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지만 몰랐던 '폭력예방교육' 참여기

2022. 4. 1.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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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습관적으로 들어가보던 학교 홈페이지 게시판에 새롭게 뜬 공지가 눈에 들어와 확인해 보았다. 사이버 인권/폭력예방교육을 이수하라는 내용이었다. 새로운 사안은 아니었다. 작년에도 이와 비슷한 공지가 있었고, 학교 홈페이지의 하단에는 1년 내내 사이버 인권/폭력예방교육 시스템에 접속할 수 있는 배너가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재학 중인 학교의 경우, 이와 같이 온라인 시스템을 통해 인권과 폭력예방에 관한 교육을 이수할 수 있도록 지원 및 권장하고 있다. 

폭력예방교육에 참여할 수 있는 온라인 시스템.(출처=한국종합예술학교 인권/폭력예방교육 시스템)

공지를 보고 교육에 참여하기 위해 시스템에 접속하던 중, 문득 왜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매년 이러한 교육을 듣도록 하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그 답은 여성가족부의 정책정보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여성가족부와 여성가족부 산하의 예방교육통합관리시스템에서 밝히고 있는 바에 의하면, 폭력예방교육은 성과 가정폭력에 대한 건전한 가치관을 기르고 성매매 및 성폭력, 가정폭력을 방지하며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2000년대 초부터 점진적으로 확대 시행되고 있다. 

예방교육통합관리시스템에서는 성희롱·성매매·성폭력·가정폭력 예방교육의 각 범주별 법적 근거 또한 명시하고 있었다. 이에 따르면, 각 예방교육은 ‘양성평등기본법’과 ‘성매매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그리고 ‘가정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등에 기반하고 있다.

여성가족부 정책정보 창.(출처=여성가족부 누리집)

두 사이트를 오가며 폭력예방교육에 대해 알아가던 중, 흥미로운 사실이 눈에 들어왔다. 대학교뿐만 아니라 초·중·고등학교와 유치원, 어린이집과 국가기관, 지방자치단체가 모두 이 교육의 대상에 포함된다는 것이었다.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 자율활동 시간에 성매매·성폭력·가정폭력 예방에 관한 영상물이나 연극을 수차례 보았던 것이 떠올랐다. 

그 당시에는 학교에서 자체적으로 시행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법령에 따라 전국적으로, 광범위하게 실시되는 교육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늘 익숙하게, 조금은 가볍게 여겼던 폭력예방교육의 의미와 무게가 달리 느껴지기도 했다.

여성가족부 산하 예방교육통합관리 시스템의 폭력예방교육 소개 창.(출처=예방교육통합관리시스템)

이렇게 그 근원을 알고 보니, 늘 수료에만 초점을 두었던 폭력예방교육의 내용에 보다 집중하게 되었고, 몇 가지 눈에 띄는 지점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우선, 문제가 되는 일들을 특수하거나 극단적인 것으로 규정하지 않고, 구조적인 원인에서 발현되는 우리 사회의 만연한 결함으로 다루었다는 점이다. 교육에서는 폭력을 소수 가해자와 피해자만의 사정으로 몰지 않고 그것이 여러 인간 관계 속에서 흔히 재생·양산된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시청자들이 자신을 제3자로만 생각하지 않고, 경각심을 가지도록 한 것이다.

다음으로, 교육 영상에서 폭력성을 띄고 있지만 일상에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지나치는 부분들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가령, 성희롱·성폭력 예방교육의 경우 쉽게 사용되는 신조어들의 뜻과 그런 표현들이 가리키고 있는, 혹은 비하하는 대상들에 대해 먼저 생각해보게 했다. 

한편, 가정폭력예방교육은 물리적인 폭력이 아니라 ‘퍼스널 스페이스(personal space)’의 개념과 가정에서 일어나는 침범에 대해 언급함으로써 가정폭력을 물리적인 폭력으로만 한정 짓지 않고 보다 다각적으로 다루었다.

인권/폭력예방교육 시스템 이수를 위한 형성 평가.(출처=한국종합예술학교 인권/폭력예방교육 시스템)

온라인 교육 영상의 내용 중 기억에 남는 문장이 있다. 캐롤린 엠케의 ‘혐오사회’라는 책에 등장하는 문구였다. ‘증오와 혐오는 느닷없이 폭발하는 감정이 아니라 훈련되고 양성된 것이다.’ 나는 이 말이 폭력예방교육을 광범위하게, 지속적으로 시행하는 취지와 연결된다고 느꼈다. 크고 작게 사회 문제로 나타나는 성희롱·성매매·성폭력·가정폭력이 아무런 조짐과 원인 없이 발생하지는 않을 것이다. 앞선 캐롤린 엠케의 문구처럼 의식하지 않던 말과 행동, 구조적인 용인 속에서 점차 형성되고 전파되는 것이다.

몇 년 전 중고등학교에서 들었던 폭력예방교육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보면, 이번에 수강한 교육이 더욱 구체적이고 넓은 범위를 다루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회적인 의식이 발전한 탓이기도 하겠지만, 한편으로는 그럴 필요가 있었다는 반증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마냥 긍정적으로 다가오지 만은 않았다. 이러한 교육과, 여러 단체, 사람들의 노력이 빠른 시일 내에 결실을 이루어 더 이상 교육이 강화될 필요가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올해의 폭력예방교육을 이수했다.

대한민국 정책기자단 최정인 cji11132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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