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일하다 죽은 노동자들의 수를 매일 적는 이유

전혜원 기자 2022. 4. 3. 0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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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46, 529. 암호 같은 제목의 책이 나왔다.

'529'는, 그중에서 트위터 계정 '오늘 일하다 죽은 노동자들(@laborhell_korea)'이 기록한 죽음의 수다.

"오늘 죽은 노동자를 방치한다면 내일 죽을 노동자는 나 자신이거나 내 가족, 친구가 될 수도 있다. 거창하게 세상을 바꾸지 않더라도 각자 자기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한다면, 그것들이 뭉쳐서 만들어내는 연대가 죽음의 구조를 끊을 수 있을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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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윤무영

2146, 529. 암호 같은 제목의 책이 나왔다. ‘2146’은 2021년 한 해 동안 일하다 숨진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의 숫자다. ‘529’는, 그중에서 트위터 계정 ‘오늘 일하다 죽은 노동자들(@laborhell_korea)’이 기록한 죽음의 수다. 언뜻 보면 시집 같은 얇은 책에 그날그날의 날짜와 사고 경위가 건조한 문장으로 적혀 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인천 동구 화수동의 한 공장에서 작업을 하던 60대 남성이 지상 13m 아래로 떨어져 숨졌다.’ 이런 기록이 2021년 1월부터 12월까지 숨막히게 이어진다. 시민단체 노동건강연대가 기획하고, ‘오늘 일하다 죽은 노동자들’ 트위터 계정을 운영하는 이현씨(가명)가 정리했다.

40대 직장인인 이씨는 2020년 12월부터 트위터 계정에 매일 산재 사망사고를 올리기 시작했다. ‘숨져’ ‘사망’ ‘노동’ 등의 키워드가 포함된 기사를 검색하고, 포털사이트에는 실리지 않는 지역신문과 〈소방방재신문〉, 안전보건공단 속보를 체크한다. 지난해 4월 평택항에서 아버지와 함께 일하러 나섰다가 컨테이너 벽에 깔려 숨진 스물세 살 이선호씨의 죽음 얼마 뒤에 서울의 한 공사 현장에서 청년이 숨졌는데, 역시 아버지와 함께 아르바이트를 하러 나선 이였다. “일하다 죽는 사람들이 선한지 악한지를 떠나서 다 누군가의 자식이고 부모이며 형제다.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개개인이 하나의 우주다. 그 우주가 매일같이 무너지고 있는데, 어떻게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멀쩡하게 사회가 돌아갈 수 있는지 의아했다. 길 가다 보면 교통사고로 숨지거나 다친 사람의 수가 표지판에 나온다. 일하다 죽는 사람들에게는 사회가 너무 무관심한 것 아닌가.”

책은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1월27일에 맞춰 나왔다. 이씨의 트위터 계정이 기록한 죽음의 수는 지난해 529명에 이어 올해 벌써 120명을 넘어섰다. 인터뷰를 진행한 3월14일 하루에만 경남 남해에서 어선이 전복돼 선원 3명이 숨졌고, 삼천포 화력발전소의 하청업체 설비점검 노동자가 추락해 사망했다. 이씨는 중대재해처벌법 이후에도 죽음의 유형은 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여전히 기본적인 안전수칙이 지켜지지 않아 사람이 죽는다. 위험은 하청 노동자에게 집중된다.

이씨는 앞으로 할 일이 많아지리라고 느낀다. 윤석열 당선자가 대선 기간에 중대재해처벌법을 두고 “기업인들의 경영 의지를 위축시킨다”라며 시행령 개정을 시사했기 때문이다. 이씨는 말했다. “오늘 죽은 노동자를 방치한다면 내일 죽을 노동자는 나 자신이거나 내 가족, 친구가 될 수도 있다. 거창하게 세상을 바꾸지 않더라도 각자 자기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한다면, 그것들이 뭉쳐서 만들어내는 연대가 죽음의 구조를 끊을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전혜원 기자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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