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우먼 한북정맥 종주 21] 불현듯 찾아온 통증! 그래도 포기는 없다

글 사진 성예진 2022. 3. 31.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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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봉에서 큰넋고개를 잇는 흐린 날의 종주 산행
큰넋고개의 계단에서 발열식품으로 점심을 먹었다. 발에 통증이 있어 중등산화를 벗고 쉬었다.
불정산 전후로 송전탑이 이어진다. 송전탑을 여러 개 지나고, 억새로 둘러싸인 헬기장을 지나면 국사봉이 나온다. 왕수산악회 이름이 새겨진 국사봉. 오늘 처음 만나는 정상석이라 더욱 반가울 따름이다. 앉은키 정도 되는 작은 사이즈에 앉아서 인증샷을 찍어본다. 힐링로드에서 놀멍쉬멍 힐링을 하며 걸었으니 국사봉에서는 찍을 것만 찍고 곧바로 하산을 시작했다.
오늘 걸어온 길 중에서 가장 가파른 편이다. 왼쪽 다리에 이물감이 심하게 느껴진다. 컨디션이 썩 좋지 않은가 보다. 출발할 때부터 불편하긴 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심상치 않다. 평지나 오르막은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는데 이상하게 내리막에서만 묵직한 통증이 느껴진다.
야산 같은 국사봉 산줄기를 따라 한북정맥을 걷는다.
산행 이틀째도 아니고, 시작하면서부터 느껴진 것이라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겠다. 최근 무리한 것도 전혀 없는데 갑자기 왜일까? 통증이 계속되며 예전에 홀로 백두대간 일시종주를 할 때 이런 통증으로 온종일 고생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절반을 지난 시점에 길이 완만해지는 상주 구간에 접어들면서 갑자기 증상이 생겼는데, 통증이 상당해서 종주하는 동안 딱 하루, 그날 밤 처음으로 ‘그만 멈춰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했었다.
딱 그때 그 느낌이다. 절반이나 걸은 게 아까워서 그만두지는 못하고 밤새 고민했는데, 다행히도 다음날부터 거짓말처럼 증상이 사라졌다. 아무 일도 없었으니 그저 헤프닝으로 추억하는 일이다. 그 뒤로는 이런 통증을 느낀 적이 없는데 이유가 뭘까? 이유라도 알 수 있다면 좋으련만. 그때처럼 몇 날 며칠 산행을 한 것도 아니고, 지난 산행 이후 푹 쉬며 거의 한 달 만에 재개하는 산행이라 더욱이 그 이유가 궁금해진다.
혼자 마음속으로 무수히 많은 물음표를 그리면서 걷는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답은 나오지 않고 다리를 절뚝이며 묵묵히 걸을 뿐이다. 다행스럽게 스틱이 두 다리 역할을 대신해 줄 수 있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고, 한나절만 더 걸으면 된다. 멈추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국사봉 정상에 앙증맞은 표지석이 있어 모처럼 인증사진을 찍었다.
심각해지던 찰나 “지지배배” 지저귀는 새소리가 들렸다. 그러고 보니 조금 전부터 안개도 조금씩 걷히는 것 같고, 주위가 한결 밝아졌다. 날이 개려는 모양이다. 포근함 마저 감돈다. 저 멀리 운동기구가 보인다. 역기봉과 벤치프레스 운동기구가 덩그러니 놓여 있고 나무에 거울이 걸려있다. 깨져있는 거울은 노끈으로 단단히 고정되어 있다.
누군가 보수를 한 것처럼 보이는 거울. 운동기구는 녹이 슬어 세월의 흔적이 느껴진다. 한두 해 이곳에 있었던 게 아닌 것 같은데, 주인이 따로 있는 걸까? ‘주민들이 산에 올라와서 운동하는구나’라고 생각하며 지나치려는데 언니가 기구를 들어 보인다. 언니는 한북정맥 종주로는 부족해서 산에서 헬스하는 느낌으로 짧은 영상을 찍고선 걸음을 옮긴다. 내려오며 둘러보니 우측 사유지로 보이는 땅이 공사 중이다.
87번 국도까지 880m 남았다는 이정표를 지나는데 굉음이 들린다. 근처에 채석장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윽고 펜스가 이어지고 나무 사이로 보니 아니나 다를까 거의 산 하나를 통째로 깎아 먹은 채석장이 나온다. 아마 이 펜스도 밖으로 나가면 위험할 수 있어 채석장에서 설치해둔 것 같다. 산의 살점을 깎아낸 것이 보기 좋지 않다. 얼른 이 굉음에서 벗어나고 싶어 걸음을 재촉했다.
동네 주민이 설치한 듯한 운동 기구와 거울. 장난스럽게 들어 보이는 수연 언니.
내려오니 육사생도 6.25 참전기념비가 있었다. 오전 11시. 허기를 달래는 게 좋을 것 같아 기념비 앞 계단에 앉아 밥을 먹기로 했다. 오늘도 발열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한다. 김치비빔밥과 라면밥. 좀처럼 허기지지 않고서는 맛있게 먹기는 어려울 것 같아 다른 것으로 바꿔보려 했지만, 지난번에 사둔 도시락이 남아서 결국 가지고 왔다. 이럴 때가 아니면 손이 잘 안 갈 것 같아서 가지고 온 것도 있다.
각자 2.5ℓ씩 생수도 넉넉히 지고 왔겠다 이번에는 부담 없이 생수 한 통씩을 붓고, 10분을 기다린다. 중등산화를 신고 한나절은 걸었더니 발에 땀이 난 것도 같고 발바닥이 후끈후끈하다. 기다리는 동안 신발과 양말을 벗고, 차가운 계단에 발을 얹는다. 양말을 벗고 열을 식히니 좀 살 것 같다.
굉음을 내며 산을 완전히 깎아내고 있는 채석장의 모습. 소리와 풍경 모두 불편하여 빨리 지나 칠 수밖에 없었다.
날씨를 찾아보니 다행히도 비 소식은 오후로 밀려났다. 국사봉까지만 하더라도 안개가 자욱하더니 지금은 안개도 많이 걷혔다. 그래도 하늘의 반은 먹구름이 뒤덮고 있다. 심상치 않은 하늘이다. 비가 언제 오더라도 한 번은 오겠다 싶었다. 이 정도면 선방했다. 예정대로였다면 국사봉 전에 비가 쏟아졌을 텐데 우천 시간도 뒤로 늦춰지고 무엇보다 길이 좋은 편이라 우리의 걸음도 예상보다 빨라서 여러모로 우리에게는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숙제를 하나 해치우듯 도시락을 먹어 치우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배가 고픈데도 불구하고 서로 양보하는 미덕을 느낄 수 있는 발열 도시락이었다. 다음에는 점심을 좀 더 신경 써서 챙겨야겠다. 국사봉에서 내려와 죽엽산으로 진행하려면 87번 국도를 건너야 하는데 건너는 방법이 모두 제각각이다. 우금삼거리 혹은 진목4리 교차로 방향으로 진행해서 신호등을 건너는 방법과 건물 측면의 개구멍을 통해 직선으로 공터(밭)를 가로지르는 방법이 알려져 있다.
공터를 가로지르더라도 87번 국도를 건너기 위해서는 신호등이 있는 곳까지 내려와야 하기에 안전하게 돌아가는 길을 택했다. 조금 돌아가더라도 안전하게 가는 것이 좋다. 우금삼거리와 진목4리 교차로 두 곳 모두 거리가 비슷하다. 우리는 진목4리 교차로 방향으로 돌아 들머리인 GS칼텍스 한빛에너지 주유소로 건너갔다.
87번 국도가 지나는 자리가 흔히들 큰넋고개라 부르는 길이다. 처음에는 이름이 입에 잘 안 붙어서 매번 이름을 다시 찾았는데, 한 번 다녀오니 이제는 제법 입에 잘 붙는다. 길의 명칭이 익숙하지 않아 사람 이름 부르듯 자주 불러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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