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전쟁의 최대 피해자는 아동입니다"

김서영 기자 2022. 3. 13.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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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이재광 세이브더칠드런코리아 인도적지원팀장 인터뷰

폭격으로 파괴된 키이우 북부의 도시 이르핀에서 3월 5일 피란민들이 무너진 다리를 건너고 있다. AFP연합뉴스

“여덟 살 앨리스는 아크튀르카의 거리에서 죽었다. 할아버지가 보호하려고 했지만 말이다. 키이우의 폴리나는 부모와 함께 폭격으로 숨졌다. 열네 살 아르세니는 잔해에 머리를 맞았지만 구조되지 못했다. 강한 화재 때문에 구급차가 제때 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대통령 부인 올레나 젤렌스키가 러시아 침공으로 숨진 아동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호명했다. 그는 3월 9일(현지시간) 텔레그램에 ‘전 세계 언론에 보내는 공개서한’을 올려 “러시아는 ‘특수작전’이라고 했지만 사실 우크라이나의 민간인 집단학살”이라며 “이 침공의 가장 끔찍한 점은 아동들의 사망이다. 러시아가 ‘민간인을 상대로 전쟁하지 않는다’고 (거짓말을) 할 때 나는 살해된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겠다”고 밝혔다. 젤렌스키는 이어 “전쟁에서 태어난 이들은 지하의 콘크리트 천장을 본다. 이들이 들이키는 첫 번째 숨은 지하의 매캐한 공기다. 이들을 맞이하는 건 꼼짝 못 한 채 겁에 질린 공동체다. 생애 한 번도 평화를 경험해 보지 못한 수많은 아이가 있다”고 말했다.

버스에 탑승한 한 아동이 3월 9일 우크라이나 이르핀에서 대피하는 이들을 보고 있다. AP연합뉴스

전쟁은 약자를 가려내는 가장 잔인한 리트머스 시험지다. 평시에도 약자였던 이들은 전시 상황에선 더 극한 처지로 내몰린다. 전쟁에서 아이들은 언제나 무고한 희생자다. 러시아가 침공을 단행한 지난 2월 24일 이래 군사적 대치를 이어오고 있는 우크라이나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유엔아동기금(UNICEF)에 따르면 3월 6일 현재 약 50만명의 어린이가 다른 나라로 피란했으며, 우크라이나 전역의 학교가 문을 닫아 아동·청소년 570만명이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다.

젤렌스키가 부른 이름은 아주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 이 시간에도 우크라이나의 아동들은 생명을 위협받고 있다. 세계 각지의 재난·분쟁 지역에서 20여년간 활동해온 이재광 세이브더칠드런코리아 국제사업부 인도적지원팀장을 만나 우크라이나의 상황과 전쟁이 어린이들에게 남기는 상처의 심각성 등을 물었다. 3월 8일 인터뷰에서 이재광 팀장은 “전쟁이 한 세대의 교육적 성장과 건강을 저해하며, 특히 어린이들에게 심각한 정신적 충격을 남긴다”고 말했다. 아울러 한국이 높아진 국가적 위상만큼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는 일뿐만 아니라 국제구호 활동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재광 세이브더칠드런코리아 국제사업부 인도적지원팀장 이재광 팀장 제공

-우크라이나 전쟁 소식을 듣고 어떤 심정이었나.

“전쟁으로 인해 가장 피해를 받는 대상은 어린이들이다. 특히나 바로 직전에 아프가니스탄 사태를 겪지 않았나. 태풍이나 쓰나미 같은 재난 현장에서도 힘들지만 전쟁이 터지면 피란을 가거나 방공호에 숨어 공포에 떨어야 한다. 서아프리카 말리에서 일할 때 쿠데타를 경험한 적이 있다. 아내, 아이와 함께 집에 갇혀 며칠 동안이나 총과 탱크의 공포를 겪은 적이 있어 이번 침공 소식이 더 안타까웠다.”

한 아기가 3월 5일 이르핀강을 건너는 걸 도와주는 우크라이나 군인을 쳐다보고 있다. AP연합뉴스

-지금 우크라이나 아동의 상황은 어떤가.

“학교, 병원처럼 아동, 취약계층이 이용하는 시설이 공격을 많이 받았다. 단기적인 타격도 크지만 결국 중장기적인 타격으로 이어진다. 시에라리온이나 라이베리아처럼 많은 아프리카국가에서 나타났듯이, 전쟁이 오래 이어지면 그동안 아이들은 교육을 받을 수 없다. 신체의 위험성이 커지는 것도 문제지만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못하면 결국 그 나라가 그 기간 동안만큼 미래 투자를 멈춘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교육이라는 건 적절한 나이에 제공해야 한다. 아이들이 교육을 통해 발전할 기회를 놓치면 평생 어려움을 겪게 된다.”

우크라이나 응급구조대와 자원봉사자들이 3월 9일 러시아의 폭격으로 파괴된 산부인과 병원에서 부상당한 임산부를 옮기고 있다. AP연합뉴스

-지하철로 대피해 출산한 경우도 있었다.

“대략 학교 211곳, 병원 34곳이 파괴됐다고 들었다. 이렇게 되면 출산, 산모 보호뿐만 아니라 아동들이 초기에 받아야 하는 예방접종도 제대로 할 수 없다. 필수 접종은 (생후 개월수) 타이밍에 맞춰 해야 하는데, 이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맞출 수가 있겠나. 그 세대가 건강하게 자랄 수가 없다. 미래에 성인으로서 살아가려면 보건과 교육의 역할이 큰데 전쟁으로 인한 데미지가 수십년 동안 이어질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2월 27일 우크라이나 동부 마리우폴에서 한 여자아이가 러시아의 폭격으로 숨졌다. 응급 심폐소생술을 실시했으나 아이를 살려내지 못했다. 왼쪽에 아이의 아빠가 있다. AP연합뉴스

-국제법 같은 것에 학교나 아동시설 공격은 피하라는 권고가 없나.

“국제인도법 같은 것이 있다(기자 주: 국제인도법, 유엔 아동권리협약 등이 분쟁 중 아동 보호를 규정하고 있다). 심지어 적군이라도 부상자는 보살피도록 돼 있다. 당연히 학교나 병원을 공격해서는 안 된다.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예를 들면 코트디부아르처럼 내전을 겪은 나라를 보면 항상 군인들이 학교를 기반으로 활동한다. 정규군보다는 인프라가 부족한 반군이 학교를 거점으로 세력을 확장해 나가는 식이다. 우크라이나에서 이런 상황이 똑같이 벌어지고 있는 건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그렇다.”

한 여성이 3월 5일 우크라이나와 폴란드 국경 지역의 메디카에서 우는 아이를 달래고 있다. AP연합뉴스

-전쟁이 터지면 어린이들은 스스로 방어할 수 없다는 점에서 더 안타까움이 큰 듯하다.

“어른들의, 국가 간의 파워게임과 이해관계 때문에 아이들은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도 모르면서 그 고통을 오롯이 겪고 또 평생 안고 가야 한다. 피란길에 오르면서 난리통에 가족을 잃는 사례도 많다. 똑같은 상황이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고 있다. 게다가 먼 거리를 육로로 이동한다는 게 아동에겐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가족과 떨어지거나 부모를 잃으면 또 한 번 큰 충격을 받는다.”

우크라이나 오데사의 고아원에서 온 아동과 보호자들이 3월 4일 베를린에 마련된 호텔에 도착해 방 배정을 기다리고 있다. 100명이 넘는 유대계 난민 아동들이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을 피해 버스로 베를린에 도착했다. AP연합뉴스

-다른 재난과 달리 전쟁이란 특수한 상황에서의 아동구호활동에는 어떤 이해와 관점이 필요한가.

“아동이 취약계층이라는 점은 자연재해나 전쟁이나 기본적으로 똑같지만, 전쟁을 통해 아동이 받는 심리적 충격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전쟁 당시에는 학교에 못 가고 미래가 어떻게 될지 생각할 여력이 없지만 심리적 트라우마는 오래도록 남는다. 이게 굉장히 무서운 부분이다. 우크라이나에서 난민이 400만명까지 발생할 거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이미 153만명 정도의 난민이 발생했다. 우크라이나에 머무는 피란민들은 매일 방공호에서 아무것도 못 보고 공포 속에 있어야 한다. 구호단체들이 식량이나 물자 지원에 더해 아동 심리 지원에 나서는 배경이다. 심리적으로도 충격 상태에 빠져 있을 때 방치하면 나중에 더 큰 심리 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심리적 응급 처치’를 하는 셈이다. 급한 대로 온라인으로 심리 응급처치를 하고 있는데 각종 인프라 파괴로 쉽지는 않은 여건이다.”

2월 28일 우크라이나 마리우폴 한 산부인과 병원 지하에서 출산한 여성이 자신의 아들에게 키스를 하고 있다. 이 병원은 전시 병동과 방공호로 사용되고 있다. AP연합뉴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시리아나 예멘 같은 다른 분쟁지역 어린이들도 영향을 받는다는 분석이 있다.

“거시적으로는 국제 유가에 엄청나게 나쁜 영향을 끼치고 있다(기자 주: 국제 유가는 지난 3월 7일 14년 만에 배럴당 130달러를 찍었다. 배럴당 200달러까지 오를 거란 전망도 나온다). 이는 결국 구호단체의 활동비에 그대로 전가된다. 우크라이나에서 식량을 수입하는 국가라면 (가격이 올라) 수급 문제도 불거질 것이다. 다른 하나는, 각국 정부가 인도적 지원에 정해둔 예산의 총액이 정해져 있다는 점이다. 금액의 총액은 그대로인데 그 안에서 (파이를 나누듯이) 여기를 늘렸다가 저기를 줄이곤 한다. 지금처럼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터지면 더 오래된 아프가니스탄이나 시리아, 예멘 같은 곳에 대한 관심은 낮아진다. 대중의 관심, 정부들의 관심에서 점점 멀어지면 자연스럽게 그쪽을 지원하는 활동도 줄어든다.”

우크라이나 피란민 가족의 유아차가 3월 8일 북부 루마니아 국경지대에 마련된 텐트 뒤편에 서 있다. EPA연합뉴스

-원래 우크라이나의 아동인권 상황이 나쁜 편은 아니었다고 들었다. 러시아가 크름반도를 병합한 2014년쯤부터 학교에 가지 못한 아동들이 늘었다는 보도를 봤다.

“2014년 이전까지는 ‘세이브더칠드런’ 활동이 우크라이나 현장에 없었다. 그러다 2014년부터 돈바스 지역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아프리카나 중동의 다른 사업장에 비하면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았다. 전쟁 때문에 지금 주목을 가장 많이 받게 된 상황이다. 전체 예산이나 인력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기존의 분쟁지역은 밀려날 수밖에 없다.”

우크라이나 드로고비치의 한 학교에 마련된 임시 숙소에 아동들이 서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국제구호단체 중에는 한국전쟁 고아들을 도우면서 시작한 곳이 많은 듯하다.

“월드비전이 그렇다(기자 주: 월드비전은 1950년 밥 피어스 목사가 한국전쟁 피해아동과 주민을 돕기 위해 세운 국제구호개발기구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인 1919년 설립했지만, 한국에서의 활동은 1953년 한국전쟁을 기점으로 시작했다.”

-그래서인지 지금 한국에서도 우크라이나에 관심이 많다. 개인적으로 우크라이나 어린이들을 지원할 방법이 있나.

“정부나 기업 쪽에서도 재정적인 지원에 관심을 많이 보이고 있다. 정기후원이나 일시후원을 하는 개인 후원자들도 있다. 반드시 돈을 내야만 참여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아동보호단체의 메시지나 열악한 상황을 계속 전파하는 활동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국제구호개발의 이해를 높일 수 있다. 한국은 최근 나아지긴 했지만 구호활동 이해도가 아직 다른 원조 선진국들에 비하면 낮다. 이번이 국민적인 이해도를 높이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도움을 받는 나라(수원국)에서 주는 나라(공여국)로 바뀐 역사도 길지 않아서 성장하려면 시간이 걸릴 거다.”

우크라이나와 루마니아의 국경 지역인 시레트에서 3월 7일 한 소방관이 피란 중인 아기를 안고 있다. AP연합뉴스

-세이브더칠드런코리아 쪽에서 우크라이나에 직접 가서 지원할 계획은 없나.

“현재 우크라이나 내에 필수 인력은 파견했다. 그런데 워낙 안전상 이동할 수가 없는 상황이라 다들 대기 중이다. 런던 본사와 우리 쪽의 인력 파견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마리우폴의 방공호에서 3월 7일 한 여성이 아기에게 분유를 먹이고 있다. AP연합뉴스

-국제구호 분야에서 한국이란 나라를 보는 시선은 어떤가. 기대가 많이 달라졌나.

“한국이 아직 ‘원조 선진국’은 아니지만, 부상하고 있다는 점에서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 한국 봉사자들이 2003년 이라크에 갔을 때만 해도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이 위험한 현장에 왔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지금은 한국에도 특정 분야의 전문성을 가진 구호단체들이 많다. K팝이나 한국 문화가 퍼질수록 국제사회가 한국의 지원활동에도 많은 관심을 보인다. 20여년 전에 비하면 전반적으로 위상이 올라갔다.”

우크라이나 군인이 3월 5일 러시아의 폭격으로 무너진 다리 밑의 임시 통로에서 이르핀강을 건너려는 유아차를 나르고 있다. AP연합뉴스

-국제구호활동의 의의는.

“생명을 살린다는 건 값진 일이다. 그 보람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다. 우리가 지원했던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 세이브더칠드런의 현장 직원이 되기도 한다. 촌각을 다투며 생명을 살리는 분야이므로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훈련을 받아야 한다. 보건, 교육, 식량, 식수, 물류를 비롯해 인사와 재무 분야의 전문가들을 현장에서 필요로 한다. 과거에 비해 해외 체류 경험이 많은 한국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짧은 기간이라도 국제봉사를 비롯한 현장으로 뛰어들어보면 좋겠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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