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기름에 화끈해진 불맛.. '원조' 백짬뽕을 밀어내다

기자 2022. 3. 3.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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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거지를 잔뜩 넣어 끓여 낸 경북 상주 외남반점의 우거지 짬뽕. 우거지 특유의 구수하고 시원한 맛이 인상적이다.
이우석 놀고먹기연구소장

■ 이우석의 푸드로지 - ‘짬뽕’의 변천사

日‘잔퐁’·印尼‘ 참푸르’ 유래설

모두다 ‘이것저것 섞는다’는 뜻

한국인 입맛 맞춰 ‘빨간색’ 변신

1990년대 매운음식 열풍 불며

우동 밀어내고 짜장면과 ‘쌍벽’

짬뽕 국물, 술 안주로 팔리기도

그야말로 ‘웃기는 짬뽕’이다. 우선 두 가지 사실이 놀랍다. 필자는 지난주에만 무려 3끼를 짬뽕으로 먹었다. 지난달에도 마찬가지였고 지난해에도 꾸준히 그 정도 빈도 수를 기록했다. 두 번째로 놀란 건 그동안 푸드로지에서 정작 짬뽕을 주제로 다룬 적이 없다는 것이다. 필자가 꽤 좋아하긴 하지만 누구라도 2월 중 한두 번 정도는 짬뽕을 먹었을 것이다. 중국음식점에서 짬뽕이 팔려 나가는 비중을 보면 알 수 있다. 각종 통계에 따르면 직장인 점심 인기 메뉴에 짬뽕은 짜장면과 더불어 여러 한식 메뉴를 제치고 항상 상위권에 포진한다. 2018년 잡코리아가 실시한 직장인의 점심 식사 인기 메뉴 조사에 따르면 짬뽕(짜장)은 2위(부대찌개 5.7%)와 근소한 차이로 5위(5.2%)를 차지했다. 이처럼 한국인의 식생활 속에 밀접하게 녹아 있는 메뉴가 짬뽕이다.

짬뽕의 무엇이 한국인의 입맛을 사로잡았을까. 일단 짬뽕이란 음식에 대해 알아보자. 중식으로 분류하지만 딱히 중식도 아니다. 일본에서 건너온 이름이지만 일식 짬뽕과는 아예 다른 느낌이다. 사료에 따르면 짬뽕 이름의 유래는 일본 나가사키(長崎)에서 처음 등장한 음식 잔퐁(ちゃんぽん)으로 알려졌다. 당시 중국 푸젠(福建)성 출신으로, 식당 시카이로(四海樓)를 운영하던 천핑순(陳平順)이 처음 만들었다고 한다.

일본인 손님들이 “츠판”(吃飯·푸젠성 사투리로 ‘밥 먹었니’라는 뜻)을 잘못 알아듣고 잔퐁으로 불렀는데, 그게 이름이 됐다는 설(說)도 있다. 이 외에도 포르투갈어 기원설, 한자어 참팽(참烹)설, 인도네시아 참푸르(Campur)설 등 다양한 유래설이 난립하고 있다.

잔퐁은 돼지고기와 해산물, 양배추 등을 볶고 닭뼈 우린 국물과 면을 넣는 푸젠식 탕러우쓰몐(湯肉絲麵) 형식인데 푸짐하고 맛이 좋아 화교 노동자와 학생, 심지어 일본인들에게도 인기를 끌었다. 한 가지 신기한 일은 참팽이나 참푸르, 짬뽕이 모두 ‘이것저것을 섞는다’는 의미를 지닌다는 것이다.

유래야 어쨌든 정작 한국에서 맛보는 짬뽕은 빨갛고 매콤하다. 재료나 조리의 유사성은 푸젠성과 많이 떨어진 산둥(山東)성 차오마몐(炒馬麵)과 비슷하다니, 대체 어디서 나온 음식인가? 중국음식점에서 우동으로 파는 다루몐(打로麵)이 ‘우동(うどん)’이란 이름만 차용했듯 짬뽕도 그랬을 확률이 높다. ‘나가사키에 맛있는 국수가 있더라’라는 입소문을 타고 한반도에 상륙해, 새로 만들고 이름만 갖다 붙인 음식이 지금 우리가 만나는 짬뽕인 셈이다.

아무튼 짬뽕은 일본이나 중국보다 한국에서 비약적으로 진화했다. 입맛에 맞춰 보다 매콤 칼칼하고, 다양한 재료를 넣어 푸짐하게 다시 태어났다. 면 대신 밥을 말아 내며 엄연한 국밥의 형태를 갖추기도 했다. 다시 정의하자면 짬뽕은 육류와 해산물, 푸성귀 등을 볶은 다음 육수를 부어 끓여 낸 국물에 국수를 넣은 한국식 중화요리다.

메뉴의 변천사를 살펴보자면 한때는 짜장면과 우동이 중국음식점(식사부) 양대 메뉴였고 짬뽕은 특별 메뉴로 존재했다. 곁가지 메뉴였던 셈인데, 어느 순간 우동이 짬뽕에 자리를 내준 꼴이 됐다. 매운 음식에 열광하기 시작한 1990년대 초반 들어서의 현상이다.

사실 1960년대 이전에는 짬뽕이 그리 붉지 않았다. 사골 국물에 후추를 넣은 정도의 매운맛만 더해 팔았다고 한다. 그러다 주 고객인 한국인의 입맛에 맞춰 고추기름이 많이 든 지금의 짬뽕을 고안했고, 시간이 흐르며 이런 현상은 점점 심화돼 최근의 불짬뽕, 비빔짬뽕 등이 등장하게 됐다. 원래 초창기 짬뽕의 모습을 찾아보자면 요즘도 백짬뽕, 굴짬뽕에서 원래의 맛을 발견할 수 있다.

중국집 메뉴 중 짬뽕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자 고기를 아예 빼고 해산물만 넣은 해물짬뽕(맛은 해물탕에 가깝다), 홍합으로 뒤덮은 홍합짬뽕 등 주요 식재료의 이름을 붙인 짬뽕이 대거 등장했다. 대게 짬뽕, 바지락 짬뽕, 오징어 짬뽕, 차돌박이 짬뽕, 크림 짬뽕(?) 등도 짬뽕의 폭발적 인기에 호응해 생겨난 메뉴들이다.

다른 메뉴는 거의 갖추지 않고 ‘짬뽕전문점’ 간판을 내건 집도 있다. 많은 식당에서 취급하는 만큼 맛집을 찾기 어렵지만, 역설적으로 실패할 확률도 적다. 짬뽕은 기본적으로 매운맛을 내는 까닭에 성의만 있다면 어느 집이나 기본 이상은 한다.

짜장면과 함께 양대 주력 메뉴인 만큼 둘 중 하나를 선택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바로 짬짜면이다. 어느 것을 고른대도 나머지 하나에 아쉬움이 생겨나는 이유다. 욕심 많은 이는 이를 짬뽕 국물로 해결한다. 볶음밥에 곁들이는 국물을 짬뽕 국물로 주문해 아쉬움을 달랜다. 이것이 뉴노멀이 되면서 어느샌가 중국집 계란국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사실 ‘짬뽕 국물’은 원래 당당한 메뉴였다. 식사부의 짬뽕이 아니라 요리부에 이름을 올리고 저녁 술꾼들의 안주로 팔렸다. 면 대신 고기와 해물 건더기를 좀 더 푸짐하게 넣고 찌개 안주처럼 취급했다. 튀김 요리가 많은 중국 음식과도 퍽 잘 어울려 예전부터 인기가 많았다. 이전에는 가격도 따로 정해져 있지 않고 ‘얼마짜리’를 해달라고 하면 그렇게 맞춰 줬다.

짬뽕밥은 중국음식점에서 가장 한국화된 메뉴다. 그야말로 국밥이다. 식사 때 뜨끈한 국물에 밥을 말아 먹는 것을 선호하는 대한민국 직장인들이 하루를 버텨 낼 든든한 에너지를 재빨리 얻기 위해 짬뽕밥을 많이들 주문한다. 짬뽕과 짬뽕밥은 느낌이 다르다. 짬뽕이 후루룩 맛을 즐기는 식도락 메뉴라면 짬뽕밥은 하루를 버텨 낼 밥심을 채우려는 ‘충전’의 느낌이다. 맵고 뜨거운, 그 시뻘건 국물은 꺼먼 속에 들어가 당장 일터에서도 힘차게 엔진을 시동할 휘발유처럼 폭발하고 만다. 이름이야 잔퐁이든, 차오마몐이든, 대한민국의 짬뽕 그리고 짬뽕밥은 그 의미가 다르다. 붉은 국물은 입맛 잃을 여유도 없는 현실 속 내연기관으로, 오늘도 여전히 펄펄 끓어오르고 있다.

놀고먹기연구소장

■ 어디서 맛볼까

◇원흥 = 도심에서 짬뽕으로 가장 유명한 곳. 청량한 매운맛 국물에다 바로 볶아 내 아삭한 채소와 쫄깃한 면발이 들었다. 짬뽕밥에는 좀 더 간을 진하게 하는 등 진정성이 깃들었다. 서울 중구 다동길 46. 8000원.

◇맛이차이나 = 닭육수 국물에 채소와 굴 등 해물을 볶아 넣은 굴짬뽕이다. 맛과 선도를 생각해 겨울까지만 한다. 신라호텔 팔선 출신답게 코스요리도 많이 갖춰 모임이나 회식 장소로 유명한 집. 서울 마포구 독막로 68. 1만 원.

◇홍복 = 남대문 인근에서 오랜 시간 자리를 지킨 연회 중심 중식당. 강한 화력으로 볶아 낸 고기와 채소를 넣은 삼선짬뽕은 그리 맵지는 않지만 적당한 칼칼함이 숨어 있다. 서울 중구 남대문시장길 73-3. 삼선짬뽕 1만500원.

◇황해원 = 옛날식 고기짬뽕. 채소와 해물을 볶고 돼지고기 육수를 부은 후 면을 말아 낸다. 그 위에 수북한 고기 육사(肉絲)를 올렸다. 짬뽕의 타임머신 격이다. 보령시 성주면 심원계곡로 6. 7000원.

◇동해원 = 네티즌과 블로거들이 ‘전국구 짬뽕’으로 꼽는 곳. 가정집을 개조한 점포에서 오전 내내 짬뽕을 볶고 있다. 진한 고기국물에 말아 낸 면발이 압권. 점심 후 바로 문을 닫으니 일찍 가야 한다. 공주시 납다리길 22. 9000원.

◇장순루 = 화교가 40년 이상 운영 중인 곳으로 탕수육과 짬뽕이 인기다. 혀가 얼얼하도록 진한 풍미의 짬뽕 하나로 손님들을 끌어모은다. 재료가 일찍 떨어져 저녁엔 영업하지 않을 때가 많다. 공주시 계룡면 마방길 5-12. 9000원.

◇유일반점 = 제주도에서 간짜장으로 입소문 난 집이지만 짬뽕도 인기다. 신선한 해물을 잔뜩 넣은 짬뽕 국물은 중량감 있다. 아삭한 양파와 매끄러운 면발까지 취향 저격. 제주시 광양7길 13. 8500원.

◇순심원 = 여수 대표 중국집으로 꼽히는 곳. 짬뽕과 철판짜장 모두 인기다. 보기엔 정갈하지만 매큼한 한 방이 숨어 있는 짬뽕 국물이 인상적. 커다란 새우를 올리는 등 비주얼도 고급스럽다. 여수시 교동남1길 5-17. 7500원.

◇서원반점 = 짬뽕의 고장 군산에서 잡채밥으로 유명한 집인데 짬뽕 맛 역시 명불허전이다. 육류와 해물을 적절하게 배합했고 불향까지 가미했다. 얼핏 부드러워 보이지만 매운맛이 두드러진다. 군산시 구시장로 63. 6000원.

◇진흥반점 = 순례객을 끌고 다닐 정도로 유명한 짬뽕 맛집. 불향 가득한 육수에 담긴 건더기는 아삭하고 쫄깃하니 마지막 한 젓가락까지 살아 있다. 면발도 매끈하고 탱글탱글해 화룡점정을 찍는다. 대구 남구 이천로28길 43-2. 8000원.

◇몽짬뽕 = 적당히 맵고 진하면서도 풍미까지 두둑이 들어 짬뽕의 기본을 충실히 지키고 있다. 진국 육수에 푸짐히 재료를 넣고 말아 낸 대구식 짬뽕이다. 인심 좋게 밥은 그냥 내준다. 군포시 고산로211번길 31 108호. 7000원.

◇대성춘 = 내륙이지만 꽃게와 해물을 듬뿍 넣고 달달 볶아 낸 짬뽕으로 인기를 모으는 집. 적당히 칼칼하고 깊은 풍미가 깃든 국물이 좋다. 인구가 적은 지역이지만 점심때면 문전성시를 이룬다. 정선군 사북읍 사북중앙로 57. 7000원.

◇수성반점 = 진하고 걸쭉한 육수 속에 해물의 단맛이 숨어 있다. 화끈한 국물에 존재감을 자랑하는 채소, ‘도회적’인 면발이 웅크리고 있다. 외진 곳이지만 찾아온 손님들로 줄을 잇는다. 고성군 죽왕면 공현진길 37. 해물짬뽕 9000원.

◇동화가든 = 화끈한 짬뽕에 부드러운 순두부를 접목시켜 단숨에 전국구로 유명해진 곳. 강렬한 고추기름 육수에 달곰하고 고소한 순두부가 조화를 이룬다. 강릉 초당순두부길77번길 15. 1만 원.

◇개화식당 = 통복시장에서 반백 년간 주민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집. 짬뽕은 옛날식 고기짬뽕인데 얼큰하고도 고소하다. 주문과 함께 즉석에서 볶아 낸 덕이다. 짜장도 요리도 모두 좋다. 평택시 통복시장로 6번길 2. 7000원.

◇외남반점 = 우거지를 넣어 짬뽕의 시원한 맛을 최대한 끌어낸 집. 육수에 시원한 맛이 가득 배어 있다. 부드러우면서도 속에 아삭함이 살아 있는 우거지는 졸깃한 면발과도 어울린다. 상주시 외남면 석단로 926-1. 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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