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숨 막히는 팍스로비드 처방.. "1시간 기다려 처방받았는데 재고 없어"

김명지 기자 2022. 3. 17.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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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국 재고 없으면 처방전 있어도 못 받아
과정 복잡해 한 번 처방에 1시간씩 걸려
"신속항원검사 몰리면 처방할 시간 없다"
"처방 쉽게 하려면 재고 부족 해결해야"
지난 2월 21일 서울 시내 한 코로나19 경구 치료제 담당약국에 공급된 '팍스로비드' 모습. /연합뉴스

“병원에서 1시간 기다려서 처방받았는데 약국에 재고가 없답니다.”

지난 16일 서울 등촌동 바로척척의원 신속항원검사(RAT)에서 양성 판정을 받은 A(60세)씨는 코로나19 먹는 치료제 팍스로비드 병원 처방을 받지 못한 과정을 묻는 질문에 “한숨이 다 나온다”며 이렇게 말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늘면서 팍스로비드 수요가 폭증했지만, 환자들 사이에서는 “약을 구할 수가 없다”고 아우성이다. A씨는 먹는 약을 처방받으려고 병원을 직접 찾아갔지만, 약 처방에 필요한 자가점검표 작성에만 30분이 넘게 걸렸다. A씨는 평소 먹는 약 이름, 성분명을 알아내려고 가족, 병원, 약국에 전화를 돌려야 했다.

지난 16일 서울시 강서구 등촌동 바로척척의원에서 한 환자가 신속항원검사를 받고 있다. /최정석 기자

◇ 팍스로비드 처방 나아질 기미 없어

정부는 지난달부터 동네 병원에서도 팍스로비드를 처방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하지만 의료 현장은 복잡한 처방 과정과 재고 부족으로 이런 조치가 무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장 일선 병원에서는 먹는 약 처방을 두고 ‘의원급이 감당하기 어렵다’고 호소했다.

이날 찾은 병원에서도 환자가 수십분 동안 자가점검표를 작성하면 담당 의사는 이를 토대로 병용 금기 약물이 없는지 일일이 확인해야 했다. 환자 1명 처방을 위한 확인 작업에만 수십분이 걸렸다.

팍스로비드와 함께 복용할 수 없는 약물은 총 28개. 이 중에서 국내 유통 중인 성분은 23개다. 전문의약품은 ‘의약품안전사용서비스(DUR)’로 가려낼 수 있지만 일반의약품은 시스템으로 확인도 안 된다. 그러니 환자에게 직접 복용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예를 들어 고지혈증 환자는 팍스로비드를 복용하려면 당분간 관련 약 복용을 멈춰야 한다. 하지만 환자 대부분은 약의 성분이나 종류를 알지 못한다. 그러니 병원에서 팍스로비드 처방을 원하는 환자에게 평소 복용하는 약봉지를 가져오라고 주문하는 수도 생긴다.

여기에 지난 14일부터 정부가 신속항원검사 양성을 확진으로 인정하면서 내원 환자 수가 폭증했다. 의사들은 신속항원검사를 받으러 밀려드는 코로나 의심 환자들, 일반 환자 진료를 위해 끊임없이 움직여야 했다.

이세라 바로척척의원 원장(서울시의사회 부회장)은 “우리 병원은 신속항원검사를 원하는 사람이 적기 때문에 (검사 결과) 양성이 나온 환자 상태를 보며 팍스로비드 처방도 해줄 시간적 여유가 조금은 있다”며 “반면 신속항원검사를 해달라는 사람이 100~200명씩 몰리는 병원이라면 처방이 불가능에 가깝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16일 오전 코로나19 호흡기 진료 지정 의료기관으로 지정된 서울 시내의 한 이비인후과가 신속항원검사 및 PCR검사를 받으러 온 시민들로 붐비고 있다. /연합뉴스

◇ 일선 현장 물량 부족 문제도 여전

팍스로비드 물량도 부족하다. A씨는 이날 점검표 작성을 마치고 처방전도 받아들었지만 결국 약을 받지는 못했다. 지정 약국에서 약 재고가 없다고 통보했다. A씨는 “정부는 약을 충분히 확보했다는데, 일반인들은 약을 구경도 못하는 현실이 어처구니가 없다”고 말했다.

방역 당국이 밝힌 팍스로비드 계약 물량은 76만2000만명분. 현재까지 국내에 들어온 팍스로비드는 16만3000명분에 이르지만, 지난 14일 기준 처방 건수는 5만3290명분에 그친다. 10만여명 분이 재고로 쌓여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현장에서 약을 받았다는 사람은 손에 꼽는다.

박근태 대한내과의사회 회장은 “서울로 따지면 하루에 6만~7만명의 확진자가 발생하는데, 팍스로비드 처방을 받는 숫자는 1000명 정도에 불과하다”며 “집중관리군 중에서도 증상이 심한 사람만 약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라고 말했다.

박 회장은 “팍스로비드를 원하는 사람에게 처방을 하려면 독감 치료제인 타미플루처럼 모든 약국에서 접할 수 있을 정도로 물량이 넘쳐야 하는데, (팍스로비드는) 처방을 위해 고려해야 할 조건도 너무 많고, 일단 물량 자체가 너무나 부족하다”라고 했다.

정부는 팍스로비드를 증상 발현 후 5일 이내에 복용할 경우 입원과 사망 확률이 88% 감소한다고 밝혔다. 도입 초기엔 물량 부족 우려로 65세 이상에게만 처방됐지만, 지금은 만 60세 이상과 40세 이상 기저질환자(당뇨, 고혈압, 과체중 등), 12세 이상 면역저하자까지 대상이 확대됐다.

팍스로비드는 질병관리청이 전국 17개 시도에 적절한 물량을 배분한다. 다만 치료제가 긴급히 필요할 경우에 대비해 질병청은 일정한 조정 물량을 보유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정부 비축량이 너무 많은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정부는 “비축량 증가는 일시적 현상이다”라며 “14~15일 1만9000개의 팍스로비드를 담당약국, 감염병전문병원에 공급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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