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중심 문화도시계획가 성원선(上)

효효 2022. 3. 4.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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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효 아키텍트-119] 도시 중심의 현대 건축이 만나는 층위와 접점은 유형과 맥락을 요구한다. 건축가의 활동은 빌트 웍(built work)을 넘어 설치, 조각, 미디어아트 등 미술 영역으로 들어오고 있다.

Kassel-Raum4 도시재생프로젝트 / 사진제공 = 성원선
반면 미술가들이 건축 영역으로 들어오고도 있다. 인류의 발전을 견인한 유럽 르네상스 중심에는 미술가이자 건축가인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가 있다. 현대에 들어와서 중국 작가 아이웨이웨이(Ai Weiwei, 1957~)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주경기장인 냐오차오(Bird's Nest·鳥巢)의 디자인 고문이었다. 건축가는 헤르조그(Jacques Herzog, 1950~)와 드뫼롱(Pierre de Meuron, 1950~) 듀오이다. 냐오차오의 모습은 무채색의 공산주의 국가 중국의 이미지를 깨기에 충분했다.

아이웨이웨이는 경계를 두지 않는 작가이다. 그는 예술의 장르적 구분을 무너뜨리고 디자인, 공예, 건축, 회화적 요소를 모두 사용하고 있다. 현대 미술가이며 도시의 공간 정책에 참여하는 이도 건축가에 포함시켜야 하는 당위가 생기는 사례이다.

성원선 성북문화재단 문화도시TF 팀장이 자신의 박사 논문에서 언급한 미술비평가 로잘린드 크라우스(Rosalind Krauss)의 분석에 따르면, 공간 지향적인 미술은 네 가지 범주로 나뉘어진다. 풍경과 건축물의 조합인 장소-구축물(site construction), 풍경과 풍경이 아닌 것의 조합인 표시된 장소(marked site), 건축물과 건축물이 아닌 것의 조합인 자명한 구조물(axiomatic structure), 풍경도 건축물도 아닌 조각이다. 건축과 조각의 공통점은 '장소 특정적'(site-specific)이라는 점이다.

미술가가 '장소 특정적'인 건축의 영역에 들어와 실패한 사례도 있다. 공공 미술은 장소라는 공적인 공간과 미술이라는 사적인 경험과 취향이 모두 반영된 것으로, 공적 유용성과 대중과의 관계를 고려해야 한다. 미니멀리즘 조각가 리차드 세라(Richard Serra, 1939 ~ )는 1981년 뉴욕 맨해튼의 연방조달청 광장에 '기울어진 호(Tilted Arc)'를 설치한다. 시민의 동선을 변경하여 광장의 기능을 다시 생각하게 하려는 게 작가의 의도였다.

높이 3.7m, 길이 37m, 무게 73t 이르는 조형물은 광장을 오가는 사람들의 시선과 동선을 가로막았고, 사람들은 불편을 느끼기 시작했다. 재료로 쓰인 강철이 녹슬기 시작하자 철거 논쟁에 휩싸였고, 1989년 해체되고 말았다. 공공 미술은 기시감이나 공간 장악력이 필요한 예술이 아니며, 대중이 부여하는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의미가 작품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례가 되었다.

성원선은 어린 시절, 건축가인 외할아버지(장동준) 집에서 자라면서 건축을 건물이 아니라 평면의 블루프린트(청사진)로 이해하고 기억했다.

독일 유학 시절, 규모가 크거나 구조적인 작품을 할 때 공간 감각이 남다르다는 평가를 받았다. 국내에서는 금속공예를 전공하면서 조각적 마인드를 배울 수 있었다.

인터뷰 전부터 성원선을 어디에 포지셔닝해야 할지 고민이었던 필자는 예술가의 활동 영역에 대한 습관적 장르 구분은 고정 관념이고 선입견이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독일 마르부르크(Marburg) 대학에서의 전공 과목 미술사(Kunstgeschichte)는 한국에서와 달리 인문대학 역사학과에 속해 있었다. 미술사 공부의 기본 덕목은 고지도 읽기이다. 도시는 시간대별로 공간이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카셀예술대학(Kunsthochschule Kassel)에서는 시각예술(Bildende Kunst)을 공부했다.

카셀은 마르부르크에서 기차로 1시간 거리이다. 5년마다 열리는 카셀 도큐멘타(Kassel Documenta)는 동시대 미술의 이슈를 담아내는 풍향계로 유명하다. 카셀 도큐멘타는 2년마다 열리는 이탈리아 베니스 비엔날레, 10년마다 개최되는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와 함께 유럽의 3대 미술 행사에 꼽힌다.

미술 행사의 이름이 도큐멘타로 붙여진 이유는, 2차 대전의 참혹성을 기억하며 당시의 동시대성을 기록하겠다는 차원에서 붙여졌다. 도큐멘타는 나치 정권하에서 자행되었던 반인륜적 행위에 대한 반성, 자각에서 출발하였다. 카셀은 분단되기 전 독일의 한가운데에 위치하였다.

카셀역은 문화역사역이다. 아우슈비치로 떠나는 역이 있었다. 'ab Kassel!'은 '카셀을 떠나라'는 표현이지만 속어로는 '나가 죽어라'라는 의미도 있다. 아우슈비치행으로 분류된 유태인은 'ab Kassel!' 직인이 찍혔다.

통독 이후 카셀이 있는 헤센주는 동부 독일 발전과 균형을 맞추기 위해 구도심 재건 프로젝트 개발에 들어갔다. 석사를 마친 2000년 성원선은, 친구 두 명과 같이 헤센주 철도청 작가공모에 응해 당선되었다. 기차 정비 창고로 쓰이던 평면적 100평, 3층의 총 건평 300평 규모의 건물을 임대받았다. 1층은 터키식 펍으로 임대주었고, 2층은 커뮤니티 룸, 3층은 각자의 작업실로 사용했다. 이 공간을 2년 운영하였고, 2004년 임대 용도는 종료되었다.

성원선에게 이때의 미술적·건축적 행위에 대한 경험은 각종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비평하는데 많은 영감을 주었다.

2013년 9월 15일 독일 뮌스터 포럼 / 사진제공 = 성원선
성원선은 뮌스터 프로젝트를 1997년, 2007년 두 번이나 경험하면서 '도시와 예술의 관계', 장르가 아닌 제도와 형식으로 만나는 공공미술(public art)에 대해 본격적으로 눈을 떴다.

1977년 뮌스터 시에서 미국 키네틱 작가 조지 리키(George Rickey)의 '세 개의 회전하는 사각형(Drei rotierende Quadrate)' 작품을 설치하려고 하자, 시민들의 항의가 있었다.

베스트팔렌주립박물관 관장이었던 클라우스 뷔스만(Klaus Bussmann)과 쾰른의 루드비히 미술관 큐레이터 카스퍼 쾨니히(Kasper Konig)가 이 문제를 담당했다. 1회 프로젝트는 시민들과의 합의를 시작으로 부동산 개발자, 도시공학자, 건축가들과 한자리에서 논의한 게 시작이었다.

뮌스터는 2차 세계대전의 폭격으로 도심의 60%가 파괴되었지만, 재건프로젝트를 통해서 뮌스터 시민들의 새로운 주거지는 새로이 조성되었다.

원도심에서 주거지와 대학으로 연결되는 'Aa' 호수를 중심으로 도심으로 들어가는 강변 길은 뮌스터의 지형과 교외 특성을 잘 반영하고 자전거와 도보로 이동할 수 있다. 주민들의 새로운 주거지와 원도심 간의 연결로 이어지는 도시의 중심축을 예술의 장소로 삼는 프로젝트를 통해, 도시는 주민들의 삶과 일상의 장소 속에 작품들을 보게 된다.

1977년 이래 10년마다 열리는 프로젝트는 회를 거듭할수록 자전거를 타고 작품을 찾아다니는 행렬과 도시 곳곳에 설치된 작품이 늘수록 시민들의 자부심도 커졌다. 매번 여름부터 가을까지 전 세계에서 60만명 이상이 방문 관람한다. 행사 기간 중 30만명 인구의 소도시 호텔 방값은 천정부지로 오른다.

성원선은, 다양한 형식의 공공미술 프로젝트들은 도시 재생(urban regeneration), 문화 도시(culture city), 예술도시(art city)라는 명칭으로 도시 풍경을 전환시키며, 물리적 환경뿐만이 아닌 시민의 삶과 일상에 개입해 예술적 창조성을 확산 추구하게 되었다고 본다.

동시대 공공미술은 조각적이거나 특별한 사물적인 것을 초월하여 도시를 구성하고 지역 문제에 공동체적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성원선은, 공공 미술 영역을 '신도시 주의(new urbanism)'의 개념으로 통용되는 '모두를 위한 예술(Kunst f?r Alle)' 가치로의 확산으로 본다.

"도시 공공미술은 사회와 예술가가 만나 정책적 틀 안에서 풀어내는 것이다. 제도와 형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서울은 뮌스터보다 훨씬 더 복잡한 층위로 구성되어 있다. 고층빌딩, 아파트, 지상과 지하를 뚫고 지나가는 도로망, 그나마 한강과 도심의 작은 공원들 마저도 빼곡히 들어선 운동기구와 트랙들로 채워져 있다. 도시 공공 미술 모델을 뮌스터처럼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성원선은, "서울은 예술을 일상의 삶과 연결해야 하는 방식이 전혀 새로운 각도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말한다. 서울을 뒤덮은 아날로그식과 디지털식이 혼재된 광고판, 휘황찬란한 조명들을 활용한 방식을 제안한다.

[프리랜서 효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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