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마에 거리 나앉은 마장동 먹자골목 상인들..보상은 막막

임성호 2022. 3. 20.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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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대목 앞두고 발생한 불로 4억대 피해..'무허가 건물'이어서 보험 미가입 다수
20일 오전 피해 입은 먹자골목 [촬영 강재은 수습기자]

(서울=연합뉴스) "무슨 인터뷰입니까. 불난 집에서 옷도 못 입고, 휴대전화도 신분증도 못 들고나왔어요. 당장 내일 나갈 물건이 든 고기 냉장고도 다 타버렸는데…"

20일 오전 11시께 서울 성동구 마장동 축산시장 입구 먹자골목의 한 족발집. 전날 발생한 화재로 집과 고기 보관창고가 모두 타 버렸다는 중년 부부는 그나마 화마를 피한 식당에 나와 삶은 족발을 썰고 있었다.

여관에서 숙식하게 됐다는 이들은 "아무 소용이 없다"라며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아내는 "몸이라도 건진 게 다행"이라면서도 어두운 표정이었다.

전날 오전 11시 25분께 이 골목의 한 식당 1층에서 불이 나 2시간여만에 주택 1곳과 점포 8곳이 모두 탔다. 또 다른 점포 1곳은 일부 타는 등 먹자골목 가게 9곳이 피해를 봤다. 70명이 급히 대피해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불은 삽시간에 번졌고, 소방당국 추정 총 4억 3천만원(부동산 1억 8천만원·동산 2억 5천만원)의 큰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시장 상인들은 하필 주말 장사를 준비하는 토요일 오전에 불이 나는 바람에 피해 규모가 더욱 커졌다며 한숨을 쉬었다. 잔뜩 마련해 둔 고기 등 식자재가 모두 타 버렸다는 것이다. 정육점 냉장고 2대가 모두 불길에 휩쓸렸다는 김정희씨는 "고기가 300만원어치였는데 다 못 쓰게 됐다"고 했다.

앙상한 뼈대만 남기고 검게 타 버린 가게를 바라보던 인근 식당의 사장(69)은 "평소 같으면 일요일인 오늘 (피해 가게들에) 바글바글하게 손님이 왔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20일 오전 피해 점포 앞 [촬영 강재은 수습기자]

처음 불이 난 점포는 철판 사이에 스티로폼을 채운 '샌드위치 패널' 소재로 지은 건물이었는데, 소방 당국은 이 때문에 불길이 크게 확산한 것으로 보고 정확한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샌드위치 패널은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가 뛰어나 대형 물류창고 등의 마감재로 널리 사용되지만, 가연성이 높아 화재에 취약하다.

이처럼 피해 점포들은 화재 위험성이 높은데다 모두 무허가 건물에 들어서 있어 대부분 화재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충분한 보상을 받기도 어려운 상황에 처한 셈이다.

불이 난 먹자골목은 1988년 서울올림픽을 전후해 당시 마장동에 있던 소 도축장 일대를 정리하며 무허가 건물들을 축산시장 북문 인근에 몰아두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피해 주택·점포를 포함해 불이 난 골목의 건물이 서울시 소유 부지 등 국공유지에 들어선 무허가 건물이 된 배경이다.

정육점 사장 김씨는 "10년을 영업했지만, 여기가 무허가 건물이라 보험도 못 들었다"고 했다. 족발집을 운영하는 한 부부는 "보험은 무슨, 돈도 없다"고 잘라 말하기도 했다.

피해 점포 중 한 곳을 운영하는 친구를 만나러 왔다는 황요연(77)씨도 "친구가 보험을 들어놨는지는 들은 게 없다"며 "어제부터 마음이 많이 안 좋아 보여 나도 아프고 힘들다"고 했다.

앞서 지난해 12월 발생한 동대문구 청량리농수산물시장 화재의 피해 점포들도 화재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로 대부분 민간 보험 가입이 거부된 바 있다. 이번 피해 점포와 유사한 '노후·복도식·샌드위치 패널' 구조 건물이기 때문이었다.

마장동 축산시장 먹자골목에 화재, 초기 진화 완료 [연합뉴스 자료사진]

피해 점포 인근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김용일(50)씨는 "영세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인데 누가 화재보험에 가입했겠나"라며 "그래도 유명한 마장동 시장에서 난 불인데 근대의 유물이라고 보고 보상을 해 주면 좋겠다"고 했다.

한편 인근 주민들은 이번 화재 피해가 발생한 점포들이 무허가 건물들이라며 구청에 여러 차례 민원을 제기해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인근 아파트 거주민 A씨는 지난해 11월 주민 60여 명의 서명을 받아 성동구청에 축산시장과 먹자골목에 대한 민원을 제기했다고 했다.

그는 "불이 나기 전에도 지나가다 보면 전기선도 너저분하게 널려 있는 등 위험해 보였다. 노량진 시장처럼 현대화해 안전하게 해달라고 민원을 넣은 것"이라며 "화재가 비가 온 날 발생했지만, 맑고 건조한 날씨였다면 옆의 시장까지 위협했을 것 아닌가"라고 주장했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22일 오전 합동 감식을 진행해 정확한 화재 원인을 파악할 계획이다. 당국은 현재로서는 식당 사이에 설치된 전기 설비에서 발생한 스파크가 화재로 이어졌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임성호 강재은 서대연 차지욱 기자)

s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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