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레아스 거스키, 사진으로 추상화를 그리다
거스키는 인류와 문명을 일관된 탐구의 주제로 삼아왔다. 담담한 시선으로 주변 풍경을 담았던 초기와 달리 90년대를 기점으로 필름 카메라로 촬영한 사진을 컴퓨터로 스캔·편집하는 작업 방식을 구축해 사진의 회화적 가능성을 탐구했다.
'파리, 몽파르나스'(1993)와 '크루즈'(2020)가 대표적이다. 파리 최대 규모 아파트 건물을 포착한 전자는 건물 건너편 두 군데 시점에서 촬영한 이미지를 이어붙여 수평 구도를 만들었다. 건물의 균일한 격자구조 속에서 커튼의 주름, 창가에 놓인 작은 화분 등 개인의 삶의 증거를 엿볼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크루즈'는 여객선 '노르웨이 블리스'를 여러 단계에 걸쳐 촬영한 후 디지컬 기술로 조합해 여객선 '노르웨이 랩소디'를 창조했다.
특히 '남극'(2010)은 촬영한 아미지를 편집하는 것에서 나아가 '타일'이라 불리는 고해상도 위성 사진들을 그래픽 작업으로 조합해 만들었다.
추상 회화와 미니멀리즘 조각의 특성을 더한 실험적인 작업을 통해 정형화된 사진 예술의 틀을 확장해오기도 했다. '도쿄 증권거래소'(1990)와 '시카고 선물거래소'(2009)는 원근감 없이 평면 위에 인물들을 배치했다. 이는 중심이 없이 균질하게 화면을 구성하는 잭슨 폴록의 추상회화를 연상시킨다.
'회상'(2015)은 독일의 전직 총리들(게르하르트 슈뢰더·헬무트 슈미트·앙겔라 메르켈·헬무트 콜)이 바넷 뉴먼의 작품 '인간, 영웅적이고 숭고한'을 바라보는 장면을 허구적으로 연출했다. 먼 거리에서 튤립밭을 촬영해 수평의 띠처럼 보이게 편집한 '무제 19'(2015)는 마크 로스크의 추상화를 떠올리게 하고, '정치학 2'(2020)는 '최후의 만찬'의 구도를 차용했다.
공장, 물류센터, 상점 등 현대문명의 상징적 장소를 포착해 거대한 사회 속 개인의 존재를 숙고하게 만드는 작품도 눈에 띈다. 미국 대형 소매점을 촬영한 '99센트'(1999)와 물건으로 빼곡한 물류센터를 보여주는 '아마존'(2016)은 소비사회의 스펙터클을 극대화했다.
카타르의 거대한 액체 가스 탱크와 조그맣게 보이는 반투명 텐트 안 작업자가 대조적인 '카타르'(2012), 똑같이 주황색 유니폼을 맞춰 입은 공장 노동자를 담은 '나트랑'(2004)은 발전하는 산업과 환경 속에서 왜소해진 인간을 은유한다.
또한 쓰레기와 파도가 뒤섞인 태국 짜오프라야 강을 근접 촬영한 '방콕 1'(2011)과 잿빛의 황량한 풍경이 펼쳐지는 '라인강 3'(2018)을 통해 기후변화 문제를 짚는다.
신작 '얼음 위를 걷는 사람'(2021)과 '스트레이프'(2022)는 세계 최초로 공개한다. 전자는 라인강변 목초지에서 얼음 위를 걷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았다. 마스크를 쓴 채 거리두기를 하고 경찰차가 계도하는 풍경은 코로나 시대의 일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후자는 엄청난 경사의 스키 코스를 깊이감 없이 평면으로 연출했다. 모니터에서 보이는 극적인 충돌의 순간은 직접적인 경험과 복제된 경험 사이의 관계를 탐구한다.
독일 태생의 안드레아스 거스키는 뒤셸도르프의 쿤스트아카데미에서 공부했다. 2001년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마드리드의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으로 이어진 순회전을 비롯 퐁피두 센터(2002), 시카고 현대미술관(2002),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2003) 등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전시는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에서 8월 14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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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문수경 기자 moon034@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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