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프랑스길① 세브레이로 성배 한글 낭독 뭉클 [함영훈의 멋·맛·쉼]

2022. 3. 29.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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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길의 교과서,여러 코스의 교차로
모든 유럽인의 남동쪽 스페인 진입로
‘스페인하숙’ 촬영지 지나면 세브리로
성배 앞 한글 행복다짐글 우렁찬 낭독
무신론자 조차 콧날 시큰해지는 감동
대서양이어 다시 만난 켈트촌 완전체
봄의전령 ‘또오쇼’꽃,한국인에 “또오쇼”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산티아고 순례길 프랑스 코스는 유럽 각국 여행자들이 남서쪽 끝 스페인으로 향하는 동선과 같기 때문에 가장 많이 찾는다. ▶기사 하단, 헤럴드경제 리오프닝 특별기획 ‘산티아고 순례길’ 전체기사 목록

산티아고 프랑스 코스의 초입, 피레네 산맥을 넘는 순례자들.
포르토마린 행운의 종

땅끝 순례길의 역순 즉 피스테라-무시아 출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도착 코스(역순 순례자는 별로 없다)는 순례를 촉발하는 고리가 되었던 세인트 야고보(산티아고) 유해가 실제 이동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길로 알려진데 비해, 프랑스 코스는 크리스트교의 전파 경로와 같아 야고보의 복음 활동 동선(미확인)과 관련 있을 것으로 믿는 경향이 있다.

실제 프랑스 코스에 많은 크리스트교 유적들이 있다. 신-구교 분화 이전이므로 정통 가톨릭 유산들이 많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프랑스 코스를 산티아고 순례길의 교과서 처럼 여긴다.

지리적으로 보면, 프랑스 남쪽 산맥 넘어, 스페인 북쪽 바다와 아주 멀지는 않으면서도, 스페인 북부 내륙 길로만 이어진다.

세브리로 산타마리아 라 레알 성당의 성배
프랑스 코스엔 ‘스페인하숙’ 촬영지,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 마을도 있다.

프랑스 생장 피에드포르가 출발점이고 피레네산맥을 넘은 다음, 소떼를 도시에 풀어 투우축제를 벌인 것으로 유명한 스페인 팜플로나, 푸엔떼 레라레이나, 로그로뇨, 부르고소, 세계적인 건축가 가우디의 예술저택 보티네스로 유명한 레온, 아스트로가, 폰테라다, ‘스페인하숙’ 촬영지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를 거쳐 갈리시아주로 진입한 이후, ‘성배’의 신비를 가진 세브리로, 사모스, 제주 올레길과 많이 닮았다는 사리아-바르바델로 구간, 포르토마린, 리바디소, ‘기쁨의 언덕’ 몬테고소를 거쳐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이른다.

여러 순례길이 프랑스 코스와 교차한다. 산티아고에 성인의 유해가 안치되었다는 소식에 왕이 말을 달렸던 프리미티보 코스(오비에도~루고), 프랑스와 스페인의 국경인 이룬에서 시작해 스페인의 북쪽 해안을 걷는 북(노르떼) 코스, 피레네산맥 마을 솜포르트~푸엔떼 레라레이나 구간인 아라고네스 코스도 프랑스 루트와 만난다. 사람 많고, 정보 많고, 친구 많은 길이다.

산티아고 순례길 프랑스 코스 곳곳의 수도원은 순례자들의 쉼터이기도 하다. 사진은 사모스 수도원

산하와 바다의 아름다움, 이야기와 음식의 매력 등 일반 여행의 여러 가치에 비춰보면 1등 걷기여행길은 아닐지 몰라도, 100여개 크고 작은 산티아고 순례길 중 반장 선거를 하면 단연 프랑스길이 꼽힌다. 내용을 보면 유럽길인데, 스페인 동북쪽 육로 진입 관문 국경선이 모두 프랑스에 접해 그렇게 이름 붙여졌다.

작은 성지, 세브리로 마을의 중세 순례자 철 조형물과 방향 표식

산티아고 순례자의 완주 인증 기준이 최소한 100㎞ 걷기이다보니, 산티아고 까지 100㎞ 남짓 남은 사리아 출발 여행자들이 전체의 60~70% 차지한다. 그래도 산티아고가 소속돼 있는 갈리시아주 진입 지점, 세브리로(O. Cebreiro)부터 걸으려는 사람도 꽤 많다.

평탄한 길이 별로 없는 오르막 내리막 100㎞만 해도 대단한 고행이므로, 거리의 장단, 짐의 경중 등이 걷기여행의 품질 차이가 될 수는 없다. 그저 노란 화살표, 까미노 명판, 가리비 모양의 표시석을 따라, 성찰하고 다짐하며 용서하거나 용서 구하면서 걷는다.

생장 이후 800㎞ 길을 다 적으면, 위인전 몇 십권 전질로도 모자랄테니, 순례길의 중심지방 갈리시아주 시작점 세브리로 부터 산티아고 까지 150㎞ 구간 주요 지점을 선택적으로 들여다 보았다.

갈리시아주 내 프랑스길 첫 이정표인 세브리로 마을은 예수의 피를 담은 성배, 베네딕토 성인의 뼈가 있다는 이야기를 품은 산타마리아 라 레알 성당(별칭: 베네딕토 교회, 산헤랄도 데 아우리약의 기부에 의한 수도원)이 있어, 소박해도 지나칠수 없는 최고 수준의 성지이다. 20세기 들어 엘리아스 발리나 라는 성직자가 이 교회를 발굴보존,부활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9세기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진 문화재를 복원 및 리모델링한 것이다. 아우리약 수도원시절인 15세기 이곳에서 모셔진 성배에서 실제 피가 나와 그 아래 있던 작은 동상 쪽으로 흐르는 ‘성배의 기적’이 일어나면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순례자들의 필수 코스가 됐다.

순례자들의 말동무가 돼 주는 세브리로 굿즈 가게 호세마누엘 로페즈 발리나씨
태극기 순례 굿즈

교회 재건 주역의 조카, 호세마누엘 로페즈 발리나씨는 성당 앞에서, 태극기 까미노 배지 등 기념품 판매를 하면서 순례자들을 쉬게하고 담소를 나눈다. 성당 문 옆 화단에는 사랑의열매 호랑가시나무 열매가 맺혔다. 지난 8일 때마침 눈이 내려 앉아 크리스마스 씰의 실제 모습이 연출됐다. 10여 발자국 앞으로 옮기면 갈리시아주 첫 순례마을이라는 뜻과 함께 방향표시를 한 ‘옛 순례자 철 조각상’이 서 있다.

갈리시아주에서 가장 높은 해발 1100~1300m 고산지대 마을로 골짜기 사이사이에 구름이 머물러 쉬고 간다. 이곳에는 4월에 눈이 내릴 때도 있어 제설용 대형 불도저가 성당 옆에 상시 대기중이다.

지난 3월8일 때마침 눈이 내린 세브리로 성당
세브리로 서쪽 고개를 넘자 햇살이 고개를 내밀었다.

날씨도 변덕스러워 사모스쪽으로 고개를 넘으니 햇살이 고개를 내민다. 마을 외곽 야산과 길 옆에는 갈리시아주 ‘봄의 전령’ 노란색 꽃 또오쇼(tojso)가 피어있었다. 3-4월 대표주자인 이 꽃은 마치 지나가는 여행자에게 “또 오쇼~”라고 인사하는 듯 하다.

고지대라서 고대 켈트족의 원형 주거지 파요사(palloza:영미권 발음 팔로자)도 있다. 포르투갈길 과르다 대서양변 높은 언덕, 원형 돌벽윤곽만 남아 오륜기 수십개를 붙여놓은 것 같았던 켈트마을 ‘카스트로 셀타’와 같은 형태인데, 이곳 파요사는 마늘 꼭지 모양의 호밀짚 지붕까지 있는 완전체로, 민속박물관(에트로그라피코)이나 순례자 휴게소 역할을 한다.

순례자들의 휴게실 혹은 민속박물관이 된 켈트족 주거지 파요사

굴뚝 없이 방 가운데 모닥불을 피워 밀짚지붕을 통해 외부에서 잘 드러나지 않게 연기를 내보내며 생활했다고 한다. 얼핏, 세계적인 애니메이션 ‘스머프’의 집 같은 느낌도 든다.

이 마을 성배는 이곳을 포함해 스페인 여러 곳에 오래 머물며 예술적 영감을 얻던 음악가 바그너(1813~1883)의 마지막 오페라 ‘파르지팔(Parsifal)’에 영감을 주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담은 성배와 그를 찌를 때 사용된 성창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성배 기사단이 모여 살며 수도하던 세브리로 마을과 수도원, 교회를 무대로 했다.

성배에서 지저스 크리스트의 피가 흘러나와 묻었다는 동상

이 성당엔 아이가 태어나면 성수로 침례 세례를 해주는 우물도 있다. 공동체의 중심역할을 했던 모든 고대 정교회가 그랬듯이 이곳은 과거 병원,요양원 기능도 함께 했다고 한다.

“사랑이 당신 여정에 희망의 빛이 되게하며, 평화가 당신 마음에 가득하소서...행복하세요.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행복하게 하세요”

세브리로 산타마리아 라 레알 성당에는 한국어 등 25개 언어로 된 순례자의 기도문이 있다. 무신론자이든, 불교도이든, 한번 씩 낭독할 때, 우렁차면 우렁찰수록 느낌이 크다.

내 입으로 행복을 외치고 남의 행복을 책임진다고 낭독할 때, 무언가 뜨거운 것이 차가웠던 내 가슴을 달구면서, 뭉클해지고 갑자기 콧날이 시큰해진다. 해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

세브리로 성배 앞에서 한글로 된 다짐문을 크게 낭독하다보면 어느새 콧날이 시큰해진다.

사리아 쪽으로 가다 보면 순례길 옆, 사람 키 만한 돌에 쇠 지팡이를 박아놓고 조롱박 모양의 쇠조각을 붙여놓은 조형물이 보인다. 다리가 아프면 지팡이를 짚고, 목이 마르면 물을 마시도록 하겠다는 갈리시아의 마음이다. (계속)

◆산티아고 순례길 헤럴드경제 인터넷판 글 싣는 순서 ▶3월8일자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걸으면, 왜 성인군자가 될까 ▶3월15일자 ▷스페인 갈리시아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만난 사람들 ▷산티아고는 제주 올레의 어머니..상호 우정 구간 조성 ▶3월22일자 ▷산티아고 대서양길①땅끝끼리 한국-스페인 우정, 순례길의 감동들 ▷산티아고 대서양길②임진강과 다른 미뇨강, 발렌사,투이,과르다 켈트마을 ▷산티아고 순례길, 대서양을 발아래 두고…신의 손길을 느끼다 ▷산티아고 순례지 맛집①매콤 문어,농어회..완전 한국맛 ▷산티아고 순례지 맛집②파니니,해물볶음밥..거북손도 ▷산티아고 순례길 마을식당서 만나는 바지락·대구·감자·우거지…우리집에서 먹던 ‘한국맛’ ▶3월29일자 ▷산티아고 대서양길③돌아오지 못한 콜럼버스..바요나, 비고 ▷산티아고 대서양길④스페인 동백아가씨와 폰테베드라, 레돈델라, 파드론 ▷산티아고 대서양길⑤(피스테라-무시아) 땅끝은 희망..행운·해산물 득템 ▷산티아고 프랑스길①순례길의 교과서, 세브리로 성배 앞 한글기도문 뭉클 ▶4월5일자 ▷산티아고 프랑스길②사모스,사리아,포르토마린,아르수아 ▷산티아고 프랑스길③종점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의 매력들 ▷산티아고 영국길..코루냐,페롤,폰테데움,베탄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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