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이 '극형에 처한다' 던 기자가 떠올린 작품은

왓칭·Watching 2022. 3. 2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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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취향]문화부 양지호 기자
한주에 책 100여권에 파묻힌 출판 기자가
영화, 드라마, 다큐 추천작을 꼽았다
OTT는 많고, 시간은 없다. 남들은 뭘 보고 좋아할까요. 조선일보 ‘왓칭’이 남들의 취향을 공유하는 ‘타인의 취향’을 연재합니다. 오늘은 2013년 입사해 국제부, 사회정책부, 문화부 등을 거친 양지호 문화부 기자와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양 기자는 5년 전 북한으로부터 사형 선고를 받았다고 하는데요. 도대체 어떤 사연인지, 북한이 미워하는 그는 어떤 취향의 소유자인지 공개합니다.
조선중앙통신 방송 한 장면.(기사 본문과는 상관 없음). 앞서 조선중앙통신은 2017년8월 양지호 기자에게 "공화국형법에 따라 극형에 처한다는것을 선고한다"고 밝혔다. /조선중앙통신 캡쳐

1. 본인을 소개해주세요.

안녕하십니까. 북한 공인 ‘쓰레기 매문가(賣文家)’ 양지호 기자입니다. 문화부에서 출판, 음식 관련 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2. 쓰레기 매문가라고요?

2017년 북한 중앙재판소로부터 사형 선고를 받았습니다. 5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살아있네요. 당시 문화부 출판 기자로 일하면서 ‘조선자본주의공화국’이라는 책을 소개하는 기사를 썼다가 목이 날아갈 지경이 됐습니다. 저자도 번역자도 아닌 기자에게 사형을 선고한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다시 보니 민망한 기사군요. 지금 돌아보면 당시 ‘풋 사과’ 시절이라 사형 선고 당할 정도로 쎄게 기사를 쓰진 못했던 것 같아 아쉬움이 남습니다. 여하튼 북한은 저더러 쓰레기 매문가라고 하더군요. 쉽게 얻지 못할 칭호라고 생각하고 자부심을 가지기로 했습니다.

김성모 화백이 그린 만화 '럭키짱'의 한 장면.대사 중에 '풋사과'라는 표현의 띄어쓰기를 '풋 사과'로 썼다. /'럭키짱'

3. 북한의 위협에서 어떻게 몸을 지켰나요.

‘형은 임의의 시각에 임의의 장소에서 추가적인 절차없이 즉시 집행된다’는 북한 표현이 워낙 임팩트가 강했습니다. 그래서 금강산, 개성공단, 말레이시아(김정남 암살) 근처에는 가지 않았습니다. 북한이 사형선고를 했으니 통일부나 국정원에서 연락이 올 줄 알았는데 양쪽 모두 전혀 연락이 없더군요. 문자 한 개 정도는 보내서 ‘안심하라’ 얘기해주면 국방의 의무를 다한 보람을 느낄 것도 같습니다.(육군 8사단 기관총 사수 병장 만기 전역입니다.)

양지호 기자는 "북한 위협이 여전히 남아있는 상황에서 얼굴 공개는 꺼려진다"며 뒷모습이 찍힌 사진을 보내왔다. /양지호 기자 제공

4. 혹시 사형 선고를 계기로 떠올린 작품이 있을까요.

국내에는 먼저 영화로 더 잘 알려진 ‘남아있는 나날’(The Remains of the Day, 1993년)이었던 것 같습니다. 2차 대전이 끝난지 몇년 지난 시점을 배경으로 합니다. 주인공 스티븐스(앤서니 홉킨스)는 평생 영국 신사의 저택에서 집사로 일했습니다. 세상이 변한 것도, 자신이 그토록 존경했던 주인이 대 독일 유화주의(Appeasement)에 앞장섰던 사람이라는 것도 모르고 살았습니다. 세상이 변한 줄 모르고 사고가 경직되어 있는 그를 떠올리며 윗 동네를 생각했습니다. 스티븐스는 결국 자신이 닫힌 사고에서 벗어납니다. 윗 동네는 어떨지 궁금합니다. 참고로 원작 소설 ‘남아 있는 나날’(민음사)을 더 선호합니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저자 가즈오 이시구로의 필력은 앤서니 홉킨스의 호연보다 한 수 위입니다.

/영화 '남아있는 나날' 포스터

5. MBTI가 궁금해집니다.

INTJ, 소위 ‘용의주도한 전략가’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제가 INTJ인 이유는 처(妻)가 ENFP이기 때문이죠. MBTI 좀 아시는 분들은 알겠지만 ENFP-INTJ는 천생연분 오브 천생연분. 그렇습니다. 대학 졸업 이후 검사 안 해봤습니다. 아내가 ENFP라 저는 INTJ여야만 한다고 아내가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렇다고 믿고 삽니다. 이 링크 아무도 제 처에게 공유하진 않겠죠.

ENFP 눈에 보이는 INTJ의 이미지. 남들은 삭막한 고딕 호러라고 INTJ를 평가하지만, ENFP에게는 그런 모습이 귀엽게 보임을 형상화한 짤방이다. /온라인 커뮤니티

6. 매주 토요일 조선일보 Books 지면을 만들고 있는데, 일주일에 어느 정도의 책이 담당기자에게 오나요?

전 여전히 풋 사과(말진)라 한주에 100여권 정도밖에 안 옵니다. 풋 사과를 졸업하면 200권~300권씩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두 쓱 훑어보고, 30~40권을 진지하게 살피고, 5~10권을 집중적으로 검토하죠. 매주 정독해서 리뷰를 쓰는 책은 1~2권입니다.

7. 그럼 나머지 책은 당근 마켓에라도?

그런 일은 없습니다. 회사로 온 일종의 취재용품인데 그걸 팔아 제 주머니를 채우면, 배임처럼 느껴집니다. 물론 책 마다 ‘증정’ 도장이 찍혀 있습니다. 양식 있는 중고 서점에서는 받아주지 않을 겁니다. 책 둘 곳이 집에도 회사에도 없어서 한 주 지나면 모두 공용서가에 내놓습니다. 사내에서 책 필요한 분들이 가져가도록 하고 있죠.

8. 책에 묻혀 살 것 같은데 OTT도 좀 보십니까.

돌도 안 된 쌍둥이가 집에 있는데 영상물을 보라니. 가혹하군요. 그래도 물론 봅니다. 가장 최근에는 뮤지컬 영화 ‘틱, 틱… 붐!’을 봤습니다. 청춘에 바치는 아름다운 찬사였습니다. 그때만 찾아오는 초조함, 열정, 꿈, 상실, 두려움 그 모든 것을 담고 있죠. 사실 기반이라는 것은 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에서 주연을 맡았던 앤드루 가필드가 주인공입니다. 오프닝 넘버인 ‘30/90′은 지금도 자주 듣습니다. 1990년대에 나이 서른이 되는데,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자신이 싫은 주인공의 감정이 절절 묻어나죠.

9. 뮤지컬 영화라니 진입장벽이 높군요. 드라마 중에서는 없나요.

월급쟁이라면 누구나 좋아할 ‘한자와 나오키’ 시리즈를 좋아합니다. 최애 드라마는 코믹 법정물 ‘보스턴 리걸’입니다. 한국에서 스트리밍을 서비스하는 곳이 아직도 없네요. 미국 백악관을 무대로 한 정치물 ‘웨스트 윙’도 좋아합니다. 북한은 ‘웨스트 윙’을 보고 트럼프 상대 전략을 짰다는 소문도 있더군요. 그래서 북미회담이 실패로 돌아갔다고 주장한 책도 있었습니다. 역시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죠.

/보스턴 리걸 시즌5 포스터

10. 다큐 추천도 들어봐야겠네요.

‘어글리 딜리셔스’를 강추합니다. 정말 재밌습니다.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와 누들로드를 합친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당장 비행기를 타고 가서 먹어보고 싶어지거든요. 미국 내슈빌 핫 키친, 산 만한 중국풍 랍스터 요리 등을 먹성 좋아보이는 한국계(로 알려지는걸 끔찍하게도 싫어한다는) 미쉐린 투 스타 데이비드 장 셰프가 열심히 먹죠. 그냥 먹는게 아니라 음식 내력을 추적하면서 경제사회적 맥락을 덧붙입니다. 책 ‘차별받은 식탁’(어크로스)을 영상화한 느낌이죠.

'어글리 딜리셔스'에서 셰프 장이 피클 주스를 맛보고 있다. /넷플릭스 '어글리 딜리셔스'

11. 문화부로 옮기기 전엔 코로나 담당이었다고요.

통신사에서 원인불명 폐렴이 중국 우한에서 돌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던 시절부터 딱 1년을 했네요. 감염병 앞에서는 어떤 예측도 무력함을 절감했습니다. 반지성주의자와는 아예 말을 섞으면 안된다는 큰 교훈을 얻었습니다.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장의 헤어 스타일 변화를 다뤘던 기사가 기억에 남네요.

12. 지금까지 본 영화, 드라마, 다큐멘터리 중 가장 추천하는 작품을 꼽아주세요.

각각 꼽으라는 건지, 다 합쳐서 셋을 꼽으라는 건지 헷갈리는군요. 위에 언급한 추천작들로 갈음하겠습니다. 만화책이라면 러프(아다치 미츠루), 파파 톨드 미(하루노 나나에), F.S.S(나가노 마모루)를 꼽겠습니다. 언젠가 한국에서도 ‘보스턴 리걸’을 볼 수 있는 스트리밍 서비스가 생기면 좋겠습니다.

<추천작 보러가기>

‘남아있는 나날’

‘틱, 틱… 붐!’

‘보스턴 리걸’

‘웨스트 윙’

‘어글리 딜리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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