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뜨겁게 청소하라

한겨레21 2022. 3. 18.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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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기획]선거는 끝나고 봄은 다가오고, 설레는 것까지 버리고 청소하자
김진수 선임기자

새 출발이다. 3월이 왔다. 방을 뒤엎고 싶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다. 이런 마음이 들 때 청소는 생활이 아니라 혁명이다. 세제 브랜드 가운데 ‘세제혁명’이 있다. 세제혁명이란 브랜드 이름을 볼 때마다 청소로 뒤집어엎고 싶은 마음, 새 출발에 마음을 빼앗긴다. 무엇을 못 바꾸랴. 눈앞의 먼지부터 벽장까지, 청소하고픈 사람들을 위한 근래의 움직임을 찾아보자. 이 글은 청소에 관한 근래의 책, 영상을 참고했다. 청소자격증 교육과정을 수료했으나 청소와는 여전히 먼 필자의, 주관적인 경험과 관찰이다.

팬데믹 영향, 청소는 하나의 트렌드

청소하고픈 마음이 치솟는 것은 순간이다. 작은 책이 맨 아래 깔려 있어서 위에 있는 책은 무너질 듯하고, 내일을 위한 준비물로 챙겨둔 ‘거기 있어야 할 물건들’은 자취를 감췄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치워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청소 잘하는 지인에게 물으면 방법은 “내성격이 지저분한 거 못 봐서 그래”라는 알 수 없는 답을 주로 받는다.

‘청소 열풍’이라고 말하면 누군가는 비웃을 것이다. 인간의 태초부터 청소는 생활이었고 문화였고 기술이었다. 살림이거나 청소이거나 반드시 해야만 하는 무시무시하면서도 얕보기 쉬운 일이다. 그럼에도 몇 년 새 청소는 하나의 트렌드, 라고 써보자. 팬데믹의 영향이 컸다. 2020년 초 팬데믹 이후 사람들은 집에 갇히기 시작했다. 집이 사적 영역이 아닌 근무 장소가 되기 시작한 이후 집 인테리어, 청소와 연관된 각종 광고가 늘었다.

어느덧 3년차, 팬데믹 이후 청소는 이런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근래 청소에 대한 관심은 세분화된 청소 서비스 업체의 애플리케이션, 온라인 무료 청소자격증 과정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누구나 청소를 배우려 생각하지는 않을 테고 직업, 취미, 생존 등 다양한 이유가 있을 텐데 다음 같은 민간 자격증이 있다. 청소대행전문가, 가전청소전문가, 정리전문가, 생활환경관리사, 홈클린마스터, 특수청소전문가 등(이런 자격증은 강의를 듣고 따기까지 수십만원이 든다).

2018년 <일단 뜨겁게 청소하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청소를 포기한 여자 오솔과 결벽증 남자 선결의 이야기다. 청소업체 ‘청소의 요정’ 대표로 깔끔 청결하던 선결은 장갑과 소독제를 끼고 사는 인물로 드라마에 등장해 청소를 “세상을 깨끗이 만들어낼 숭고한 행위”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오솔과 만날수록 창문 청소마저 대충 하게 된다. 즉, 중요한 게(연애 같은 것) 눈앞에 있으면 청소 따위는 뒷전이 된다는 사실.

곤도 마리에의 그 유명한 프로그램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넷플릭스, 2019)의 제목처럼 청소는 왜 자꾸 ‘설레거나’ ‘버리거나’ 하는 존재감을 툭툭 건드릴까? ‘투명인간’이라고 곧잘 불리는 청소노동자와 달리 영상 속에서 청소하는 사람은 자의식과 존재감이 전면에 드러난다. 이때 청소의 행위자는 타인의 문제 해결자라는 주체적인 입장을 취한다. ‘문제 해결’ 오락 프로그램의 전형적인 서사가 여기에도 흐른다. 사연을 가진 개인, 문제가 있는 집을 찾아간 카메라, 그리고 비포 앤드 애프터의 상태로 변화된 장면을 제시하는 것이다.

유튜브 채널 <클린 어벤저스>는 방치된 공간에 놓인 개인의 집을 청소하는 전문업체의 영상으로 구성됐다. 꽤 인기를 끌어온 이 영상 시리즈는 ‘쓰레기 외설물’이라 해도 틀리지 않는다. 부감(높은 곳에서 내려다봄)으로 보여주는 방치된 쓰레기, 그 안에 처박힌 사물들 위로 청소하는 자들의 내레이션이 흐른다. 오물로 가득 찬 실내, 얼굴을 가린 집주인, 이 지경이 된 이유, 그리고 남성 청소업자들이 ‘파리를 피해가며’ 청소를 해치우는 장면이 나온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과일을 진짜 조심해야 한다. 과일마다 부패 속도가 다르니 잘 처리해야 한다.” 각 영상이 하나의 드라마다. 군데군데 적용 가능한 기술이 있어서 발췌하듯 찢어서 참고할 수도 있겠다.

<매직청소TV>❶. 유튜브 화면 갈무리
1968년 앤디 워홀이 찍었다는 아이스크림 광고❷. 유튜브 화면 갈무리

이렇게 부드럽게 문질러주세요, 슥슥슥 보이시나요?

유튜브, 틱톡 등에서 볼 수 있는 청소 영상은 시각적 쾌감과 함께 청각적 쾌감을 선물하는 ‘에이에스엠아르’(ASMR·일상소음)다. 청소 정보를 제공하는 유튜브 채널은 단순명료함이 무기다. 청소 기술을 알려주는 자막이 중요하다. 박박 긁는 소리, 물 흐르는 소리, 비닐 쓰레기봉투 바사삭거리는 소리가 가공 없이 흐르는 가운데 투박한 집안 살림이 주인공이다.

구독자 50만 명에 이르는 유튜브 채널 <매직청소TV>❶는 사람의 전면 샷이 등장하지 않는다. 다짜고짜 ‘긴말 없이 바로 시작한다’면서 간단한 준비 도구를 알려주고 전형적인 방식, 변형된 방식으로 나아간다. 누구를 위한 청소라는 구체적 대상도 없다. 목표는 시청자의 ‘청소 자립’이다. 필자는 여기 등장하는 연분홍색 장갑을 따라 보거나 안내 포즈의 손을 보는 게, 청소하는 사람을 보는 것보다 마음이 편하다.

의외로 <매직청소TV>는 서사를 가진 청소 콘텐츠보다 재밌다. 청소 영상을 정주행하다 보면 ‘벽지에 뭐가 묻으면 지우개로 절대 지우지 말 것’ ‘거품이 나도 신경 쓰지 마세요’라는 찰떡 조언에 상쾌함이 느껴진다. “이렇게 부드럽게 문질러주세요, 슥슥슥 보이시나요?”라고 말하면 체증이 가시는 듯하다. 그러다가 ‘여기서 끝입니다’라고 한 뒤 미련 없이 사라진다. 청소하는 자에게 공간을 구획하는 것과 20분 동안 완료하겠다는 시간 설정이 중요하다는 점을 시크하게 남긴 뒤에. 그렇다. 뭐 청소란 게 대단하겠는가. 일생일대의 과제인가. 몇 날 며칠을 고민해야 할 일이던가. ‘팁과 끝’이라는 부제를 실전에 옮겨 후딱 해내는 것이 관건이다.

<매직청소TV>의 유용한 점은 영상을 미리 본 자들의 요약 매뉴얼에도 있다. 화장실 청소 영상에 달린 댓글에는 ‘물 전체 뿌려주기 → 오염 심한 곳 베이킹소다 뿌려두기’ 등 청소의 순서와 도구, 노동강도 등을 알려준다.

사물이 주인공인 청소 영상을 보며 1968년 앤디 워홀이 찍었다는 아이스크림 광고❷가 떠올랐다. 워홀은 아이스크림 ‘언더그라운드 선디’의 텔레비전 광고 제작 요청을 받았다. 통상 아이스크림을 맛있게 입에 넣는 사람의 표정이 등장하던 광고에 그는 사람 없이 아이스크림만 전면 등장시켰다. 빨간 체리가 올라간 아이스크림이 화면 정중앙에서 부르르 떨었고 마치 화면 실수인 듯 무지개색으로 변환됐다. 이를 연구한 미술사학자 데이비드 조슬릿은 “슈퍼스타 둘이 섭외됐지만 편집으로 삭제됐고 아이스크림 자체가 ‘스타’로 부상해버렸다”고 뒷이야기를 전했다. 스타보다 아이스크림이 중요하고 청소에는 고무장갑이 중요하다.

이런 걸 왜 보고 앉았냐는 사람도 많겠지만 청소를 포함해 각종 살림을 보여주는 유튜브 채널이 인기다. <에릭의 청소교실>은 구독자가 8만 명이다. <꿀주부>는 92만 명, <하미마미>❸는 175만 명이다. <매직청소TV>의 영상 채널이 동적 무드라면 <하미마미>는 정적이다. ‘다 쓴 유리병을 정리하는 법’ 등의 노하우를 알려준다.

<하미마미>❸. 유튜브 화면 갈무리
<디스 크레이지 라이프>❹. 유튜브 화면 갈무리

휴지 끝을 접어줄 뿐인 청소 서비스

채널 영상의 핵심은 모든 것이 미리 ‘세팅’됐다는 점이다. 앞에 언급한 몇몇 청소 영상이 혼란 속의 생존이라면, <하미마미>를 비롯해 미국의 인기 유튜브 채널 <디스 크레이지 라이프>❹ 등은 ‘세팅’(정리) 위에 ‘세팅’을 더한다. 베이지색 톤의 온화한 실내는 이미 정돈돼 있다. 그 안에서 화사한 사운드와 적당하게 가공된 생활소음이 들린다. 살림 도구가 정결한 바닥에 부딪히면서 ‘딱, 또르르, 콱’ 하는 소리가 난다. 그 자체로 텅 빈 미니멀한 실내를 걷는 느낌을 준다.

남이 사는 모습을 구경하면서 청소해야 하는 마음은 멀어져간다. 청소와 세팅은 엄연히 다르다. 청소는 눈앞의 먼지, 오물, 오염, 너저분한 사물을 치우는 위생과 관련된다. 정리는 기준에 따라 판단해 분류 배열하는 것이 중요하다. 청소에서 버리는 게 중요하다면, 정리 정돈에서는 물건의 위치를 잡는 일이 중요하다.

곤도 마리에가 마음을 움켜쥐게 하는 추억이 담긴 사물이 아니면 웬만하면 버리라고 조언했지만 그가 이후 고가의 살림살이를 파는 사업을 진행해 비판받았던 것처럼, 유튜브 청소 영상은 기냐 짧으냐의 차이는 있지만 살림 도구를 파는 호젓한 무드의 광고 영상과 만난다.

근 몇 년간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에서 청소 서비스 또한 눈에 띄게 늘었다. 필자가 앱을 통해 몇 년간 모셔본 ‘헬퍼’ ‘여사’님만 해도 업체 미소, 청소연구소, 와홈 등 다양하다. 이렇게 여러 앱을 옮겨가며 하루 3시간 4만원대 가격으로 청소 서비스를 받아봤지만 화장실 휴지 끝을 삼각형으로 접어주거나 수건을 접는 각기 다른 방식을 경험한 것 외에 얻은 것이 없다. 순간 깔끔해진 집에 짐을 덜 수 있던 건 분명했다. 하지만 대신 해주는 청소는 그야말로 서비스, 지속성을 갖기 힘들었다.

‘지속성’을 위해 2022년 2월 무료 온라인 교육으로 진행되는 ‘정리수납전문가 1급’ 강의(한국교육진흥협회)를 수강했다. 수납 강의는 무척이나 효과적이었다(상자기사 참조). 사단법인 한국자격진흥협회에서 운영하는 ‘청소관리사’도 있다. 이는 민간 자격증으로 청소개론, 청소기법론, 환경미화론 과목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응시료는 10만원.

온라인에서 무료로 들을 수 있는 정리수납전문가 1급 강의. 유튜브 화면 갈무리

눈에 보이는 일이 된 청소

다소 극단적인 예이나, 청소는 살아 있는 자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청소에 대한 관점의 확산 속에서 청소 전문 업체의 관점이 등장했다는 점은 중요하다. 왜냐? 청소는 눈에 보이는 일이 됐다는 점을 말하기 때문이다. <죽은 자의 집 청소>(김영사, 2020)의 저자 김완은 청소는 단연코 “상쾌함”을 준다고 쓴다. 그에게 타인의 집을 청소하는 직업은 난감한 질문에 휩싸이는 일, 이를테면 ‘청소할 때 기분이 어때요?’와 마주하는 일이다. 그러나 김완에게 청소는 기분이 들어올 틈이 없다. 폐기물의 양과 그에 맞는 봉투를 찾는 것, 사물을 분류하는 청소의 기본을 할 뿐이다. 시를 전공한 저자는 그의 직업적 특수성을 일종의 감성으로 돌파하며, 청소하는 자신의 자의식을 서술한다. 살아 있는 자의 예의는 ‘미리미리 버려두자’ 정도가 되 겠다.

청소하기 전에 너무 잡생각이 많았다. 청소는 언제 시작할 수 있을까?

현시원 독립큐레이터·시청각 랩 대표

물건의 자리는 어디인가

청소의 황금규칙

여러 동영상을 섭렵하며 얻은 청소의 황금규칙은 이렇다. 청소의 가장 중요한 점은 첫째 순서다. 둘째 그 순서에 걸맞은 동작이다. 셋째 적절한 청소 도구와 용품이 필요하다. 넷째 마무리로 ‘효과 극대화’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물기 제거 뒤 마른행주를 사용한다. 부수적으로 중요한 팁이다. 차가운 물, 뜨거운 물을 선택해 잘 사용해야 한다. 락스에는 뜨거운 물을 사용하면 안 되지만, 더러움이 덕지덕지 붙은 곳에는 뜨거운 물을 부어놓고 기다린다.

숨가쁜 생활 안에서 청소하기 위해서는 고된 노동을 ‘즐거운 행위’로 둔갑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청소하기 위해 들을 수 있는 음악(<청소하면서 듣는 음악>, 이재민 지음, 워크룸, 2018)이 도움 될 것이다. 청소를 마친 뒤 내게 줄 선물을 떠올려봐도 좋겠다. 사실 청소 뒤 얻는 상쾌함과 청량함은 나의 시간과 땀에 대한 선물이다.

한국수납정리개발원 정길홍 원장이 들려주는 노하우는 ‘미리 계획하고 지속하기’로 압축된다. 그는 ‘자리 정해주기’라는 말을 강의에서 자주 했다. ‘물건의 자리’라니! 청소는 삼차원적 물건이 들어갈 자리와 관계되는 것 아닐까. 가로로 놓고 세로로 세워놓고 서랍에 넣어보면서 물건의 유용성을 전시하는 방법을 결정한다. 청소기는 안 보이는 곳에 있어야 하지만 너무 안 보여도 안 된다. 자신의 행동 유형에 따라 물건의 자리를 정하다보면 정리가 안 된 당신의 방을 해결해줄 사람은 나 자신뿐임을 모처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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