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수 건축가 "땅의 건축으로 서울의 100년 청사진 그리겠다"[박주연의 메타뷰(VIEW) (7)]

박주연 기자 2022. 3. 27.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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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2023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총감독 맡아
종로구 송현동 이건희미술관 부지에서 진행 예정
“전문가 축제 아닌 시민의 축제로 열 것”

조병수 건축가는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노트에 그림이나 글로 기록해두는 습관이 있다”고 말했다. 서울 종로구 창성동 작업실에는 그의 손때가 묻은 크고 작은 노트들이 연도별로 책장에 꽂혀 있었다. / 박민규 선임기자

청와대와 도보로 7분 거리인 서울 종로구 창성동에 있는 온그라운드. 1층 카페 문을 열고 안쪽으로 들어가니 정원처럼 꾸민 작은 마당이 나온다. 카페 건물과 연결된 4층짜리 또 다른 건물의 앞마당이다. 계단을 타고 3층에 올라서니 3면 유리창으로 햇살이 환하게 비치고 테라스가 있는 널찍한 사무실이 나타났다. 중앙에 놓인 넓고 긴 책상 위에는 각종 물감과 붓, 직각자 등이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턴테이블에서는 베토벤의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가 흘러나왔다. 얼핏 보면 화가의 작업실처럼 보였다.

이곳은 조병수 건축가(65)의 개인공간이다. 30여명의 직원이 근무하는 조병수건축연구소(비씨에치오건축사사무소)는 반포에 있지만, 그는 매주 수요일과 주말이면 이곳에 나와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 건축 아이디어를 구상하거나 청년기에 잠시 꿈꿨던 화가의 작업을 한다.

테라스에서는 1910년대 지어진 적산가옥들과 그 사이를 이리저리 가르는 좁은 골목들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둔 맞은편에는 그가 110년 된 한옥과 60년 된 양옥을 연결해 재생 건축한 후 갤러리로 사용 중인 ‘막집’이 있다. ‘2023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의 총감독이기도 한 조 건축가를 지난 3월 22일 만났다.

경기 양평 수곡리 ‘땅집’은 원초적이고 안온한 땅속 공간을 구현한 작품이다. 조병수 건축가는 “시인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기리는 마음으로 설계했다”고 말했다. / 조병수건축연구소 제공

“땅의 건축은 지혜의 건축이자 솔직 담백한 건축
함께 사는 법 찾고, 자연의 이야기 담을 수 있어”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는 서울시 주최로 2년마다 열리는 국제행사지만 일반인의 관심을 크게 끌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그동안은 전문가들의 축제 이미지가 강했다면, 내년 행사는 보다 많은 시민이 관심을 가지실 거라 기대해요. 장소도 2027년에 이건희미술관이 들어설 서울 종로구 송현동 부지를 쓰기로 했어요. 이 땅이 기가 막혀요. 땅을 3m쯤 파면 딱 1000년 전에 사람들이 밟고 다니던 땅높이가 나와요. 관람객들이 그 땅을 직접 밟아 땅의 기운을 느끼고 거기에 앉아 서울을 조망하도록 할 거예요.”

-내년 비엔날레 주제는 뭔가요.

“‘땅의 건축, 땅의 도시’예요. 지난 100년간은 땅의 흐름이나 강을 비롯한 물의 흐름이 어떤지 모를 정도로 너무 정신없이 건축물들을 지어놨어요. 이걸 다시 정리해 땅의 흐름과 자연의 흐름을 살린 도시를 만들자는 제안이에요. 이를 향후 100년간 서울시 마스터플랜으로 삼자는 거죠.”

-비엔날레에서는 미니어처를 통해 주제에 맞는 건축과 도시를 구현하겠지요.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가 등장합니까.

“(해외 홍보용으로 제작한 행사 책자를 펼쳐 조감도를 보여주며) 예를 들면 관악산부터 국립서울현충원을 지나 폭 2㎞의 공원으로 된 다리를 통해 한강을 건넌 다음 동부이촌동과 용산공원을 거쳐 인왕산까지 잇는 길을 내는 거예요. 이런 코스를 이 조감도처럼 여러 군데 만드는 거죠. 내년 비엔날레에는 산길, 바람길, 물길을 통해 땅의 흐름을 찾아내는 전 세계 건축 작품들이 대거 출품될 거예요. 이를 잘 구현한 10~20개의 도시 초청전도 열릴 거고요.”

‘땅’은 조병수 건축의 ‘화두’다. 그는 저서 <땅속의 집, 땅으로의 집>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땅으로의 건축은 (중략) 궁극적으로는 땅을 덜 훼손하고 땅에 주어진 지형을 최대한 활용하며 더불어 지내고 함께 사는 방법을 찾는 지혜의 건축이다. 바람길, 물길, 빛길을 따라 작게 짓고 크게 사는 이야기이며, 멀고 먼 이상형의 건축이 아닌 구체적이고, 경제적이고, 솔직담백한 건축일 것이다.” 대표작인 경기 양평 수곡리의 땅집(2006)과 ㅁ자 집(2004), 거제도 지평집(2019) 등에는 이런 그의 건축철학이 잘 녹아 있다. 서울 종로 트윈트리타워(2010), 남해 사우스케이프호텔·빌라(2018), 부산 기장의 박태준기념관(2021) 등도 조병수 건축가의 작품이다.

‘ㅁ자 집’은 땅과 하늘을 향해 뚫린 사각형의 담백한 공간이다. 그 2개의 뚫린 사각형 사이로 빛과 바람과 불 등을 통해 자연이 스며든다. / 조병수건축연구소 제공

-건축할 때 땅을 우선시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개인적으로 땅의 느낌을 좋아하는 것도 있지만, 한국 건축의 발전사는 땅의 구릉과 산자락에 적응해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어요. 부석사, 해인사 등의 사찰이나 소쇄원 같은 정원 등을 가보면 경사각, 일조 및 바람의 조건 등에 맞춰, 즉 그 땅의 주어진 조건에 따라 지혜롭게 지었음을 알 수 있어요. 그런데 막상 들어가 보면 느낌이 굉장히 좋잖아요. 휘어가면서 공간감이 열리고, 튀었다가 이어지고…. 그러면서 주변환경과 잘 어우러지죠. 땅의 이야기는 곧 하늘과 바람, 구름, 빗물, 소리, 빛의 이야기예요.”

-땅집은 땅속에 박스(집)를 아예 묻어놓은 형태더군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습니까.

“고등학생일 때 친구의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장지가 경기도 쪽이었고요. 관을 메고 산에 올랐더니 인부들이 이미 삽질을 해서 수직으로 90도로 네모반듯하게 땅을 파놓았더라고요. 지금껏 한 번도 밖으로 드러낸 적 없는 것 같은, 깨끗한 땅의 단면이 황홀할 만큼 아름다웠어요. 이후 관이 내려지고 사람들이 한줌씩 붉은 천 위로 뿌린 붉은 흙과 순식간에 완전히 흙으로 덮인 관…. 그 장면이 강하게 뇌리에 남았어요. 땅집은 그런 원초적이고 안온한 땅속 공간을 구현한 작품이에요.”

그는 땅집을 “시인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기리는 마음으로 설계했다”고 말했다. 목재 계단을 밟고 내려서서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도록 한 집이다. 방 2개와 서재, 부엌, 욕실, 보일러실이 각 1평씩 배정돼 있고, 15평짜리 작은 마당도 있다. 땅집보다 먼저 지어진 ㅁ자 집은 땅과 하늘을 향해 뚫린 사각형의 담백한 공간이다. 그 2개의 뚫린 사각형 사이로 빛과 바람과 불 등을 통해 자연이 스며든다. 1개의 방과 단출한 주방, ㅁ자 구조로 된 중정과 연못이 있다.

거제도 ‘지평집’은 지평과 주변이 돋보이도록 땅속으로 낮게 스며드는 형태다. 확 트인 로비에서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 조병수건축연구소 제공

“1980년 세종문화회관 청사진 알리는 전시에서
처음으로 도면이라는 것 보고 호기심 생겨
그때 건축 공부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건축주가 게스트하우스로 사용 중인 지평집은 이름 그대로 ‘지평선 아래로 스며드는 공간’으로 보이더군요. 설계가 까다로웠을 것 같아요.

“그 땅의 형상은 주변의 경관, 찻길 등과 더불어 복잡했어요. 게스트하우스다 보니 사용자 입장에서 고려해야 할 점도 많았죠. 전체적으로는 지평과 주변이 돋보이도록 땅속으로 낮게 스며드는 형태를 추구했어요. 땅을 부분적으로 깎고 스스로를 낮추며 그 땅의 복잡한 등고를 따라 건축물이 스며들게 한 거죠. 벽면과 바닥 등의 작은 틈새들에서는 원래 땅주인인 식물이 자연스럽게 모습을 드러내도록 했어요. 이를 통해 투숙객은 물론 지나가는 이웃들에게도 평온함과 안식을 주고자 했어요.”

-골프마니아들에게 남해 사우스케이프CC는 풍광 좋기로 손꼽히는 곳이에요. 이곳의 호텔·빌라를 설계한 거지요.

“마스터플랜부터 전체적으로 맡아 했어요. 클럽하우스만 제외하고 7개 동으로 나눠진 호텔과 빌라 10채, 수영장 등을 설계했죠. 이곳도 땅을 전혀 건드리지 말자는 게 제 모토였어요. 보통의 건축가들은 불도저로 땅을 평평하게 밀고 그 위에 건축물을 세우지만 저는 그러지 않았어요. 호텔을 7동으로 만든 것도 땅의 경사를 그대로 두고 지었기 때문이에요. 땅 가운데 있는 돌도 땅주인은 파내자고 하는데 제가 극구 말려 그대로 두었어요(웃음).”

누군가의 ‘오늘’은 ‘과거의 축적’이다. 누군가의 ‘감성’이나 ‘아이디어’는 까맣게 잊고 있던 ‘과거의 경험’에서 기인하기도 하다. 조병수 건축가는 1957년 서울 용산에서 태어났다. 2남2녀 중 장남이다. 어린시절을 묻자 그는 방학 때마다 경북 상주의 산골짜기에서 뛰놀던 추억과 서울의 개량한옥에서 보낸 유년기를 상기했다.

남해 ‘사우스케이프 CC’ 전경. 땅의 경사를 그대로 두고 짓기 위해 호텔을 7개 동으로 만들었다. / c Efrain Mendez

-경북 상주에는 어떤 연고가 있나요.

“아버지 고향이 상주예요. 할아버지와 아버지 형제들이 살고 계셨어요.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 방학을 하면 아버지는 저를 그곳에서 지내게 했어요. 사촌들과 어울려 산을 뛰어다니며 놀았죠. 발밑을 내려다보면 초가집들이 보였어요. 포근한 느낌이 들었어요. 집에서도 워낙 우당탕거리다 보니 할아버지는 방안에 놓인 화롯불에 담뱃대를 탕탕 두드리며 ‘이놈들!’ 하며 호통을 치셨어요(웃음).”

-개량한옥에서의 추억은 뭔가요.

“그 시절에는 TV도, 장난감도 없었으니 제게는 마당의 흙과 돌이 장난감이었어요. 소나기가 내릴 때 흙냄새가 진하잖아요. 그렇게 한바탕 비가 쏟아진 후에는 막대기로 흙을 가르고 한쪽을 높이 쌓아 빗물을 막고 집을 만들었어요. 또 수돗물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도 좋아했죠. 물에 빛이 어리는 게 신기했거든요. 밤이면 창호지에 비치던 나무 그림자의 움직임을 감상하거나 불 꺼진 방을 비추는 달빛의 은은함에 취하곤 했어요.”

-건축가가 되겠다는 생각은 언제부터 했습니까.

“20대 초반이에요. 1978년 세종문화회관, 1980년 광화문 교보빌딩이 완공됐어요. 이전까지 서울의 건축물은 콘크리트 박스뿐이었는데, 새로움을 상징하는 건축물들이 들어선 거예요. 교보빌딩은 아르헨티나 출신 미국 건축가 시저 펠리의 작품이에요. 지하에서 미트볼 스파게티를 팔았는데, 저로서는 외국 음식을 처음 맛본 사건이었어요(웃음). 어쨌든 1980년 세종문화회관에서 회관의 청사진을 알리는 전시를 했어요. 그때 처음 도면이라는 것을 봤는데 멋지더라고요. 이런 건 누가 하는 거지? 호기심이 일었어요. 건축 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이전까지는 어떤 직업을 갖고 싶었나요.

“화가가 되고 싶었지만 부모님의 반대가 컸어요. 고등학교(한양고) 졸업 후 디자인 일을 하거나 벽제 가마터를 찾아가 도예를 배우기도 했어요. 그런데 막상 도자기가 구워져 나오는 거를 보니까 제 실력이 형편없더라고요(웃음). 1981년 스물네 살에 건축을 배우러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어요.”

부산 기장의 ‘박태준기념관’/ 조병수건축연구소 제공

몬태나주립대 석사과정 시절
가장 크게 얻은 것은 ‘행복감’
“건축 자체에 집중할 수 있었죠”

-몬태나주립대에서 건축을 전공하고, 하버드대학 대학원에서 건축학과 도시설계학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더군요.

“처음에는 <허클베리 핀의 모험>으로 유명한 마크 트웨인이 살았던 곳(오하이오와 일리노이 접경지역)에서 가까운 대학에 갔어요. 그의 책 <What is man?>(인간이란 무엇인가)을 인상 깊게 읽었거든요. 하지만 그 대학에서는 배울 게 없다고 판단해 6개월 만에 몬태나주립대로 옮겼어요.”

-몬태나주립대에서는 뭘 배웠습니까.

“가장 크게 얻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행복감이에요. 당시 한국사회는 5공화국 시절로 몹시 혼란스러웠잖아요. 그런데 미국사회는 평화롭더라고요. 저에게도 친절하고요. 스스로 정화되는 것 같았어요. 그러면서 건축 자체에 집중할 수 있었어요. 몬태나의 수려한 정경과 소박한 건축양식도 이후 저의 건축에 영향을 줬고요.”

-하버드대학교 대학원에서는요.

“물성이나 재료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됐어요. 스페인 건축가 라파엘 모네오가 제 스승이에요.”

그는 1992년 한국에 들어와 조병수건축연구소를 차렸다. -자 집(1995)과 ㄱ자 집(1996), 양평 세월리 전원주택단지(1999) 등 다양한 주거 작업을 진행했다. 현장 실무와 동시에 하버드대학, 독일 카이저스라우테른국립대학, 연세대, 몬태나주립대학 등 여러 대학에서 설계와 이론을 가르쳤고, 2014년에는 덴마크 오르후스건축학교 석좌교수를 역임했다. 한국건축가협회상, 아천상, 영국 AR하우스 어워드, 김수근문화상, 미국건축가협회상 등을 수상했다.

조병수 건축가는 ‘대통령 집무실 이전 논란’과 관련해 “역대 통치자 중 누구라도 미래를 염두에 두고 여야 합의로 TF팀을 꾸리고 마스터 플랜을 짰다면 지금과 같은 혼란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 박민규 선임기자

대통령 집무실 이전 관련 ‘원론적 동의’
“제14대 대선 때부터 나온 이전 공약
마스터플랜 짜놓았다면 혼란 없었을 것”

-달동네와 재생 건축에 관심이 많지요. ‘온그라운드’와 맞은편 ‘막집’도 재생건축이고요. 고 박원순 서울시장은 생전 ‘도시재생사업’을 강력하게 추진했지만 해당 지역주민들은 삶의 질이 떨어진다며 불만족스러워했어요. 도시재생보다 새 아파트 건립을 선호하죠.

“어떻게 풀어내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아파트는 단독주택에 비해 편리하고 효율성이 뛰어나요. 좁은 땅에 아주 많은 수의 가구가 들어가고, 에너지효율도 좋죠. 하지만 베스트 솔루션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개인적으로는 달동네가 역동적이면서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효율적으로 편하게 살 수 있는 집의 기능은 아름다움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박원순식 도시재생은 이에 대한 스터디가 완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던 문제가 분명히 있어요.”

- 어떤?

“예를 들자면 그중 하나는 건폐율, 용적률 등의 법규 문제예요. 효율도 좋고 동네 분위기도 좋아 산 마을의 아름다운 빌라 분위기를 지켜낼 수 있으면서 위생적이고 편리한…. 그런 식의 도시재생을 그래서 만들어내지 못한 거예요. 좀더 적극적으로 숙의를 통해 해결책을 모색한다면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대통령 집무실 이전’ 문제가 연일 뉴스에 오르내리고 있어요. 윤석열 당선인은 대통령 집무실을 서울 용산 국방부청사로 옮겨야 하는 이유로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고 말했어요. 어떻게 생각하나요.

“원론적으로 동의하죠. 다만 코딱지만 한 공간에서도 맛있는 짜장면을 만들고, 영감을 줄 만한 공간이 아닌 곳에서도 예술가들이 역사적인 작품을 창작해내니, 그것 또한 전부는 아니겠죠. 안타까운 점은 다른 데 있어요. 대통령 집무실 이전 공약은 제14대 대선 때부터 나왔어요. 탈 청와대를 약속했던 역대 통치자들이 자신의 집권기에는 이전을 못 하더라도 미래를 염두에 두고 여야 합의로 TF팀을 꾸리고 스터디와 논의를 거쳐 마스터플랜을 짜놨다면 좋았겠다고 생각해요. 그러면 지금과 같은 혼란은 없겠죠.”

박주연 기자 j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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