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나일강 '온 더 그리드'

한겨레 2022. 4. 3.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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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말고]

2012년 에티오피아에서 만난 흙빛 블루나일 폭포. 사진 정나리

[서울 말고] 정나리 | 대구대 조교수

쌓여만 가는 문명의 불만과 불안을 이고 살 수 없어 나름의 방식으로 ‘오프 더 그리드’를 실행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공통된 시작은 땅을 구하는 것이다. 충분한 땅을 ‘배타적으로’ 확보해야 제한적으로 그 공간 안에서라도 내 몸과 마음을 길들이고자 하는 힘들로부터 아주 조금 자유로울 수 있을 테다. 그래서 완벽한 위치를 찾기 위해 전국의 깊은 오지를 안 다닌 곳이 없다고들 한다. 더 긴요히 확인해야 하는 건 땅 주위, 특히 위쪽 오염원의 부재이다. 깨끗한 물줄기는 필수이나 그를 독점하기란 어떠한 강력한 개인, 국가, 생태 주체에게도 쉽지 않아, 자칫 상류 이웃을 잘못 만났다간 낭패이기 때문이다.

지난 2월 그랜드 에티오피아 르네상스 댐에서 전력생산을 시작했다는 기사를 보고 10년 전 블루나일 폭포에 간 날을 기억했다. 우연히 여정을 함께하게 된 일행과 낡은 일본산 승합차를 타고 비포장도로를 한참 갔다. 귀여움으로 무장한 꼬마들이 피리를 불며 따라오는 늪지대 길을 지나 약간의 산행 후 거대한 흙빛 폭포를 마주하게 되었고, 심장이 잠시 멎었다.

청나일강의 발원지 타나호수에서 시작한 물은 수단에서 백나일과 만나 이집트를 거쳐 지중해로 흘러나간다. 수력발전과 인프라 구축을 통해 산업화의 길로 들어서고자 에티오피아는 수조원을 모아 2011년 초대형 댐 건설에 착수했다. 고된 가사노동으로부터 여성들을 해방시키고 전체 인구의 60%에 빛을 가져다줄 뿐 아니라 전기를 수출하여 경제 부흥을 이루리라, 에티오피아는 기대로 들썩인다. 하류에 위치한 이집트가 유량의 감소를 걱정하여 호소도, 협박도 했다는데 뾰족한 수가 없다, ‘내땅 내돈 내산’이라.

11개 나라가 공유하는 나일강에 대한 권리는 1929년 영국에 의해 ‘공식적으로’, 자의적으로 그리고 유명무실하게 이집트와 수단에 주어졌고 이후로 계속 국가 경계를 단위로 한 지정학적·경제적 협상의 대상이었다. 물 흐름의 통제를 통한 수자원 ‘관리’는 이제 긴밀한 다자간 협력을 요한다지만 이 토목공사의 득실 대조표는 정작 청나일의 생태계 변화가 기후위기와 만나 내재하게 될 더 큰 불확실성과 불가해성 그리고 불가역성을 맨 끝에 놓는다. 늘 그렇듯 논의에서 묵음처리 되는 건 나일과 존재론적으로 관계된 다양한 비인간행위자들이다.

울리히 벡의 <위험사회>, 개번 매코맥의 <일본, 허울뿐인 풍요>, 윤홍식의 <이상한 성공>은 각자 고유한 경로로 ‘발전’을 먼저 경험한 사회들의 불행과 절망을 가리킨다. 음식이 넘쳐나지만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다 가져도 가시지 않는 공허와 아무리 해도 시야에서 떨쳐낼 수 없는 비참함이 있다. 그래서 소비자본주의, 대의민주주의, 대도시 그리고 현대 농업까지 거절하는 테드 트레이너는 80년대부터 ‘더 심플한 길’을 향하여,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식량과 에너지 자급이 가능한 ‘전환적’ 지역공동체 모델을 실험하고 있다. 삐걱거리는 그의 세탁기는 폐차의 모터를 재활용해 직접 만든 것으로 오스트레일리아 가정이 평균 1킬로와트의 전기를 쓴다면 그는 8와트를 쓴다. 캘리포니아에선 잦은 산불로 불안정해진 전기수급, 그리고 값싸진 태양광과 작아진 리튬이온 배터리로 인해 대형 전력회사와의 절연 및 부분적 ‘오프 더 그리드’가 보수와 진보 양 진영 개인들에게 현실적인 선택지가 되고 있다.

그날, 수초 가득한 강가에서 한 여성과 눈이 마주쳤다. 그곳에선 모든 것이 아름다운 피사체였고 나는 쉴 새 없이 사진을 찍었지만, 내 눈을 응시하는 그의 눈에 카메라를 들이댈 수 없었다. 그렇게 내 기억 속에만 남아 있는 그의 삶은 댐으로 인해 어찌 변했을지, 일행 중 한 청년은 중세도시 곤다르에 남아 암하라어를 배우고 싶다 하였는데, 그리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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