제 기능을 발휘하고 있다. 스페인 동쪽 사르데냐섬 등지에서 활약하던 헤라클레스는 마지막 과업으로, 스페인 세비야 남쪽 카디스섬에서 게리온을 제압해 소(牛)를 얻고, 스페인 서쪽 땅끝(코루냐 일대)에서 헤스페리데스를 제압해 황금사과를 손에 넣는다.

그에게는 이미 수십명의 부인과 수십명의 자녀가 있었지만, 과업완수 말년에 스페인 서부 해안에서 사랑을 나눈 여인이 바로 크로니아라고 이 지역 스토리텔러들은 전한다. “내 뼈를 크루니아가 사는 해안가에 묻고 바다를 비추는 등대를 세우라”는 그의 유지에 따라, 이 타워가 건설됐다는 전설이 있다. 그의 여인 크루니아는 이 도시 이름이 된다.

지금의 등대는 18세기에 보존처리·중수했다. 탑 안에는 242개의 계단이 있으며, 수면으로부터 112m 높이에서 깜빡이는 불빛의 선박 보호거리(51㎞)는 100리를 훌쩍 넘는다.

헤라클레스 타워 아래 거대 방위 표시. 해골과 가리비 그림이 보인다.

등대 앞엔 초대형 나침반 모양의 방위표시가 있다. 8시 방향 대서양쪽은 해골을 두 개나 그려넣어 ‘죽음의 땅’ 가는 길임을 표시하고, 바로 옆 6시 방향 눈금 칸엔 가리비 그림을 그려 산티아고 방향 순례길임을 알려준다. 세찬 바람과 파도에 아랑곳 하지 않은 채, 건강한 코루냐 시민과 순례자들이 걷기여행을 즐긴다. 강풍에 날아갈듯한 반려견 조차 이곳 날씨에 익숙해진 듯 하다.

왕립 갈리시아 아카데미, 로마시대에 지은 산티아고 교회, 성모 마리아 교회, 바르바라스 수도원 등이 있는 구도심의 중심은 마리아피타(Maria Pita) 광장이다. 성모마리아 교회의 성모상은 예수에게 젖을 물리는 모습이라 이채롭다.

코루냐 산타마리아 성당 성모·아기예수상
마리아피타 광장. 여전사 마리아피타가 외적을 향해 창을 치켜드는 모습의 동상이 서 있다. 앞의 건물은 타운홀 시청공회당.

마리아 피타는 16세기 영국군의 공격때 민중을 이끌고 전쟁을 승리로 이끈 여장부이다. 평소에도 굳건한 의지로 자신의 뜻을 관철시켰는데, 네 번 결혼한 그녀의 이혼 사유는 바로, 맘에 들지 않는 남편을 제거했기 때문이라는 믿기 어려운 말도 떠돈다. 시청앞 광장인데, 여장부의 기가 더 세기 때문인지 마리아피타 광장으로 굳어졌다.

멘데스 누니에스 가든에선 고풍스런 공공청사 뒤편으로 떠오르는 일출 실루엣이 멋진 곳이다. 이곳에는 매일 날짜를 바꿔 조성되는 작은 정원도 있다.

▶산 페드로 요새는 여행자의 놀이터로= 코루냐 코스의 출발점인 마리아피타광장 입구를 거쳐, 망치 혹은 토마호크 모양의 반도를 빠져나가 서쪽 해안선으로 가면, 하이킹족과 걷기여행자들의 행렬이 보이고, 뾰족하게 대형 국기봉처럼 높이 솟은 ‘밀레니엄 니들’ 조형물이 나온다.

중세~근세 영국 침략을 방어했던 산 페드로 요새의 대포

서쪽 해안에 높이 솟은 산 페드로(San Pedro)는 해변가 문어상을 조금 지난 곳에 있는, 긴 후니쿨라를 타고 오르는데 3월 중순엔 새롭게 단장하는 공사가 진행중이었다. 마을길을 돌아 언덕에 오르면 포신 길이 10m쯤 중세·근세 대포 여러 문이 북서쪽을 향해 도열해 있다.

991년 베르무도2세 왕이 해안가에 방어 진지를 건설하기 시작했고, 중세 이후 무기체계가 고도화하면서 설치된 대포들이다. 15세기까지 산티아고라는 동명이인의 추기경이 종교,행정,군사 분야까지 맡으면서 이 대포 요새를 중심으로 외적을 막는 역할도 했다고 한다.

산페드로 언덕은 이제 군사요새가 아닌 미로동산, 놀이기구를 갖춘 시민공원이 되었다.

마리아피타 여장부의 활약 외에도 이 서슬퍼런 이 대포부대가 영국 함대·해적을 물리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지금은 대포 조차 누구든 만져보고 연출샷도 하는 놀이기구가 되었거니와, 카페와 어린이놀이터, 근사한 회전카페, 미로 정원에다 산 아래 오르산·리아소르 휴양해변이 있어, 시민과 여행자의 버라이어티 휴식공간이 됐다.(계속)

◆산티아고 순례길 헤럴드경제 인터넷판 글 싣는 순서 ▶3월8일자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걸으면, 왜 성인군자가 될까 ▶3월15일자 ▷스페인 갈리시아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만난 사람들 ▷산티아고는 제주 올레의 어머니..상호 우정 구간 조성 ▶3월22일자 ▷산티아고 대서양길①땅끝끼리 한국-스페인 우정, 순례길의 감동들 ▷산티아고 대서양길②임진강과 다른 미뇨강, 발렌사,투이,과르다 켈트마을 ▷산티아고 순례길, 대서양을 발아래 두고…신의 손길을 느끼다 ▷산티아고 순례지 맛집①매콤 문어,농어회..완전 한국맛 ▷산티아고 순례지 맛집②파니니,해물볶음밥..거북손도 ▷산티아고 순례길 마을식당서 만나는 바지락·대구·감자·우거지…우리집에서 먹던 ‘한국맛’ ▶3월29일자 ▷산티아고 대서양길③돌아오지 못한 콜럼버스..바요나, 비고 ▷산티아고 대서양길④스페인 동백아가씨와 폰테베드라, 레돈델라, 파드론 ▷산티아고 대서양길⑤(피스테라-무시아) 땅끝은 희망..행운·해산물 득템 ▷산티아고 프랑스길①순례길의 교과서, 세브리로 성배 앞 한글기도문 뭉클 ▶4월5일자 ▷산티아고 프랑스길② 제주 닮은곳, 행운의 징표들..사모스·사리아·포르토마린·아르수아 ▷산티아고 프랑스길③ 종점의 ‘희년 콘텐츠’ 풍년..몬테고소 10리 지나,리오프닝 산티아고 시내 매력 ▷산티아고 영국길① 헤라클레스의 여인 코루냐 ▷산티아고 영국길② 페롤,폰테데우메,베탄소스..회자정리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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