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동물원] 뱀을 먹는 뱀, 그래서 왕뱀

정지섭 기자 2022. 3. 9.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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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울뱀 등 맹독 가진 뱀 즐겨 잡아먹어
독에 완벽하게 면역돼있고, 옥죄는 근육력은 동급최강
독이 없이 근육의 옥죄는 힘으로만 사냥하는 왕뱀은, 죽이기 쉬운 냉혈동물을 먹잇감으로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왕뱀에게 먹히기 직전, 도마뱀이 뱀의 몸을 물며 처절하게 반격하고 있다. /Bryan Snyder/Off the Map Books

먹으려는 자와 먹히지 않으려는 자의 처절한 사투는 배우를 바꿔가면서 동물다큐멘터리에서 되풀이되는 각본없는 드라마입니다. 이 드라마의 무대가 언제나 세렝게티 평원이나 아마존 정글일 필요는 없습니다. 사람과 차들이 드문드문 다니는 한적한 주택가일 수도 있지요. 얼마 전 미국 조지아주에서 행인이 조악한 화질의 동영상으로 담은 뱀들의 사투가 눈길을 끄는 이유도 그래서입니다.

볕좋은날 길바닥에서 몸을 덥히고 있던 팀버방울뱀 옆으로 왕뱀 한마리가 살금살금 다가가더니 곧바로 몸을 휘감아 덮칩니다. 깜짝 놀란 방울뱀은 필사의 탈출을 시도하지만, 몸부림칠수록 이미 단단히 자신의 몸을 옥죈 천적의 서늘한 피부의 감촉을 느낄 뿐이죠. 바로 죽음의 감촉입니다. 순식간에 방울뱀을 제압한 왕뱀은 의식을 잃어가는 방울뱀의 대가리를 문뒤 꾸역꾸역 목구멍을 통해 뱃속으로 넘깁니다. 천적보다 길이는 짧을지언정 몸뚱아리는 충분히 대적할만큼 두껍지만, 왕뱀은 아랑곳않고 부풀어오를 듯한 방울뱀의 몸을 짜그러뜨리며 결국 쉿쉿 소리를 대던 꼬리까지 입으로 우겨넣습니다. 이 동영상은 아나콘다만큼 어마어마한 덩치를 자랑하는 것도 아니고, 블랙맘바나 코브라처럼 치명적인 독사이지도 않은, 그저 뱀세상에서는 그저 평범해보일 뿐인 이 족속이 왜 ‘뱀들의 왕’ 왕뱀으로 불리는지 단적으로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왕뱀이 동족인 뱀을 포식하는 장면 /인터넷·페이스북 캡처

거북이나 도마뱀 같은 다른 파충류와 달리 야생에서 뱀은 육식만 하는 족속입니다. 그것도 살아있는 것만을 취합니다. 버둥거리는 먹잇감을 산채로 꿀꺽하거나, 독니로 물거나 몸으로 휘어감아 죽인 다음에 먹죠. 극히 일부의 뱀이 새알 등을 먹는 정도입니다. 몸통의 크기에 따라서 크게는 사슴이나 멧돼지, 작게는 벌레나 달팽이 등을 통째 삼킵니다. 이 중 왕뱀의 식습관이 돋보이는 이유는 이들이 동족인 뱀을 탐닉하기 때문입니다. 방울뱀, 코퍼헤드, 코튼마우스 이 뱀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우선 한 ‘독’ 하는 미주 대륙의 이름난 독사들입니다. 그와 동시에 캘리포니아 왕뱀의 식단 맨 위에 올라와있는 ‘시그니처 메뉴’ 입니다. 물론 상황에 따라서는 도마뱀이나 설치류 등을 사냥할 때도 있습니다.

왕뱀이 방울뱀을 꼬리끝부터 삼키고 있다. /Jerry Schudda. 미 국립공원관리청 홈페이지

자연 다큐멘터리 사진가 제리 슈다가 찍은 캘리포니아 왕뱀의 포식장면입니다. 사냥감이 된 가련한 뱀은 메이저리그 야구팀 명칭으로도 유명한 사막의 방울뱀 다이아몬드백입니다. 이 장면이 보기 드문 까닭은, 공격이 머리가 아닌 꼬리부터 가해졌기 때문입니다. 통상적으로 뱀이 뱀을 잡아먹을 때는 머리부터 공략합니다. 뒤부터 삼키는 건 주로 개구리를 먹을 때 수법이죠. 뱀의 경우는 공격과 저항을 할 수 있는 머리를 물고 으깨어놓아야 몸의 나머지 부분을 삼키기 편하거든요. 하지만 사진에서 보듯 캘리포니아 왕뱀은 꼬리부터 공략해서 야금야금 삼키기 시작합니다. 이 다이아몬드백은 최후의 순간까지 입을 벌리고 눈을 부릅뜨고 혓바닥을 낼름거리며 저항을 했겠지만, 결국은 왕뱀의 위장속에서 녹아들어가며 생을 마감했습니다.

이 동영상을 보면, 또 다른 왕뱀의 공격 패턴이 보입니다. 자신의 몸을 밀착시킨 다음 먹잇감의 몸을 위치를 바꿔가면서 꽉꽉 물어서 진을 뺍니다. 공격 부위를 꼬리에서 머리쪽으로 조금씩 상향시키더니 기진맥진한 먹잇감의 대가리를 노련하게 흡입합니다. 이렇게 독사들의 천적으로 군림하는 왕뱀이지만, 정작 체내에는 조금의 독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어지간한 독사들의 저항은 충분히 견디고 남을만한 메가수퍼 면역력을 지니고 있지요. 사실 필살기는 따로 있습니다. 바로 ‘근육’입니다. 바디 프로필 사진을 통해 운동으로 다진 우람한 근육을 날 것 그대로 공개하는게 미덕인 세상입니다. 아마 뱀들끼리 바디 프로필 사진을 찍는다면, 단연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족속은 왕뱀일 것입니다. 몸집과 비교해 근육으로 옥죄는 힘이 그 어떤 뱀도 압도하기 때문입니다.

왕뱀이 자신의 덩치보다 큰 뱀을 잡아먹고 있다. /David Penning. 미주리대 홈페이지

지난 2017년 미국 미주리대 생물학과 데이비드 페닝 교수 연구팀은 왕뱀의 가공할만한 근력을 물리적으로 측정하기 위한 연구에 나섰습니다. 뱀들에게 똑같이 죽은 쥐를 줘서 삼키게 하는 방법으로 근력을 쟀더니 왕뱀의 옥죄는 근육 파워는 쥐잡이뱀이나 비단구렁이 등을 압도적으로 능가하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사람 혈압의 최대치보다50%나 높은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다시 말해 이 뱀이 작심하고 사람을 칭칭 감을 경우 질식해 죽을 수도 있다는 뜻이죠. 먹으려는 자와 먹히지 않으려는 자의 싸움이 항상 전자의 승리로 귀결되지는 않습니다.

왕뱀과 도마뱀이 포식자와 피식자의 사투를 벌이고 있다. 몸 전체가 삼켜지면서 생을 마감하기 직전 도마뱀은 끈질기게 뱀의 뭄뚱아리를 물고 늘어졌고, 극적으로 살아났다고 한다. /Bryan Snyder/Off the Map Books

이 도마뱀은 자신을 습격한뒤 꼬리부터 꾸역꾸역 삼키기 시작한 왕뱀의 목구멍에 몸의 90%를 잠식당한 상태였습니다. 이제 활짝 열어젖혔던 턱을 닫고 입을 다물면 뱀의 위장으로 스르르 미끄러져들어가 초강력 위산에 의해 온몸이 녹아들어갈 처지였죠. 그러나 도마뱀은 처절한 삶의 의지로 최후의 저항을 합니다. 온몸의 힘을 짜내어 턱으로 뱀의 몸통을 물었습니다. 이 최후의 일격이 결국 뱀의 태세를 무너뜨리면서, 놀란 뱀은 다급히 도마뱀을 뱉어냈다고 합니다.

왕뱀이 자기보다 몸집이 작은 뱀을 자신있게 삼키고 있다. 위에서 본 모습 /David Penning. 미주리남부주립대홈페이지

이처럼 왕뱀이 뱀이나 도마뱀을 즐겨서 사냥하는 까닭은, 근력으로 먹잇감을 옥죄는 특유의 사냥 스타일과 긴밀히 연관돼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아무래도 젖먹이 짐승이나 새보다는 몸에 찬 피가 흐르는 파충류들이 좀 더 질식해 마비시키기 쉽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왕뱀 말고도 뱀이면 사죽을 못쓰는 뱀무리가 있답니다. 유럽에 사는 연비늘뱀은 몸에 독이 없지만, 온몸으로 뱀을 감고 옥죈뒤 먹는 습성이 왕뱀과 빼닮았습니다. 다만, 왕뱀류가 알을 낳는데 비해 이들은 몸속에서 부화시킨 뒤 새끼 형태로 분만하는 난태생이고요. 아름답고 화려한 무늬에 독까지 가진 산호뱀과 독사의 대명사 코브라 역시 종종 뱀을 사냥합니다. 그러나 독성 물질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신체적 힘만으로 동족을 포식한다는 면에서 이 왕뱀에게 ‘뱀의 제왕’ 칭호를 기꺼이 내려주고 싶다는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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