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로 재창조된 셰익스피어 비극..웰메이드 창극 '리어'

임동근 2022. 3. 23.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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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어떤 무대일까 궁금했다.

셰익스피어의 비극 '리어왕'을 창극으로 만든다니.

죽은 코딜리어를 품에 안은 리어를 조명이 환하게 밝힌 가운데 모든 등장인물이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부른다.

소리꾼 김준수와 유태평양은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도 각각 노년의 리어와 글로스터 백작을 완벽하게 소화했고, 민은경은 코딜리어와 광대 역을 맡아 때로는 침착하게, 때론 경쾌하게 무대를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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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t 물로 채운 무대서 우리 소리와 음악으로 감동 극대화
국립창극단 신작 '리어' 공연에서 열연하는 소리꾼 김준수 [국립극장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임동근 기자 = 도대체 어떤 무대일까 궁금했다. 셰익스피어의 비극 '리어왕'을 창극으로 만든다니. 거기다 국내 최고의 제작진까지 참여해 기대감도 높았다. 당초 지난 17일부터 선보일 예정이었지만 출연 배우의 코로나19 확진으로 개막이 연기되면서 궁금증은 더 커졌다.

지난 22일 저녁 서울 중구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국립창극단 신작 '리어'가 공개됐다. 20t 물로 채운 무대에는 소리꾼 15명이 올라 셰익스피어의 비극을 완벽하게 재창조된 판소리 버전의 작품으로 선보였다.

작품은 원작 '리어왕'의 줄거리를 그대로 따른다. 리어와 세 딸, 글로스터와 두 아들의 관계를 통해 인간의 욕망과 어리석음이 불러온 증오와 광기, 파국을 그린다.

이 비극은 우리 판소리를 만나면서 완전히 다른 작품이 됐다. 극본을 집필한 배삼식 작가는 원작의 텍스트를 우리의 시각으로 재해석해 대사와 가사를 새로 썼고, 여기에 한승석 음악감독은 전통 판소리를 입혀 아주 독특한 작품을 만들어냈다. 무대에서 소리꾼들은 원작에서 표출되는 증오, 광기, 파멸, 음모, 배신의 정서를 우리 소리로 노래하며 극 중 캐릭터들의 감정을 극대화했다.

국립창극단 신작 '리어' 공연 장면 [국립극장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작품에서 모든 비극은 '욕망'에서 비롯한다. 극 중 인물들은 부와 권력, 사랑을 쟁취하려 음모를 꾸미고 배신하다 결국 파국을 맞는다. 배 작가는 이런 비극과 인간에 대한 통찰을 '물의 철학'으로 불리는 노자 사상과 엮었다.

무대를 채운 물은 시간의 흐름을 상징하면서, 물살에 휩쓸리지 않으려 발버둥 치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반영한다. 흐르지 못하고 고인 물은 리어를, 가을이 되어 강둑을 넘는 물은 인물들 간의 갈등을, 얼어붙은 수면은 절망을 이야기하는 듯하다. 배우들은 물속을 걷고 뛰고 허우적대고, 물방울을 흩뿌리며 격렬하게 싸우면서 감정을 표현한다.

이런 물의 상징은 극 중 대사와 가사에서도 드러난다. "막으려 해도 물결은 밀려오고, 멈추려 해도 저 물결 멈출 수가 없구나." "피의 강물 속에서 다시 떠오를 태양은 누군가."

가장 눈길을 끄는 장면은 두 딸에게 배신을 당한 리어가 폭풍우 치는 광야를 떠도는 장면이다. 모든 것을 잃은 리어는 절망하고, 검은 옷을 입고 기다란 나무를 하나씩 든 코러스들은 힘차게 물방울을 튕기며 리어의 비참함을 극대화한다.

마지막 장면이 백미다. 죽은 코딜리어를 품에 안은 리어를 조명이 환하게 밝힌 가운데 모든 등장인물이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부른다.

"이 고요를 위하여, 적막을 위하여 그 모든 소란이 필요했던가."

국립창극단 신작 '리어' 공연 장면 [국립극장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소리꾼 김준수와 유태평양은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도 각각 노년의 리어와 글로스터 백작을 완벽하게 소화했고, 민은경은 코딜리어와 광대 역을 맡아 때로는 침착하게, 때론 경쾌하게 무대를 이끌었다. 이소연(거너릴), 왕윤정(리건), 이광복(에드거), 김수인(에드먼드), 조유아(오즈왈드) 등도 열연을 펼쳤다.

러닝타임이 3시간(인터미션 15분 포함)으로 긴 편이지만 물로 채운 무대에서 펼쳐지는 배우들의 열연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공연은 2회가 늘어나 오는 30일까지 진행된다.

dkl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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